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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전직 군인이었던 보쿠시(제이미 폭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군인을 치료하는 시설 더 프로그램을 창설한다. 그의 진짜 목적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군인을 세뇌해 체제 전복을 꾀하는 컬트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FBI의 장군 애쉬번(로버트 드니로)은 보쿠시를 제거하기 위해 더 프로그램에서 탈출한 내쉬(스콧 이스트우드)에게 접근한다. 내쉬는 시설 안에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 있다는 단서를 접하고 애쉬번의 작전에 합류한다. <틴 솔저>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연출한 브래드 퍼먼의 신작으로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한다. 다만 세 명배우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만듦새는 아쉽다. 영화 속 설정을 직접 설명하는 편의적인 내레이션, 사건 진행을 방해할 만큼 과한 플래시백이 액션영화의 매력을 반감한다. 그럼에도 컬트 집단의 실상을 담은 푸티지처럼 찍은 컨셉은 인상적이다.
[리뷰] 캐비어 넣은 라면을 굳이 체험하고 싶다면, <틴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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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페트(리애나)부터 덩치 스머프(알렉스 윈터)까지. 스머프 마을의 스머프에게는 각자의 개성과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 저 혼자만 개성이 없어서 방황하던 ‘그냥’ 스머프(제임스 코든)는 어느 날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그가 마을에서 마법을 선보인 순간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파파 스머프(존 굿맨)가 납치당한다. 스머프들은 켄(닉 오퍼먼)과 힘을 합쳐 악당 가가멜과 라자멜(JP 칼리악)을 물리치고 파파 스머프를 구하러 간다. 인기 캐릭터 스머프가 실사와 3D애니메이션을 더한 네 번째 극장판 <스머프> 로 돌아왔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크리스 밀러가 연출했다. 트렌디한 O.S.T와 다양한 작화를 구현하는 기술력은 탁월하나 각본은 엉성하다. 중구난방인 전개와 매력 없는 새 캐릭터, 난해한 멀티버스 세계관이 비주얼의 매력을 반감한다. 곳곳에 삽입된 B급 감성 유머도 당혹감을 남긴다.
[리뷰] 스포티파이 셔플 재생을 누른 듯한 아무 이미지 대잔치, <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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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서동현)의 제안으로 자영(김예림), 동준(이찬형), 예은(오소현), 미연(김은비), 자영의 동생 서우(박서연)는 공모전에 제출할 영상 촬영을 함께하기로 한다. 현재 폐쇄된 지하의 한 저수조에서 6명의 아이들은 무엇이든 알려주는 강령술을 진행해보기로 하는데, 자영은 실제로 강령술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한다. 서우에게 정체 모를 무언가가 빙의되자 이들이 쓴 질문지에 각각의 답이 달리고, 곧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저주의 길로 들어선다. 단편 <캐비닛> <잘 들었어요>를 연출한 손동완 감독의 신작이다. 강령술을 기반으로 캐릭터마다 지향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덕분에 서로의 욕구가 충돌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후반부에 벌어지는 사건이 다소 설득력을 떨어뜨리나, 짝사랑과 진로에 대한 고민 등 하이틴물에 기대하는 정서를 드러내면서도 오컬트 장르의 특성을 놓치지 않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리뷰] 익숙한 하이틴 호러의 맛, <강령: 귀신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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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은 세 소년 키야마(사카타 나오키), 카와베(오 다이키), 야마시타(마키노 겐이치)는 죽음의 실체를 알고 싶어 외딴집에 사는 노인 덴포(미쿠니 렌타로)를 관찰한다. 노인의 죽음을 보려고 집 주변을 배회하던 소년들은 마당 일을 돕게 되고 여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계절이 끝날 무렵 소년들은 덴포와 함께 심었던 코스모스 앞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노인을 미행하는 동안 소년들이 지켜본 건 죽음이 아니라 보통의 삶이다. <여름정원>은 죽음이 정원의 꽃처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오래전 떠나온 시절을 소환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되짚게 한다.
[리뷰] 과거를 찾지 않았다면 더 흐드러졌을 여름, <여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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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커플매니저인 루시(다코타 존슨)에게 결혼은 비즈니스다. 물질적 조건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잇는 것이 그의 일. 루시는 짝지어준 커플의 결혼식에서 해리(페드로 파스칼)와 존(크리스 에반스), 두 남자를 만나 갈등에 빠진다. 해리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데다 성격마저 상냥한 남자다. 전 연인 존의 조건은 루시와 사귀던 20대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낡은 집에서 룸메이트와 살며 연기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문제는 루시와 존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 영화는 밀고 당기는 삼각관계의 긴장보단 루시의 고민과 선택을 조명한다. 감독의 전작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낭만적이나 사뭇 다른 매력을 지녔다. 잔잔한 호흡을 유지하며 여러 시공간을 오가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면, 블랙코미디와 묵직한 드라마의 톤을 넘나드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으로 배경을 좁혀 현대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리뷰] 부부싸움마저 상속되는 세상의 한켠에서 사랑을 사유하다, <머티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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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함께재단 회원들의 후원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추적>은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4대강 사업의 여파를 17년간 추적하며 사업에 대한 주장과 실제 사이 간극을 촘촘히 짚어나간다. 영화는 일괄적으로 강의 수심을 6미터로 맞춘 공사의 목적이 강을 살리는 것이 아닌 운하 사업임을 밝힌다. <자백> <공범자들>에 이어 최승호 감독과 뉴스타파 기자들은 끈질기게 묻는다. 수질 검사를 의뢰하고, 운하에서 복원된 독일 이자르강을 방문하고 강을 주시하며 싸워 온 환경운동가, 매일 녹조 낀 물에서 일하는 농민과 어민, 학자와 언론인을 인터뷰한다. 당시 정권이 언론을 탄압해 실상을 가렸음을, 강바닥을 파내고 물길을 막은 공사는 생태계를 망치고 결국 인간을 위협함을 영화는 고발한다. 짙은 녹조가 부유하는 영주댐과 수문 개방 후 맑아진 금강을 각각 담은 드론 영상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강은 흘러야 한다는 말을 직관적으로 와닿게 한다.
[리뷰] 고인 물이 다시 흐를 때까지 끝나지 않을 이야기,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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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열세살 수연(김보민)은 보육시설로 보내질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수연은 선율(최이랑)을 입양한 부부의 브이로그를 유튜브에서 발견하고 그들의 가족이 되기 위해 접근한다. 다정하고 이상적인 가족이라 믿었던 수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율의 기이한 행동과 부부의 미묘한 긴장을 감지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이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수연의 선율>은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의 절박한 열망을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침묵이 말보다 정확하다는 걸 증명하듯 울타리 밖 아이들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는 대신 그들의 눈빛과 표정, 허물어진 골목과 적막한 집 안 풍경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려낸다. 가족은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파괴적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유기되는 책임은 가족 구성원은 물론이고 사회 공동체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영화
[리뷰] 따뜻한 척하는 세상, 어차피 해피엔딩은 없어, <수연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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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마카로(아나 데 아르마스)는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챈슬러 의장(가브리엘 번)이 이끄는 괴한 무리에게 아버지를 잃자 집을 떠나 킬러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성장한다.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와 노기(샤론 덩컨브루스터)가 이끄는 혹독한 훈련 끝에 이브는 비극 이후 12년 만에 킬러가 된다. 카틀라 박(최수영)의 경호를 시작으로 유능한 킬러로 활약하지만, 이브의 마음 한구석엔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몸에 새겨진 X 표식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어느 날 이브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신을 공격한 남자에게서 X 표식을 발견한다. 이브는 X의 정체를 파헤치지 말라는 디렉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뉴욕 콘티넨탈 호텔의 지배인 윈스턴(이언 맥셰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호텔에서 실마리를 얻은 이브는 아버지를 죽인 집단을 찾아 프라하와 할슈타트로 복수의 여정을 떠난다.
<발레리나>는 잘 알려진 대로 <존 윅>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제작된 영화다. 따라서 <발레리나
[리뷰] 프랜차이즈의 정수를 모범적으로 계승한 액션 오락물,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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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불법 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 섰다. 격동의 현대사를 견뎌온 한국인에게 역사를 거스르는 권력의 폭주는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단죄받지 못한 친일과 독재의 잔재 위에서 이승만과 윤석열은 절묘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은 제목이 암시하듯 김덕영 감독의 문제작 <건국전쟁>의 거울상을 자처한다. 백악관 만찬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는 윤석열의 모습과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긴박한 순간을 교차한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가 지닌 서늘한 유머 감각을 단박에 드러낸다. 그러나 아쉬운 지점도 분명하다. 자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보 전달 방식은 영화적 리듬을 해친다. 또한 AI 기술을 활용하여 현대사의 괴물들을 조롱하는 데 그치는 이미지 전략이 과연 광장의 뜨거운 열망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이 제작 총괄과 내레이션을 맡았다.
[리뷰] When they go low, We (have to) go high.(미셸 오바마),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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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샘 록웰), 스네이크(마크 마런), 샤크(크레이그 로빈슨), 피라냐(앤서니 라모스), 타란툴라(아콰피나)로 구성된 ‘배드 가이즈’. 이들은 도둑 생활 을 청산하려 고군분투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어느 날 의문의 금속 맥거피나이트가 도난당하고, 배드 가이즈는 이 기회를 틈타 개과천선을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범인이 파둔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채 또 한번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인 <배드 가이즈>가 속편으로 돌아왔다. 전작을 연출한 피에르 페리펠도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캐릭터의 수와 규모가 1편에 비해 늘었지만 첩보물의 서스펜스와 스턴트의 쾌감은 전작 못지않다. 3D 효과를 충실히 살린 그래픽노블풍의 2D 작화가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화려한 연출과 어우러지는데, 여기에 쉴 틈 없는 액션까지 등장하며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동명의 동화가 원작이다.
[리뷰] 배우 걱정 안 해도 되는 <미션 임파서블>. 안전바 꽉 조인 롤러코스터 재미, <배드 가이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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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평생에 걸쳐 사랑할 수 있을까. 헬레네 크뢸러 뮐러는 누구보다 먼저 반 고흐의 재능을 알아본 인물이다. 고흐의 죽음 이후 30년에 걸쳐 작품을 수집한 그녀는 1938년 마침내 그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을 설립한다. 그녀가 이토록 고흐의 예술 세계에 감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작품에 깃든 삶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사회로부터 멸시받는 약자들에게서 신의 현존을 느꼈고, 그들을 통해 무한한 세계로 도약하고자 했다. 영화 <반 고흐. 밀밭과 구름 낀 하늘>은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역사를 따라가며 예술가와 관객의 삶이 공명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비주얼이펙츠 없이 붓 터치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훑는 정공법은 고흐의 시선을 재현하는 연출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숭고한 평행 이론은 헬레네가 끝내 자신의 컬렉션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며 완성된다.
[리뷰] 우리가 계속해서 고흐를 돌아보는 이유, <반 고흐. 밀밭과 구름 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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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을 배우러 다니는 방랑자 곽정(샤오잔)은 황용(장달비)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곽정의 사부가 살해당하고 황용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곽정은 표식만 남기고 황용과 이별하게 된다. 방랑을 끝낸 후 곽정은 칭기즈 칸(바야에르투)에게 간다. 그는 곽정을 자신의 막내딸 화쟁(장문흔)과 결혼시키려 한다. 그즈음 황용은 구음진경을 찾는 서독 구양봉(양가휘)에게 추적당한다. <사조영웅전: 협지대자>는 무협영화의 고전인 <동방불패>를 연출한 홍콩영화의 거장 서극 감독의 신작이다. 무협소설의 대부 김용이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34장부터 40장까지의 분량을 영화화했고, 긴 서사를 곽정과 황용의 멜로를 중심으로 간추리려고 노력했다. 영화는 초반 20분을 곽정과 황용의 전사를 푸는 데 할애한 후 무협의 스펙터클에 집중한다. 대작다운 화려한 액션과 CG, 군중 신이 볼만하다.
[리뷰] TVA의 서투른 총집편을 보는 듯한 전개에도 두 배우의 비주얼만은 확실, <사조영웅전: 협지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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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원이었던 공간에 이제 작은 벤치 하나만 남아 있다. 이 벤치는 꽤 인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이별을 말하는 커플과 그 사이를 무심코 끼어드는 아저씨, 노숙인이 된 언니와 그를 찾아온 동생, 그리고 벤치를 없애려는 공무원들까지 찾아와 외롭지 않다. <엣 더 벤치>는 <초속 5센티미터>의 실사판을 연출한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의 신작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한 회고와 시시한 농담,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SF적 상상력이 넘치는 장광설이 영화 끝까지 이어지며 공간 변화 없이도 다채롭다는 인상을 남긴다. 대사 곳곳에 유머가 깃들어 있지만 해질 무렵이란 공통된 배경이 아스라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쓸쓸함을 더한다. 출연배우 모두가 각자의 에피소드를 성실히 책임지는데 그중 1편을 맡은 히로세 스즈의 담담한 연기가 가장 인상 깊다.
[리뷰] 쏟아지는 다자 인생담, 벤치는 외롭지 않아, <엣 더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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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겠지?” 척수장애가 있는 은진(김시은)이 예기치 못한 임신을 마주하고 남편 호선(설정환)에게 꺼내는 첫마디다. 어떤 삶의 선택은 무수한 선입견과 책임감의 중량을 감당해야 한다. 사고로 인한 장애로 낯설어진 몸을 받아들였던 은진은 이제 ‘둘’이 된 자신을 놓고 성찰한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서 주목받은 성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 둘 사이에>는 출산을 위한 레이스가 아니라 한 여성의 내적 성장과 자기 이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머뭇거림의 시간을 쉬이 걷어내지 않기에 미덥다. 휠체어 높이의 시야에서 설계된 화면과 배우 김시은의 맑은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은 인물의 마음이 가장 연해진 구석으로 초대받는다. 영화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 동료 산모 지후(오지후)와의 관계 속에서 의외의 빛과 긴장을 길어올렸다. 두 여성이 각자의 신체적·심리적 여정을 공유하는 과정이 담담하면서도 개성적인 전개를 이룬다.
[리뷰] 장애와 임신이 내 몸의 조건일 때. 둘이 되어 하나를 배우다, <우리 둘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