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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클로징] ‘AI 슬롭’의 공격

한눈에 보아도 AI로 만들어진 것이 뻔한 저질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다. 숏폼의 SNS 이미지는 말도 안되는 엉터리 이미지들과 동영상들이 장악해버렸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은 생성형 AI 특유의 내용이 텅 빈 비릿한 문체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이런 것들을 음식 찌꺼기를 뜻하는 ‘슬롭’이라는 말을 써서 ‘AI 슬롭’이라고 부른다. AI 비관론 중엔 이런 것이 있다. 생성형 AI란 결국 인류가 기존에 만들어놓은 이런저런 지적 창작물들을 되새김질하여 내놓는 것이며, ‘창발성’이 작동한다고 해도 이는 우발적인 것일 뿐 의식적인 것은 아니므로 결국 원자재가 되는 창작물들의 내용의 의식 수준에 크게 지배되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AI가 쏟아놓는 것들을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부족으로, 돈이 된다는 이유로 그대로 따르고 그대로 유통시킨다. 그러면 AI는 이를 원자재로 삼아 또다시 되새김질하여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러한 ‘되먹임’ 과정이 무한반복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물론 인간의 의식이 높은 수준으로 깨어 있다면 이러한 ‘되먹임’ 과정에서 인간 지능과 AI 지능의 협업으로 끝없는 상승작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용 없는 뻔한 이야기들이 마치 권위 있는 주장과 명제처럼 통용될 것이며, 가장 저열하고 한심한 콘텐츠들이 대량생산되면서 인터넷과 SNS를 메우게 될 것이고, 그걸 지지고 볶고 하는 과정에서 인간 지능과 AI 지능은 공히 끝없는 하락을 겪게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비관론적인 사고 실험일 뿐이지만 AI란 우리의 집단적 의식이 토해낸 토사물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시 먹이는 고문 기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물론 시스템의 자정작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미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AI 슬롭’을 걸러내기 위한 여러 장치의 마련에 착수하였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청정 지역’을 마련하는 일은 분명히 가능하겠지만, 넓고 넓은 인터넷과 SNS의 세상으로 퍼져가는 저 도도한 똥물의 흐름을 과연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같은 해 8월 위키백과에 생성된 영어 문서 2090개 가운데 약 5%가 AI 생성 콘텐츠였다고 한다. 시장조사업체 튜브필터에 따르면 지난 5월 4주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구독자가 크게 늘어난 채널 50개 중 8개는 AI 생성 영상을 쇼츠로 올린 채널이었다고 한다. “태양이 스스로가 흘린 피에 익사하고 있다.” 핏빛 석양을 노래한 시인 보들레르의 불멸의 절창이다. 슬프게도 인류는 피가 아니라 스스로의 토사물에 서서히 질식해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