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주(서영희)는 치매 증세가 있는 시어머니 순임(이휘향)의 수발과 가정의 생계를 홀로 떠안고 있다. 그의 피로한 일상에서 출발하는 은 가족들의 엇갈린 속내를 좇는다. 무늬만 영화감독인 남편(김정태), 자신이 뱀파이어라고 주장하는 딸, 다리를 잃은 참전용사 시아버지까지, 낡은 승합차에 구겨져 부산으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은 돌봄의 무게와 가부장적 현실이 겹겹이 쌓인 한국 가족의 축소판이다. 고단한 돌봄의 현실과 균열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 각각에 부여한 엉뚱한 개성이 눈에 띈다. 서영희, 김정태, 이휘향이 생활 밀착형 연기로 극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붙잡으며, 가족 갈등에서 비롯된 익숙한 비극적 주제를 동상이몽인 인물들의 간극을 통해 펼쳐낸다. 상처를 봉합하는 대신 끝까지 엇갈리는 관계를 가감 없이 응시하는 시선이 미덥다.
[리뷰] 돌아올 걸 알고 떠나는 여행처럼, <가족여행>
-
함께 생활하는 형석(김인우)와 예린(김시아)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석환(구교환)은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한다. 그럼에도 석환은 매번 긍정의 태도를 잃지 않고 면접장으로 향한다. 어느 날, 면접을 보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석환은 형석을 찾으러 온 일당의 공격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으슥한 숲에 버려진 채 며칠이 흐르자, 석환은 언제 죽었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귀가한다. 사망해도 72시간만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석환은 31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한편 석환의 부활을 알아챈 일당은 본인들의 보스 격인 블랙(신승호)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석환이 부활하는 능력을 지녔다면, 블랙은 상대를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생존을 위해 석환의 능력이 필요했던 블랙은 그를 뒤쫓기 시작한다. 블랙의 부하들과 다투며 몇번의 죽음을 더 경험한 석환은 부활할 때마다 더 강한 힘과 회복력을 얻게 되고, 그렇게 초인적 능력을 소유한 채 블랙과 마주한다.
<뷰티 인사이드&g
[리뷰] 부활의 컨셉, 액션과 웃음이란 목표에 충실하다, <부활남: 더 레드>
-
제79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꿈꾸던 모험>은 비전문 배우들의 투박한 아마추어리즘으로 고전 서부극의 계보를 갱신한다. 국경 마을에서 의문의 남성 사이드(슐레이만 알릴로프 레티포프)의 유류 밀수로 출발한 영화는 카메라의 초점을 여성 고고학자 베스카(야나 라데바)에게 넘기며 기존 범죄극의 궤도를 이탈한다. 직선적인 활극의 속도를 멈춰 세운 고고학적 시선은 과거를 섣불리 박제하지 않는다. 피폐한 공간의 풍경을 과시하지 않는 카메라는 인물들이 무심히 주고받는 대화의 균열 속에서 억압된 과거의 기억에 깃든 현실의 환부를 포착한다. 결말부 불쑥 환기되는 그리움의 정서는 장르의 낭만적 환상이 휘발된 자리에서 영화가 택한 배반의 방식이다. 총성이 빚어낼 파멸 대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가 꿈꾸던 모험의 실체가 드러난다.
[리뷰] 장르를 배반한 국경에서, <꿈꾸던 모험>
-
80대 노인 루스(캐슬린 찰팬트)는 데이트를 앞두고 손수 요리를 준비하고 몸을 단장한다. 하지만 집을 나서 도착한 곳은 자신이 정한 곳이 맞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요양원이다. 루스는 낯선 환경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억으로 혼란을 겪는 가운데 자신이 요리사였던 시절처럼 음식을 만든다. 만든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곳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간다. 영화감독이자 안무가인 세라 프리들런드의 장편 데뷔작 <친숙한 손길>은 루스의 움직임과 표정, 눈빛이 빚어내는 섬세한 변화를 따라가며 쇠퇴와 상실로 노년을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년을 몸짓과 접촉을 통해 끊임없이 감응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체현한다. 실제 양로원 거주자와 직원들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202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촌티 부문에서 3관왕을 수상했다.
[리뷰] 명멸의 시간을 어루만지는 손길, 체현으로 빚어내는 생의 감각, <친숙한 손길>
-
-
의료 택배 기사 브라이언(오스틴 에이브럼스)이 눈보라를 뚫고 라쿤 시티 종합병원으로 긴급 배달을 떠나던 중 갑자기 도로로 사람이 뛰어든다. 차에 치여 쓰러져 있던 이는 돌연 그를 공격하고,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기괴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통신마저 끊긴 상황에서 브라이언은 잇단 습격에 필사적으로 맞서며 목숨을 건 배달을 이어간다.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세계적인 서바이벌 호러게임 시리즈 <바이오하자드>를 모티브로 한다. 게임의 주요 설정인 신체 변형과 감염을 바탕으로 연쇄적으로 증폭되는 위험 속에서 형성되는 게임 플레이의 긴장감을 영화적 언어로 재구성했다. 예측의 경로를 거듭 벗어나며 공포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서바이벌 호러 스릴러로, <웨폰>을 연출한 잭 크레거 감독의 신작이다.
[리뷰] 파격적으로 변주되는 위협, 플레이어의 감각으로 맞닥뜨리는 공포,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
호석(설경구)은 대기업의 부당 해고 노동자로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 미옥(전도연)은 남편과 함께 격렬히 투쟁했고 상처를 나눴으며 최근엔 그의 치유를 위해 힘쓰는 중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 호석을 출연시키려 시도한다. 마음의 문을 닫은 호석을 설득하기 위해 예지는 미옥에게 접근하고 친밀해진다. 상당한 자본가인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가 이 상황을 전반적으로 조망한다. 두 부부 사이의 사회적 계급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는 한편, 다큐멘터리는 이 양극의 거리감을 좁히는 매개로 작동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몇번의 플래시백이 각자의 진실을 상상하고 회고하게 한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이창동 감독의 무거운 질문이다.
[리뷰] 이 세상을 사랑하기란 정말 불가능한 것일지, <가능한 사랑>
-
1974년 광복절 경축식에 영부인 저격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 문태광(박정민)이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되고,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진위를 밝힌다. 국가적 비극으로 종결될 이 사건에 동성일보 기자 영일(이민호)과 재환(박해일), 형사 철구(유해진)가 의문을 표한다. 문태광 혼자 주도한 일이라기엔 탄환의 위치 등 설명 불가한 지점이 많았으며 의도적으로 증거를 감추는 이들의 행적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허진호 감독의 신작으로 목격자, 조사자의 시선에서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이면을 가정해본 작품이다. 1970년대를 과장해 재현하지 않았으며 세 주인공과 동료들의 수사 및 취재를 큰 줄기로 엮어내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역사적 사건의 진위를 파헤치기보다 시대의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악하려 한 이들의 노력을 강렬하게 담았다.
[리뷰] 끝까지 파헤치고 질문하며 주시하겠다는 신념, <암살자(들)>
-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화가 드디어 공개된다. 원작 만화 <타짜>의 4부를 다룬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이름마저 똑같은 두 친구 장태영(변요한)과 박태영(노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고나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태영은 마치 복 받은 팔자에 행운이 따르는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그런 면모를 말없이 질투해온 박태영은 결국 배신을 결심하고 만다. 이제 막 홀덤의 중심이 된 카지노와 그를 둘러싼 야쿠자 조직과 거물들. 일본과 베트남까지 활로를 넓힌 영화는 벼랑 끝에 선 두 친구의 심리전을 목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화투에서 포커로 종목을 변경했지만 서사적 맥락을 따라가기엔 어려움이 없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아슬아슬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변요한, 노재원의 호연이 압도적이다. <타짜> 시리즈의 피날레가 여기 있다.
[리뷰] 노재원의 유려한 다음 단계, <타짜: 벨제붑의 노래>
-
달라도 너무 다른 절친 조(H.E.R.)와 라이사(리사 소베라노)는 전설의 포털을 타고 기억이 사라지는 섬 ‘포가튼 아일랜드’에 떨어진다. 이곳은 소중한 추억을 내놓아야만 탈출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기억을 훔치는 지배자 마낭(레아 살롱가)에 맞서 새로운 친구들과 섬의 비밀을 추적해간다. <포가튼 아일랜드>는 실제 친구이자 20년 가까이 창작 파트너로 호흡을 맞춘 두 감독, 조엘 크로퍼드와 재뉴얼 메르카도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2D와 3D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화는 물론 강렬한 컬러 활용이 필리핀의 민속과 신화를 생동감 넘치게 구현해낸다. 향수 어린 음악과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카세트테이프 등 아날로그적인 정취를 더하는 오브제 또한 <포가튼 아일랜드>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렇게 영화는 찬란하고 활기찬 모험 속에서 우정의 본질에 다가간다.
[리뷰] 현란하게 펼쳐지는 소동 너머 선명하게 남는 진심, <포가튼 아일랜드>
-
에드 색스버거(윌럼 더포)는 40여년 전 시집 한권을 출간한 무명 시인이다. 우체국 직원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젊은 창작자 클럽의 일원이 그를 찾아와 새 시집 출간과 낭독회를 제안한다. 클럽 모임에 초대된 에드는 생전 처음 받는 환대가 의심스럽다가도 배우 글로리아(그레타 리)의 묘한 접근에서 흥미를 느낀다. 1895년에 쓰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시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젊음의 풍경을 담아낸다. 창작자 클럽의 예술적 혈기는 무엇보다 젊음을 원료로 삼으며, 노년의 에드는 그들의 창작적 활동에 따른 성취감을 위해 재발견된 대상이 된다.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에드의 이웃들과 열정 가득한 청년들이 대조를 이루며 평범한 삶 속에서 예술은 어떤 자리에 놓일 수 있는지 질문한다. 과거의 뉴욕 시인들을 언급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시절을 낭만화하기보다는 이후에 남겨진 자의 현실을 가늠케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윌럼 더
[리뷰] 젊음과 예술을 스쳐간 노년의 허무한 일장춘몽, <나의 사적인 예술가>
-
무명 배우 정미(하윤경)는 단역 생활을 이어가다 아빠 철택(기주봉)의 암 진단으로 간병을 맡게 된다. 일과 병 간호를 병행하며 고생하던 중에 오래전부터 별거하던 엄마 현숙(양말복)을 찾아간다. 급한 불은 껐으나 가족간의 갈등은 커져만 간다. 철택의 치료가 계속되면서 친척들까지 복잡하게 얽힌다. <철들 무렵>은 <이장>으로 주목받은 정승오 감독의 신작이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 수상작이다. 기주봉, 하윤경 배우의 호연으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돌봄이라는 부양의 문제를 다룬 가족극을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낸다. 정승오 감독은 전작에 이어 가족의 오래된 관습과 통념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할머니 옥남(원미원)의 낭독과 함께 근현대와 동시대의 풍경을 교차하며 가족이라는 해묵은 화두를 풀어가는 연출이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리뷰] 가족이라는 해묵은 화두에 끝내 철들지 않기, <철들 무렵>
-
<디지몬 어드벤처>의 극장판 <운명적 만남>과 <우리들의 워 게임!>이 합본으로 나란히 찾아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초기작이다. <운명적 만남>에서 남매 타이치(후지타 도시코)와 히카리(아라키 가에)는 컴퓨터 모니터 밖으로 나온 의문의 디지몬을 조우한다. <우리들의 워 게임!>에서는 모험을 끝낸 선택받은 아이들이 네트워크를 위협하는 디지몬을 발견하고 다시 힘을 합친다. 화면 너머의 존재와 연결되고 함께 위기를 돌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당시 디지털 세계가 품었던 낙관적인 상상이 담겨 있다. ‘볼레로’와 ‘레퀴엠’ O.S.T의 익숙한 선율을 따라 시간을 건너오면 디지몬과의 재회 속에서 기억 저편에 남겨둔 어린 시절을 다시 생생하게 감각하게 된다.
[리뷰]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 반드시 서로를 구할 거라는 믿음, <디지몬 어드벤처: 운명적 만남 & 우리들의 워 게임!>
-
문화예술계 내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 생존자들과 그 연대 활동가들은 서로의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팀 ‘상-여자의 착지술’을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은 함께 몸을 움직이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긴장을 이완해보는데, 모든 동작이 매끄러울 수는 없다. 혼자서 굳어버리고, 집단이 어색해지고, 허공에 분노해버리는 순간들까지도 <착지연습>의 일환이다. 첫 장편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로 가정사와 부동산 문제를 겹쳐본 마민지 감독은 이번에도 내밀한 사연들을 넓은 시야로 감싼다. 예컨대 동료들의 심신 재활을 지켜보는 동안 그가 놓치지 않는 건 벽면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나 창문에 비친 난로 불빛 같은 것이다. 나지막이 꿈틀거리는 존재들을 향한 애정이 짙게 밴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리뷰] 생존 너머, 생활의 조건을 묻다, <착지연습>
-
2009년 파리 공연 취소 이후 등을 돌렸던 갤러거 형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오아시스: 돈 룩 백 인 앵거>는 15년 만에 성사된 오아시스의 재결합 투어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초반부는 공연을 준비하는 리허설 과정을 담는다. 이 장면에서 형제간 감정의 골을 드러내다가도 공연이 시작되면 같은 긴장감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호흡에 주목한다. 이어 재결합의 순간을 바라보는 팬들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다. 중후반부를 지나며 영화는 전 세계 팬들에게로 시야를 넓힌다. 한국 해녀와 브라질 노동자 팬 등 여러 인물을 비추며 오아시스의 음악이 남긴 흔적을 들여다본다. 형제의 재결합으로 시작해 상처를 안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끝내 누군가를 용서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다.
[리뷰] 형제의 재결합에서 저마다의 용서로, <오아시스: 돈 룩 백 인 앵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