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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한테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서래만큼이나 임팩트를 남긴 건 해준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 홍산오의 사연이다. 사랑의 한 속성을 관통하는 듯한 이 문어체의 러브레터는 배우 박정민의 핏발 선 눈빛과 충돌하며 형용하기 어려운 애절의 골짜기를 판다. 가수 화사와 특별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제 시상식 이후 ‘박정민의 멜로’에 대한 수요가 치솟았는데, 개인적으론 그 고점을 <헤어질 결심>을 통해 이미 봤다고 생각했다. <휴민트>를 보고 나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멜로의 저점이 매우 높은 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이 발굴하고, 화사가 붐업시킨 ‘박정민 멜로’의 수요를, 류승완 감독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살뜰하게 활용한다. 역시 ‘대중영화’ 감독다운 영민한 감각이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 개봉 당시에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트렌드와 클래식, 흐름 읽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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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넘겨진 사건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배임 및 뇌물 혐의 재판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이미 결정적 증거가 드러난 사건이다. 윤석열씨의 내란 재판은 그 전형이다.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담은 포고령과 군경의 폭동이 만천하에 중계됐었다. 그러나 ‘이재명 유죄’를 단정하는 국민의힘은 윤씨 재판을 두고는 “판결이 나와봐야 안다”라고 우긴다. 1심 선고가 나와도 “확정판결까지 지켜보자” 하거나 “정치 재판”이라며 불복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해산’을 언급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발을 빼고 있다. 해산 사유로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씨의 내란 관여’와 ‘국민의힘–통일교 유착’을 내세웠다가, 추씨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통일교 의혹이 여야 전반으로 번지자 수그러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해산 사유는 진작에 쌓여 있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이석기씨가 주도한
[김수민의 클로징] 인정사정 볼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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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조곤조곤 말씀하셔서 저도 덩달아 목소리가 낮아졌네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유배지를 자처한 마을의 촌장 엄흥도 역할을 맡은 유해진 배우를 인터뷰했다. 끝나자마자 마치 조용한 도서관에서 나서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커진 그를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숨 쉬듯 너무 자연스러워 눈치채지 못했지만 인터뷰 내내 나의 페이스와 톤에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보통 이런 건 기자의 몫인데, 잠시 부끄러웠다가 이내 경탄했다. 생각해보니 영화 속 배우 유해진의 모습이 딱 그랬다.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순식간에 장면을 장악한다. 편한 상대 앞에서는 능청을 떨다가, 주눅 든 상대 앞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더니, 진중한 상대 앞에서는 한치 밀리지 않고 에너지를 뿜어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팔색조 그 자체다.
한국영화 속 중견배우들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소수의 배우들이 다수의 작품에 반복해서 출연하는 통에 이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듣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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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최근에 행한 한 인터뷰가 널리 회자되고 있다. 파격적인 이야기를 솜씨 좋게 던지는 그답게 이번에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풍요의 시대가 온다. 화폐가 없어질 것이며, 노후 준비 따위는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오로지 희소한 것은 에너지뿐일 것이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좀스런 학자들과 달리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솜씨가 일품이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선 천연자원과 에너지를 제외한(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것들까지도!) 모든 것들이 차고 넘치게 되리라는 예언은 이제 망상이 아닌 듯하다. 만약 지금보다 월등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나온다면, 이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전통적인 생산요소의 구별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그 자체가 기계 장비일 뿐만 아니라 노동과 마찬가지로 기계 장비의 작동에 관련된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 작동을 주도하는 성격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말대로 “옵티머스 로
[홍기빈의 클로징] 일론 머스크, 풍요,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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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에 멜로 로맨스의 불꽃을 지피고 있는 <만약에 우리>의 원작 영화 <먼 훗날 우리>에는 작품을 관통하는 한줄의 대사가 있다. 오랜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린젠칭(정백연)에게 샤오샤오(주동우)가 말한다. “I miss you.” 린젠칭이 자신도 보고 싶었다고 답하니 샤오샤오는 울먹이며 내뱉는다. “내 말뜻은, 내가 널 놓쳤다고.” 소진된 인연의 끝에 선 남녀는 가난한 마음으로 놓쳐버린 순간들을 그리워하며 회한에 잠긴다. 때론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말들이 아쉽고 모자란 마음을 더 적절하게 담아내는 것 같다.
2022년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포스터에는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진즉에 과거가 되어버린 ‘에반게리온’이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현재로 되살아났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입에 올리는 순간, 이제 정말 페이지를 닫고 떠나보내는 ‘bye’의 안녕과 다시 만나 반가운 ‘Hello’의 안녕이 겹친다.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안녕, 양소룡, 로저 앨러스 그리고 벨러 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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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이야기 속 인물들이나 그걸 창조하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이들에게 열광하지는 않았다. 이야기가 당연히도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현실을 진단하고 바꾸는 힘은 허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에 근거를 둔 분석과 대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내 소싯적 가치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나를 불러 소설을 한번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작문 숙제로 낸 수학여행의 기행문을 읽어보시고 내게 ‘스토리 텔러’적인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지금의 학급 학생 수에 비해 적어도 두배에서 세배까지는 되었으니 그걸 다 읽어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을 거다. 그중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골라, 따로 불러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게 어지간한 애정과 소명의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지금도 여긴다. 아니 그 선생님의 당시 나이보다 훨씬 더 먹은 지금의 나이기에 더욱더 감사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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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익숙했던 질서가 무너지고 20세기 후반 짧았던 평화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도처에서 학살이 자행되고, 다시금 약육강식의 패권을 숭상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위선마저 걷어치우고 옳다고 믿었던 상식들이 배신당하는 순간, 이깟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감사하게도 (동시에 원망스럽게도)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주는 영화들이 있다. 마침 4K 리마스터 버전으로 돌아온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도 그중 하나다.
결혼식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3대에 걸친 가족구성원이 겪는 여러 사연을 담는다. 프리즘처럼 각각 흩어진 사연들을 응집시키는 건 8살 소년 양양이 손에 든 카메라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소년이 카메라를 든 이유가 참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양양은 어느 날 아빠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우연히 옆집 여성을 마주친다. 양양은 한눈에 그녀의 우울을 알아차리지만 아빠는 도통 모르는 눈치다. 소년은 묻는다. “아빠가 보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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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평이 쏟아지는 와중에 <대홍수>를 보게 되었다. 듣던 대로 초반 30분 정도를 버티고 나니 점차 미래 신인류 생성 기술의 전말이 드러났다. 여자주인공이 아이에게 느끼는 ‘이모션’을 굳이 모성이라고 부른다면 이 영화는 ‘모성 신파’보다 ‘모성 호러’에 가깝다. 모성이란 여성이 출산과 함께 생물학적 본성으로 성스럽게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무시무시하게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 학습하는 것임을 집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극한상황에서도 내 아이만 챙겨서는 안되고 출산하는 다른 여성, 옆집 노부부의 손녀까지 챙겨야 한다!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간에 대한 서사의 원형으로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홍수>와 비교한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각색한 ‘부성 신파’로 부를 만하다. 아들이 성장하는 데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는 아버지임에도
[임소연의 클로징] 귀엽지 않은 존재를 돌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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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승패가 아니야. 실력과 태도지.” 서바이벌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시즌 1에 출연했던 50년 경력의 대가 여경래 셰프가 전한 후일담은 동서고금 분야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리다. 물론 영화사 별자리에 수놓인 스타들처럼 잊을 수 없는 한 작품, 한 장면, 한순간을 통해 영원으로 기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반짝이는 재능을 넘어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직업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한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무엇으로도 대체하거나 모방할 수 없는 존재 증명이 된다. 요 며칠 존경받는 영화계의 별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69년 연기 경력의 국민 배우 안성기와 헝가리의 시네아스트 벨러 터르의 타계 소식을 들으며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을 마주한다. 한 시절,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안성기는 영화배우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다. 담백한 두 문장 외에 그가 걸어온 세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윽고 두 문장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늘 거기 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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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현은 ‘좌빠+자빠’다>라는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2005년 세밑 <한겨레>에 실린 문화비평가 이재현의 새해맞이 에세이다. 여기서 그는 장구 익히기와 영어 공부를 다짐한다.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맘을 먹으면 신이 나서 뇌에서 엔돌핀, 즉 마약이 마구 분비되는 것이다.” 그는 사석에서도 곧잘 늦깎이 공부가 즐겁다 했다. 요즘 내가 그렇다. 2025년 국가기술자격증(2급)을 두개 땄다. 그런다고 당장 뭐가 되진 않지만, 재미가 컸다. 공부라면 학을 뗐던 내가 말이다. 직업상담사 시험장에는 50대들도 여럿이었다. 사회조사분석사 시험장에선 나 빼고 다 2030이었다. 중간자와 최고령자를 오가며 인생의 묘미를 곱씹었다. 시험장인 신도중학교 3학년 1반의 급훈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그래, 문돌이인 내가 통계수학과 통계분석 프로그램까지 학습한 것도 즐거워서였지.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삶은 기적인가. 다만 나이 먹으니 착잡한 일도
[김수민의 클로징] 반드시 크게 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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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새삼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씨네21> 기준) 설문 대상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2025년 올해의 영화로 꼽진 못했지만, 올겨울 짙은 얼룩을 남긴 영화를 한편만 꼽자면 단연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의 <슈퍼 해피 포에버>였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이 영화는 잔잔한 파도처럼 1년 내내 주변을 서성거리더니 마침내 국내 개봉한 덕분에 관객들과 함께 이 묘한 상실의 회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감독 스스로 ‘어슬렁거리는 영화’라고 표현하던데, 이상하게 그 단어마저 참 다정한 울림으로 귓가를 맴돈다. 최근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일본의 젊은 감독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솔직히 이런 분류가 개별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다지 유효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일련의 흐름이 감지되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24년 <슈퍼 해피 포에버>를 소개하면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집요함으로, 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다정의 씨앗, 행복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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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승에는 사람들의 오래된 집단적 기억이 스며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 전승이 비현실적인 신화나 우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는 그러한 집단 전체가 오랜 시간 공유하는 믿음이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을 때가 많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전승들을 조각조각 퍼즐처럼 모아 기억의 원형을 찾아내는 연구는 대단히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단군왕검이라는 존재의 전승은 특히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찾아보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삼국유사>혹은 <제왕운기>에 나온 버전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대대로 내려온 단군왕검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추론해볼 수 있는 자료와 편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단군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비적 존재의 이미지가 강해진다는 것
[홍기빈의 클로징] 단군왕검 연구를 망친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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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같은 패턴으로 한해를 마감한다. 머릿속으로는 차분히 1년을 되돌아보는 고요하고 우아한 시간을 꿈꾸지만, 현실은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정리 안된 트리 장식마냥 슬그머니 늘어가는 업무에 쫓겨 우당탕탕이다. 연말이나 새해처럼 점을 찍을 수 있는 전환의 날이 되면 막연한 기대가 샘솟는다. 이날만 지나면 마법처럼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에 취한다.
물론 현실에 마법은 없다. 변하고 싶다면 하루하루 꾸준히 쌓아가는 게 전부다. 다만 마법 같은 마술은 가능하다. 마술의 이름은 ‘되돌아보기’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내가 되긴 어려워도, 긴 호흡으로 거리를 두고 보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짬이 없어도 일부러, 우아하진 않아도 틈틈이 2025년을 곱씹는다.
되돌아보니 올해 사적으로 가장 큰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다. 경황없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장례가 끝나버렸는데, 다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몰려올 거라 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연말이 새해에 건네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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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존한다. 헤겔의 <법철학 강요>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두개의 서로 반대 의미를 가진 모순적 문장들을 단순히 ‘그리고’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서 일관된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게 헤겔의 의도였을 테다. 하지만 후대 철학가들은 앞 문장에 중점을 두어 뒤 문장을 포섭하거나, 거꾸로 뒤 문장을 주축으로 앞 문장을 해석하는 전략을 취했다.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는 전자를 헤겔 우파라고 부르며, 진보주의적 성향을 띠는 후자를 헤겔 좌파라고 지칭한다. 나 같은 학자들, 특히 의지가 투영되는 세상(수많은 의지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지고 굴러가는 세상)을 파악하고 해명하려는 학자들은 이 두축 사이에서 요동한다. 한편으론 벌어진 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세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보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납득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늘 어딘가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