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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대작 시리즈 <무빙>이 8월9일 공개됐다. 시리즈를 미리 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재미를 보장했다. 뒤늦게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을 찾아봤다. 역시, 괜히 누적 조회수가 2억뷰에 이르는 메가 히트작이 아니었다. 초반부, 아기 봉석에게 공중부양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부모 미현과 두식(영화에선 한효주와 조인성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방에 그물을 쳐놓고 아기를 재우는 컷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수면 중 아기가 천장에 부딪힐까 싶어 젊은 부모는 방 안에 그물을 쳤고, 그물에 걸린 아기는 곤히 잠든 엄마와 아빠를 공중에서 행복하게 내려다본다. 초능력 아기의 시선 아래, 비범한 사랑을 품은 보통의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아기의 공중 시점으로 색다른 앵글을 만들어낸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너르고 따스한 시선 덕에 마음이 덩달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특별한 신체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니 분명 폭력을 동반한 갈등의 서사가 이어지겠지만
[이주현 편집장] 스크롤 내리거나, 스크린 향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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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었으니 무척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어머니는 어린이용 인명사전 ‘이승만’ 편에 적힌 ‘부정부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심각하게 설명하셨다. 마침 드라마 <제2공화국>이 MBC에서 한창 방영 중이었다. ‘최불암이 이승만 역인데 설마 악역일까’ 싶었다. 그러다 4·19가 일어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년 뒤 러시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를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7월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의 동상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과 함께 세워졌다. 파고다공원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된 지 63년3개월 만의 일이다. 대통령 윤석열도 화환을 보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김영삼은 임기 말 경제 환란을 맞았기에 마냥 떠받들기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국부론(國父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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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유럽에선 40도가 넘는 폭염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 플로리다 남부 바다의 수온은 38도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멀리 눈 돌릴 일도 아니다. 최근 강원도 강릉에선 열대야를 넘어 밤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초열대야가 발생했다. 정말이지 24시간이 덥다. 어쩌면 지금의 극단적 기후 현상은 지구의 비명일지 모른다. 그 비명을 인간이 모른 척한다면 아포칼립스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한편 폭염 속에서 4만보를 넘게 걸으며 카트 정리를 했던 대형 마트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야외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는 건설 노동자와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폭염 속 휴식권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휴식권. 일을 멈추고 쉴 권리.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는 환경일 때 잠시 일을 멈추고 쉬겠다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상식적으로는 무리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감독’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 플랫폼 배달 노동자
[이주현 편집장] 디스토피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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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으니까.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식당에서 어린이 일행이 오르르 몰려 다녔다. 동행한 어른들이 키오스크와 씨름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구누구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란히 앉은 어린이 셋은 말없이 넓은 창 너머 푸르른 정원을 구경했다. 그 눈에 무엇이 담기고 마음에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전시보다 이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물관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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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동네 미용실과 카페도 자주 눈에 띈다. 나도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휴가의 테마는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좋아’ 혹은 ‘반자본주의적으로 살아보기’이다. 사실 이 말의 본뜻은 ‘느리고 게으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돈이 아닌 시간으로 사치를 부려보기로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무해한 플렉스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일. 정해진 일과가 아니라 무계획과 비효율 속에서 즐거움 찾기.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가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며칠은 서울에서 정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기분을 내며 돌아다녔다. 적당히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머물러보는 것이다. 낯선 시간에 낯선 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화요일 아침 7시30분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대한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주현 편집장] 나의 여름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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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만큼 디스토피아적인 소재가 있을까. 그런데 대다수의 재난영화는 사실 그다지 디스토피아적이지는 않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종일관 디스토피아적인 상태의 불편함과 암울함을 견뎌줄 관객이 많지는 않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이들 영화가 다루는 재난은 주로 재난 자체의 기승전결 서사(敍事)를 갖는다. 임박한 파국을 예측해서 경고하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는 기존 시스템의 관성이 있다. 극의 초반기에는 답답하게도 후자의 힘이 압도적이지만, 결국 당도한 재난 앞에 전자의 예지와 역량이 빛을 발하고, 이들의 분투 덕에 재난은 ‘극적으로’ 그래서 ‘대충’ 극복되곤 한다.
이와는 다른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서사는 주로 ‘재난 이후’를 소재로 삼는다. 인간이 멍청해서든 무력해서든 회복할 수 없는 재난의 결과로 펼쳐진 지옥도 위에서, 또 인간은 분투한다. 마치 재난이 소재인 듯하나 실제로는 정치가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이 새로운 ‘자연상태’에 대한 해석은 영화마다 조금씩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서사(敍事, 序詞, 署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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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의 마음이란 뭘까. 살면서 연예인을 좋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순수한 마음이 적극적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혼자만의 애정을 조용히 간직하는 것에 만족하는 고독하고 내성적인 팬이었달까. 성향도 성향이지만 나 때는… 그러니까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엔, 기껏해야 TV와 라디오와 잡지로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살면서 최초로 좋아한 연예인은 이승환이다. 라디오에서 그의 재담과 노래를 듣고 반해 그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챙겨들었다. 인터뷰와 사진이 실린 잡지를 사서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그러곤 밤마다 일기장에 다양한 종류의 고백과 다짐을 써내려갔다. “승환 오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도 음악을 할 거예요. 제가 작곡한 곡을 꼭 불러주세요.” 1990년대 초등학생 팬의 마음은 그런 거였다. 유치하고 귀엽고 순수한 마음. 그러면서도 한없이 진지한 마음. 그것이 결국 팬의 마음이겠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적극적
[이주현 편집장] 팬덤 플랫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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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를 꼬옥 안아주세요>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봤다. 영화 포스터에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한 인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노인돌봄 로봇 ‘효돌이’다. 업체 공식 웹사이트에는 효돌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여성 노인의 사진 아래로 “24시간 부모님 곁에서 정서·생활·인지 건강을 도와주는 AI 돌봄 로봇”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효돌이는 음성으로 복약 시간 알림이나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치매예방 퀴즈를 낸다. 종교말씀이나 노래, 이야기 등을 들려주기도 한다. 노인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다가 이상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기능도 있다. 유용해 보인다.
‘꼬옥 안아달라’는 감성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덤덤했다. 그래서 참 좋았고 다행이었다. 돌봐줄 사람 하나 없이 로봇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을 보며 마음 아파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영화는 내가 그런 감정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한 할머니 집에 사회복지사가 방문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노인을 돌보는 로봇은 왜 아이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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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 극장가는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앞다퉈 경쟁하는 여름 대목이다. 올해도 저마다 압도적 재미를 자신하는 영화들이 개봉일을 확정 짓고 출격 준비를 마쳤다. 시리즈 통틀어 역대급 재미를 선사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7월12일 개봉했고, 7월19일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가 하이힐을 벗은 바비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7월26일엔 밀수판에 뛰어든 해녀들의 이야기인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개봉하고, 8월2일엔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이 우주로 스케일을 넓힌 <더 문>과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만든 실종 외교관 구출 작전 <비공식작전>이 나란히 개봉한다. 8월9일엔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주연의 디스토피아 재난물 <콘크리트 유토피아>, 8월15일엔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펜하이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주현 편집장] 작지만 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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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정당과 의회를 통해 점진적으로 구현하는 정치 노선이다. 7월은 여러 사민주의자들이 마지막 숨결을 남긴 달이다. 1914년 7월31일 장 조레스. 1947년 7월19일 여운형. 1959년 7월31일 조봉암. 그리고 2018년 7월23일,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어온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2007년 7월부터 두달간 나는 그의 캠프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이었다. 당원들에게 행사에 초청하는 전화를 걸고, 그의 연설이나 토론에 어울릴 카피를 짜고, 그에게 쏟아진 음해에 반박하는 논리를 구성하는 일을 했다. 화장실이나 흡연 공간을 다녀오던 나는 때때로 복도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그는 수줍은 소년처럼 배시시 웃으며 눈길을 내렸다. 그는 쉰둘,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진면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경선 후반부에 그와 대화할 기회가 부쩍 늘어났었다. 그는 ‘떠나간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늘 “우리가, 내가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7월의 사민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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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 있는 무수한 글쓰기 책을 섭렵하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쓰기의 기본기를 익히고 좋은 글을 감별하는 눈은 기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재밌고, 그래서 괴롭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역시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본인이 글쓰기 초보라 생각된다면 글쓰기에 관한 책을 한두권쯤 읽어보길 권한다. 언급했다시피 기본기를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기본이란 무엇인가. 기본 중의 기본은 맞춤법 그리고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 쓰는 것, 바른 어순으로 문장을 쓰는 것이다. 맞춤법과 문장은 보통 퇴고할 때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 그만큼 퇴고는 중요하다. 거의 모든 글쓰기 책은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영화책을 탐독하고 영화이론을 공부하면 영화평론을 잘 쓸 수 있을까. 지식의 양과 글쓰기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 지식과 영화 글쓰기 실력도 비례하지 않는다. 영화 유튜버 혹은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을 할
[이주현 편집장] 영화평론상 심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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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와 노랑이는 만난 적이 없다. 같은 학년이지만 학교가 다르고, 사는 곳도 좀 떨어져 있다. 독서교실에서도 수업 시간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요즘 자신들도 모르게 만나는 장소가 있다. 교실 한쪽, <하이디> <톰 소여의 모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이 놓인 ‘클래식’ 책장 앞이다. 이 책들이 대부분 양장이라 무게를 생각해서 맨 아래 칸에 꽂아두었기 때문에 책 꺼내기가 조금 불편하다. 그래도 한명은 월요일에, 한명은 화요일에 똑같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파랑이는 <삼총사>와 <홍당무> 중에서, 노랑이는 <꿀벌 마야의 모험>과 <폴리애나> 중에서 무엇을 먼저 읽을지 고민하는 정도만 다르다.
파랑이는 우리나라 동화를 좋아한다. 우리말로 되어 있어서 작가의 마음을 더 잘 알 것 같단다. 출판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종종 판권도 살핀다. “이 책은 제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나왔네요.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읽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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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넷플릭스 예능 <먹보와 털보>의 인터뷰로 만난 노홍철은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자신이 꿈꾸는 여행이라 했다.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은 지금도 그 꿈을 열심히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서 TV 앞에서 코 박고 살았던 나도 ‘너 커서 뭐 될래’ 소리를 적잖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뭐가 되려고 이러느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결국 영화 잡지를 만들며 살고 있다. 어쨌든 뭐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번주 <씨네21>에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다 무언가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우선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등을 통해 영화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확고한 스타일리스트 웨스 앤더슨 감독과 그의 신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유전> <
[이주현 편집장] 덕업일치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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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천박해졌다. 이 낡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장을 써야 할까 잠시 멈칫했지만, 달리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겠다. 더 맛나고, 더 멋지고, 더 화려하고, 더 높은 것을 얻으려는 데 거리낌이 없다. 죽어라 공부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높은 학점을 따고, 더 좋은 데 취업하고, 더 빨리 승진하려는 이유는 그거다. 이들 여러 이유마저도 실은 한 가지 욕망으로 요약된다. 남한테 꿀리고 싶지 않다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데, 정작 중요한 건 꿀리지 않을 욕망인 시대.
2000년대 초반 유학 시절, 고국에서 찾아온 이들과 친분이나 일로 엮였을 때 받았던 느낌이 딱 그랬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불만투성이였다. 묵는 호텔의 추레함에 대해, 먹는 영국 음식의 맛없음에 대해, 그래서 찾아간 한인식당의 비싼 가격에 대해. 그들은 현지에서 만난, 자신보다 싼 옷을 걸치고 있는 영국인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외양과 옷차림에선 거의 차이도 없는 한인식당 종업원을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중꺾마가 아닌 중꿀욕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