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돌핀보이: 푸른 바다의 수호자>는 쉽고 다정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정한 영웅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어린이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돌핀보이(김채하)는 마린 선장(석승훈)에 의해 마을에서 영웅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이 소년은 돌핀보이라는 히어로 네임 대신 진짜 이름을 갖고 싶고, 또래집단에게 동등한 권위의 친구로 인정받고 싶다. 어느 날 미지의 지도가 마을로 떨어지고, 돌핀보이는 돌고래 스노우볼, 백상어 샤키, 소녀 레일라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돌핀보이: 푸른 바다의 수호자>는 스토리와 설정이 다소 도식적이다. 하지만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라면 큰 불만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리뷰]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돌핀보이: 푸른 바다의 수호자>
-
파티 준비가 한창인 마을. 어린 하마 맘보는 너무 작아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손을 보태고 싶어 하자 어른들은 요리 소스에 넣을 ‘살구버섯’을 따와달라고 주문한다. 즐겁게 숲으로 향한 맘보는 주황색 버섯을 발견하곤 한입 먹어본다. 그러나 그것은 살구버섯이 아닌 ‘요술버섯’이었고, 맘보의 몸은 거대하게 변한다. 놀라서 엉엉 우는 아기 하마에게 동네 사람들은 바다 건너 시베리아의 검은 숲에 사는 마녀에게 가면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는 해결책을 알려준다. 맘보는 검은 숲으로 향한다. 숲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이 숲에서 풀리는 순환구조는, <맘보 점보>가 빽빽한 숲으로 유명한 덴마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트롤> <슈퍼 마리오>등 빠른 호흡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달리 차분하면서도 즐거운 북유럽 애니메이션이다.
[리뷰] 차분하면서도 즐거운 북유럽 애니메이션, <맘보 점보>
-
1990년대, 19살 황현우(강동원)의 꿈은 댄스가수가 되는 것이다. 보컬 도미(박지현), 래퍼 상구(엄태구)와 함께 댄스그룹 트라이앵글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꿈을 이루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명백한 표절로 팀은 해체되고, 20년이 지난 지금 현우는 아무도 찾지 않는 연예인이 됐다. 그런 그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다. 강원도 엑스포 유치 기원 공연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 단 조건은 트라이앵글 완전체로 히트곡 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우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보험회계사가 된 상구와 재벌가 며느리가 된 도미를 찾아간다. <이층의 악당> <해치지않아>를 연출한 손재곤 감독의 신작 <와일드 씽>은 순도 높은 코미디영화다. 90년대 대중문화를 재현한 과거 파트부터 우여곡절 끝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현재까지 능청스러운 웃음을 부지런히 만든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이 직접 그 시절 스타일로 음악방송 무대에 오르더니 강원도 공연
[리뷰] 재기의 희망은 앞만 보는 코미디를 타고, <와일드 씽>
-
가구점 점장 클라크(추이텔 에지오포)는 심리적으로 무너져 있다. 건축가의 꿈은 수포가 되었고, 아내와는 싸우고 헤어졌으며, 가게에는 손님이 없다. 어느 날부터 가구점의 전기세가 수상쩍게 많이 나가기 시작한다. 클라크는 진상을 조사하던 중 가게 지하에서 미지의 공간 백룸을 발견하고, 심리상담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메리는 잠적한 클라크의 음성메시지를 받는다. 메리는 클라크를 찾으러 백룸에 간다. 제임스 완의 아토믹 몬스터가 제작을, A24가 배급을 맡은 <백룸>은 2019년부터 4chan과 레딧 등에서 유행한 크리피파스타 백룸을 소재로 한다. 감독은 16살에 유튜브 채널 <케인 픽셀스>에서 백룸 세계관을 영화화한 단편으로 화제를 모은 20살의 케인 파슨스다. 리미널 스페이스의 폐쇄적 공간감과 VHS 등 90년대 매체의 질감을 활용한 연출, <진격의 거인>뿐만 아니라 슬렌더맨과 SCP 등 인터넷 문화의 영향을 받은
[리뷰]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정석적인 A24 호러화, 그럼에도 날것의 취향이 스멀스멀, <백룸>
-
-
죽음의 순간을 향유한다는 것이 가능해지는 예외적인 순간이 있다. 바로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 오후의 뜨거운 시간이다. 투우사는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하는 생명의 섭리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역행하는 숙명을 지녔다. 그는 거대한 몸체의 황소와 대적하며 맹렬하게 부딪힌 후, 온몸에 짐승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소의 죽음을 증명해야만 살아서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 있다. 투우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산다. 알베르트 세라의 <고독의 오후>는 투우 경기의 결정적 순간, 칼로 소의 급소를 찔러야 하는 마타도르 안드레스 로카 레이를 3년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총 14회의 경기 장면들을 담은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는 투우 경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관조하는 비윤리적 스펙터클이 아니다. <고독의 오후>는 경기장과 자동차 속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투우사 안드레스와 그와 맞섰던 황소, 두 육체 사이의 좁고 깊은 간격을 진동시키는 흥분과 고독의 순간을 그린다. 인터뷰나 내레
[리뷰] 생과 사의 경계에서 부딪히는 살들을 위한 검붉은 기도, <고독의 오후>
-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의 과자를 파는 가게, ‘전천당’. 이곳의 주인 홍자(라미란)는 매일 행운의 동전을 가진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꼭 맞는 과자를 건네준다. 한편 전천당과 경쟁하는 ‘화앙당’의 요미(이레)는 질투, 욕심 같은 어두운 욕망을 이뤄줄 강력한 과자를 내민다. 행운 혹은 불행. 마법 과자를 쥔 이들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영화의 원작 소설은 2013년 일본에서 처음 발간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선 영화로 제작됐다. 이번 개봉작은 일본판과 달리 전천당이라는 공간과 소품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색채감을 강조한 프로덕션디자인으로 아동 관객을 확실히 타기팅했다. VFX는 다소 아쉽지만 시리즈의 연장을 기대해볼 법하다. 한국판의 얼굴로 발탁된 배우 라미란의 안정적인 연기와 이레의 신선한 존재감도 눈에 띤다.
[리뷰] 어린이 맞춤 메뉴로 리뉴얼 오픈,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
1994년, 사이타마현 산속에서 고가의 장기말과 함께 신원 미상의 사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수사를 이어간 끝에,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장기 기사 케이스케(사카구치 겐타로)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곧 시신이 전설적인 도박꾼 토묘(와타나베 겐)로 밝혀지고, 내기 장기의 세계에 잘못 발을 들인 케이스케의 기구한 삶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이널 피스>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일본식 장기(쇼기)를 소재로 삼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는 대국의 내용보다 인물의 표정과 감정선에 주목한다. 숨 막히는 두뇌 싸움을 기대했다면 다소 맥이 빠질 수 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비장한 분위기만 견딜 수 있다면 따스한 일본 풍광 속에서 빛나는 사카구치 겐타로의 눈망울이 반겨줄 것이다.
[리뷰] 수읽기는커녕 바둑알로 사람을 패던 모 영화가 떠오른다, <파이널 피스>
-
부유한 엘리트 가정에서 자란 16살 소년 엔조(엘로이 포후)는 오랜 방황 중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건설 현장 견습생 생활은 그가 자유로운 듯하지만 숨 막히는 가정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서 온 블라드(막심 슬리빈스키)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제78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인 <엔조>는 감각적 퀴어영화를 만든 <120BPM>의 로뱅 캉피요의 신작이다. 고 로랑 캉테와 오랜 파트너로 활동한 캉피요가 고인의 유작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완성했다. 거장 다르덴 형제와 자크 오디아르가 제작으로 참여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청년의 초상이 여름의 계절감과 어우러져서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사운드와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리뷰] 이제는 아지랑이로 다가오는 꿈, 사랑, 그리고 반향을 여름에 담다, <엔조>
-
버스 기사 사와이(야쿠쇼 고지)와 나오키(미야자키 마사루), 코즈에(미야자키 아오이) 남매는 6명이 죽은 버스 납치극의 생존자다. 사와이는 트라우마로 2년 동안 방황하다가 규슈로 돌아온다. 그의 가족은 반기기는커녕 연쇄살인 용의자로 의심한다. 가출한 사와이는 고아가 된 나오키와 코즈에 남매의 집에서 동거하기로 한다. 어느 날 그는 남매의 사촌 아키히코(사이토 요이치로)까지 데리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버스 여행을 가기로 한다. 21세기 일본영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유레카>가 4K 복원으로 국내 최초 개봉한다. 아오야마 신지는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와 수많은 연쇄살인이 남긴 사회적 상흔을 감싸안는 치유의 서사를 펼쳐간다. 세피아 톤 영상과 경이로운 롱테이크 등 영화는 3시간37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숭고미를 선사한다.
[리뷰] 러닝타임에 비례하는 생의 의지와 윤리, 트라우마 회복의 정도(正道)를 개척한 압도적 걸작, <유레카>
-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향해 총을 겨눈 순간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사건으로 남아 있다.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1946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33년을 따라간다. 당시 뉴스 화면과 기록 자료, 재연 장면을 엮어 조선경비대 시절부터 유신체제와 부마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균열을 차근차근 비춘다. 장준하 등 여러 인물의 삶도 함께 담아내며 권력 안에서 벌어진 갈등과 시대 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형식 위에 AI 기술과 퍼포먼스 요소를 더해 기존 역사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실험적으로 연출한 점이 특징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맞이한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리뷰] 역사 다큐의 경계를 넓히는 새로운 시도,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
-
쇼타(오타니 료헤이)가 식사를 하던 라멘집에 대성(진영)이 들어온다. 돌연 눈물을 보인 대성은 헤어진 연인과의 화해를 위해 그녀의 고향 에노시마에 찾아왔다고 말한다. 쇼타 역시 마음의 짐을 안고 한국으로의 출장을 준비하던 차였고, 허심탄회하게 대성과 술잔을 기울인다. 둘의 인연은 CEO인 쇼타가 쓴 사직서와 여자 친구에게 건네려던 대성의 편지가 바뀌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은 여행과 출장 명목으로 두 인물이 서로 삶을 바꿔 살아본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오랜 기간 끌어안고 있던 문제는 타인의 시선에서 새롭게 해석된 채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쇼타와 대성에게도 자신의 삶을 회고할 시간이 주어진다. 일본, 한국을 배경으로 이방인까지 끌어안는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난하고 따뜻한 영화다.
[리뷰] 길을 헤매야 출구도 찾을 수 있다,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
-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이 전남편 규성(고수)과 함께 서울 도심의 한 빌딩에서 개최된 체인스바이오 회사의 콘퍼런스에 참석한다. 이 회사의 CEO에게 앙심을 품은 동료 서영철(구교환)이 콘퍼런스 현장을 찾아와 자신의 몸에 백신을 투여하고는 무차별 바이러스 테러를 가한다. 순식간에 빌딩 전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로 가득해지고 건물 전체가 격리, 통제된다. 세정을 비롯해 안전요원 현석(지창욱)과 거동이 불편한 그의 누나 현희(김신록) 등 몇몇 생존자가 외부의 도움 없이 건물 어딘가에 숨어들어 있는 백신 보균자 영철을 찾아내 함께 탈출해야만 한다. 감염자 모두 하나의 지성체처럼 연결되어 군체를 이룬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 전체가 하나의 군체를 이루듯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 중이다.
[리뷰] 죽으면 뭉치고 살면 흩어진다, <군체>
-
교외의 한적한 낚시터에 도착한 성철(정승민). 우연히 로드킬 사고를 낸 은별(류지민)을 도와주고 식사 약속까지 잡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는다. 한편 통제 성향이 강한 영화감독 성민(손준영)은 이별 직후 새롭게 사귄 여자 친구와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녀가 잠든 사이 몰래 펼쳐본 그녀의 일기장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이야기는 정웅(강정웅)이 성철을 찾아오며 기묘한 변곡점을 맞이한다. 김경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이인>은 삶에 밀착해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건의 내막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며 관객을 밀고 당기는 맛이 일품이다. 홍상수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반복 구조는 건조한 톤을 구사하며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교묘하게 흐려놓는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리뷰] 그렇게 영영 영화 속을 헤매이고 말았답니다, <이인>
-
가족이라도 구성원마다 처한 상황과 고민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세 가족은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그곳에서 아버지 광선(김재현)은 유능한 들개 사냥꾼으로 인정받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죽인 들개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가족이 포개짐을 느낀다. 장남 하준(남단우)은 사춘기 성장기의 자신을 이해하는 친구를 만난다. 막내딸 하나(진세인)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저마다 다른 고충과 고민을 안은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간다. 아버지에서 시작해 아들을 거쳐 딸로 이어지는 서사를 따라가면 여러 겹으로 포개진 가족의 사연이 해소되지 않은 슬픔으로 연결된다. 가족구성원마다 각기 다른 화면비와 촬영 컨셉으로 설계한 것도 그런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야기 곳곳에 숨겨둔 온갖 메타포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모든 장면이 흥미진진한데, 그중에서도 세 번째 챕터
[리뷰] 이민, 성장, 그리움 등 해소되지 않는 애틋함으로 홀린 듯이 끌어들이는 마술, <몽그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