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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이고 근본적인 기술혁신이 벌어져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공포가 확산된다. 이에 대한 경제학 교과서의 표준적인 대답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에 가깝다. 새로운 기술이 확산되면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므로 그쪽으로 노동력이 이동하면서 생산성은 계속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낙관주의의 논리에 별로 설득력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주장에서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시기마다 나타났던 상이한 기술적 혁신들의 상이한 특성들, 그리고 그것들이 긴 시간 동안 진화해온 패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기술혁신’이라고 다 똑같은 성격의 것도 아니며,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노동력, 즉 사람의 대체’도 항상 똑같은 성격의 것도 아니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의 기술혁신은 개인적 집단적 차원의 인간의 노동능력을 하나씩 하나씩 기계가 빼앗아가면서 무력화시켜왔던 줄거리를 가
[홍기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람은 이제 퇴출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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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편하게 해.” 때로(사실 거의 대부분) 말은 내용보다 발화자의 중력에 끌려간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위치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로 소화될 수밖에 없다. 목요일 마감, 이번주도 어김없이 영혼이 탈탈 털린 뒤 잠시 넋을 놓고 멍 때리는 중이다. 원래 한창 바쁠 때 맹렬하게 딴짓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라, 한마디 숨을 크게 내뱉으며 데스크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이번주 내내 뱉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편하게. 힘 빼고.
그러고 보니 요즘 유난히 기자들에게 이런 표현을 자주 던졌다. 그럼에도 정반대로 쉼표 하나 빈칸 하나 없이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정성으로 꾹꾹 눌러 쓴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차오른다. “힘 빼”라는 말이 “제대로, 열심히 하라”고 들렸던 걸까. “편하게 해”라는 말 뒤에 나도 모르게 “하지만 잘해야 돼”라는 행간을 추가한 건 아니었나.
개편 이후 하고 싶은 아이템이 꽉 차 있다. 강렬한 의지까지 불
[송경원 편집장] 적당해 지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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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주기성’이다. 아침 해가 뜬다. 일어난다. 양치질을 한다. 옷을 차려입는다.
지하철을 탄다. 책상에 앉는다. 점심을 먹는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지하철을 탄다. 저녁을 먹는다. 텔레비전을 틀거나 휴대폰 혹은 태블릿을 연다. 졸음이 쏟아진다. 양치질을 한다. 침대에 눕는다.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또 해가 뜰거라 믿으며, 잠 속에 빠져든다.
특정 시간대에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되는 이런 일상은 지겹고 따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주기적이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비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주기성을 깨는 활동이나 사건은 주로 대단히 비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들은 종종 유쾌함을 주기도 한다. 일상이 멈춰 선 그곳에 아주 가끔 시쳇말로 ‘깜놀할’ 즐거움이 끼어들 때도 있기는 하나, 대개의 유쾌함이란, 마치 오랫동안 기획하고 준비했던 여행처럼 일상의 주기성을 의도적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상의 바깥, 일상 안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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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심란한 소식만 들려온다. 개봉 13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4>는 80% 넘는 상영 점유율을 차지하며 (정말 오랜 만에) 독과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를 두고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는데, 틀린 말 하나 없었지만 10년 넘게 똑같은 지적이 이어져도 바뀌는 것 하나 없는 현실 앞에 분노보다는 무기력감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1958년 개관 이래 66년간 충무로를 지켰던 대한극장의 폐업 소식은 마치 어떤 신호탄처럼 들려 무섭다. 슬픔을 느낄 새 없이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위험신호가 도처에서 울리는데 불을 끌 소방수도 없다.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공기관은 벌써 한참 동안 기관장 없이 방치 중이고, 문화체육 관광부는 갖은 명목으로 예산을 줄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게 타격을 받은 곳은 영화제인데, 39개 영화제에 지원하던 예산은 10개로 축
[송경원 편집장] 여기 당신의 영화제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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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에 이어 <삼체>를 봤다. SF계의 노벨상이라는 휴고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류츠신의 소설 <삼체>를 각색한 드라마다. 언뜻 지구의 과학 발전을 중단시키려는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드라마가 공개된 올해 3월은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대폭 삭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연구 현장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감하며 봤다는 과학자 지인들이 많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과학 연구를 하지 못하게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체인. <삼체>에서 지구로 오는 중인 외계인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오는 중’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설정이 흥미롭다. 삼체인이 원래 살던 행성은 태양이 세개인 삼중 항성계에 있어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극심한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던 끝에 태양이 한개뿐이라 기후가 안정적인 지구에 이주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다행히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400년 후의 인류 생존 대 닭강정이 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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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갈 때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아요.” KBS2 <다큐멘터리 3일> ‘서민들의 인생 분기점–구로역’ 편에 나온 한 청년의 답변이 중요한 변화의 순간마다, 플래시백마냥 계속 떠오른다. 무심한 듯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툭 내뱉은 한마디에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의 힘. 누구나 공감할 진심의 힘.
주간지 마감은 생체리듬까지 일주일 단위로 만들어버린다. 매번 눈앞의 잡지에 몰두하다 보면 한달, 한 분기, 일년의 흐름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씨네21>에서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잡지 개편을 하려 애써왔다. 뒤처지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자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새로움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도 개편을 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송경원 편집장] 개편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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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볼게요. 이브 몽탕처럼 멋진 분일 것 같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를 처음 만났을 때, 어느 배우가 잡지 인터뷰에서 이 책을 언급했었다고 말씀드렸다. “아직 한국 배우들을 잘 모른다”는 그에게 <아나키스트>를 추천했다. 2002년은 선생을 만난 첫해이자 선생을 가장 자주 만난 해다. 뜨거운 해였다. 칼럼을 썼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나의 사소한 곤경을 위로하던 선생은, 당적 보유와 선거 운동 참여 문제로 회사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 와중에도 그가 굽는 만두는 일품이었다.
“<나는 서울의 요리사>는 언제 나옵니까?”
“연극배우가 된 것 같아. 그것도 초현실극의.”
종로의 한 생선구이집에서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는 수줍게 토로했다. 그 당에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모두 떠날 때 나는 그의 등판을 예감했다. 모든 방면의 사회운동에서 약자 편이었던 선생은 정치적 기로에서도 항상 가장자리로 향했다. “노무현씨가 됐으면 좋겠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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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엔 거의 한권 통째로 마동석 특별판을 준비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감독도, 몇십년을 활동한 국민배우도 아닌데 갑자기 왜 마동석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범죄도시>로 대표되는 ‘마동석 영화’는 그동안 <씨네21>이 관심 갖고 깊게 다뤄왔던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만듦새와 무관하게 딱히 다양한 해석이 필요한 종류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대로 보고, 화끈한 오락을 만끽한 후, 깔끔하게 극장을 나서면 되는 영화를 두고 굳이 복잡한 해석을 보태는 건 외려 재미를 반감시킨다. 심지어 이번에 개봉하는 <범죄도시4>는 시리즈 중 <씨네21> 역대 평균 평점보다 가장 낮게 나온 상황이 벌어졌다. 별점이 그저 참고 지표에 불과하다고 해도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여러 의미에서 이번 마동석 에디션은 서로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씨네21>과 마동석의 만남은, 아니 그
[송경원 편집장] 마동석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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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사고 싶은 물건에 마침 할인 가격이 매겨진다거나, 이직하고 싶을 때 알맞은 제안을 받는다거나, 복잡한 이사 일정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때 같은 것 말이다. 그런 행운을 맞이하면 그 물건이나 직장, 집이 왠지 더 좋아진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평생을 마음에 두고 살아갈 책 두권을 연달아 만났다. <어린 왕자>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이다.
사막에서 길을 헤매는 전투기 조종사가 이상한 어린이를 만나 꿈같은 이야기를 듣는 <어린 왕자>에는 상상과 은유가 가득하다.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리던 제제가 뽀르뚜까 아저씨를 만나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는 현실의 참혹함과 아름다움이 자극적일 만큼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린 나는 줄거리만 따라갔을 뿐, 더 깊은 의미나 주제를 알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두 작품을 읽고 몸을 떨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슬픔에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좋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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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번주 언론시사가 열린 <범죄도시4> <챌린저스> <여행자의 필요>를 한편도 보지 못했다. 영화기자의 고난이 보기 싫은 영화도 굳이 확인해야 하는 거였다면 편집장의 업보는 거의 모든 시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일정에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예전에는 기사 작성이란 공식적인 핑계가 있었지만 회의 지옥에 파묻힌 요즘,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언론시사는 아무래도 업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개봉 후 늦더라도 놓치지 않고 챙겨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기를 재운 뒤 (정당한 명분과 함께) 심야극장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최근 허락된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문제는 데스킹을 하면서 아직 못 본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분석까지 글로 먼저 접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영화를 글로 읽는 중이다.
본질적으로 영화는 글로 옮겨질 수 없다고 믿는다. 어떤 명문장을 동원해도, 설사 논문 한권 분량의 문자를 동원한다 해도
[송경원 편집장] 영화를 글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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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미래를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실은 거의 매번 그렇다. 그러나 미래를 아는 게 딱히 좋을 게 없는 경우가 많고, 애초에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가끔만 그러는 정도로 타협하기로 했다.
방송을 녹화해야 할 때나, 지금처럼 출판용 글을 써야 할 때, 즉 발화 시점과 수용 시점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때, 그렇다. 특히 그사이 어디에선가 중요한 사건이 도사리고 있을 경우에 더욱 그렇다.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걸 잔뜩 쏟아놓았는데, 그 글이 출판되어 읽히거나 그 방송이 화면으로 나가는 시점에 엄청난 재난으로 온 사회가 침울한 상황에 빠져 있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현재’를 살며 각자의 ‘입장’에서 그걸 받아들인다.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내가 ‘그때’ 왜 그랬고,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따져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밝혀둔다. 이 글은 4·10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에 쓰였다. 소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문어와 달걀 그리고 돗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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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를 보며 문득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떠올랐다.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생각난다. 가장 개인적이기에 가장 창의적이고 동시에 정치적인 이 영화는 당연하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진실을 일깨운다. 내 삶이 누군가의 배경이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 순간도 역사의 일부이며, 사회의 모든 요소는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사실. 입주 가정부 클레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로마>는 얼핏 지극히 사적인 드라마처럼 보인다. 무책임한 남자를 만나 계획에 없었던 임신을 하고, 설상가상 고용주 남편의 외도로 직장마저 잃을 상황에 놓인 원주민 여성의 이야기.
하지만 개인의 어떤 서사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숙고하는 카메라는 현미경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망원경으로 확장되는 법이다. 입주 가정부 클레오의 굴곡진 삶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멕시코 원주민의 역사와 애환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로마>
[송경원 편집장] 잘 버티는 중. 앞으로도 잘 버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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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을 봤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여자주인공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상상조차 못해본 설정을 밀고 나가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끝까지 다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항마력이 필요한 B급… 도 아닌 D급 코미디라고 하기에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몇몇 지인들의 호평에 솔깃해졌다. 강력한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읽어낸 이도 있고 장안의 화제인 <삼체>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는 이도 있었다. 질문도 떠올랐다. 왜 감자튀김도 아니고 탕후루도 아닌, 닭강정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이나 물건의 겉모습에 관심이 많은 내가 재밌게 볼만한 콘텐츠겠다 싶은 기대가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족. 첫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보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다.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외모가 중요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신선한 방식으로 다루어진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최민아(김유정)가 변신한 닭강정이 같은 식당에서 만든 다른 닭강정과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왜 하필 닭강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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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영화 같다. 낭만적으로 들릴 법한 이 말이 요즘은 피로로 다가온다. 요즘 장르가 대체로 디스토피아였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두 대상을 이어 붙이고 싶을 때 비유법으로 다리를 놓는다. 다리를 잇는 요령은 대상에서 유사한 속성 한 가지를 추출하는 데 있다. 예컨대 ‘눈은 마음의 창’이란 표현엔 ‘본다’는 속성을 매개로 눈동자와 창문,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두 세계를 잇는다.
‘영화 같다’는 표현의 다리로 잇고자 하는 건 결국 현실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흔히 ‘영화 같다’고 경탄한다. 여기서 현실과 영화를 잇는 매개는 대중의 욕망이다. 집단의식, 시대정신,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때로 사람들은 영화를 경유하여 각자의 현실을 마주한다. 재밌는 건 이 반응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두 갈래로 갈라진다는 거다. 하나는 소망을 담은 길. 실현되기 힘들지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상적인 상황을 꿈꾼다. 다른 하나는 두려
[송경원 편집장]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드는 가장 쉽고 빠른 길(feat. 투표하고 영화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