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위치한 아카데미아 카라라 미술관의 재개관을 기념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찾아온다. 18세기 미술품 수집가 자코모 카라라 백작의 수집품을 기반으로 설립된 카라라 미술관은 르네상스부터 19세기 말까지 거장들이 탄생시킨 600여점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다비데 페라리오 감독은 미술관의 주요 작품들을 전문가 인터뷰와 함께 생생하게 담아낸다. 메인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산치오의 걸작 <성 세바스찬>을 비롯해, 보티첼리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초상화>, 피사넬로의 <리오넬로 데스테의 초상>, 벨리니의 <알차노의 마돈나>, 만테냐의 <성모자>, 모로니의 <노인의 초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걸작들은 미술사적 가치를 넘어 초상화가 지닌 인간 내면의 고뇌와 시대의 흔적을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미술관의 내외부 전경을 담아낸 화면은 직접 방문한 듯한 설렘을 자아낸다.
[리뷰]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거장들의 초상, <초상화의 이면. 아카데미아 카라라의 보물들>
-
국제적 재벌 사업가인 자자 코다(베니치오 델 토로)는 쌓은 업보 탓에 매 순간 암살 위협에 시달린다. 페니키아 지역에 거대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현재 그가 추진하는 일생의 프로젝트다. 어느 날 비행기 추락 사고 후 기적적으로 생존한 그는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계획을 이어갈 후계자를 선택하는데, 이는 수녀가 되려는 딸 리들(미아 트리플턴)이다. 이제 자자는 사업 자금을 투자할 자본가뿐만 아니라 아빠를 악당이라 생각하는 딸의 마음까지 얻어야 한다. 그 기묘한 비즈니스 트립에 어리숙한 가정교사 비욘(마이클 세라)이 동행한다. <페니키안 스킴>은 웨스 앤더슨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 역시 시각적 즐거움으로 가득하며, 근작에 비해 서사구조도 그리 복잡하지 않게 느껴진다. 다만 자자가 가끔씩 떠올리는 사후 세계를 통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연출자의 가장 최근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리뷰] 각자가 생각하는 천국의 갭을 좁혀보기 위한 너와 나의 비즈니스 트립, <페니키안 스킴>
-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미연(길은혜)은 아픈 엄마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민이 많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며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연은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유기견 센터를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발견한 강아지 해피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해피는 미연의 가족에게 얼마간 행복을 주는 듯 보이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된 게 없고, 엄마의 병세는 날로 악화된다. 엄마가 보물처럼 껴안고 사는 검은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따라, 이 가족의 미래가 결정날 것처럼 보인다. <해피해피>는 강아지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긍정적인 변화를 맞는 한 인물의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냈다. 미연과 친구, 동네 수의사 캐릭터 등이 만들어내는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또 하나의 주인공 해피의 매력도 돋보이나 그것에만 의존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리뷰] 영화도 인생도 해피하기가 너무 어렵다, <해피해피>
-
그리스의 한 호텔에서 독일 기자가 암살당한 사건이 CIA를 뒤흔든다. 기자 암살 사건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암살된 기자들 모두 미 정보기관의 해외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는 공통점이 드러나면서 여론은 범인을 CIA로 지목한다. CIA는 사실을 긴밀히 파악하기 위해 ‘브릭레이어’라고 불렸던 전설적 요원 스티브 베일(에런 에크하트)을 호출한다. 이미 죽은 걸로 알려진 빅터 라덱(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이 강력한 용의자라고 오른 것에 흥미를 느낀 베일은 협조 요청을 받아들이고 현직 CIA 요원 케이트 배넌(니나 도브레브)과 팀을 이뤄 그리스로 향한다. <브릭레이어>는 FBI 요원 출신 작가 노아 보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서로를 못마땅해하던 2인조가 산전수전을 겪으며 동료애를 느끼는 과정이 익숙하지만 안정적인 재미를 준다. 주인공이 벽돌공이라는 컨셉에 맞춰 사건을 기발하게 풀어가는 재치가 돋보인다.
[리뷰] 익숙한 투닥투닥의 맛으로 밀고 나간다, <브릭레이어>
-
-
희수(노현희)는 아들 재승(송승현)이 전국 1등이 되길 바라며 매타작과 폭언, 가스라이팅을 서슴지 않는다. 심신이 병든 재승의 희망은 첫사랑 정윤(박수빈)뿐. 모의고사를 앞두고 희수는 아들을 이틀 동안 재우지 않고 공부만 시킨다. 그날 밤 재승은 홧김에 칼을 휘두른다. <스위트홈 감독판>은 <CCTV>를 연출한 김홍익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의 만듦새는 대체로 허술하다. 연출에서는 슬로모션과 흑백 전환이 효과적으로 쓰이지 않는 데다가 서스펜스와 공포를 그릴 때 음악에 의존한다는 문제가 두드러진다. 대사가 대부분 일차원적이며 곳곳에서 날것 그대로의 비속어가 쓰인다. 거기에 과잉된 교육열이라는 소재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며 희수의 캐릭터는 극성 학부모를 둘러싼 여성혐오를 답습한다. 구성상으로도 2부에 판타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설득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기술적으로도 미흡한 CG와 음향 연출 탓에 몰입이 쉽지 않다.
[리뷰] 이쯤이면 개꿈의 영화화, <스위트홈 감독판>
-
사내 연애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선아(정지인)는 잠시 시간을 내 본가를 찾는다. 직장 문제로 분주한 그는 서울에서 잠시 함께 지낼 사촌 지수(오우리)와 함께 곧장 올라갈 참이었다. 하지만 상경 전 부모님의 산소에 들르고 싶다는 지수의 말에 지수와 그의 친구 보미(박보람)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반나절이면 될 여정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고 세 사람은 외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최정문 감독의 첫 장편 <내가 누워있을 때>는 서로 다른 아픔을 지닌 세 여성을 낯선 길 위로 초청한다. 저마다 원인과 경과는 다르지만 이들의 상흔은 동시대 여성이 겪는 사회적 문제란 공통점으로 수렴된다. 연대를 도모하기에 최적의 형식인 로드무비를 축으로 삼되 시련 속에서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도록 만든 스릴러적인 터치가 돋보인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상영작이며 지난해 4월 작고한 가수 박보람의 장편 데뷔작이다.
[리뷰] 무례함 앞에서 서로 굳건히 맞잡고 보듬은 손들, <내가 누워있을 때>
-
1932년 미국, 시카고 갱단에서 활동하던 스모크(마이클 B. 조던)와 스택(마이클 B. 조던) 쌍둥이 형제가 미시시피로 귀향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대에 흑인들이 자유로이 음악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술집을 열기 위해서다. 형제는 사촌 동생이자 음악에 재능을 지닌 새미(마일스 케이턴) 등 고향의 친구들을 한데 모아 성대한 오픈 파티를 연다. 그런데 행복하던 이 자리에 예견치 못한 적들이 나타난다. <씨너스: 죄인들>은 다양한 장르, 담론, 역사가 섞인 결합체다. 미시시피의 장대한 풍광을 바탕으로 새긴 전반부에선 흑인들이 겪는 따스한 일상과 차가운 핍박의 연대기가, 후반부엔 조지 로메로(<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나 로버트 로드리게스(<황혼에서 새벽까지>)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강렬한 밀실 장르물이 펼쳐진다. 근래 조던 필 감독이 <겟 아웃> <놉> 등에서 다뤘던 미국의 인종차별적 맥락 역시 전반의 서사를 감싼다.
[리뷰] 흥미로운 풍경화, 밀실극, 장르물 그러나 예상보다 약한, <씨너스: 죄인들>
-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제작자보다 거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 반생태주의와 자연파괴적 태도, 팽창하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주의를 따끔하게 일침하는 작가. 현실 반영도 높은 목소리를 머뭇거리지 않는 지도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일관된 태도는 인류 역사의 궤를 함께 따라 걷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일대기와 전작을 엮어 그의 세계관이 완성될 수 있었던 과정을 들여다본다. 특히 그의 가능성을 일찍이 감지한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 그의 첫째 아들 미야자키 고로, 동료 애니메이션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등 그와 긴 시간을 함께해온 이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평론서나 저술서를 낸 비평가와 평론가의 말을 통해 평단에서 바라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입지, 예술적 의의, 사회문화적 분석 등을 들어볼 수 있다. 1996년
[리뷰] 예술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무엇인가, 여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답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아버지(오정세)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중학생 완서(이재인)는 심장이식 수술 후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는다. 일반적인 후유증이나 적응 기간도 없이 말끔히 정상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에게 폭발적인 힘과 번개처럼 빠른 속도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완서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지성(안재홍). 폐이식 이후 강풍을 일으키는 능력을 얻게 된 그는 이 특별한 변화에 ‘초능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두 사람은 손목에 생겨난 문신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 능력이라는 공통점을 단서 삼아, 같은 기증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신장의 선녀(라미란), 각막의 기동(유아인), 간의 약손(김희원)이 하나둘 모여드는 가운데, 여섯 장기의 마지막 조각인 췌장을 이식받은 사이비종교 교주 영춘(신구/박진영)은 불멸의 욕망을 품고 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7년 만에 돌아온 강형철 감독의 신작 <하이파이브>는 필모그래피 최초의
[리뷰] 아이같이 천진한 상상력, <하이파이브>
-
정규직 전환이 시급한 계약직 과장 연희(류현경)에게 신경을 거스르는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인사 평가가 코앞인데 프로젝트는 삐걱거리고, 유부남인 상사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치근덕거린다. 가장 심한 것은 지속적으로 주차 공간을 침범하는 이웃이다. 도통 해결되지 않는 주차 문제에 폭발한 연희는 차주를 불러내지만 그의 앞에는 수상한 남자 호준(김뢰하)이 등장한다. <주차금지>는 층간소음과 함께 대한민국의 인구 과밀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주차 대란을 소재로 삼은 스릴러물이다. 사소한 이웃간의 다툼으로 끝날 문제가 뜻밖에 악인을 만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아냈다. 현실감을 무기로 앞세우는 스릴러일수록 일상과 유리되지 않도록 밀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개연성에 공백을 보이는 인물의 행적이 서스펜스를 유도하기엔 느슨하단 인상을 준다. 서사의 중심축을 지탱하는 류현경과 김뢰하의 능숙한 호연에 눈이 간다.
[리뷰] 주차도 언행도 결국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주차금지>
-
제닌(어맨다 사이프리드)은 죽은 스승 찰스의 대표작인 오페라 <살로메>의 재연을 맡아 고민이 많다. 위대하지만 구시대적 요소가 많은 찰스의 작품에 손대기 어려운 까닭이다. 가장 큰 문제는 준비 과정에서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받은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별거 중인 남편은 마음이 떠난 것 같고,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며,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접근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아쉽게 느껴지는 총체적 혼란 속에서 제닌은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세븐 베일즈>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감독 애텀 이고이언의 신작으로, 실제로 <살로메>를 연출하며 받은 영감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선율로 결합된 이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려 애쓰는 모습도 그 어떤 희곡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리뷰] 방도를 몰라 사랑할 수밖에 없던 내 트라우마, 이제 그놈의 목을 원한다, <세븐 베일즈>
-
대학생 스테파니(케이틀린 산타 후아나)는 오랜 시간 정체 모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 꿈에서는 50년 전 붕괴된 마천루 위의 레스토랑 스카이뷰가 무너져 수많은 사람이 죽는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스테파니는 꿈의 주인공 아이리스가 자신의 외할머니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간다. 아이리스(브렉 베이싱어)는 스테파니에게 가족의 혈통에 얽힌 저주를 알려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은 2000년대 초에 유행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신작으로 14년 만에 제작되었다. 오프닝을 장식하는 스카이뷰 시퀀스에서 드러나듯 데드 트랩의 활용에서 생기는 서스펜스와 창의적인 죽음이 안기는 쾌감을 극대화하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계승한다. 끝까지 고어의 강도를 올리기보다 적당하게 강약을 분배하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이전과 달리 가족 서사가 더해진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리뷰] 이쯤되면 <위기탈출 넘버원>도 어린애 장난, 동전만 봐도 손이 덜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
이제 인공지능 엔티티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었다. 자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만들고 핵보유국의 핵 발사 시스템을 해킹해 인류를 제거하려고 한다. 에단 헌트(톰 크루즈)는 엔티티를 제거할 수 있는 장치를 찾기 위해 심해에 침몰한 잠수함 세바스토폴로 진입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감행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뿐이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속편으로 4억달러에 육박하는 예산이 투입되었다. 영화는 작품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전반부와 비행기와 잠수함 등 세트에서 배우 톰 크루즈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강도 액션이 휘몰아치는 후반부로 나뉜다. 기술 문명을 둘러싼 종말론적 시선이 드리워져 있는 점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설정을 소환해 시리즈의 역사와 윤리를 회고하는 느낌을 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서사 전개가 다소 매끄럽지 않고 액션도 배우의 스턴트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리뷰] 영화 역사상 최후의 블록버스터를 찍는 듯한 간절함에 눈물만,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
슈퍼히어로가 되어 세계를 구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유타에게는 유치한 망상이 아닌 현실이다. 한 차례 괴수를 물리치고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 학교 축제날에 맞춰 고백을 결심하지만 또다시 괴수들이 출몰하며 그의 계획을 방해한다. 운명의 선택을 받은 소년은 설레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세계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백도 못해보고 세계 종말을 맞이할 순 없다. <그리드맨 유니버스>는 <SSSS. 그리드맨>과 <SSSS. 다이나제논>의 세계관을 멀티버스 서사로 엮은 특수촬용물이다. 글리치로 묘사되는 다중우주의 붕괴가 극중극 구조와 맞물리며 메타 픽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곤 사토시에 버금가는 진중한 사유로 나아갈 수 있음에도 영화가 액션·청춘물로 회귀한 점은 아쉽다. <레디 플레이어 원>과 유사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리뷰]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해 공룡이 멸종했어, <그리드맨 유니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