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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소통은 있다. 일방적인 소통. “우리는 흔히 주님이나 부처는 ‘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정말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대타자, 즉 신과 같은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종교 생활이지요.” 여기에 더해 한 가지 경우를 더한다면 힘과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라고. 정희진의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온건하고 따뜻한 소통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읽어내려가려는 고집 센 독자에게 수시로 찬물을 끼얹는다. 예를 들어 다음의 지적 또한 그렇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가장 자주 보이는 문장은 “잊지 않겠습니다”이다. 정희진은 묻는다. 이 문장은 누구의 관점을 반영하는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유가족의 입장이 아니라) 잊을 수밖에 없는, 비극과 무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짐이라고.
내가 대화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소통에 대해 당신이 하는 생각이 상대와 일치하리라는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
<씨네21> 추천도서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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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길 하면 늙은이 인증이 되는 것 같지만, 나 때에는 짝사랑하는 사람이나 절친에게 '좋아하는 시집'을 선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쓰임새 좋은 실용적 선물이 아닌 시집을 굳이 선물한다는 것은 ‘너는 내가 이 시집을 왜 사랑하는지 알아줄 사람’이라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았다. 지금은 친구의 생일 선물로 시집을 들고 가면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 10대 때에는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믹스테이프처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게 서기 몇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시집의 낭만이란 아득해져버렸지만.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시에 (눈)물기가 묻어나는 듯 느껴지는 것이 박준의 시인데 그런 그가 애정하는 시 68편을 모아 산문집을 냈다. 1896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김명순 시인의 시 <유언>으로 시작해 2000년대의 신용목 시인까지 박준이 애정하는 현대시를 꼽았다. 시를 꼽고 그 시에 대한 해설을 박준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약간
<씨네21> 추천도서 -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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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는 생전 뉴욕의 단골 레스토랑 가지쓰(Kajitsu)를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음식이 마음에 들어 자주 찾았지만, 갈 때마다 배경음악이 요리의 맛까지 해친다는 생각에 직접 셰프에게 “당신의 음식은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이 식당의 음악은 못 참겠다. 누가 골랐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신 골라줘도 되겠냐”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남긴 선곡 리스트 중 그보다 유명한 것은 장례식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골라둔 장송곡들이다. ‘funeral’이라는 제목의 이 리스트에는 총 33곡이 담겨 있으며, 실제로 그의 장례식에서 재생되었다. 가지쓰를 위한 곡들과 장례식의 플레이리스트 모두 유튜브를 비롯한 음원 스트리밍 채널에 올라와 있어 누구나 찾아 들을 수 있다. 가지쓰 리스트는 식사 자리보다 오히려 업무나 공부처럼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 틀어놓기에도 잘 어울린다.
2023년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투병 중 콘서트를 준비하며 음악 안에 머물던
<씨네21> 추천도서 -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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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을 끝까지 읽으면 ‘작가의 말’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에게 주고 싶어 소중히 가져온 것이, 당신에게는 고양이가 물어온 작은 시체처럼 난처한 선물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많은 소설이, 아니 많은 책이 그렇지 않을까. 작가가 쓴 책은 독자가 기대한 내용이 아닐 수 있고, 그래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울림을 경험할 수도 있다.
<환호성>의 단편들은 “고양이가 물어온 작은 시체”처럼 깜짝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넘길 이야기도 아니다. 크나큰 불행이 숨 고를 틈도 없이 쏟아진다. <요술 궁전>의 환은 시각장애인 선우와 함께 사는데, 그만 본인이 녹내장에 걸리고 만다. 의 은호는 성정체성을 아우팅당하고, 가영은 회사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그리고 은호의 제자 복현은 가정폭력을 오랫동안 당했다. <환호성>의 세경은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가난하고 차별받
<씨네21> 추천도서 -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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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발굴되어 공사가 중단되었다거나 유적지 보전 방안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는 뉴스는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넓다고 하긴 어려운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랜 세월 살다가 떠나고 흔적을 남겼는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한편 매월, 아니 매주 빠르게 갱신되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뉴스를 접하면 또 다른 차원에서 아득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를 접하기도 전에 기후변화가 다 쓸어가는 건 아닌지.
제3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아르고스>는 이런 시간의 감각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무대에서 펼쳐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 고분 바로 옆, 로봇과 인간이 같이 일하는 스마트 물류 특구 센터가 있다. 주인공은 빚 3억원 때문에 강남 에스테틱에서 밀려난 의사다. 젊은 피부를 만들어주는 최첨단 주사를 놓으며 살다가 사업 실패로 센터의 야간 구급대원이 된 그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을 관찰하며 한방에
<씨네21> 추천도서 - <아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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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 이승형 지음 한겨레출판
<환호성> - 구소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리스트> - 시무라 에이이치 지음 이정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 지음 난다 펴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정희진 지음 창비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 당신의 독서 후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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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굳은살이 박여 큰 외부 자극이나 타인으로부터 심각한 타격, 예상하지 못했던 나쁜 일에 휘말려도 어릴 때만큼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고 자신할 때가 있었다. 이른바 매사에 무덤덤해진 것인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이 생겨서 이제 상처를 쉽게 받지 않게 된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런데 나쁜 자극에만 무덤덤해진 것이 아니라 좋은 자극에도 무덤덤해졌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낯선 여행지에 가서도 좋지도, 싫지도 않고 과거와 달리 감탄사를 내뱉지도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역시 어른이 된 증거인 줄 알았다. 우연히 만난 명상 전문가는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위험한 것이지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기쁨, 환호, 설렘과 같이 긍정적인 감정들은 분노, 슬픔, 좌절과 같은 감정과도 연결돼 있어 나쁜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면 좋은 감정 역시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는 ‘안전한’ 상태가 아니라 우울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 조절>에는 이러한 감정들
씨네21 추천도서 - <감정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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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쓴 책을 믿는 편이다. 적어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문장과 글의 함량, 그리고 필력을 신뢰한다는 말이다. 현직 기자가 쓴 책은 대개 사회문제의 시의성을 담고 있고, 전직 기자라면 거기에 자신의 시선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젠다를 던진다는 점에서 믿고 읽는다. 물론 모든 기자의 책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를 읽으면서는 생각한다. 아, 역시 믿을 수 있다. <한겨레>에서 18년간 기자 생활을 한 저자는 난민 정책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연수를 떠나고, 아예 베를린 이주를 마음먹는다. 나이 오십에 직장을 그만두고 언어도 서툰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선택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년, 여성, 아시안 정체성을 가지고 미성년 딸과 함께 독일로 이주하기를 선택한 저자는 독일 대학에 진학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한다.
처음엔 독일에 저자의 이주를 도울 정착민 가족이 있거나, 그가 유창한 독일어를
씨네21 추천도서 -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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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왜 읽어야 할까, 특히 소설을 왜. 이 질문에 많은 독서사랑단은 ‘문학을 읽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나로 태어나 나로 죽는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방법은 이번 생에는 없다. 회귀, 빙의, 환생 같은 것을 해볼 수 있다면 모를까, 나로 태어난 이상 다른 삶은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고 ‘남의 삶 들여다보기’에 있어 문학 읽기만큼 적절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문학에 깊숙이 빠져들어 독서 이후에 우리가 가닿고 싶은 세계는 무엇일까. 뛰어난 글을 읽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글이 쓰고 싶어진다. 아니 에르노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들을 번역해온 신유진의 <나를 균열내기>는 독특한 구성을 한 산문집이다.
이 책은 자기 이야기이면서도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다. 생활에서 겪은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번역가이자 애서가인 작가가 사랑했던 다른 작가들의 문학과 삶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취향이
씨네21 추천도서 - <나를 균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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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영광송에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삼위일체일 것인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지만 영원은 결국 그 모든 구분을 무효화하는 시간성을 뜻한다. 이 구절을 떠올린 것은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의 ‘시인의 말’을 읽다가였다. “사과 옆에 돌 옆에 감자 옆에 어둠이 하나씩.// 이미 있었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처럼, 해파리 인간 제미나이.” 그러니까 단어 셋이 나란히 나열되는 것의 효과 말이다. 두개일 때는 짝을 짓지만 셋이 되면 삼각형이 되고 그 삼각형은 무엇으로 만들어도 단단한 결속력을 지니곤 한다. 이것이 구조의 힘일 것이다. 해파리 인간 제미나이.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공교롭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시집의 제목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의 제목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이라는 단어를 빵부스러기처럼 따라, <작은 교회>라는 시를 읽어본다. “(전략) 여태 기도문을 잊어버리지 못했니? 대낮에도 콩알 같은
씨네21 추천도서 -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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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80권의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 소설 전집>을 탐독하던 시절, 작가 소개도 본문 못지않게 열심히 읽었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인생이 소설처럼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시절 간호사로 일하며 독약 조제를 배운 덕분에 청산가리 등의 독극물 트릭을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이나(푸른 제라늄 벽지 트릭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눈길을 끈 건 애거사 크리스티가 신인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겪은 실종 사건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남편과의 불화로 정신적 불안이 심했던 1926년 12월 초의 어느 날 애거사는 사라지고, 연못 근처에 그가 타고 다니던 차만 남았다. 경찰들이 수색에 대거 투입되고 남편 아치볼드는 곤욕을 치렀다. 11일 후 애거사는 돌아왔고 기억상실 때문이라며 상황은 대충 봉합되었으나, 당시 남편이 만나던 여자의 이름으로 호텔에 투숙한 사실 등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기억상실, 혹은 정신
씨네21 추천도서 -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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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필연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 인연으로 이어지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간절한 마음은 휴대전화 같은 빠른 매체보다는 편지처럼 느리고 불확실한 매체에 어울리는 것 같다. 단어 하나마다 고민하며 골라 쓴 편지지가 상대에게 잘 가닿기를, 그리고 편지에 담은 마음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기를. 1968년의 준하가 친구를 대신하여 주희에게 공들여 편지를 쓰는 모습이, 2002년의 지혜가 짝사랑하는 선배 상민에게 친구를 대신해서 정성껏 편지를 쓰는 모습과 겹칠 때 영화 <클래식>만의 서정이 느껴진다.
사실 누가 마음을 고백한다고 해서 그걸 곱게 받아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지금 시대에 첫사랑 감성은 심심하고 촌스럽게 다가올 수 있고, 이는 “촌스러워! …음…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라는 지혜의 대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은 편지가 거의 사라진 2026년이니 까마득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각본집을 천천히 넘
씨네21 추천도서 - <클래식 각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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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각본집> - 곽재용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 마리 베니딕트 지음 백지민 옮김 문학동네 펴냄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 이원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나를 균열내기> - 신유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 남은주 지음 창비 펴냄
<감정 조절> - 권혜경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 여름의 사이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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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문법>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누리는 과거의 예술 작품 상당수는 이런 불건전한 악취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공포물은 특히 ‘불건전한 악취미’의 신세를 지는 장르다. 사랑과 공포, 환상과 현실, 역사와 비사, 악몽과 비밀의 무의식적 역동을 조장해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포는 독서 혹은 상영 당시의 경험과 밀접히 연관되기 마련이며, 때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공포의 공식(대표적으로는 <링>의 사다코 스타일로 움직이는 동아시아의 유령들)이 생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공포물도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작가인 듀나가 공포라는 장르를 다룬 논픽션 <공포의 문법>을 썼다.
영화와 드라마를 다루는 듀나의 글이 흔히 그렇듯 오래된 작품들이 꽤 많이 언급되는 편이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우리는 무엇을 왜 두려워하는가’만큼이나 ‘우리는 무엇을 왜 재밌어하는가’를 다룬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인, 스티븐 킹
[culture book] <공포의 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