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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박소이)은 꿈에서 언니 수련(유나)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을 본다. 그리고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된다. 병원에서 깨어난 수안은 자신이 3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언니 수련은 죽었다는 소식을 엄마 금옥(임수정)에게 듣는다. 수안의 꿈은 혼수상태에 빠진 수안의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였을까. 혹은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밤의 문이 열린다>를 연출한 유은정 감독은 이번에도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관객과 두뇌 게임을 벌인다. 게다가 수안은 길에서 언니와 똑같이 생긴 재인(유나)을 만나는데, 영화는 도플갱어의 모티프를 그리운 뉘앙스를 담아 펼쳐낸다. 그러고는 집안 대대로 구전된 잔혹동화를 비밀의 열쇠로 사용한다. 관객을 오도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림자 아이>는 한국 독립영화는 물론 근래 한국영화에서 드문 마인드 게임 필름이다.
[리뷰] 관객을 오도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림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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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섬이다. 프랑스의 고위 관료 드 롤레(브누아 마지멜)는 하염없이 섬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거친다. 프랑스 해군 제독, 폴리네시아의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 청년, 또 다른 외교관, 성직자, 어딘가의 주민들…. 드 롤레는 그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의 맥락과 결론은 늘 흐지부지 끝난다. 흘러내리기만 하는 말들 속에 감지되는 것은 타히티섬에 프랑스의 핵실험이 재개될 것이란 공포의 소문 정도다. 소문은 사람들의 구술로 순환되며 이야기의 진실은 계속하여 모호함으로 남는다. <고독의 오후>를 연출하기도 한 알베르트 세라의 2022년 작품으로, 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의 강박 등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찾아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리뷰] 한없이 늘어지는 모든 것들, 궁극의 흐릿함, <퍼시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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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에겐 꿈이 있다. 탁구 대회에서 우승해 명예와 부를 거머쥐는 것. 거만하게 느껴질 만큼 우승에 대한 확신을 보이지만, 브리티시오픈에 미국 대표로 선정될 만큼 실력도 받쳐준다. 가진 재능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꿀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마티는 대회만을 기다린다. 브리티시오픈 참여를 위해 런던으로 향한 마티는 강자들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 그러나 처음 맞붙은 무명의 일본 선수 엔도(가와구치 고토)의 전문 장비와 신선한 플레이 스타일에 당황해 결국 패배한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채로 마티는 난동을 부리며 런던에서의 체류를 이어간다. 호텔에서의 과소비를 경기 경비로 청구하려다 되레 벌금을 물고 다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조차 불투명해진다. 궁지에 몰린 마티는 벌금 자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된다. 돈을 걸고 탁구 경기를 하거나 주변인에게 사기를 치던 중 CEO 밀턴 록웰(케빈 오리어리)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번 엔도와 경기를 치를 기회
[리뷰]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모든 걸 베팅할 저력, <마티 슈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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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그리고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을 따라가며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해왔는지 추적하는 정치 다큐드라마다. 과거 군사정권 권력의 주변 인물과 자금,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현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탐색하며 오늘의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을 되짚는다. 인터뷰와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에 재연드라마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인 점이 특징이며 12·3 비상계엄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경우를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를 배우와 생성형 AI 이미지로 구현해 눈길을 끈다. 다양한 형식이 완전히 결합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청산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는 충분히 전달된다.
[리뷰] 절실한 주제를 부실한 형식에 담으려는 성급한 시도, <그림자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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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뜻밖의 사고를 당한 마케터 천샤오저우(우적). 환영이 보이는 후유증에 매일 시달리던 그는 완벽한 외모와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푸드 크리에이터 펑자난(왕영로)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그를 괴롭히던 의문이 하나둘 풀리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전개와 밝고 쾌적하게 설계된 색채로 영화에 산뜻한 활력을 불어넣는 이 작품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에 다소 익숙한 로맨스의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관계에서 비롯한 상처와 불안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으며 알싸한 여운을 남긴다. 배우들의 눈부신 비주얼과 청량한 정서에 빠져 있다 보면 초여름 체감온도가 내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리뷰] 색감 속도감 청량감으로 초여름 체감온도 내리는 법, <너만 보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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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온 <토이 스토리>가 속편으로 돌아왔다. 보핍과 함께 우디가 바깥세상으로 떠난 지 7년 만이다. 보니의 방에서 아늑한 생활을 이어온 장난감들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동네 곳곳 장난감들 사이로 풍문처럼 퍼진 태블릿PC의 존재가 보니에게도 찾아오고 만 것이다. 보니는 더 이상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는다. 정말로 장난감의 시대는 끝난 걸까. 한편 첫 번째 어린이 주인이었던 에밀리의 집을 다시 찾은 제시는 그곳에서 블레이즈라는 소녀를 발견하고, 그가 보니와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실제로 전 세계 장난감들이 직면했을 동시대적 문제를 현실성 높게 반영한 5편은 어처구니없는 농담과 무해한 사랑으로 안정적으로 나아간다. 특히 코난 오브라이언이 목소리 연기한 스마티 팬츠가 몹시 웃기다.
[리뷰] 어쩜 나만 이토록 사랑해주니, 이 멸망의 세계에서, <토이 스토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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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스타 셰프가 된 세실(쥘리에트 아르마네)은 자신의 이름을 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오픈을 2주 앞두고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신메뉴 고민과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세실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참에 며칠간 고향에 머물기로 한다. <리브 원 데이>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세실이 마주하게 되는 소소한 일상을 뮤지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다. 여기엔 무슨 일을 저질러도 자신을 다독여주는 고향 사람들로부터의 치유도 있지만, 반대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감정을 재확인하는 순간도 있다. 영화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말한다. 프랑스 감독 아멜리 보냉의 데뷔작으로 2025년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리뷰]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담백한 노래, <리브 원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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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 고아라(고아라)는 특정 음역대를 들을 수 없는 난청이다. 그녀는 중학교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불렀다가 놀림을 당한 후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어머니가 된 그녀에게 음악은 더는 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불러줄 자장가를 만들기 위해 청각장애인의 음악적 경험을 연구하는 작곡가 이원우(이원우)를 찾아간다. <소리없이 나빌레라>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의 감독이자 인디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는 현진식 감독의 신작이다. 2024년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감독도 자신이 난청 환자임을 숨기지 않으며, 정교한 사운드로 청각장애인의 감각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려 애쓰는 점은 경이롭다. 다만 덜 정돈된 플롯이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진정성 있는 체험이 산만한 서사에 갇히는 아쉬움, <소리없이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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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대전 서구 용촌동의 정방(정뱅이) 마을이 쑥대밭이 된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제방이 무너진 것이다. 마을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으나 외부인의 도움으로 마을 주민은 전부 살아남는다. 하루아침에 집이 송두리째 사라져도 마을 주민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에게 직접 지은 밥을 먹이며 보상에서 제외된 이웃을 챙기려 움직인다. <정뱅이>는 <느티나무 아래> <벼꽃>으로 환경문제를 다뤄온 오정훈 감독의 신작 다큐로 2026년 제23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만듦새는 정석적이다. 정뱅이 마을의 주민, 정부 관계자, 예술가 등을 인터뷰하면서 재난 현장과 재난 회복력을 담아내고 동시에 기후 위기 시대의 제도적 장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리뷰] 건강하고 정다운 태도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 <정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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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마주친 축구부 연우(유가은)를 본 뒤 여름(김시아)은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든다. 아버지의 죽음 후 사진 찍기를 멈췄던 여름에게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픈 상대가 생긴 것이다. 연우에게 사진을 선물하기 위해 필름을 현상한 여름은 아버지가 촬영했던 사진들을 확인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마루(곽민규)를 찾아가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를 전해 듣는다. 호모포비아가 등장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여름은 정체성 고민에 몰두하는 대신 자신과 아버지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첫사랑의 설렘에 집중한다. 여름과 연우, 여름의 아버지와 마루의 관계를 겹쳐 보이며 연대와 성장, 상실의 치유까지 두루 다루는 청량한 청춘영화다. 성스러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농심신라면상을 수상했다.
[리뷰] 상실과 사랑의 첫여름, <여름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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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정중한 사무라이 코사카(야마구치 마키야)가 어느 날 갑자기 현대로 ‘타임 슬립’한다. 영화는 이 시간 여행의 배경을 단출하게 생략하고, 코사카가 현대에서 적응하는 이야기로 눈을 돌린다. 그는 우연히 시대극 드라마의 촬영장에 떨어지고, 어느새 ‘죽는 사무라이 역할’ 전문 배우가 되기에 이른다. 촬영 현장의 열정과 웃음, 코사카가 겪는 사무라이이자 배우로서의 고민 등이 적절하게 엮이며 부담 없는 한편의 소동극이 펼쳐진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이 10명 안팎의 비전문 스태프와 함께 만든 소규모 영화다. 단 한개 상영관에서 개봉을 시작한 이 작품은, 이후 10억엔 흥행과 제48회 일본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 석권 등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하며 일본영화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리뷰] 무사도+언더도그+시간 여행+메타 여행, 치트 키 대결합, <사무라이 타임슬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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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서진(신민아)은 헤어진 남자 친구 현민(이승룡)의 지독한 스토킹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민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내리고, 현민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서진은 그 즉시 멀리 떨어져 사는 쌍둥이 여동생 서인(신민아)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죽음은 이미 동생 집 안에 당도해 있다. 서진은 지하실에서 목매달아 죽은 동생을 발견한다. 지인들은 최근 받은 눈 수술 결과에 실망한 서인이 자살했다고 말하지만, 서진은 동생이 살해당했음을 직감한다. 평소 서인은 자신의 시각장애가 오히려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도예가로서 성공했기에 자살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죽은 동생의 집에 은신하게 된 서진은 모계 유전으로 나날이 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을 느낀다. 영화 <눈동자>는 이처럼 몸으로 느끼는 공포를 겹겹이 포개며 관객을 조여온다. <싸이코> <마더
[리뷰] 겹겹이 포개진 공포,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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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어떻게 될까’는 늘 미지의 영역으로 창작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다. <짝사랑 세계>는 이 질문에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응답한다. 영화 속 사후 세계는 현실과 겹쳐 있으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생활감이 가득한 집이 현실의 시선으로 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처럼 보일 뿐이다. 어린 시절 죽음을 맞은 뒤 이곳으로 넘어온 미사키(히로세 스즈), 유카(스기사키 하나), 사쿠라(기요하라 가야)는 함께 살아가며 나이를 먹고, 학교와 직장에 다닌다. 단란한 삶에 적응해가던 이들에게 큰 사건이 생긴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들을 살해한 아동 합창 클럽 살인사건의 가해자(이지마 구)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짝사랑 세계>는 도이 노부히로 감독,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 등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제작진이 다시 한번 협업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주목받는 20대 여성 배우인 히로세 스즈, 스기사키 하나, 기요하라 가야가 각자
[리뷰] 그곳에서도 삶이 제한 없이 이어지기를, <짝사랑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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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17살의 현재(황보운)와 가족들. 분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버지의 뜻대로 응해주는 어머니와 달리 현재는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10년째 행방불명된 딸을 찾아 헤매는 해인(채정안)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현재의 사정을 안 뒤로 해인이 몸을 던져 현재를 구하고 둘은 잠시간 함께 생활한다. 모녀지간처럼 지내지만 둘 사이의 묘한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현재를 위하여>는 인물 개개인의 결핍과 욕망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현재와 해인의 관계가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띠긴 하나 이들의 동거가 손쉬운 해결책으로 제시되진 않는다. 상실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을 주지시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 초청작.
[리뷰] 상실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선, <현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