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이라크 라마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감시와 정찰을 위해 이라크의 민가를 거점으로 확보한다.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대원들은 고립되고 다친 동료를 후송해 현장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그들 앞에 놓인 목표가 된다. 작전 내용이나 인물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한정된 장소와 특정 사건에 카메라를 고정해 전쟁에서 겪는 혼돈과 공포를 실시간처럼 따라간다. 폭발이 일어나고 총격이 이어지는 동안 전쟁은 오직 다친 몸과 그 몸을 옮기는 사람들의 문제로 좁혀질 뿐, 전쟁에 대해 질문도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특별한 설명 없이 끝내는 이 작품은 전쟁을 명분이나 승패로 보는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안전한 장소에서 전쟁을 결정하는 자들의 얼굴을 내내 떠올리게 한다.
[리뷰] 전쟁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살아남는 것 외에, <워페어>
-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주공아파트 1단지의 재개발 현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카메라를 든 감독을 포함하여 이곳에서 한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시간을 보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낡은 아파트 사이에 남아 있는 ‘녹색섬’인 나무숲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7년간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은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무기력한 패배의 기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거대한 콘크리트 세계에 낸 작은 균열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나무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극 중 감독의 말처럼,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리뷰] 콘크리트 세계에 낸 녹색 빛 균열, <콘크리트 녹색섬>
-
야구를 그만두고 사업에도 실패한 건우(유희제)는 어느 날 꿈속에서 요섭(이하랑)을 만난 후 복권에 당첨된다. 방황하는 고등학생 미나(김세원)가 요섭 찾기에 합류하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여정이 시작된다. 간밤에 꾼 꿈을 되짚으며 흩어진 단서로 의미를 찾아내듯 화면 곳곳의 색과 사물을 연결해 꿈과 현실의 관계를 발견하는 작품으로, 독특한 모티프를 연쇄적으로 활용하는 연출이 흥미롭다. 선명한 색채와 민화풍의 소품이 만들어내는 명랑하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데,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경쾌한 정조가 사라지고 관객보다 영화가 먼저 무거워지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듯 타인의 마음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전달되는 작품.
[리뷰] 해몽은 복잡해도 꿈만은 명랑하고 선명해, <리틀 드리머즈>
-
수경(김시은)은 좌익분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임금이 체불된다. 건물 밖 승용차에선 대구시경 방첩대 인혁(강길우)과 상준(이한주)이 수경과 사장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2020년 여름의 여기는 아직 제5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한 세계여서다. 수배 중인 남편의 소재를 알게 된 수경은 지속되는 감시에 지쳐 남편을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본청 특설수사대는 수경과 시어머니까지 엮어 처벌하려는 기획 수사를 벌인다. 수경을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인혁은 특설수사대에 저항해 상준과 함께 수경을 데리고 남편을 체포하러 산청으로 향한다.
작중에서 벌어지는 기획 수사, 민간인 사찰 등은 이른바 ‘민주주의’ 시기에도 버젓이 벌어진 일이다. 작품은 간단한 선언만으로 지금이 민주주의라는 건 착각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셈이다. 주요 무대의 지명인 순천, 여수, 지리산 등은 오히려 전두환 이전 시기를 가리켜 새로운 비전이 아쉽다가도 운동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카메라의 존재와 흑백
[리뷰] 제5공화국이 아니어도 가능한 세계, <숨어드는 산>
-
-
배우를 꿈꾸는 효원(이효원)과 고등학교를 중퇴한 은서(최은서)는 가출한 뒤 서울에서 룸메이트로 지낸다. 효원은 배우가 되겠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극단에 들어가 잡일을 도맡아하며 단역이라도 얻길 희망한다. 은서는 그런 효원에게 의지하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시작한다. 효원이 극단의 선배이자 유명 배우의 집에 머물게 되며 단단하던 은서와 효원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효원이 연기라는 목표에 몰입할수록 둘은 소원해진다.
<플라멩코 소녀> <구해줘> 등을 연출한 이찬호 감독의 첫 장편이다. 배우 지망생의 삶에서 출발해 예술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과 좌절을 묘사한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와 연결지어 현실을 그려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효원이 속한 극단은 <갈매기>를 재해석한 공연을 올리기 위해 리허설을 거치고, 준비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극적으로 묘사된다. 무대 위 자신만을 상상하던 효원이 타인의 실제 고통과
[리뷰] 혼자 걷기 대신 어깨동무, <수련>
-
모니터 너머의 내가 2분 뒤의 미래에서 말을 건다면 어떨까. 일본의 극단 ‘유럽기획’을 이끌며 영화 <썸머 타임 머신 블루스>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의 각본을 썼던 우에다 마코토가 야마구치 준타 감독과 함께한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지극히 소박한 시공간의 시차 하나를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소동극을 펼친다. 카페 주인 카토(도사 가즈나리)는 퇴근 후 자신의 방 스크린에서 2분 뒤의 자신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끼지만, 그를 찾아온 주변 인물들이 이상 현상을 알게 되며 상황은 기묘하게 흘러간다.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화면에서 예고한 말과 행동을 현재에서 똑같이 수행하며 시간의 인과율을 실험한다. 더 먼 시간대를 들여다보고 싶어진 이들은 결국 두 스크린을 서로 마주 보게 설치한다. 같은 그림이 무한히 복제되는 ‘드로스테 효과’처럼, 2분 뒤에 머물던 시공간은 4분, 6분 후의 영역으로 꼬리를 물며 확장된다.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려는 인물들의
[리뷰] 거대 자본 없이도 마주 볼 수 있는 우리,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
아무도 살지 않는 타이베이의 어느 아파트. 이곳은 공인중개사 메이(양귀매)에겐 공실이고, 납골당 영업 사원 샤오캉(이강생)과 노점상 아룽(진소영)에겐 빈집이다. 샤오캉과 아룽은 밤마다 각기 다른 방에서 남몰래 잠을 청하고, 메이는 이 집을 매도하기 위해 성실히 노동하다가도 이따금 사업장에서 위안을 얻는다.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고독하며 적당히 기형적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이해왔고,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도 그중 하나다. 잠시 몸과 맘을 섞으며 스칠 뿐 이렇다 할 소통이 전무한 세 사람의 관계는 도시 공간의 소외를 표상한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이토록 직관적임에도, <애정만세>는 유독 시네필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몸짓과 표정만으로 정동을 일깨우는 배우들, 공간의 소음이 관객과 교감하도록 돕는 사운드디자인, 6분여의 엔딩 숏을 포함해 영화의 시공간에 오래 머물길 유도하는 촬영과 편집까지. <애정만세>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리뷰] 재개봉 영화 <애정만세>
-
인생 끝자락에 찾아온 사랑과의 특별한 여정을 담은 로맨스 로드무비.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은자(정애화)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빈집 털이범 팔복(기주봉)을 육탄전 끝에 붙잡는다. 돈보다 낭만을 좇으며 전국을 떠도는 그의 삶에 이끌려 빈집을 찾아다니는 여정에 동참한 은자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설렘과 해방감을 맛본다. 노년의 사랑을 일상의 풍경에 담아 과장 없이 풀어낸 이 작품은 삶이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담백하게 전한다. 두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는 배경 서사가 충분히 제시되었다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과거를 공유하는 시간이 함께 마련되었다면 인물들의 행동에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이 뒤따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남는다. 살아온 날이 많고 누적된 시간이 긴 인물들인 만큼 그들이 내리는 결정엔 동량의 무게와 이유가 실려 있을 테니까. 노년의 두 사람이 빈집을 털며 떠돌아다닌다는 독특한 발상, 이들의 삶을 대
[리뷰] 그들의 여정에 끝까지 동행하는 물음표 왜?, <빈집의 연인들>
-
2013년 시작돼 전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퍼피 구조대(PAW Patrol) 시리즈가 이번에는 신비의 섬을 찾는다. 마셜, 체이스, 스카이 등 퍼피 구조대원과 라이더는 공룡이 살아 숨쉬는 화산섬에 도착한다.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천재 강아지 렉스가 이들을 반긴다. 한편, 섬의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악당 험딩어의 탐욕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 불이 난 요트, 절벽 사이에 낀 공룡, 물살에 휩싸인 인간까지. 구조가 필요한 곳 어디든 달려가는 퍼피 구조대는 화산섬을 지키고 모두를 구해낼 수 있을까.
바다와 정글을 오가며 시원한 모험을 전개하는 <퍼피 구조대: 더 다이노 무비>는 일종의 아동용 어트랙션처럼 느껴진다. 포기를 모르는 소방견 마셜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가운데, 휠체어 탄 강아지 렉스가 다양성의 지평을 넓힌다. 신대륙 개척을 연상케 하는 험딩어의 계략과 이를 저지하는 퍼피 구조대의 활약을 대치시킨 부분도 흥미롭다. 새끼 공룡 루바브의 성장 스토리가 어린이
[리뷰] 모험과 다양성의 서머 어트랙션, <퍼피 구조대: 더 다이노 무비>
-
이번엔 유람선이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다는 전편의 설정을 이어받아 비행기에서 배로 무대를 옮긴다. 폐업 위기에 놓인 꽈배기집, 백수 남편, 사춘기 딸 등 현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미영(엄정화)은 초호화 유람선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초대받고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범죄 조직 보스 안야(최수영)가 등장하면서 수백명이 탑승한 유람선은 순식간에 납치사건의 현장이 된다. 시리즈의 핵심 인물이 그대로 돌아오고 새로운 인물들이 합류해 유람선 곳곳에서 사건을 벌이며 액션을 펼친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다는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무대를 한층 넓혀 적극 활용한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선실과 갑판, 공연장 등 유람선의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장면을 촘촘히 연결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며 액션의 규모도 시원하게 확장했다. 전편보다 완성도를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읽히는 부분. 후속편은 전편의 성과와 같거나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리뷰] 커지고 빨라진 만큼 진전이 보이는 후속편, <오케이 마담2>
-
“하이텐션의 바이크 액션도 있고, 무심코 ‘웨이~♡’ 하게 되는 로맨틱코미디도 있고, 또 죽은 그 두 사람이 나온다고 하니 제대로 눈에 담아주세요!” <명탐정 코난> 원작자 아오야마 고쇼 작가가 <명탐정 코난: 하이웨이의 타천사>(이하 <하이웨이의 타천사>) 개봉을 앞두고 한국 팬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원작자의 서신처럼 이번 극장판은 과거 폭발물 처리 사건으로 순직하며 인기를 이끈 하기와라 켄지와 마츠다 진페이의 등장 소식으로 일본 현지에서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아가사 박사와 함께 밤하늘을 보러 요코하마에 놀러간 어린이 탐정단. 다음날 코고로 탐정, 란, 소노코, 세라와 후발대로 오기로 한 코난을 제외하고 이들은 평온한 하루를 보낸다. 여유롭게 별을 관찰하던 중 오토바이 한대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놀랍게도 운전자는 목이 없다. 다음날 모터사이클 페스티벌을 구경하기 위해 요코하마로 떠난 코난 일행은 도로를 점령한 듯 폭주하는 검은 오토바이
[리뷰] 나도 따라 덜컹거리는 곡선의 박진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지 않아, 소년?, <명탐정 코난: 하이웨이의 타천사>
-
농번기를 맞이한 홍천군 화촌면의 작은 농촌 마을. 모심기를 서로 돕고, 음식을 나눠 먹고, 축사를 운영하고, 장기를 두는 일상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다. 여기에 아들 민우(김민혁)와 아버지(문영동), 할머니(이금례)가 함께 사는 한 가족이 있다. 민우가 면사무소에 출근한 뒤 아버지는 논에 물을 대고, 비가 쏟아지면 물꼬를 터주고, 심어놓은 모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여린 모가 성큼 자라 초록빛을 더해가던 어느 여름날, 할머니가 주무시다 돌아가신다. 잘 다니던 면사무소를 관둔 민우는 금붕어를 키우고, 하늘을 바라보며 얼굴에 비를 맞고, 오솔길을 걸어 산소를 찾는다. 새소리, 닭 울음소리, 개구리 소리가 리듬을 더하는 농촌의 풍경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묵묵히 보여준다.
[리뷰] 죽음을 품고 다시 푸르게 돋는 일상, <지난 여름>
-
인류 문화사를 대표하는 고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대개 원작을 따른다. 트로이전쟁으로 인해 20년 동안 고향 이타카를 떠났던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의 귀향을 그린다. 왕 오디세우스가 없는 동안 이타카는 혼란에 빠져 있다. 매일 밤 무수한 구혼자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를 괴롭히자,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으러 떠난다. 오디세우스는 신과 대자연, 온갖 저주와 괴물들의 방해를 뚫고 이타카로 향한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는 감독의 전작 <오펜하이머>처럼 한 인간의 트라우마라는 내면의 문제에 더 집중한다.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 포맷으로 촬영했다는 기술적 진보, 화려한 스타 캐스팅, 크리스토퍼 놀런의 신작이라는 점이 전 세계적인 기대를 모은 작품.
[리뷰] 원전과 어긋나는 놀런의 속도, 이 어긋남을 적절히 조율하려는 음악, <오디세이>
-
트릴로지 3부작으로 구성된 <사랑의 하츄핑>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엄마와 다툰 로미는 여전히 서운함이 풀리지 않는다. 아직 화해도 제대로 하지 못했건만 갑자기 성 안을 침공한 레비어스에 의해 엄마가 납치당하고 만다. 엄마를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로미는 바다 한가운데로 모험을 떠나고 그곳에서 해양 소년 카이트와 방울핑, 찰랑핑, 소라핑까지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아기고래와 엄마고래, 우당탕탕 아히죠 선장의 해적단까지 조우하며 로미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2년 전 누적 관객수 124만명을 기록하며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파란을 일으킨 <사랑의 하츄핑>은 이번 속편을 통해 서사, 캐릭터 개발, 음악과 미술, 3D애니메이션까지 모든 영화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가족간의 사랑과 이해라는 보편적 정서를 안정적으로 포용했고 무엇보다 바다를 둘러싼 아침, 오후, 저녁, 밤, 새벽의 모든 풍경을 기술적
[리뷰] 시네마 키드는 어떻게 육성되는가, 이 영화를 보고 자랄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하츄핑: 고래보석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