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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이원영)가 상실을 겪는다. 사랑하던 아내(임정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더하여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게 된다. 기계를 활용해 남들과 조금이나마 소통하고, 몽골의 전통 가창인 ‘후미’를 통해 음성을 되찾으려고도 하지만 목소리는 쉽사리 복원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바깥 세계는 또 다른 혼란을 겪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TV뉴스로 끝없이 다뤄지고, 기묘한 이 상황은 불안한 기류를 일으킨다. 공간에 흐르는 여러 소리의 혼재가 이 상실과 불안의 감각을 자연스레 지각하게 만든다. <희망의 요소> 등으로 자기만의 독자적이고 소박한 스타일을 보여줬던 이원영 감독의 신작으로, 제2회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 작품상, 제14회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영화평론상 등을 받았다.
[리뷰] 희박할수록 강한 빛, 자신의 광량으로 탁월히 주무르는 영화, <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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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브라질 군사독재 시기. 공학자 아르만도(와그네르 모라)는 기업의 이해관계와 충돌한 연구를 강탈당하고 제거 대상이 된다. 독재정권의 폭력은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위장 신분으로 돌아온 남자를 끝까지 추격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이 도주극을 70년대 편집증 스릴러의 외피에 담되, <죠스>와 <오멘>이 걸린 상영관, 그리고 반세기 뒤 카세트테이프에 봉인된 목소리를 복원하는 현재의 대학원생을 겹쳐놓으며 영화를 기억의 고고학으로 전환시킨다. 상어 뱃속에서 나온 다리가 밤거리를 배회하는 B급 상상력마저 검열 시대의 집단무의식에 대한 정밀한 주석이다. 전작인 다큐멘터리 <유령들의 초상> 속 도시에 픽션의 옷을 입힌 멘돈사 필류는 국가가 말소한 이름을 아카이브가 되살리는 순간을 통해 장르의 쾌감과 역사적 애도가 한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낸다.
[리뷰] 장르와 역사가 함께 꾸는 라틴아메리카영화의 꿈, <시크릿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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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의 영원한 난제! ‘산이냐, 바다냐’를 두고 싸우던 진구와 도라에몽, 친구들은 결국 바다 아래에 산까지 있는 심해로 떠나게 된다. 미래에서 온 고양이 모양 로봇 도라에몽의 만능 도구인 ‘수중 버기’와 ‘적응총’ 등을 활용해 심해의 여러 자연을 탐험한다. 그러던 중 소년 ‘엘’을 비롯한 해저인들을 만나고, 전설 속의 바다 도시 아틀란티스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이내 지구가 멸망할 위기를 맞고, 진구와 친구들은 어려움을 해결한다. 1983년 제작된 <도라에몽>시리즈의 4번째 극장판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도 이미 그려져 있던 AI의 위험성, 세계 정세의 불안감 등은 시대가 무색할 정도로 동시대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거 냉전시대의 불안감을 안았던 20세기 말의 이야기가 21세기 현재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중심적인 주제는 과거의 정치적 갈등을 뒤로하고, 새 시대에 맞추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흐른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인간성의
[리뷰] 모험, 환경, AI, 우정까지, 시대를 초월하는 도라에몽의 교육열, <극장판 도라에몽: 신 진구의 해저비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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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서사의 관습은 국경에서 절정에 이르고 도착에서 끝난다. <하나 코리아>는 끝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영화의 초반부, 혜선(김민하)은 비행기에서 국정원 요원들에 의해 이송되고 차가운 심문을 받으며, 양강도에 두고 온 병든 어머니에게 닿고자 연락하지만 쉬이 닿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스트로 먼저 활동한 덴마크 감독 프레데릭 쇨베르는 <하나 코리아>에서 철조망의 스펙터클을 지우고 도착 이후의 시간에 집중한다. 하나원의 형광등 불빛 아래, 임대아파트의 적막 속에서 혜선은 이제 자신의 새 정체성을 가다듬어야 한다.
<하나 코리아>는 실존 인물의 취재를 거쳐 완성됐다. 쇨베르 감독은 5년간 탈북민 30여명을 인터뷰했고 그중 한 인물이 북한 가족에게 부친 편지들에 착안해 영화에도 혜선의 편지 보이스오버를 삽입했다. 덕분에 탈북민 내부의 위계까지 포착한 리서치가 <하나 코리아>에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디테일을 채운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정착 시설인 하나
[리뷰] 경계인이 지닌 두려움과 서툰 희망 사이의 미세한 진폭, <하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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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여자고등학교는 과거 공동묘지였던 자리에 지어졌다. 교장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음기를 다스리고자 퇴마 클럽을 만들고, 사주팔자 분석 결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할 5명의 학생을 불러들인다. 성적도 성격도 제각각인 소녀들은 학교를 떠도는 시험 귀신, 거울 귀신, 개교 귀신을 차례로 상대하며 단단해진다.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이 주연한 킷츠(KITZ) 숏폼 드라마 <방과후 퇴마클럽>의 극장판으로, 기존에 없던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추가해 지박령들의 서사를 보충했다. 그럼에도 오컬트 호러보다는 하이틴 무비의 상큼발랄함이 더 돋보인다. 유연한 앙상블이 각본상의 아쉬움을 상쇄하는 만큼 피프티피프티 팬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자체 콘텐츠가 될 듯하다. CGV 단독 개봉 후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할 예정이다.
[리뷰] 오싹함마저 상큼하게 다스리는 앙상블, <방과후 퇴마클럽: 소녀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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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국 대회 MVP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던 우진(제노)은 고등학생인 현재 모종의 이유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다. 강속구를 뿌리는 실력은 여전하나 타석에 누군가가 서 있기만 하면 제구가 말썽인 것. 전학생 태희(재민)는 그런 우진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우진은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간다.
킷츠(KITZ) 숏폼 드라마 <와인드업>의 극장판으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엄마의 공책>,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등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이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나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만큼은 차분히 전달하는 버디물이다. CGV 단독 개봉 후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할 예정이다.
[리뷰] 선한 소년들을 위한 치유의 캐치볼, <와인드업: 더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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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클라크 충돌 후 5년이 흘렀다. 지구는 회복될 기미가 없고 방사능 폭풍과 낙진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존(제라드 버틀러)과 그의 가족 엘리, 네이선은 무너질 위기에 직면한 그린란드 기지를 떠나야 한다. 목적지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클라크가 충돌한 크레이터다. 셋은 그곳에 생태계가 복원되었다는 소문을 믿고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그린랜드 2: 마이그레이션>은 영화 <그린랜드>의 속편으로 전작의 감독 릭 로먼 워가 메가폰을 쥐었다. 만듦새는 전작보다 실망스럽다. 서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형적인 공식과 클리셰를 반복해 진부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유성우와 지진 등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스펙터클은 볼만하나 재난이 서사와 결부되지 않고 끊임없이 나열되어 피곤함을 유발한다.
[리뷰] 온 우주가 주인공을 억까한다는 짠함이 재미를 압도한다, <그린랜드 2: 마이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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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42년, 1816명의 영국인 포로가 탄 리스본 마루호가 침몰한다. 그 인근에 작은 어촌 동지도가 있다. 그곳은 3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동지도 아비(주일룡), 아당(오뢰) 형제는 우연히 표류하는 영국인을 구한다. 일본군은 동지도 주민이 영국인을 숨겼다며 무결한 주민을 죽이고 아당을 인질로 데려간다. <동지도>는 <블랙독>으로 제7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탄 중견감독 관후와 드라마 <성한찬란>의 감독 비진상이 의기투합한 블록버스터다. 실화를 모티프로 했고 거대한 스케일이 돋보인다. 신화적인 이미지와 자연의 풍광은 아름다우며 연출 또한 안정적이다. 다만 전쟁영화의 익숙한 공식을 답습한 서사와 주제가 아쉬움을 남긴다. 일본군의 만행을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전시하는 연풍도 그러하다.
[리뷰] 너무 복잡한 스케일에 너무 단순한 휴머니즘, <동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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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출범한 DC 유니버스의 본격적인 확장을 알리는 작품. 슈퍼맨과 함께 새 DCU를 이끌어갈 슈퍼걸이 1984년 이후 무려 42년 만에 단독으로 스크린 전면에 나선다.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술과 음악에 빠져 사는 카라(밀리 올콕)가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한 루시(이브 리들리)를 만나 우주를 혼란에 빠뜨린 크렘을 추적하는 이야기. 복수와 성장이라는 영웅담의 익숙한 뼈대를 갖고 있으나 영화의 결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고 자유롭다. 황량한 행성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정은 로드무비와 우주 서부극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카라의 역동성과 루시의 신비한 에너지는 아름다운 케미스트리를 일으키며 화면을 채운다. 특히 두 인물이 한 프레임에 들어와 활약하는 클라이맥스는 이 장면을 위해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권.
[리뷰] 단 한 구간을 위한 여정, 그 압도적 클라이맥스, <슈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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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대중문화를 뒤흔든 로큰롤의 아이콘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다. <에픽: 엘비스 프레슬리 콘서트>는 2년에 걸쳐 아카이브를 조사하고 2300여개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음악다큐멘터리로 59시간 분량의 희귀 영상과 70곡이 넘는 음악을 엮어 무대 위의 엘비스와 그의 무대 밖의 순간들을 함께 따라간다. 공연 장면과 리허설, 이동하는 모습, 팬들과 교감하는 순간 등 다양한 기록을 빠른 호흡으로 펼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의 궤적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한 인물의 내면이나 삶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수많은 명곡, 그리고 당시 팬덤 문화가 만들어낸 열기를 생생하게 확인하는 즐거움만큼은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리뷰] 깊이 보기보다는 훑어보고 둘러보고 추억하기, <에픽: 엘비스 프레슬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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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박소이)은 꿈에서 언니 수련(유나)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을 본다. 그리고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된다. 병원에서 깨어난 수안은 자신이 3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언니 수련은 죽었다는 소식을 엄마 금옥(임수정)에게 듣는다. 수안의 꿈은 혼수상태에 빠진 수안의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였을까. 혹은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밤의 문이 열린다>를 연출한 유은정 감독은 이번에도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관객과 두뇌 게임을 벌인다. 게다가 수안은 길에서 언니와 똑같이 생긴 재인(유나)을 만나는데, 영화는 도플갱어의 모티프를 그리운 뉘앙스를 담아 펼쳐낸다. 그러고는 집안 대대로 구전된 잔혹동화를 비밀의 열쇠로 사용한다. 관객을 오도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림자 아이>는 한국 독립영화는 물론 근래 한국영화에서 드문 마인드 게임 필름이다.
[리뷰] 관객을 오도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림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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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섬이다. 프랑스의 고위 관료 드 롤레(브누아 마지멜)는 하염없이 섬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거친다. 프랑스 해군 제독, 폴리네시아의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 청년, 또 다른 외교관, 성직자, 어딘가의 주민들…. 드 롤레는 그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의 맥락과 결론은 늘 흐지부지 끝난다. 흘러내리기만 하는 말들 속에 감지되는 것은 타히티섬에 프랑스의 핵실험이 재개될 것이란 공포의 소문 정도다. 소문은 사람들의 구술로 순환되며 이야기의 진실은 계속하여 모호함으로 남는다. <고독의 오후>를 연출하기도 한 알베르트 세라의 2022년 작품으로, 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의 강박 등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찾아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리뷰] 한없이 늘어지는 모든 것들, 궁극의 흐릿함, <퍼시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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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에겐 꿈이 있다. 탁구 대회에서 우승해 명예와 부를 거머쥐는 것. 거만하게 느껴질 만큼 우승에 대한 확신을 보이지만, 브리티시오픈에 미국 대표로 선정될 만큼 실력도 받쳐준다. 가진 재능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꿀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마티는 대회만을 기다린다. 브리티시오픈 참여를 위해 런던으로 향한 마티는 강자들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 그러나 처음 맞붙은 무명의 일본 선수 엔도(가와구치 고토)의 전문 장비와 신선한 플레이 스타일에 당황해 결국 패배한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채로 마티는 난동을 부리며 런던에서의 체류를 이어간다. 호텔에서의 과소비를 경기 경비로 청구하려다 되레 벌금을 물고 다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조차 불투명해진다. 궁지에 몰린 마티는 벌금 자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된다. 돈을 걸고 탁구 경기를 하거나 주변인에게 사기를 치던 중 CEO 밀턴 록웰(케빈 오리어리)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번 엔도와 경기를 치를 기회
[리뷰]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모든 걸 베팅할 저력, <마티 슈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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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그리고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을 따라가며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해왔는지 추적하는 정치 다큐드라마다. 과거 군사정권 권력의 주변 인물과 자금,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현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탐색하며 오늘의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을 되짚는다. 인터뷰와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에 재연드라마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인 점이 특징이며 12·3 비상계엄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경우를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를 배우와 생성형 AI 이미지로 구현해 눈길을 끈다. 다양한 형식이 완전히 결합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청산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는 충분히 전달된다.
[리뷰] 절실한 주제를 부실한 형식에 담으려는 성급한 시도, <그림자 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