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겨울, 디저트 왕국이 위기에 빠졌다. 마녀 버니의 마법으로 산타할아버지가 인형으로 변해버리자 모두가 실의에 빠진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디저트 재료인 ‘산타의 토핑’을 구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크리스마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뽀로로와 친구들은 산타를 대신해 디저트 왕국으로 떠나지만 포비와 패티마저 인형으로 변해버리고, 설상가상 닥터 초콜레오의 음모에 빠져 디저트 왕국은 온통 초콜릿에 덮여버린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아이들의 친구 <뽀롱뽀롱 뽀로로>의 극장판 <뽀로로 극장판 스위트캐슬 대모험>은 시리즈 10번째 극장판 영화다. 기념비적인 10번째 모험을 위해 첫 번째 극장판이었던 2004년 <뽀로로의 대모험>을 리메이크했다. 제작사 오콘의 여러 캐릭터들이 컬래버해 출연하는 점도 재미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함께 즐기기 충분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가족애니메이션이다.
[리뷰]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충분한 크리스마스 선물, <뽀로로 극장판 스위트캐슬 모험>
-
홍어를 닮은 외계 생명체가 생존 환경이 파괴된 H-9 행성을 떠나 이주할 새 거주지를 탐사하다 흑산도 바다에 불시착한다. 어선에 포획된 이들은 식당을 운영하는 홍할매(김수미)의 장독에 갇혀 홍어가 될 위기에 처하고, 공연 무대를 위해 축제 행사장을 찾은 밴드와 마을 주민을 공격하며 지구를 차지하려 한다. 영화는 스스로 병맛 코미디 SF를 표방하지만, 어느 범주에서 보더라도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주연배우를 홍보하기 위한 기획 의도가 전면에 드러나는 편.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배우 김수미의 마지막 연기다. 유작이 된 이 영화에서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참여해 특유의 생동감을 잃지 않고 무게중심 역할을 한다. 작품의 성취와는 별개로, 평생 영화에 헌신해온 배우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배우 김수미님의 안식을 빈다.
[리뷰] 홍보의 역습, <홍어의 역습>
-
서거 10주기에 돌아보는 대통령 김영삼. 군사독재 종식과 문민정부의 출범,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 등 대한민국 제도의 큰 틀을 바꿨으면서도 임기 말에 닥친 IMF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이룬 주요 개혁을 챕터로 나눠 구성하고 당시의 영상과 사진, 전현직 정치인과 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개혁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진행됐는지 보여주며 재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퇴임 후 30년 동안 잊혀진 기록을 밖으로 꺼내 다시 들여다보자는 작업. 다시는 국민이 두려움 속에 잠드는 밤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취임 연설은 45년 만에 일어난 계엄의 밤을 상기하게 만든다. 12·3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1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시대 유산을 돌아보는 일은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개혁해나갈지 고민하는 데 의의를 둔다.
[리뷰] 국민이 두려움 속에 잠드는 밤이 다시 오지 않기를, <잊혀진 대통령: 김영삼의 개혁시대>
-
루니스 가족은 각자도생 중이다. 노부부는 투병과 간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고, 큰아들 톰(라르스 아이딩거)은 문제 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느라 바쁘다. 알코올중독과 씨름하는 막내딸 엘렌(릴리트 슈탕겐베르크)은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기에는 이미 너무 다른 모습으로 생을 견디는 중인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잠시 스칠 뿐이다. 이처럼 <다잉>이 묘사하는 혈연은 의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속박에 가깝다. 마티아스 글라스너 감독 또한 죽어가는 부모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듯 작품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덕분에 이야기는 잔인하게 흘러가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음악으로 뿜어져 나오는 장면만큼은 조심스럽게 황홀해진다. 미도 역으로 출연한 한국인 첼리스트 박새롬도 그 순간에 기여한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
[리뷰] 그저 존재하는 일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설움, <다잉>
-
-
텅 빈 여관. 가만히 앉아서 연필로 글을 쓰는 여자. 그가 쓰는 것은 바로 영화 각본이다.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심은경)는 과거의 여행을 기억하며 빈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눈집의 벤씨>를 원작으로 한 <여행과 나날>은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식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어느 여름날, 인적 드문 바닷가에 나온 도시 여자 나기사(가와이 유미)는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나츠오(다카다 만사쿠)를 우연히 만난다. 이들은 발끝도 닿기 어려운 심해에서 얼굴만 동동 띄운 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다. 꿈속 같기도 낮잠 같기도 한 <여행과 나날>은 겨울 속에 선 이의 모습과 여름을 채운 두 남녀의 모습으로 잔잔한 소동을 그린다. 여행의 비일상은 어떻게 언어화되는가. 아름다운 촬영과 심은경의 담백한 연기가 아름답게 뒤섞인다.
[리뷰] 미야케 쇼가 보낸 계절적 서신, 세상을 이런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여행과 나날>
-
간호사 선영(강말금)은 뇌사상태의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아버지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자 남동생 일회(봉태규)의 가족이 오랜만에 병원을 방문한다. 일회의 가족은 사채업자에게 쫓겨 도망다니는 중인데 와중에 착실히 공부한 조카 동호(정순범)가 의대에 합격한다. 시아버지의 부고 문자를 예약해두려던 효연(장리우)이 실수로 전송을 눌러버리고, 가족들은 동호의 등록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미리 치르자고 한다. 권용재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고당도>를 통해 되물림된 가족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여러 차례 가짜 장례식을 치를 때의 긴장감을 부각하여 블랙코미디물로서의 쾌감을 선사하는 한편 원망을 품고도 혈연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는 인물들의 속내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관계를 물질적 가치로 재단하는 현 사회에서 가족이 지닌 의미에 관해 새롭게 묻는 작품이다.
[리뷰] 철천지원수 같아도 결국 옷깃을 붙잡고야 만다, <고당도>
-
스티븐 킹의 소설이 42년 전 상상한 디스토피아는 2025년 그대로다. 벤 리처즈(글렌 파월)는 직장에서 해고된 뒤 투병 중인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냉혹한 프로듀서 댄(조시 브롤린)이 제작하는 TV 리얼리티 쇼 ‘더 러닝 맨’에 참가한다. 30일간 프로 킬러들의 추격을 피하며 미국 전역을 도망다니면 10억달러를 얻을 수 있다. 모든 과정이 생중계되는 동안 대중은 참가자의 죽음을 기다리는데, 신기록을 경신하기 시작한 벤이 예상치 못하게 영웅으로 떠오른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딥페이크 기술이 얼굴을 바꾸고 악마의 편집이 인격을 재단하는 세계를 특유의 유희적인 편집과 액션으로 그려낸다. 가장 그다운 순간은 반체제 활동가 엘튼(마이클 세라)과 그의 노모가 사는 외딴 저택 시퀀스로, <나홀로 집에>와 <싸이코>를 뒤섞은 듯한 코믹한 소동극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장르 관습에 애정 어린 일탈을 가하며 풍자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 영화다.
[리뷰] 킹의 예언은 적중했지만 라이트의 유희는 미지근하다, <더 러닝 맨>
-
2023년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를 놀라게 한 블룸하우스 공포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후속편으로 돌아왔다. <프레디의 피자가게2>는 전편에서 살아남은 경비원 마이크(조시 허처슨)와 그의 어린 여동생 애비(파이퍼 루비오), 연인인 경찰관 바네사(엘리자베스 라일)가 피자가게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삶을 재건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번 편에 새롭게 등장하는 마리오네트를 비롯한 애니메트로닉스는 더 거대해지고 재빠르며 교활해졌다. 귀여운 외형이 무서워 보일 만큼 기발한 점프스퀘어가 공포영화의 재미를 만든다. 특유의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가 살아 있으나 인물들의 회복과 치유에 초점을 맞추면서 극적 긴장감이 옅어졌다.
원작 게임의 감성을 충실히 반영한 공들인 세트와 사탕 가게에 들어선 듯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디테일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리뷰] 약간의 오버쿠킹, 그러나 토핑은 더 다채롭게, <프레디의 피자가게2>
-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가 있다. 생존자들은 아파트 앞마당에 형성된 ‘황궁마켓’에서 통조림을 화폐 삼아 생필품을 거래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곳의 관리자인 상용(정만식)은 뛰어난 사업 수완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의 질서를 세우는 중이다. 어느 날 황궁마켓에 외부인 희로(이재인)가 등장한다. 희로는 상용의 오른팔인 태진(홍경)의 통조림을 훔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실은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로는 또 한명의 중간 관리자인 철민(유수빈)에게까지 접근하여 마켓 내의 권력관계를 뒤흔든다. 한정된 자원의 수요와 공급 논리를 활용해 경제권까지 확보한 희로는 이제 상용이 저질렀던 만행을 밝히려 나선다. <콘크리트 마켓>은 대지진이 일어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재난 장르물이다. 주요 배경인 시장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되는만큼 자연스레 몸의 액션보다는 인물들의 대사와 주인공이 펼치는 계략에 주목하게
[리뷰] 멋진 어른이 부재한 이 시장에, 지진을, <콘크리트 마켓>
-
영화 <바늘을 든 소녀>는 최소한의 존엄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대,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던 이들의 비극적 몸부림을 서늘하게 응시하는 작품이다. 덴마크의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는 가난과 임신, 전쟁 후유증 등이 제도 밖 여성의 몸 위에 겹쳐질 때 만들어내는 고통의 굴레를 황량하고도 냉정하게 포착해낸다. 1919년 코펜하겐,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카롤리네(빅 카르멘 손네)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다. 남편은 전선에서 실종되고, 임신한 몸으로는 일자리를 지켜낼 수 없다. 공장장과의 관계는 카롤리네를 보호하지 못한 채 무너져버리고, 남편은 전쟁의 상흔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궁지에 몰린 카롤리네는 홀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다그마르(트리네 뒤르홀름)를 만나게 되고, 노동과 신체, 모성과 착취가 뒤엉킨 음영의 세계로 침잠해간다. 구조적 폭력의 말단으로 밀려난 카롤리네의 삶을 감싸고 있는 빈곤과 불결, 부패한 도시의 공기는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공포영화에 가까운 감각을 선
[리뷰] 흔들리는 얼굴과 날카로운 바늘 틈새로 스며드는 빛, <바늘을 든 소녀>
-
고등학생 허들 선수 서연(최예빈)은 군청 실업팀 입단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어느 날 유일한 가족인 아빠(김영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서연은 수술동의서엔 서명할 수 없고 입원포기각서엔 서명이 가능한 10대 보호자가 된다. 부녀에게 닥친 일들은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다. 친족단위 돌봄이 기본값인 사회, 선별적 복지제도 사이로 미끄러진 서연은 병원비도 간병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서연에겐 실업팀 선발이 절실하지만, 친구 민정(권희송)의 입단이 내정된다. 민정의 가난은 서류로 증명되어, 그는 ‘불쌍한 아이’로 홍보돼왔고 실업팀 내정도 그 연장선이다. <허들>은 다소 집요하게, 끝없이 달리고 또 가로막히는 감각이 서연의 일상을 잠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중한 가족을 돌보는 일이 어째서 홀로 넘는 허들에 은유되고 마는가. 영화의 물음은 서연을 돕지 못한 어른들을 경유해 화면 밖으로 뻗는다.
[리뷰] 전시되거나 미끄러지거나. 위로하기보단 따져 묻는다, <허들>
-
재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운 동네에서 오래된 LP 바를 지키는 준호(박호산) 앞에 한 손님(송재림)이 나타난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두 사람은 몇달 전 세상을 떠난 연주(고은민)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 <멀고도 가까운>은 떠나간 연인을 애도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로맨스, 미스터리, 그리고 판타지 장르가 혼합돼 있다. 비선형적으로 파편화된 시간 구성과 이질적인 편집 리듬, 그리고 주요 배우들의 1인다역 설정을 통해 실험성이 강조되지만, 연출자가 그 실험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는지는 의문이다. 형식적 야심과 결과물 사이의 아쉬운 간극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는 재즈 음악과 1990년대 한국 시네필리아 문화를 상징하는 크고 작은 기호들을 찾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 2024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장편부문 상영작.
[리뷰] 레트로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동경할 때, <멀고도 가까운>
-
징계와 강등이 이어지는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낀 중년 형사 남혁(허성태)은 제복을 벗을 작정이다. 그와 아슬아슬한 공생관계를 이어온 정보원 태봉(조복래) 역시 자신의 신분을 청산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대한 범죄 사건이었다. <정보원>은 북미 장르물에서 익숙한 투톱 구도인 경찰과 정보원의 관계를 그리며 이들의 직업적 긴장감을 핵심 동력으로 삼는 코미디영화다. 내뱉는 단어의 억양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듯한 허성태와 조복래,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와 케미스트리는 앞으로의 시리즈화를 기대하게 한다. 범죄 에피소드 자체도 여러 갈래의 줄기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범죄도시>, <베테랑> 시리즈와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하며 코미디 듀오 형사물로서 자신만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
[리뷰] 크게 된 허성태, 더 크게 될 조복래, <정보원>
-
2018년 10월31일 시부야에 장막이 드리운다. 주술사 고죠 사토루(나카무라 유이치)는 혈혈단신으로 장막에 갇힌 민간인을 구하려 하나 어릴 적 친구 게토 스구루의 육체를 강탈한 존재에게 봉인된다. 그를 구하러 온 이타도리 유지(에노키 준야), 후시구로 메구미(우치다 유우마)는 주령 마히토(시마자키 노부나가)와 혈투를 벌인다. 그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죽자 이타도리에게 즉결 처형이 내려진다. 그 집행인은 옷코츠 유타(오가타 메구미)다. <극장판 주술회전: 시부야사변×사멸회유>는 <주술회전> 2기의 <시부야사변>의 편집판과 2026년 1월 공개 예정인 <주술회전> 3기 <사멸회유>의 1, 2화를 함께 상영하는 작품이다. 16화 분량의 시부야사변을 50분 남짓한 시간 안에 압축한 전반부는 작화와 연출, 사운드의 쾌감이, 원작의 암울한 정서를 담은 후반부는 명암과 고강도의 액션이 두드러진다.
[리뷰] 서사를 제령하고 폭주하는 시청각적 팬서비스, 다행히 범부 신세는 면한 3기, <극장판 주술회전: 시부야사변 × 사멸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