-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수작
몇해 전에 강준만이 <조선일보>에 협조적인 지식인들을 매달 게시한 일이 있다. ‘목표가 정당해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면 잘못이다’ 식의 지당한 말씀들(이 나는 종종 역겹다. 이를테면, 어떤 폭력의 위협도 없는 안온함 속에서 주장되는 ‘폭력은 모두 나쁘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귀하다’ 따위 빤질빤질한 말들이) 덕에 그 일은 중단되었는데,
글: 김규항 │
2003-07-23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판오디콘,소음의 원형 고문실
얼마 전에 경주에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는 불국사도 있고, 석굴암도 있고, 그 밖에 여러 유적이 도처에 널려 있어 도시 전체가 곧 박물관이다. 하지만 내가 이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고층빌딩이 없어서 도시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게 경주의 매력이다. 하늘을 가리는 잿빛 고층빌딩 대신 조그만 가옥들 뒤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는
글: 진중권 │
2003-07-16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군대
1986년 2월의 어느 새벽. 나는 군용열차 안에 앉아 있었다. 이놈의 기차는 재미있게도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기를 반복한다. 창문은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어,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병력을 떨어뜨려놓으며 달린 지 10시간. 드디어 ‘내릴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기차가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심하게
글: 심은하 │
2003-07-02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숭고
대통령 선거날이던가.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선배가 환호하는 군중을 보며 말했다. “안 됐군. 그래도 실망하는 데 일년은 걸리겠지.” 내가 대꾸했다. “사람 스타일이 그렇게까지 안 걸릴 것 같아요. 이회창을 따돌렸을 때 김영삼한테 달려가는 거 봤잖아요.”노무현의 스타일. 그게 언제나 나빴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중
2003-06-25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시간(屍姦)
얼마 전 어느 교사가 엽기적인 수업자료를 사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소파 개정’의 당위성을 가르친답시고 어린 중학생들에게 어느 여인의 사체 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칼로 난자당한 뒤 국부에 우산대를 꽂고 온몸에 가루비누를 뒤집어쓴 채로 숨진 참혹한 모습. 경찰청 문서철 속에나 있어야 할 이 끔찍한 살인의 추억이 졸지에 중학교 교실에 들어와 교재로 돌변
글: 진중권 │
2003-06-18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요구르트
1917년 러시아혁명을 시작으로 지구 곳곳에 사회주의 나라들이 생겨났다. 그 나라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 긴장하며 자본주의의 야만을 극복한 사회를 시도했다. 70여년 뒤, 그 가운데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이 일제히 무너졌다. ‘현실 사회주의’의 그런 결과는 대개 사회주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사회주의란 실현 불가능하거
글: 김규항 │
2003-06-12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매트릭스
예전에도 가끔 그런 기억이 있다. 특히 봄철에, 몸속의 혈관들을 따라 한창 물이 오르느라 왠지 피부가 근질거리는 그런 봄철에, 유난히도 어지러운 꿈을 많이 꾸었다. 깨어나면 꿈의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면서 세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이 낯선 남자가 내 남편이란 말이야?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니, 맙소사! 직장에 가면
글: 조선희 │
200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