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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여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재개봉한다. 폭력과 배신으로 점철된 한 여성의 삶을 쇼처럼 연출한 이 작품은,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해 기이한 형식과 가학적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화려한 색채, 뮤지컬의 혼합, 과장된 연기 연출은 한 인물의 파국을 시각적 퍼포먼스로 포장하지만 그 안에는 외면당한 삶이 끝내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여주는 냉혹함이 담겨 있다. 유년기의 상처를 품고 자란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는 성인이 된 뒤에도 비인간적인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그는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반복적으로 착취당하고 버림받으며 자신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최소한의 울타리도 없이 홀로 남겨진 존재가 세상의 공격에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은 비인간적 폭력에 희생된 존재의 기록이자 자기방어의 기본자세를 익히지 못한 이의 비극적 전시물이다. 이 영화는 마츠코를 위로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뷰] 재개봉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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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범죄수사대 폭스 헌트팀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국외로 빼돌린 다이이첸(양조위)을 수년째 쫓고 있다. 한편 신분을 조작해 프랑스에 머물며 금융권 인맥을 쌓은 다이이첸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중이다. 정보를 입수한 팀장 예준(단혁굉)과 샤오지아, 자오위(장오월)는 프랑스에 도착하지만, 국제 공조 수사는 순탄치만은 않다. 설상가상으로 다이이첸이 판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범죄수사물인 <폭스 헌트>는 파리와 상하이를 오가며 촬영됐다. 주연배우들의 호연과 카체이싱을 비롯한 몇몇 액션신이 볼만하다. 교활한 범죄자로 분한 양조위의 여유로운 카리스마는 납작한 인물도 매혹적으로 만든다. 다만 성긴 전개와 다소 매끄럽지 못한 톤 전환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내셔널리즘의 향이 풍기는 후반부 장면들은 몰입을 방해한다.
[리뷰] 갈팡질팡하는 연출, 당황스러운 내셔널리즘, <폭스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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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나이키, 에르메스. 제프 맥페트리지의 그림은 세계적인 브랜드 광고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스케이트보드 디자인으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현재 회화, 그래픽디자인,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니멀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그의 고유한 스타일은 일상 속 루틴에서 비롯된다.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그는 끊임없이 내면을 다스리며 삶과 예술의 균형을 모색해왔다. 다큐멘터리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는 스파이크 존즈, 소피아 코폴라 등 오랜 동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예술가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불안을 창작의 재료로 삼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은 ‘천재 예술가’에게 따라붙는 선입견을 비틀며 제프 맥페트리지만의 창작 윤리를 드러낸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껴안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그의 지혜는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리뷰] 성실함을 무기로 ‘천재 예술가’에 따라붙는 선입견을 비틀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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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오진으로 암 선고를 받은 고등학생 남쯔제(첨회운). 퇴학을 피하려 꾀병 연기를 하던 그는 담임의 지시로 반장인 여쯔제(강제)의 보살핌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둘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싹트고, 장난처럼 시작된 꾀병은 결국 사랑병이 된다.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는 전형적인 청춘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르며 대만 학원 로맨스물 특유의 감수성과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다. 서툰 감정 표현, 빠르게 지나가는 사건들, 소란스럽고 유쾌한 분위기. 고도로 구조화되고 정량화된 시대에 이토록 허술하고 유치한 사랑 이야기가 유효한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갖기 어려운 감정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실수와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로 전하는 서사는 이제 영화관이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멸종위기의 사랑법으로 우리의 빈곤한 마음을 다정하게 토닥인다.
[리뷰] 프레임 안에서 유영하는 멸종 위기 사랑법,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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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공기 좋은 숲속에 자리 잡은 햇빛 왕국.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벤자민은 이웃 나라 캐롤리나 공주의 초상화를 보고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곧바로 사절단을 보내 정식으로 청혼하지만, 공주를 둘러싼 간신들의 계략에 가로막혀 거절당하고 만다. 심지어 캐롤리나 공주는 어머니를 여읜 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상황. 벤자민은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정원사로 신분을 숨긴 채 그녀의 왕국으로 향한다. 뮤지컬 애니메이션 <프라우드 프린세스: 로열 어드벤처>는 사랑의 힘으로 사악한 음모를 이겨내고 위기에 빠진 왕국을 구하는 왕족들의 모험을 그린다. 섬세하게 묘사된 자연광은 두 사람의 박진감 넘치는 여정과 어우러지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귀엽고 개성 넘치는 동식물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센스가 돋보인다. <황금나침반>과 <200% 울프: 최강 푸들이 될 거야!> 제작진이 참여했다.
[리뷰]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예상 밖의 완성도, <프라우드 프린세스: 로열 어드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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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공시생 영수(장희웅)와 경석(김인권)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합격’뿐. 가족도 사랑도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앉기만 하면 붙는다는 도서관 815번 좌석 정보를 입수한다. 이들은 ‘명당’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좌석 전쟁에 돌입하고, 관계가 뒤엉키며 시험보다 더 복잡한 싸움을 벌인다. 공시생의 청춘 생존기 <815 사수작전>은 유쾌한 설정 속에 청년의 절박한 현실을 담아내려 분투한다. 간절한 만큼 치열한가에 대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그 속에서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과감한 웃음과 냉철한 현실 인식 사이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해도 미래를 희망으로 손쉽게 포장하지 않는 태도만큼은 남는다. 과연 이들은 좌석 번호 ‘815’처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 광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리뷰] 간절한 만큼 치열한가, <815 사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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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 메이킹 센스>가 국내에서 처음 개봉한다.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에서 열린 토킹 헤즈의 공연을 몇 차례에 걸쳐 촬영한 필름이다. 토킹 헤즈 자체 제작, 조너선 드미 연출. 40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4K 리마스터링 버전의 선명한 화질 때문만은 아니다. 뉴웨이브의 선구자 토킹 헤즈의 음악에 있는 고유성은 2025년에도 유효하다. 촘촘한 무대를 소화하는 아홉 멤버의 개성과 조화가 빛난다. 일본 전통 춤에서 영감을 받은 안무는 데이비드 번의 기묘한 존재감과 완벽히 어울린다. 카메라는 무대를 역동적으로 활보하며, 즉흥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담듯 이들을 탐색한다. 극영화에 가까운 관점으로 접근한 연출, 현장 객석과 분리된 시선을 취하는 촬영이 독특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기록된 콘서트를 시청하는 것과는 별개의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
[리뷰] ‘창의성을 증명할 필요 없는’(< Artists Only >) 이들의 협업 예술, <스탑 메이킹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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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뒤로 길구(안보현)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껏 주눅 든 길구는 그에게 쉽게 말 붙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구는 새벽녘에 엘리베이터에서 선지와 마주친다. 조용하던 낮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화려하게 꾸민 채 등장한 선지는 길구에게 적대심을 보이며 공격적으로 대한다. 선지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길구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선지의 뒤를 좇던 길구는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에게 발각되는데, 장수는 길구의 우직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밤마다 집 밖으로 나서는 선지의 보호자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한다. 이유인즉 악마가 선지의 몸에 들어온 상태여서 선지가 낮에는 평범하게 생활하다가도 새벽 2시만 되면 악마가 활동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지와 함께하며 길구는 그의 비밀에 관해 더 자세히 알게 된다.
2019년 데뷔작 <엑시
[리뷰] 선의로 완성된 구원의 서사,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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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위는 언제쯤 끝날까. 여름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산뜻한 바람을 맞이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계절로서 짓궂게 서 있을 뿐이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 비로소 미풍을 껴안게 된 청춘들의 이야기인 <남색대문>이 7월 마지막 주에 다시 열린다. 2002년 대만 개봉 이후 한국에서는 영화제와 기획전을 통해서만 소개되다가 2021년 8월 국내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 지 4년 만이다.
대만 청춘영화의 고전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의 재개봉을 맞아 주연배우 계륜미도 12년 만에 내한 소식을 알렸다. 그는 8월8일과 9일 무대인사와 GV 행사에 참여해 자신의 데뷔작에 얽힌 추억을 관객과 나눌 예정이다. <남색대문>에 출연한 경험을 두고 “인간 본성에 대해 더 다양하고 관용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밝힌 계륜미의 고백은, 그가 연기한 주인공 커로우의 성장을 지켜본 관객이 새겼을 법한 감상과 맞닿아 있다. 17살 커로우는
[리뷰] 재개봉 영화 <남색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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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전직 군인이었던 보쿠시(제이미 폭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군인을 치료하는 시설 더 프로그램을 창설한다. 그의 진짜 목적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군인을 세뇌해 체제 전복을 꾀하는 컬트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FBI의 장군 애쉬번(로버트 드니로)은 보쿠시를 제거하기 위해 더 프로그램에서 탈출한 내쉬(스콧 이스트우드)에게 접근한다. 내쉬는 시설 안에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 있다는 단서를 접하고 애쉬번의 작전에 합류한다. <틴 솔저>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연출한 브래드 퍼먼의 신작으로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한다. 다만 세 명배우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만듦새는 아쉽다. 영화 속 설정을 직접 설명하는 편의적인 내레이션, 사건 진행을 방해할 만큼 과한 플래시백이 액션영화의 매력을 반감한다. 그럼에도 컬트 집단의 실상을 담은 푸티지처럼 찍은 컨셉은 인상적이다.
[리뷰] 캐비어 넣은 라면을 굳이 체험하고 싶다면, <틴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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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페트(리애나)부터 덩치 스머프(알렉스 윈터)까지. 스머프 마을의 스머프에게는 각자의 개성과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 저 혼자만 개성이 없어서 방황하던 ‘그냥’ 스머프(제임스 코든)는 어느 날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그가 마을에서 마법을 선보인 순간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파파 스머프(존 굿맨)가 납치당한다. 스머프들은 켄(닉 오퍼먼)과 힘을 합쳐 악당 가가멜과 라자멜(JP 칼리악)을 물리치고 파파 스머프를 구하러 간다. 인기 캐릭터 스머프가 실사와 3D애니메이션을 더한 네 번째 극장판 <스머프> 로 돌아왔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크리스 밀러가 연출했다. 트렌디한 O.S.T와 다양한 작화를 구현하는 기술력은 탁월하나 각본은 엉성하다. 중구난방인 전개와 매력 없는 새 캐릭터, 난해한 멀티버스 세계관이 비주얼의 매력을 반감한다. 곳곳에 삽입된 B급 감성 유머도 당혹감을 남긴다.
[리뷰] 스포티파이 셔플 재생을 누른 듯한 아무 이미지 대잔치, <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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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서동현)의 제안으로 자영(김예림), 동준(이찬형), 예은(오소현), 미연(김은비), 자영의 동생 서우(박서연)는 공모전에 제출할 영상 촬영을 함께하기로 한다. 현재 폐쇄된 지하의 한 저수조에서 6명의 아이들은 무엇이든 알려주는 강령술을 진행해보기로 하는데, 자영은 실제로 강령술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한다. 서우에게 정체 모를 무언가가 빙의되자 이들이 쓴 질문지에 각각의 답이 달리고, 곧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저주의 길로 들어선다. 단편 <캐비닛> <잘 들었어요>를 연출한 손동완 감독의 신작이다. 강령술을 기반으로 캐릭터마다 지향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덕분에 서로의 욕구가 충돌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후반부에 벌어지는 사건이 다소 설득력을 떨어뜨리나, 짝사랑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하이틴물에 기대하는 정서를 드러내면서도 오컬트 장르의 특성을 놓치지 않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리뷰] 익숙한 하이틴 호러의 맛, <강령: 귀신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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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은 세 소년 키야마(사카타 나오키), 카와베(오 다이키), 야마시타(마키노 겐이치)는 죽음의 실체를 알고 싶어 외딴집에 사는 노인 덴포(미쿠니 렌타로)를 관찰한다. 노인의 죽음을 보려고 집 주변을 배회하던 소년들은 마당 일을 돕게 되고 여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계절이 끝날 무렵 소년들은 덴포와 함께 심었던 코스모스 앞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노인을 미행하는 동안 소년들이 지켜본 건 죽음이 아니라 보통의 삶이다. <여름정원>은 죽음이 정원의 꽃처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오래전 떠나온 시절을 소환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되짚게 한다.
[리뷰] 과거를 찾지 않았다면 더 흐드러졌을 여름, <여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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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커플매니저인 루시(다코타 존슨)에게 결혼은 비즈니스다. 물질적 조건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잇는 것이 그의 일. 루시는 짝지어준 커플의 결혼식에서 해리(페드로 파스칼)와 존(크리스 에반스), 두 남자를 만나 갈등에 빠진다. 해리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데다 성격마저 상냥한 남자다. 전 연인 존의 조건은 루시와 사귀던 20대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낡은 집에서 룸메이트와 살며 연기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문제는 루시와 존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 영화는 밀고 당기는 삼각관계의 긴장보단 루시의 고민과 선택을 조명한다. 감독의 전작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낭만적이나 사뭇 다른 매력을 지녔다. 잔잔한 호흡을 유지하며 여러 시공간을 오가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면, 블랙코미디와 묵직한 드라마의 톤을 넘나드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으로 배경을 좁혀 현대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리뷰] 부부싸움마저 상속되는 세상의 한켠에서 사랑을 사유하다, <머티리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