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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취업으로 1년 전 먼저 부다페스트로 떠난 아내를 만나기 위해 송진욱 감독은 두 아들과 아버지까지, 총 삼대가 함께하는 유라시아 횡단을 계획한다. 육로상 17000km에 달하는 광주광역시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의 긴 여정에서 이들이 택한 교통수단은 다름 아닌 전기자동차.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여행답게 송가네 삼대는 갖은 난관과 마주하게 된다. 러시아에선 전쟁의 위험을 피해야 했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전기차 충전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송송송 가족여행: 전기차 지구횡단>은 국내 최초 전기차 유라시아 횡단에 도전한 삼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계획처럼 이뤄지지 않는 돌발 상황의 연속에도 끈끈한 가족애가 돋보인다. 드론 카메라를 이용한 각국의 광활한 풍경과 낯선 이방인들이 베푼 온정을 바라보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여행기다.
[리뷰] 가족애는 전기차를 타고, <송송송 가족여행: 전기차 지구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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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엔 ‘뭐라도 하고 싶으나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뒹굴뒹굴, 별다른 목적 없이 사는 유미(구보 시오리)가 그렇다. 반대로 유미의 룸메이트 루카(유나 다이라)는 뮤지션의 길을 묵묵히 가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잠자는 바보>는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하여 일어나는 일상을 그린다. 때론 연애 문제로, 꿈의 이야기로, 생계의 부박함으로 엮이며 사는 룸메이트의 하루하루를 꽤 타율 높은 개그 만화처럼 유유자적하게 그리다가 음악 시퀀스를 통한 홈런도 때린다. 느린 듯 빠른 듯 묘하게 엇박자를 치는 영화의 템포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천국대마경>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원작자 이시구로 마사카즈 특유의 여유로운 진중함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리뷰] 뭐라도 하고 싶은데 뭘 할진 모르겠는 여러분께, <잠자는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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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윤세아)는 불륜한 남편과 이혼한 후 8살 딸 지우(윤별하)와 살기를 택한다. 아침마다 보험사로 출근해야 하는 그녀는 몸이 약한 지우를 위해 베트남인 가정부 수진(리마 탄 비)을 고용한다. 대신 집 안 곳곳에 홈캠을 설치하고 손님을 들이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다. 성희는 직장에서 홈캠으로 지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던 중 수진과 지우의 이상 행동을 보게 된다. 그즈음 수상쩍은 아랫집 남자(권혁)가 성희의 집을 서성거린다. <홈캠>은 <자기만의 방>을 연출한 오세호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2000년대 유행한 J호러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파운드 푸티지 호러의 컨벤션에다 최근 유행하는 무속 소재를 더했다. 여러 익숙한 요소가 잘 어우러지나 기시감을 만든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헐거운 서사와 과잉보호와 무한경쟁 등 주제를 퇴색하게 하는 반전도 마찬가지다.
[리뷰] 00년대 유행한 호러를 양껏 쏟아부은 부대찌개 호러, <홈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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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6년, 초자연현상 조사관 에드(패트릭 윌슨)와 로레인(베라 파미가) 워렌 부부는 은퇴 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딸 주디(미아 톰린슨)와 토니(벤 하디)의 결혼식이 임박한 시점에 워렌 부부에게 원한을 품은 악령이 등장한다. 악령은 워렌 부부의 친구인 고든 신부를 죽이며 워렌 부부를 뒤흔든다. 악령을 볼 수 있는 로레인의 초능력을 이어받은 주디는 악령이 빙의한 스멀 가족의 집으로 간다. <컨저링: 마지막 의식>은 <컨저링>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패트릭 윌슨과 베라 파미가는 이 영화를 끝으로 워렌 부부 역에서 은퇴한다.<컨저링> 시리즈의 공식을 되풀이하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 팬 서비스를 삽입했으며 스펙터클을 대폭 늘렸다. <죠스>를 보는 듯한 후반부 거울 시퀀스는 컨저링 유니버스를 총괄하는 제작자 제임스 완이 추구하는 블록버스터 호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리뷰] 할리우드 고전 블록버스터의 향수를 배부를 때까지 묵직하게, <컨저링: 마지막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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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진수(김법래)는 최근 들어 아내 연정(김혜은)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목적이 불분명한 외출이 잦아지고 집안일에도 빈틈이 생기자 진수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진수가 아내의 불륜 증거를 찾느라 바쁜 와중에 가족은 한층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연정은 건축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겠다고 하고, 고등학생 딸 미나(김보윤)는 그동안 해오던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면서 진수의 가족은 진심을 나눌 기회에서 멀어진다.
제2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대상작인 <가족의 비밀>은 슬픔으로 묶인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이자 오빠인 승현(박현우)을 사회적 참사로 잃은 가족을 단순히 슬픈 유가족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직업을 고민하고 뜻밖의 사건을 겪으며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유가족 서사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코미디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상처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세
[리뷰] 슬픔과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희노애락의 일상으로, <가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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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산다. 그 비밀이 언제,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관계가 무너질 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비밀일 수밖에>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 숨겨진 균열과 묻어둔 진실을 포착한 작품으로,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여러 인물이 머물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결혼을 앞둔 두 집안의 만남이지만 이면에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처와 감정이 켜켜이 자리한다. 김대환 감독은 가족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탐색함과 동시에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건 무엇이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심각하거나 어둡지 않은 분위기로 웃음 포인트도 곳곳에 마련돼 있다. 휴직 중인 교사 정하(장영남)의 집에 예비 사돈 하영(박지아)과 문철(박지일)이 갑작스럽게 방문하면서 숨겨왔던 정하의 비밀이 폭로되는 이야기다. 비밀은 다름 아닌 정하의 성정체성이며, 정하는 애인 지선(옥지영)과 동거 중이다. 서사의 중심에 있는
[리뷰] 말 못 하게 만드는 실체에 대하여, <비밀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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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이유로 모국에서 추방되어 태국에서 한량처럼 살아가는 전직 요원 루카스(조시 하트넷). 그에게 미국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방콕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고스트’라 불리는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라는 옛 상사(케이티 새코프)의 지시를 받은 그는, 같은 목표물을 노리는 전세계 킬러들을 공중에서 상대해야 한다. <킬러들의 비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가이 리치, M. 나이트 샤말란 등 거장들의 프로젝트에서 최근 활약하고 있는 배우 조시 하트넷의 신작이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이동 수단 내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킬러들의 액션이라는 설정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불릿 트레인> (2022)을 연상시킨다. 다인종·다성별의 킬러 캐릭터들이 다양성을 무기로 B급 액션의 익숙한 공식을 비틀고, 예상치 못한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리뷰] 다양성이 추진하는 탈것 액션, <킬러들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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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인 팀(데이브 프랭코)과 밀리(앨리슨 브리)가 관계 회복을 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린다. 교사인 밀리가 교외의 작은 학교로 전근하게 되었고, 뮤지션을 꿈꾸던 팀은 고민 끝에 밀리와 함께 이사를 가게 된다. 일상의 사사로운 문제들로도 조금씩 어긋나던 둘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서로의 몸이 점차 붙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언가에 취한 것처럼 서로를 원하게 되고, 피부가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이 합쳐지는 현상을 겪게 된다.
이처럼 <투게더>는 근래 유행 중인 보디 호러 장르에 로맨스 서사를 더하며 독특한 장르물의 묘를 내뿜는 작품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큰 화제를 끌었고, 인디 배급사의 작품임에도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리뷰]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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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콜먼(줄리아 버터스)과 릴리 레예스(소피아 해먼스)는 학교에서 소문난 앙숙이다. 아이러니하게 하퍼의 어머니 안나(린지 로언)와 릴리의 아버지 에릭(매니 저신토)은 사랑에 빠져서 재혼하기로 마음먹는다. 하퍼와 릴리, 안나와 안나의 어머니 테스(제이미 리 커티스)는 둘의 결혼을 기리는 파티에서 수상한 영매 마담 젠(버네사 바이어)을 만난다. 젠의 마법으로 릴리는 테스와, 하퍼는 안나와 몸이 바뀌고 하퍼와 릴리는 결혼식을 방해하려고 한다. 린지 로언을 하이틴 스타로 만든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22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린지 로언과 제이미 리 커티스도 주연으로 컴백했다. 캐릭터의 수가 늘어난 만큼 전작에 비해 서사가 훨씬 복잡해졌다. 넷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팬 서비스와 각 세대를 풍자하는 유머가 쏟아진다. 다소 구성이 산만하나 세대 통합을 바라는 메시지가 뭉클함을 자아낸다.
[리뷰] 쏟아지는 팬 서비스와 세대 풍자, <프리키 프라이데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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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성소수자 철준(조유현)은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지만 다수의 세계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 영준(김현목)을 만난 그는 서로의 일상과 고민을 나누며 점차 마음을 연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이 영화는 박준호 감독의 첫 장편으로, 경계에 선 인물을 담백하게 그리는 그의 연출 경향을 잇는다. 소외된 인물을 특별한 존재로 과장하지 않고 하루하루 생존 방식을 배워가는 평범한 청년으로 그리고 있으며, 일상을 버티는 모습에서 그의 사랑이 드러나게 한다. 인물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화법은 누구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에 시선을 두게 하고 비장함 없이 일상에 녹여냄으로써 주변화된 인물을 평범한 개인으로 복원해놓는다. 사랑을 말하려면 삶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증명하는 수작이다.
[리뷰]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 보석 같은 보편,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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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작가 코노하(다카이시 아카리)를 따라 명문 사립고에 입학한 문학소녀 토코로(후지요시 가린)는 뜻밖의 사건으로 문예부가 아닌 신문부에 들어간다. 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베일에 싸인 코노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비밀 활동을 이어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며 기자의 세계에 눈을 뜬다. <신입기자 토롯코>는 학원물의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따르면서도 사랑이나 또래 관계가 아닌 사회적 사건의 해결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학교라는 공간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아 학생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권력과 비리를 마주 보게 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담백하고 차분한 연출로 어린 주인공의 변화에 설득력을 더하고 학원물 특유의 좌충우돌 포인트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채로운 색이나 만화 같은 그래픽보다는 비슷한 계열의 색을 통일되게 사용해 정돈된 영상미를 구현했는데 이는 어린 인물들의 서사와 의외의 케미를 만들어
[리뷰] 로맨스 없는 성장담이 오히려 새롭다, <신입기자 토롯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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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회부 기자인 백선주(조여정)에게 제보 전화가 걸려온다. 제보의 주인공은 11건의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 이영훈(정성일). 그간 일말의 증거도 남기지 않고 범죄를 저지른 그는 선주에게 자신과 인터뷰를 하면 계획된 살해 한건을 멈추겠다고 제안한다. 특종을 따내 기자로서 본때를 보여야 하는 선주는 영훈의 제의에 응한다. 인터뷰가 시작하자마자 영훈은 선주에게 살해 증거를 들이민 후, 정신과 전문의로서 자신의 범죄는 치료의 일환일 뿐이라고 답한다. 내담자가 겪는 고통의 근원을 제거해 환자를 낫게 하는 의료 행위를 수행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선주는 영훈의 진술에 점차 혼란을 느끼고, 선주를 앞세워 잠복 중이던 형사 한상우(김태한)는 현장 급습을 시도한다. <살인자 리포트> 속 선주는 인터뷰어이면서 인터뷰이다. 그가 기자로서 취재원인 영훈의 진술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영훈의 유도심문에 감겨 복잡한 내면을 조금씩 누설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주의 위치는 <살인자 리
[리뷰] 20세기 말 21세기 초 조디 포스터를 체화한 조여정, <살인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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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하이텍과학고등학교 3학년 창우(유이하)는 자신이 없다. 남동공단에 자리한 M&H 엔지니어링에서 무사히 실습을 마치면 취업과 진학 기회가 주어질 텐데, 첫 사회생활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 창우를 격려하는 선생님에게 되물을 만큼, 그는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비칠지를 더 우려한다. 반면 창우와 같은 공장에 배치된 우재(양지운)는 자신만만하다. 취직이 어려우면 해병대에 입대하면 된다고 말하는 그는 상사에게 혼나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숨어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려는 창우와 무엇에도 의지가 없어 보이는 우재 곁에는 먼저 M&H 엔지니어링에 다니고 있던 도제 실습생 성민(김성국)과 총무과 다혜(김소완)가 있다. 성민은 ‘에이스’로 불리며 학교와 회사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고, 다혜는 특유의 싹싹한 태도로 동료들과 잘 어우러진다. 그 틈에서 창우도 용접이라는 새로운 관심사를 발견하고, 가족에게 첫 월급 턱을
[리뷰] 악당도 영웅도 없는 곳에서, 이처럼 사소히 우직하기를, <3학년 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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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27일 전설적인 록밴드 오아시스가 재결합한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팬들의 오랜 염원에도 꿈쩍하지 않던 갤러거 형제가 16년 만에 극적으로 화해하고 결성 25주년 월드 투어를 열기로 한 것이다. 올해 10월21일 오아시스 내한을 맞이해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이 4K 복원판으로 재개봉한다. 2016년 개봉 당시에는 오아시스가 해체한 후에 오랜만에 뭉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줬던 영화다. <슈퍼소닉>의 미덕은 갤러거 형제의 생생한 인터뷰와 풍성한 아카이브에 있다. 영화는 갤러거 형제 특유의 거칠고 유머러스한 입담이 살아 있는 인터뷰를 따라간다. 형제는 맨체스터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유년기부터 오아시스 최고의 라이브로 불리는 1996년 넵워스 라이브까지 그 시절의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한다. 감독은 갤러거 형제의 가족, 오아시스 전 멤버와 전 프로듀서 등 주변 인물의 인터뷰와 수많은 푸티지, 사이키델릭한 애니메이션을 덧대며 인터뷰에
[리뷰] 재개봉 영화 <슈퍼소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