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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상록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과장된 사건이나 폭력의 클리셰 없이 사실의 힘만으로 특성화고 3학년의 일상을 그린다. 지방 공업고로 전학 온 영현B(정순범)는 이름이 같은 영현A(민우석)와 가까워지며 서로의 빈틈을 메우지만 진로 문제를 두고 점차 갈등을 빚는다. 영화는 두 영현이 친구이자 경쟁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학생과 사회인,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 선 보통의 19살을 담담한 시선으로 비춘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은 하나의 출발점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두개의 가능성이 된다. 로맨스 서사 없이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에 오롯이 집중한 점 또한 돋보인다. 감성은 오직 어쿠스틱 기타의 꾸밈없는 선율과 석양. 여운을 드리우기에 충분하다.
[리뷰] 서로가 서로의 현실이자 꿈, 현상이자 잔상, <우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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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내성적인 대학생 토오루(하기와라 리쿠). 야마네(구로사키 고다이)와 목욕탕 아르바이트를 함께하는 삿짱(이토 아오이)과만 어울려 다니는 그에게 큰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매일 식당에서 혼자 메밀국수를 먹는 사쿠라다(가와이 유미)를 만난 것이다. 둘의 사이가 발전할 즈음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오늘 하늘이 가장 좋아,라고 아직 말할 수 없는 나는>은 <제멋대로 떨고 있어>로 주목받은 오오쿠 아키코 감독의 신작이다. 후쿠토쿠 슈스케의 동명 원작을 각색했으며 일본의 청춘스타 가와이 유미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 청춘 멜로의 컨벤션을 따르면서도 외톨이의 심리를 잘 그리는 감독의 개성이 깃들어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독개성이 깃들어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독특한 캐릭터와 화면비 조정, 점프컷 등 발칙한 연출로 그려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제37회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리뷰] 외톨이에게 선물하는 어둠의 <비포 선라이즈>, <오늘 하늘이 가장 좋아, 라고 아직 말할 수 없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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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인플루언서 미 띠엔(프옹 미 치)은 새로운 콘텐츠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그녀를 맞이한 이는 1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 지아 민(후인 럽)의 영혼이다. 두 남매는 가문의 전통이 깃든 집을 지키려 하지만, 유산을 노리는 고모가 무당을 불러 퇴마를 시도하면서 예상치 못한 소동이 벌어진다. 호러 코미디 <조상님이 보고계셔>는 명절 영화 특유의 풍성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를 앞세워 베트남 역대 흥행 7위에 오른 작품이다. 지긋지긋한 어른들 잔소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인공의 태도는 통쾌하지만, 전형적인 가족 서사로 회귀하는 결말은 아쉬움을 남긴다. 4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코미디 유튜버 후인 럽이 연출과 주연을 겸했다.
[리뷰] 타국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명절 한상’의 맛, <조상님이 보고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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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초의 게스트 하우스. 이곳을 살뜰히 돌보는 건 20대 매니저 수하(벨라 킴)다. 어떤 손님에게도 태연하던 그가 프랑스인 숙박객 케랑(로쉬디 젬) 앞에서는 감정이 격랑한다. 추운 계절에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가 찾아왔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쌓인 눈과 두툼한 코트, 시린 입김과 뜨거운 주전자의 열기까지 시청각적으로 겨울의 감각을 오롯이 끌어올린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수하가 케랑을 탐색하며 자기 뿌리를 더듬어가는 과정은 천천히 내리는 눈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아 오래 남는다. 프랑스계 일본인 감독 가무라 고야를 비롯해 촬영과 음악 등 다국적 스태프가 참여해 이국적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바 있는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벨라 킴이 한국인 최초로 신인여배우상 후보에 오른 소식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리뷰] 주전자의 열기와 눈의 차가움 사이에서 기원을 응시하다, <속초에서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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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찰의 발포로 제주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민들의 저항과 함께 1948년, 제주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무장대를 진압하려는 토벌대가 들어서면서 제주에 살던 아진(김향기)과 딸 해생(김민채)은 산으로 피신한다. 그 과정에서 아진은 해생과 생이별을 하고, 두 사람은 토벌대를 피해 서로를 찾아 헤매며 생존을 도모한다. 산으로 도피했던 도민들이 항복을 고심하고, 토벌대 내에서도 사살에 죄책감을 느끼는 군인이 생겨난다. <그녀의 취미생활>을 연출한 하명미 감독의 신작으로, 한 모녀를 중심으로 제주 4·3사건을 되짚는다. 무장대와 토벌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인물들을 배치하는 대신 이념 논리로 인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이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살피고, 4·3사건과 피해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의를 밝힌다. 모든 대사에 제주 방언을 적극 활용했으며 젊은 부모 역을 처음 맡은 김향기의 감정연기가 돋보인다.
[리뷰] 4·3사건과 희생자들의 용기를 기리며, <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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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포 굿>은 뮤지컬 <위키드>의 2막을 다룬다. 엘파바(신시아 이리보)는 마담 모리블(양자경)의 언론 장악으로 ‘사악한 초록 마녀’라 호도되고,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마법사(제프 골드블럼)의 권력에 영합해 셀러브리티의 지위를 누린다. 다른 길을 걷는 두 마녀는 서로를 시기하다가도 이내 염려하며 모험의 종착지에서 재회한다. 영화는 원작 뮤지컬에 비해 두 주인공에게 상세한 서사를 부여하며 작품의 함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엘파바는 투사로서의 면모가 강조된다. 스스로도 소수자 혐오에 노출됐지만, 자신만큼 차별받는 존재의 권리 신장을 위해 거대 세력과 맞선다. 글린다 역시 성장의 궤적이 두드러진다. 허영으로 인해 부조리를 눈감던 과거와 달리 진실 앞에서 끝내 침묵하지 않는다. 영화에 새로 추가된 두 솔로 넘버, 과 또한 두 마녀의 행적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리뷰] 보강된 서사는 확신, 추가된 넘버는 불신, <위키드: 포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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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설희(여설희)와 화정(우화정)은 현실적인 고충을 안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춘들이다. 설희는 부상으로 육상선수의 길을 포기한 뒤 어떤 꿈을 가져야 할지 모르는 방황기에 있다. 화정은 취업에 매달리며 어엿한 사회인이 되길 원하지만 현실은 영 녹록지가 않다. 두 사람은 화정의 취업 성공을 일출에 빌기 위해 동해로 갑작스러운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 계획이 점차 어긋나고 서로의 비밀스러운 속사정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둘은 싸운 뒤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 와중에 두 사람은 동해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이야기의 갈래를 넓힌다. 과거의 상처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지안(서지안)의 서사도 여기에 자연스레 엮인다.
이광국 감독이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에서 만난 신인배우들과 함께 소규모로 촬영한 작품이다. 간결한 촬영 방식 속에 드러나는 자연스럽고 소탈한 청춘들의 반짝임과 활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등진 세대의 불안과 방황, 청년들의 공통적인 트라우마가 작
[리뷰] 아직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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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하던가. 영화 <넌센스>는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 남긴 경구를 넉넉히 흡수한 듯한 괴담을 들려준다. 미로에 빠져든 자의 이름은 유나(오아연). 그는 보험금을 공정하게 지급하기 위해 손해액을 산정하는 전문 손해사정사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효율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은 허위 사실을 지적하고, 사기 행각을 구별해야 하는 업무에 잘 맞아 보인다. 야근도 감수하며 잔업에 몰두하던 어느 밤, 일 처리가 능숙하지 못한 동료 보경(임현주)이 체념 섞인 한마디를 뱉어도 유나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경이 의문스럽게 자취를 감추고, 유나가 보경이 매듭짓지 못한 사건을 넘겨받기 때문이다.
처음에 유나는 그 건을 해결하기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암환자였던 남자가 저수지에서 실족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으니, 이것이 자살인지 아닌지만 명백히 밝히면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망보험금 수령자로
[리뷰] 썩은 동아줄마저 없이 부조리를 견디기란 얼마나 괴로운가, <넌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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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이 적은 고등학생 선오(김준호)가 유일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이 있다. 시민을 여럿 구하고 순직한 소방관 아버지에게 세상이 존경을 표할 때다. 국민 영웅이 된 아버지지만 선오에게는 끔찍한 가정폭력범일 뿐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비명을 들으며 숨어 있던 선오는 버려진 맨홀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어두운 맨홀을 쉼터로 삼아왔다. 아버지의 죽음 후 자신과 달리 아버지를 용서한 엄마, 누나의 태도가 혼란스러운 선오는 새로 사귄 친구 무리와 어울리다 이주노동자와 충돌하게 되고, 자기 안의 폭력성을 확인한다. 고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맨홀>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소년이 폭력의 주체가 되어 겪는 심리적 혼란을 정교하게 구축해나간다. 가장 저주했던 이를 인정해야만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혼란에 관객 역시 모호한 물음표를 받아들게 될 것이다.
[리뷰] 가해자가 된 피해자, 질타도 지지도 할 수 없게 하는 모호함이 미덕, <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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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 언니 잘 지내나요? 슬픈 소식이 하나 있어요. 우리 언니가 생식기 일부를 절제하는 할례를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선 할례가 불법이에요. 하지만 우리 동네에선 소용없어요.” 어떤 우정은 비애를 담은 활자를 통해 성장한다. 결연 후원으로 이어진 한국 소녀 보미와 케냐 소녀 나쉬파에는 편지로 서로의 소식을 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보미는 나쉬파에로부터 마지막 편지를 받는다. 부족 전통에 따라 강제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병마와 싸우던 보미는 아버지 요섭(권오중)에게 나쉬파에를 도와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다소 단선적인 구성과 예측 가능한 결말에 주춤거리게 되지만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인류 보편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명확하게 직면하고 들여다본다. 많은 사람에게 가닿지 못한 이야기를 힘 있게 퍼트리는 작품이다.
[리뷰] 선하고 심지 굳은 의지로 이뤄진 세계, <마사이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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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촬영차 베트남을 찾은 톱스타 강준우(이광수)는 여권과 매니저를 동시에 잃고 현지에 홀로 남는다. 설상가상으로 식당 종업원 타오(황하)의 실수로 휴대전화까지 고장나면서 낯선 도시에서 발이 묶인다. 책임을 느낀 타오가 준우를 돕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우연과 오해가 뒤섞인 소동 속에 예기치 못한 여정을 함께한다. 잘나가던 스타와 평범한 현지인의 조합이라는 익숙한 설정의 로맨스 코미디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대화와 어색한 온도차가 경쾌한 재미를 준다. 베트남의 따뜻한 분위기와 활기찬 거리 풍경은 서로 다른 세계관이 부딪히는 무대가 되어주고 지루한 일상에 색다른 틈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광수 배우 특유의 인간미와 황하의 수수한 매력이 케미를 일으키며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리뷰] 밀키트에 담아낸 아는 맛 로맨스, <나혼자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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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쿠오(구로카와 소야)는 아버지를 잃고 가부키 명문가에 거두어진다. 키쿠오는 명문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를 만나 함께 경쟁하고 우정을 나누며 배우로 성장한다. 재능을 인정받은 성인 키쿠오(요시자와 료)와 전통 계승의 무게를 짊어진 슌스케는 서로를 의식하며 국보의 길로 향하지만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그려지지 않는다. 경쟁을 다루면서도 누군가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고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예술 세계를 풀어내는 시선이 새롭고 인상적이다. 실사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일본에서 천만 관객 기록을 세운 이 영화는 극도의 절제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영상미로 아름다움의 끝을 보여준다. 서로를 잠식하지 않는 저마다의 생이 눈송이처럼 흩날려 지극한 아름다움을 이룬다.
[리뷰] 지극한 아름다움, 궁극의 시각 경험,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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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부부 지연(김시은)과 도진(이도진)은 또다시 유산 소식을 듣는다.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건네진 위로는 형식적일 뿐, 대화는 금세 불편한 침묵으로 가라앉는다. 믿기 힘든 현실 앞에서 지연은 점차 이성을 잃고 병원을 전전하며 유산 방지 주사를 구걸하기에 이른다. 도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내의 집착에 서서히 지쳐간다. <통잠>은 상실감에 잠식된 보통의 인간을 지극히 사실적인 화법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그 어떤 감정도 몰아세우지 않지만, 예의 바른 주인공이 낯부끄러운 행동을 이어갈수록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처절함이 번져나온다. 영화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한 인물의 표정을 여백으로 남긴 채, 관객의 기억과 사연이 스며들기를 기다린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리뷰] 얄궂은 운명에 마음을 깊이 베인 그대들은 어떤 표정이었나요, <통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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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강민주)는 고향 무풍으로 간다. 이윽고 금주(이금주)와 동근(서동근)이 그녀를 따라오면서 느슨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셋 주위를 맴도는 두 여성 요선(백요선)과 은경(조은경)도 저만의 사랑을 나눈다. 이 묘한 영화는 송문(박종환)의 연기 워크숍에서 찍은 것이다. 거기에 선영(엄선영)과 동윤(강동윤)까지 총 7명의 배우는 파트너가 가진 최초의 기억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모방 독백 과제를 수행한다.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기억>은 <한여름의 판타지아><한국이 싫어서>의 장건재, <파스카><나의 연기 워크숍>의 안선경 감독이 협업한 영화다. 7명의 배우가 실제 진행한 연기 워크숍을 통해 제작했으며 비선형적 서사의 힘을 탐구하는 두 감독의 매력이 실험적 구조로 드러나 있다. 연기를 매개로 한 인간이 자신의 심연을 마주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탐구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리뷰] 무풍 기행, 혹은 마음 하나 기댈 곳 없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픈 연기 처방전, <최초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