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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드림을 품고 평생 일만 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40년차 직장인 제리(제리 슈). 은퇴 후 검소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중국 본토에서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는다. 바로 그가 대규모 국제 돈세탁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억울하게 체포당할 위기에 놓인 제리는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찰 조사에 협조한다. 비밀경찰이 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나씩 완수한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범죄 규모에 기묘한 희열을 느낀 그는 노년의 삶이 지루하지만은 않다. <본인 출연, 제리>는 범죄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한 범죄스릴러물이다. 홈비디오 형식을 빌린 영화는 캠코더를 통해 걸러진 거친 이미지로 가득하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열화된 이미지가 현실과 극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주인공이 몸소 체득한 교훈을 담담하게 토로할 때 스크린은 뜨거운 울림으로 가득해진다.
[리뷰] 의연하게 스스로를 바라보는 구원의 시네마, <본인 출연,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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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후지시로(사토 다케루)는 미지근한 자기 삶이 나쁘지 않다. 직장인 대학병원은 안정적이고 함께 사는 약혼자 야요이(나가사와 마사미)와는 관계는 원만하다. 그러나 야요이가 사라지고 그를 찾아다니면서 후지시로는 크게 흔들린다. 10년 전 여자 친구 하루(모리 나나)가 편지를 보내오는 일까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잃는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사랑에 겁먹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후지시로는 야요이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그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영화는 후회하고 반성하며 달라지려는 남자를 차분히 따라가며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준다. 자신의 마음을 몰랐던 야요이와 하루에게도 자각의 서사를 부여해 주변 인물까지도 새 삶을 살게 한다. 계속 날아드는 첫사랑의 편지는 아련한 감성을 가져다주면서 영화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리뷰] 우왕좌왕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다, <4월이 되면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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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아즈마는 아이돌 데뷔를 꿈꾸며 손수 그룹 멤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끝내 각기 다른 고등학교에서 3명의 멤버를 영입하게 된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지닌 란코, 로봇 천재 소녀로 유명한 쿠루미, 그리고 아즈마의 어릴 적 친구이자 선한 매력이 풍기는 미카가 그 멤버다. 그룹 ‘동서남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아즈마와 친구들은 멤버들의 개성에 힘입어 금세 세간의 인기를 얻고 데뷔 무대를 치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멤버의 특정 사생활이 드러나며 그룹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인기 걸 그룹 노기자카46 출신의 다카야마 가즈미가 직접 쓴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 3개월 만에 20만부가 판매되는 등 반향을 이끈 바 있다. 실제 아이돌 출신 작가의 이야기인 만큼 단순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청춘의 성장물이라기보단 아이돌 산업에 엮인 SNS 마케팅의 허와 실, 미성년자 멤버들의 사생활 노출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절히 강조되기도 한다.
[리뷰] 현실에 아파하고 맞서는 반(反)열혈 아이돌 서사, <트라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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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코드명 레드 원(J. K. 시먼스)이 납치된다. 그의 본명은 산타클로스. 그가 사라지는 순간 크리스마스도 사라진다. 그의 조수이자 E.L.F의 대장 칼럼 드리프트(드웨인 존슨)는 산타 납치에 연루된 해커 잭 오말리(크리스 에반스)와 콤비를 이루어 진범을 추적한다. 그는 나쁜 아이 리스트에 오른 잭을 불신한다. 2억5천만달러로 제작된 〈레드 원〉은 블록버스터와 크리스마스 가족영화의 만남이 만드는 신선한 재미로 가득하다. 우선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다. 영화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마스 신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한 다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2004)를 보는 듯한 미장센과 크리처 디자인으로 그려낸다.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B급 유머 코드도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설정만 보았을 때는 프랜차이즈로 확장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지만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가족 서사를 답습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델 토로에 헬스하는 산타라니, 그야말로 마라탕후루 시대의 크리스마스 영화, <레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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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인 박수남 감독은 일본 내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가 배제한 존재를 영상과 글로 기록해온 작가, 다큐멘터리스트다. 조선인 사형수 이진우와의 옥중서신을 엮은 책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1세대 재일조선인 피폭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8), 오키나와에 연행된 조선인 군속과 종군위안부의 한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박수남 감독에겐 아직 작품화되지 못해 열화 중인 10만피트 분량의 16mm 필름이 남아 있다. 그의 딸이자 오랫동안 박수남 감독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박마의 감독이 어머니의 새로운 눈이 되어 필름 푸티지를 디지털로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또 다른 증언의 음성을 소환한다. 바로 박수남 감독이 직접 구술해 펼치는 개인의 미시사다. 박수남 감독은 성장 과정에서 조선학교 폐교
[리뷰] 세대와 시대를 결연하게 넘나드는 두 증언의 압도적 이중창, <되살아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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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선생인 정 선생(노진업)에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계기가 생긴다. 담당 반 쓰레기통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교감은 대입을 앞둔 시기에 일을 키우지 말라고 제안하지만 정 선생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다. 다소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은 좀처럼 특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정 선생의 시야 밖에 있던 아이들, 이를테면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등생의 마음에도 슬픔이 잔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와 학생들의 글씨체를 일일이 대조해보던 중 정 선생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과거엔 학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외면받았던 10살 소년 요우제(황재락)가 자리한다. 요우제는 본인이 바라는 모습의 어른이 되길 꿈꾸며 꾸준히 일기를 쓰는데, 주변인들의 멸시가 지속되면서
[리뷰] 독백이 대화로 이어진다면, 죽음이 아닌 생을 꿈꿔볼 수 있기에, <연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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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타카시(모리야마 미라이)는 연극 연습을 하던 중 전화 한통을 받는다. 오래전 가정에 큰 상처를 입히며 30년 가까이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 토요지(후지 다쓰야)가 극심한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것. 타카시는 급히 아버지의 거주지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둘러싼 여러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특히 아버지와 새살림을 차려 해로하던 나오미(하라 히데코)가 행방불명됐고, 나오미에 관한 진술이 각기 엇갈리며 타카시는 큰 혼란을 마주한다. <위대한 부재>는 교차편집과 비선형적 플롯 배열 등 미스터리영화의 구조를 차용해 치매 환자의 부재한 기억과 이를 바라보는 보호자의 복잡한 심리를 형상화한다. 영화는 치매 노인의 단절된 기억만큼 오랜 시간 어긋난 관계가 어떻게 이해와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지 살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철저히 통제하며 배우들의 기량을 끌어낸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다.
[리뷰] 한번 더 기억해야 할 이름, 지카우라 게이, <위대한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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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키즈 이와이(오가타 겐)는 다섯명을 죽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수사관은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자신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그에게 분노한다. 이윽고 영화는 에노키즈 이와이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불우한 유년기,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체포당하기 전까지 78일간의 행적, 가족과의 불화 등 그의 삶이 퍼즐처럼 조립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과 봉준호 등에게 영향을 준 일본영화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중기 걸작으로 실제 연쇄살인범의 삶을 모티프로 한 동명 범죄소설을 각색했다. 감독은 모순으로 가득한 주인공을 생생히 그려내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하드보일드 톤으로 영화를 연출한다. 나아가 의식의 흐름을 보는 듯한 실험적인 내러티브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입체적으로 그린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전후 일본 사회의 풍경을 돌아보면서 악인이 탄생하는 조건을 탐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리뷰] 모순으로 가득한 주인공을 그려내는 하드보일드의 색채,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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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초대형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자 포항제철소는 초유의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녹물이 빗물과 만나면 폭발한다’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 대규모 화재와 인명 피해라는 사회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대표 이재학(박지일)은 제철소 50년사 처음으로 모든 용광로의 바람을 끊어내는 가동 중단을 결정한다. 어둠에 잠긴 제철소를 바라보던 지역 방송국 PD 오윤화(공승연)는 폭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어 그날의 진실을 기록한다. 영화 <데드라인>이 추구하는 탐사 다큐멘터리의 묵직한 질감과 태도는 드라마타이즈 과정에서 서사적, 기술적 난관에 봉착한 듯 보인다. 제철소의 윗선, 아랫선, 외부인까지 소명의식으로 과부하된 채 어색하게만 행동하기에 인물이 서사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과학 교습과 리더십 교육의 경계에 선 이 작품이 결국 사내 교육용 영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리뷰] 소명의식과 도덕률이 섹시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만드는 재난물은 필패, <데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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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노윤서)은 동생 가을(김민주)과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청각장애를 지닌 수영선수 가을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매일 수영장에 들러 동생의 훈련을 살피고 남은 시간엔 알바를 하는 것이 여름의 일과다. 반복되던 여름의 삶에 용준(홍경)이 등장한다. 취업 준비 도중 잠시 부모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돕게 된 용준은 배달을 다녀오다 마주친 여름에게 첫눈에 반한다. 가까워지려는 용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름에겐 용준에게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청춘의 일상을 포착하면서도 각자 인생의 방향키를 잡아나가는 모습에 주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인물들의 관계는 느리게 변화하는데, 천천히 굴곡을 그리는 이들의 감정을 영화는 서둘러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애가 사랑의 장벽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주지시킨다.
[리뷰] 눈과 몸짓으로 건네는 사랑의 언어, 정교히 조성된 청춘의 세계, <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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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마이키 매디슨)에게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댄서가 있느냐는 요청이 들어온다. 러시아계 이민자 할머니 덕분에 소통이 가능한 아노라가 만난 남자는 러시아 신흥 재벌 집안의 아들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이다. 첫눈에 아노라에게 호감을 느낀 이반은 일주일만 자신의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는 거래를 제안하고, 둘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충동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의 3분의 1 지점까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을 위시한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흘러가던 영화는 아노라와 이반의 결혼을 막기 위해 투입된 이반 부모의 하수인 3인방이 등장하면서 반전된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등 성 노동자 캐릭터를 경유해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숀 베이커는 재벌과 스트리퍼의 계급차가 빚어내는 소동극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냉정하고 씁쓸하게 관찰한다.
[리뷰] 숀 베이커의 ‘성 노동자 한 우물 파기’가 <귀여운 여인>을 만났을 때,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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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취재팀의 종군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마리우폴로 향한다. 도시가 포위당한 뒤에도 팀은 전쟁의 실상을 남겨야겠다는 신념으로 20일 동안 잔류하기로 한다. 그들의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희생자의 얼굴과 공포에 떠는 주민들의 얼굴, 폭격 현장 등을 세계에 알린다. 러시아는 이를 ‘정보 테러’라며 규탄한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장을 생생히 담는다. 감독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최대한 건조하게 담는다. 핸드헬드로 현장의 공기를 담되 줌인 등으로 현장의 스펙터클을 부각하지 않는다. 거리두기를 하며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응시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 등 의 보도에 대한 반응을 조망하면서 ‘전쟁 한가운데에서 카메라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품게 한다.
[리뷰] 리뷰를 쓰는 일이 부끄러운 95분의 아비규환, <마리우폴에서의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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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고가 그렇듯 세강이라는 이름의 여고에도 괴담이 존재하는데, 이런 이야기다. 1998년 개교기념일 밤 고3 학생들이 학교에서 귀신들과 숨바꼭질을 벌여 이긴 결과 수능 만점자가 되었다는 것. 한참 뒤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이 괴담의 실체가 담긴 비디오테이프의 봉인을 푼 자는 3학년 지연(김도연)이다. 테이프를 열어본 사람은 귀신과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연은 성적 고민을 하는 촬영감독 지망생 현정(강신희)과 배우 지망생 은별(손주연), 특별히 스카우트한 종교 동아리 2학년 민주(정하담)와 함께 이 미션에 참여한다.
김민하 감독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을 완성도가 높고 긴장감이 팽팽한 공포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적 중심의 경쟁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세련된 화법으로 던지는 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러한 부족함을 따지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1990년생 젊은 감독의 첫 장편다운, 사방팔방으로 발산하는 엉뚱한 에너지가 막강하
[리뷰]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무정형의 에너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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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31년 만에 제작한 새 장편영화는 야누스 동상이 마당을 지키고 있는 1947년 스페인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죽기 전에 딸의 눈빛을 한번만 보고 싶다는 의뢰인이 사설탐정과 나누는 대화다. 탐정은 곧 아름다운 상하이 소녀의 사진 한장을 건네받아 재회의 임무를 위해 멀리 떠난다. 그리고 탐정 역을 맡은 배우 훌리오(호세 코로나도)도 촬영을 마칠 때쯤 영영 사라져버렸다. 16mm 화면 위로 야누스 동상이 세워진 가을 정원의 풍경이 사이즈가 다른 세개의 컷으로 디졸브되는 이 고아한 영화는 아쉽게도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아니다. 화면이 디지털 전환되면, 미해결 사건을 추적하는 TV 탐사프로그램의 유행이 한창인 2012년이다. 필름의 촉감이 순식간에 휘발되자 당혹스러운 듯 보이는 얼떨떨한 얼굴의 남자도 나타난다. 22년 전, 배우의 실종과 함께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작별의 눈빛>을 미완으로 남겨야 했던 장년의 영
[리뷰] 셀룰로이드의 정령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영화가 망각되지 않는 곳으로, <클로즈 유어 아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