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에 강준만이 <조선일보>에 협조적인 지식인들을 매달 게시한 일이 있다. ‘목표가 정당해도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면 잘못이다’ 식의 지당한 말씀들(이 나는 종종 역겹다. 이를테면, 어떤 폭력의 위협도 없는 안온함 속에서 주장되는 ‘폭력은 모두 나쁘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귀하다’ 따위 빤질빤질한 말들이) 덕에 그 일은 중단되었는데, 그뒤 강준만의 운동은 꾸준히 진행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일보>에 협조하는 일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보기 어렵게 되었다.
요즘 들어 다시 그런 말들을 종종 듣게 된다. 특정한 신문을 반대하는 건 자유지만 그런 선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뭐 그런 말들이다. 그런 말이 다시 불거지는 데 아무런 배경이 없는 건 아니다. <조선일보>와 사이가 나쁜 노무현이라는 이가 대통령이 되면서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것이 그 본래 의미 외에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포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준만의 5중대’라 불리던 시절이나 진보적 주제에 집중하는 지금이나 <조선일보>에 한결같은 나지만, 오늘 <조선일보> 반대가 갖는 그런 이중적 의미는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나는 “<조선일보>는 우리 모두에게 면죄부를 발부해주는 전지전능한 악당이 아니다”라는 신윤동욱의 의견에 찬성한다. 시민의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조선일보>가 악이고 <한겨레>가 선일 수 있겠지만, 시민에 이르지 못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겐 <조선일보>가 악이라면 <한겨레>는 차악이다.
나는 특정한 신문에 협조하고 안 하고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말을 존중한다. 그런 말에 걸맞은 신문을 두고,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이 할 때라면 말이다. 특정 ‘신문’이 아니라 특정 ‘범죄조직’인 <조선일보>를 두고 그런 말은 도무지 걸맞지 않다(신문이 사실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가 진보적으로 해석하는가는 해당 신문이 선택할 문제다. 그러나 사실 자체를 아예 날조하거나 진실을 감춘다면 그건 더이상 신문이 아니라 범죄조직이다. <조선일보>는 줄곧 그래왔다).
그리고 그런 말은 적어도 ‘범죄조직에 협조하지 않는 정도’의 양식은 갖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강준만이 등장한 지 한두해도 아니고 <조선일보>가 어떻다는 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특히 <조선일보>에서 원고를 청탁할 만한 사람이라면) 모르기 어렵게 된 마당에 굳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그저 <조선일보>에 글을 씀으로써 겪어야 하는 이런저런 불편을 덜어보려는 수작일 뿐이다.
나는 누가 <조선일보>에 글을 쓴다 해서 애써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많은 일 가운데 하필이면 출판 일을 하다보니(빌어먹을!) 갖은 교양과 지성을 자랑하는 동업자들(쌍팔년의 민주화운동 이력을 주렁주렁 매단 느끼한 중년남성들의 출판사에서 미래와 생명을 고민하는 신선하고 청량하기 짝이 없는 출판사까지)이 하나같이 술자리에선 <조선일보> 욕을 하면서 하나같이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고 머리를 조아리는 꼴을 물리도록 보아온 터다.
써라. 써서 짭짤한 원고료 받아 귀여운 새끼 운동화도 바꿔주고 늙은 어미 맛난 것도 사드려라. 기왕이면 사진도 크게 박아, 옛 애인과 재회도 하고 동네에서 명사 행세도 실컷 해라. 다만 고작 그런 이유로 지식 넝마들을 팔아넘기는 주제에 무슨 대단한 자유주의적 양식이라도 지키는 양 떠들지는 마라. 그 범죄조직에 숨이 넘어간 사람들이 얼마며 그 범죄조직 덕에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인지 잘 알면서, 제발이지 허튼 수작들 부리지 마라.김규항/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