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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신도, 외계인도, 귀신도, 사후 세계도 믿는다. 무슨 영험하고 특별한 체험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실은 내가 믿는 건 딱 하나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 무수히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모르는 것을 서둘러 ‘없음’의 서랍에 넣어버리는 대신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 믿음이란 증명이 아니라 결심이고,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내가 모르는 자리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서 기꺼이 겸손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오디세이>를 극장에서 영접한 후 그 믿음을 새삼 확인했다. 감독의 이름만으로 관객을 극장까지 불러 모으는 영향력, 그 고집을 기어이 감당해주는 할리우드 시스템, 극장 영화를 향한 존경과 집념. 그 교차점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결과물이, 3천년 묵은 이야기를 사상 최초로 전편 아이맥스 필름에 담았다. 이런 유일한 영화들을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의 위기라는 말이 인사말처럼 굳어진 시대에, 관객들은 3시간짜리 고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여전히, 명백한 마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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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라는 정청래는 이재명과 김어준의 똘마니를 자처하고 있다.” 2025년 9월21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집회에서 한 연설이다. 자신이 ‘윤석열과 전한길의 똘마니인 줄 몰라서 하는 ‘사돈 남 말’인가. 아니면 ‘너나 나나 넘버 스리’라는 자백 겸 자조인가. 그는 지방선거에서 지고도 사퇴하지 않는다. 큰 정치인이라면 스스로 물러난 뒤 지지자의 아쉬움과 미안함을 등에 업고 다시 돌아온다. 장동혁은 그럴 수 없는 처지다. 어떤 인사는 “배 째라는 건 건달이나 하는 짓”이라 비판했지만, 장동혁에게 어울리는 건 “하늘 건, 이를 달”(<넘버 3>)이 아니라 ‘땅 지, 못 박을 정’(地釘)이다. 장동혁의 반면교사는 김문수일 것이다. 극성 지지층에 영합해 대선 후보가 되었고 40% 넘는 득표율까지 올렸지만, 장동혁에게 패해 당대표가 되지 못하면서 정치 중심에서 밀려났다. 장동혁도 마찬가지다. 대표직에서 내려오는 즉시 지지층이 대체재를 찾을까 겁을 내고 있다.
장동혁이 넘버
[김수민의 클로징] 넘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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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한번은 온다. 그때 누군가는 천근의 몸과 만근의 마음을 짊어지고 기어이 자리로 돌아가 그날 맡은 일을 한다. 왜? 일이니까. 시시하고 맥없는 대답 같지만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어른의 하루가 통째로 들어 있다. 어떤 일도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일은 누군가와 이어진 연결이고, 내가 서 있어야 할 위치이며, 끝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 세 가지 무게를 한 단어 안에 욱여넣다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말이 바로 ‘그냥’이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끝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한다. 체념한 듯 들리는 이 말이 실은 어른이 세상을 버티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는 걸 매일 깨닫는 요즘이다. 공교롭게도 올여름 극장에 나란히 도착한 두 남자, 지친 거미와 길 잃은 왕이 약속이나 한 듯 그 ‘그냥’의 얼굴을 하고 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 파커는 모든 것을 잃은 채 돌아온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4년, 사랑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어른은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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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이다. 모두가 화가 나 있다. 화풀이에 굶주린 사람들은 어떤 이슈가 터져도 순식간에 ‘모세의 기적’속 앞바다마냥 두편으로 쫙 갈라서고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거린다. 단순한 의견의 대립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희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외친다. ‘이렇게까지 싸울 일이냐’고 싸움을 말리려는 이들에게는 ‘양비론자여, 그대 이름은 시어머니보다 더 괘씸한 시누이로다’고 더 거친 공격이 들어온다. 여기서 한번 짚어볼 게 있다. 이러한 과열된 분쟁 구도의 상시화로 이익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그 대립 구도를 앞장서서 만드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핵분열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우주에 작동하는 네 가지 힘 중 하나인 ‘강력’(strong force)은 원자핵이 스스로를 견고하게 묶어두려는 힘이다.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 등의 소립자들은 서로간에 다른 무언가를 (옛날에는 ‘중간자’라고 불렀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강력한 결속을 이룬다. 그런데 외부
[홍기빈의 클로징] 모두 싸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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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보셨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한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호프>이야기로 운을 뗐다.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식의 미지근한 대답은 거의 없었다. 좋았다 아니면 싫었다는 의견을 이렇게 자신 있게 내뱉게 만드는 한국영화가 최근 10년 내에 있었나 싶다. 오프라인에서는 그나마 취향과 평가의 차이를 구분하는 정도의 선은 지키면서 의견을 밝히는데, 온라인에서는 다른 차원으로 시끄럽다. 졸작을 좋아할 수 있고, 걸작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취향을 식견의 문제로 연결하고 타인의 판단을 잘못된 것으로 매도할 때 문제는 다른 영역으로 접어든다. <호프>를 호평한 평론가의 ‘판단’이 온갖 오해와 억측의 근거가 되는 순간, 그 자리엔 논쟁과 담론 따윈 없다. 오직 혐오에 기반한 폭력과 배설이 있을 뿐이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호프>를 긍정하지 않는 쪽이다.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나 장면의 부분적 성취, 롤러코스터 같은 오락적인 재미를 부정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빈 놀이터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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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움짤’을 즐기는 사람이다. ‘움짤’이라는, 한때 신조어였지만 지금은 벌써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단어의 의미가 무언지를 세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그러려면 ‘짤방’이라는 단어부터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이 소위 ‘밈’과도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까지 말해야 한다. 친절할 필요는 있지만 제한된 지면 안에서 그걸 다 해야 할지 말지는 필자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만 더 말하건대, 나는 동물들의 어떤 행동을 포착한 대체로 10초 이내의 동영상 이미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러 짧은 동영상을 스크롤링하며 소비하는 쇼츠나 릴스 등은 사양한다. 아니 심지어 경계하고 혐오하는 쪽이라 해두자.
내가 즐기는 귀여운 동물 움짤은 괜찮고, 대다수가 몰입해 즐기는 쇼츠와 릴스는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만 답하겠다. 나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폄훼하고 왜곡하기 위해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서 무한 반복시키는 콘텐츠를 싫
[정준희의 클로징] 쇼츠무한스크롤링구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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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보다가 <스타크래프트> 한판 하고 나온 느낌이네.” 수요일 점심, 방금 아내와 <호프>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반적으로는 아쉬웠다는 말과 함께 보내온 저 직관적인 한줄 평을 들으니 흐릿해지려던 인상이 선명해졌다.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은데, 뭔가 말을 더 보태고 싶어지는 기분. 마침 <호프>에 대한 비평을 쓰던 중이었는데, 따끈따끈한 일반 관객의 반응을 들으니 온갖 생각이 솟구친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너무 몸을 사렸나. 괜히 입장과 상황에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 좀더 과감하게 써야 하나. <곡성> 때 썼던 지난 글을 뒤적여보니 그건 또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이땐 왜 이렇게 화가 나서 쓴 거야? 설명하기 힘든 자기검열이 이어진다.
개봉 첫날 35만 관객 동원이란 스코어보다 훨씬 와닿는 반응을 접하며 새삼 <호프>를 향한 기대를 실감한다. 1년에 영화 한두편 보기 힘든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의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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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3천을 넘네, 마네 하던 때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데 지난 6월에 9천을 돌파했다. 주변인들의 근황은 ‘삼전닉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주가가 워낙 빠른 속도로 상승하다 보니 마치 주식 투자도 암호화폐처럼 하루아침에 고수익을 노리는 무리한 베팅의 장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교 숙제로 주식을 매수했던 일화를 들었다. 경제 공부는 그래야지, 하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젠 고등학생까지도 투기에 가담하는 것이냐’고 호통치는 아내에게 아이가 아주 크게 혼났다고 했다. 어쨌거나 숙제는 해야 했으므로 아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1주씩 샀고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은 아들로부터 모든 주식을 처분했다는 고지를 들었는데 ‘숫자’와 ‘화면’에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나는 크게 감탄했으나 진정한 ‘킬링 포인트’는 그 후에 등장했다. 전체 수익
[전승민의 클로징] 하우스는 항상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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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목격했다. 누군가는 압도당하고 때때로 혼란에 빠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두렵지만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이 걸음을 부추긴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디서 무엇이 덮쳐올지 알 수 없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불투명할수록, 실체를 보여주지 않을수록 상상이 더해져서인지 저편의 존재가 더욱 뚜렷하게 실감된다. 오해하지 마시길. 특정 영화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를 매혹하는 메커니즘 전반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는 서스펜스와 쇼크의 징검다리다. 서스펜스의 원칙은 간단하다. 여기 무언가, 그러니까 정체를 설명할 수 없기에 ‘괴물’이라 명명한 대상이 있다. 괴물은 노출이 적을수록 위협적이다. 보여줄 때도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주면 신비감까지 함께 떨어진다. 명확하지 않을수록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도리어 더 선명해지는 마법. 그리하여 관객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각자의 오해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라고 할까. 불투명, 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불투명과 불명확 사이 어딘가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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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반 대학 농구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양강 구도였다. 이를 격파한 팀이 중앙대고, 그 주역이 허재다. 그는 기아자동차에 입단해 삼성과 현대의 실업 농구 양강 구도도 무너뜨렸다. 농구에 허재가 있다면 경북 안동에는 ‘한국 녹색당 최초의 당선자’ 허승규가 있다. 시의원 선거에 세번 도전한 끝에, 거대 양당과 문중 정치를 뚫고 36.86% 득표율로 1위를 했다. 허승규는 지난 칼럼 ‘거북이 달린다’(<씨네21> 1559호)의 주인공 장시원 전 울진군의원처럼, 그리고 한때의 나처럼, 경북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향해 지역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온 정치인이다. 나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허승규를 거명하지 못했다. 그는 현직 후보였다. 공직선거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그를 익명화하고 간단히 언급했다. 그때 나는 짐짓 그가 처한 선거 구도를 비관했다. “바깥 사람의 관점”이라고 전제하면서 말이다. 은근슬쩍 깔아놓은 역전극의 복선이었다.
6·3 선거 스무날 뒤
[김수민의 클로징] 역전의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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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연이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을 제대로 알게 된 건 무주산골영화제를 통해서였다. 무주산골영화제는 해마다 동시대 시네아스트를 선정해서 전작을 틀고 한편의 책으로 엮어낸다. ‘설명하기 어려운 괴력의 영화’라는 소문으로 먼저 만난 <바쿠라우>(2019)가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2021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멘도사 필류를 동시대 시네아스트로 소환하지 않았다면 그의 전작을 순서대로 찾아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후, 나는 이 감독의 다음 걸음 걸음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언어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대상을 굳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난감해서 더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영화를 읽고 글로 쓰는 잉여로운 작업 중에 누릴 수 있는 희귀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신작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을 앞두고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인터뷰를 싣는다. 정재현 기자가 꼼꼼히 보낸 서면 질문에 그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를 굳이 글로 쓰고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이번주의)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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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라는 말은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을 통해 유명해졌으며 오늘날에는 일상적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언어학에서 쓰이는 말이었다. 유럽 언어에서 명사와 동사는 인칭, 성, 수, 시제에 따라 무쌍하게 변화한다. 그 변화를 하나의 표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패러다임이었다. 이를테면 독일어 ‘sein’ 동사의 2인칭 복수 과거형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wart’라고 대답하는 식의 표를 말하는 것이다. 이 표는 그러니까 “질문의 틀”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과학탐구에서 연구자가 풀어야 할 과제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매트릭스도 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의 틀”이라는 말은 그저 피상적인 정의일 뿐이다. 그러한 질문의 틀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엄청난 범위의 “의미망”이 깔려 있어야 하고, 이것이 나오기 위해서는 다시 그 근저에 거대한 세계관이 깔려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우리 모두의 영어 공부를 골탕먹였던 완료 시제에 대해 생각해보라
[홍기빈의 클로징] 패러다임 찾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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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름은 장르영화의 계절이다. ‘여름은 호러’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고, 이제 여름은 장르다. 올해 6월 미쟝센단편영화제로 시작하여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로 이어지는 장르 축제의 사이클이 완성된 덕분에 다채로운 장르영화의 한상 차림을 만끽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극장가에서 ‘장르’는 마치 마법의 열쇠처럼 유통된다. 이걸 넣으면 영화가 재미있게 탈바꿈할 뿐 아니라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의 재료. 모두가 장르를 말하고, 다들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각자 말하는 장르의 실체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또렷하게 보이지만 손에 잡히진 않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무언가.
학교에선 이렇게 배웠다. 장르는 관객, 제작(스튜디오/산업), 비평의 꼭짓점에서 출발하여 교차하는 익숙함이라고. 달리 표현하면 관습에 대한 학습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학자 톰 라이얼부터 시작된 장르 이론에 따르면 제작자가 패턴을 만들고, 관객이 학습하여 받아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여름보다 한발 먼저 찾아온 장르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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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리가 있다고 치자. 여기저기에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온갖 상인과 점포, 노점상, 거리 공연으로 넘쳐난다. 행인들도 북적인다.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한 호객 행위를 일삼으면서 먹을 것을 파는데, 죄다 단맛과 짠맛 그리고 매운맛으로 범벅이 된 스낵류이다. 건강에 좋을 리는 없지만 입에는 짝짝 달라붙는 데다가, 조금씩만 맛보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도 별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개중에는 심각한 중독 성분이 들어간 싸구려 화학 제제도 사용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수록 소위 ‘핫플’로 뜨고, 여기저기 유사한 이름을 딴 거리들이 생겨난다. 그곳에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지만, 그런 맛과 분위기를 영 좋아하지 않아서, 게다가 그런 비즈니스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련 업계 사람이기도 해서 그냥 없는 셈 친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데 가지 말라고 경고나 몇번 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팔리는 식품에 우리 농장에서 재배된 작물을 가져다 쓰는 일이 생겼다. 정확히 말
[정준희의 클로징] 나 모르게 벌어지는 나에 대한 범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