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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나는 리더가 안 맞나봐, 한창 팀장 생활의 고독을 주변에 토로할 때마다 했던 말이다. 리더라기엔 팀원 둘뿐인 팀이지만 거기서도 후배들과의 세대 차이, 소통 불화를 느끼며 ‘내가 부족해서 팀 결과물이 이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당시 리더십 책을 한두권 읽었는데 겨우 그 정도밖에 읽지 않은 이유는 “난 이건 못하겠다” 싶은 카리스마 리더십에 대한 조언들이 대부분이라서였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으며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재천 작가의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는 많은 자기계발서류의 리더십 책과는 다른 제안을 한다. 흔히 떠올리는 ‘강력하고 확고한 리더십’과 달리 그가 제안하는 리더십은 조용히 입은 다물고 숙론하며 잘 듣는 리더에 가깝다. 여러 협회의 대표와 회장직을 맡았던 그이지만 그 역시 ‘리더’는 하기 싫었고 더구나 학교에서 리더십 강의를 맡았을 때 안 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생태학자답
씨네21 추천도서 -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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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도대체 얼마나 불행한 일을 겪었기에 저러나 싶었다. “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오호라. 대체 불행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렇게 자기 연민을 한담? 그는 “이 불행이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하지 않나?”라고까지 생각한다. 저마다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여기는 한국에서 주인공 장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불행의 크기'에 자부하는 것일까.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심지어 심사위원 만장일치라고 한다) <말뚝들>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자문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장은 본부장 눈 밖에 나 유배 중이다. 감정평가사를 따라 전국을 돌며 담보 물건을 확인하는 것이 장의 하루. 여느 날과 다를 게 없는 출근길, 자동차 와이퍼에 꽂힌 쪽지에 “트렁크에 넣어
씨네21 추천도서 - <말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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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올여름 무지막지한 더위를 통과하는 동안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은근하고도 끈질기게 불안감을 느꼈다. 앞으로 매해 여름이 더 더워진다는데 전 지구적 차원에서 탄소를 줄이자는 목표는 아무리 봐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 문제를 죄와 벌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의 입장이다. 책은 마치 자연과학서처럼 시작한다. “1억6천만년 전 중력의 미세한 상호작용으로 소행성대 안쪽에서 운석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연쇄작용으로 엄청난 파괴가 일어났듯, 오늘날 지구에도 대규모 자연 재난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털 없는 두발 잡식성동물이 정착 생활을 하고 글쓰기를 발명하여 지식을 축적한 까닭에 지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씨네21 추천도서 -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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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정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2023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아니시 카푸어의 전시는 블랙홀 다음으로 새카만 블랙 컬러를 볼 수 있다는 기사와 함께 많은 관객이 몰렸다. 막상 전시장을 갔을 때 눈길을 끈 것은 높이 4m에 육박하는 거대한 검은색 덩어리들이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압도적인 그 작품들을 보면서 이건 무슨 뜻으로 만든 작품일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큰 네점의 조각은 일과 시간에는 사대문 안의 도로를 이용할 수 없어 꼭두새벽에 이동해야 했단다. 그렇게 수고스럽게 옮겨온 작품, 그리고 그 작품으로 작가가 새롭게 짠 공간을 놓고 저자는 전시가 어떤 풍부한 감각을 전하는지 자세히 전달한다. 일상적인 감각과는 다른 낯설고 인상적인 감각이야말로 예술 체험에서 중요하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2024년 구겐하임미술관을 오랜만에 찾은 제니 홀저의 전시 소개를 읽다 보면 전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관
씨네21 추천도서 -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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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낌 지음 우디 옮김 엘릭시르 펴냄
홍콩에는 ‘함까찬’(冚家剷)이라는 욕이 있다. ‘이 집구석 다 뒈져버려라’ 정도의 뜻인데, 어떤 사람이 “쓰우씨는 다 죽어야 한다”는 의뢰를 하는 것이 소설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의 시작이다. 홍콩 란타우섬 사이위의 한 마을을 본관으로 하는 쓰우씨는 생존한 사람이 다 합쳐 오십명이 좀 넘는 수준. 결혼해서 나간 여자의 후손까지 전부 손을 봐달라는 요구다. 부유한 쓰우씨는 가족구성원에게 막대한 생활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3년에 한번 있는 가족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궁금한 건 이렇다. 정말 쓰우씨는 다 죽을까?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죽일까?(가족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죽이지?) 현대사회에서 이렇게까지 온 집안을 멸살하려는 범인은 누구일까? 대체 왜? 예순명이 넘는 쓰우씨가 모두 모이는 가족 연회 날이 유력한 디데이인 가운데, 그날이 온다.
<쓰우 씨는다 죽어야 한다>는 202
씨네21 추천도서 -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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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홋카이도의 소도시는 지명부터가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다르다. 겨울이 유난히 긴 최북단의 홋카이도의 지명에는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어의 울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한자로 쓴 지명조차 한자의 원래 뜻과는 관계없이 음이나 훈을 빌린 것이라 낯설게 읽는다. 호로카나이, 오토이넷푸, 도마코마이, 시무캇푸 같은 지명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홋카이도에서 생활한 적 있는 게이코는 그런 지명마저도 그리워한다. 급여가 몇분의 일 수준으로 깎이는데도 게이코가 홋카이도의 안치나이 마을에 계약직 우편배달부 일을 구하고 이사한 이유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게이코의 나날을 묘사한다. 속도가 느린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읽게 된다. 홋카이도의 자연에 대한 묘사, 그 풍경을 통해 드러나는 게이코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를 쓴 마쓰이에 마사시는 1
씨네21 추천도서 - <가라앉는 프랜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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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탐낌 지음 우디 옮김 엘릭시르 펴냄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 윤혜정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말뚝들> - 김홍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 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 그 책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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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정명원은 2006년 검사가 된 뒤 지금까지 검사로 일하고 있다. 평검사 시기에는 형사부에서 금융, 조세, 환경, 의약, 소년 등 다양한 전담으로 일했고 공판부에서 성폭력, 마약, 살인 등 다양한 죄명의 사건에 관한 공소 유지 업무 또한 담당했다. 이력에 건조하게 적힌 이 말을 한권의 책으로 풀어낸 글이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은 사건 뒤에 있는 사람 이야기다. 뉴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만 골라내 스치듯 보도되었을 뿐이었던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던 사람이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말한다. ‘고등어 삼촌의 지하실 왕국’이라는 글이 그렇다. 피의자가 열 몇명쯤 되는 소년 사건이었다. 죄명은 공동폭행. 14살부터 16살의 소년들 사이에 37살의 피의자가 눈에 띄었다. 지역에서 ‘XXX 삼촌’ (이 책에서는 지역이 특정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등어 삼촌이라고 칭한다)이라고 불렸던 그는 회사 이름도
씨네21 추천도서 -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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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수환은 발터 베냐민(1892 ~1940)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이라는 동시대인을 겹쳐보기를 권한다.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은 어째서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일까?”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색 작업은 단순한 연결과 대질의 작업을 넘어서고자 한다. 외견상 결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주제 들을 다소간 ‘폭력적으로’ 연결시킨다. 그와 같은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 작업에 김수환은 “비교의 산파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이 공히 관여했던 세 가지 공통적 대상을 제시한다. “유리 집, 미키마우스(디즈니), 그리고 채플린.”
1장 ‘유리 집의 문화적 계보학’과 2장 ‘에이젠슈테인의 디즈니와 벤야민의 미키마우스’, 3장 ‘채플린 커넥션’으로 구성된 1부와 4장 ‘혁명과 소리’, 5장 ‘에이젠슈테인의 <자본&
씨네21 추천도서 - <비교의 산파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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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음악방송 무대를 준비하던 남자 아이돌이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죽었다. 아이돌 그룹 ROME의 메인보컬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아 예능과 광고를 종횡무진 누비던 생기 넘치던 건아의 피가 무대 바닥을 카펫처럼 물들인 기이한 현장. <아이돌 살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최정상 아이돌의 시체를 살펴보는 젊은 형사 리애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선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연쇄선행마’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건아에 대한 탐문을 시작하자 리애는 그에 대한 온갖 악평부터 듣게 된다. 같은 멤버들조차 그를 ‘이중인격자에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꼬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한다. 사건의 용의자 역시 아이돌이었던 일라, 세실, 맑음인데 인물들이 가수, 매니저, 소속사 대표 등과 같은 연예계 종사자들이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이 샅샅이 드러난다. 아이돌에 문외한인 주인공 리애와 달리 그의 파트너 경원은 오랜 세실의 팬으로 웬만한 연예 전문
씨네21 추천도서 - <아이돌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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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간만에 하루 정도 휴식이 주어지면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 한숨부터 나왔던 밀린 일들을 무사히 해내고 드디어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휴식! 그런데 그 휴식이 하루에서 이틀, 일주일이 되면 휴식의 단맛이 쓴맛으로 바뀌고 불안함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왜 일이 없지? 일이 있는데 내가 깜빡하고 놓친 건 아닐까? 이러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충분한 휴식을 누리면 되건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책감이 동반된다.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 완전히 잊히는 거 아니야? 그저 뒹굴뒹굴 놀기만 해도 불안감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마 대다수는 기약 없는 휴일을 받으면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자기계발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조니 선은 처음 집필한 그래픽노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g
씨네21 추천도서 -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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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일과 인간관계,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사람들은 흔히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며칠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삶을 ‘리셋’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식의 생활방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고들 말한다. 시골도, 깊은 산도 진정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기 때문일까. <나의 완벽한 무인도>가 바로 그 ‘모든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완벽한 로망을 펼치는 소설일 거라고 믿고 첫장을 펼쳤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함께 거론되는 <삼시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의 문구 역시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결론만 말하면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일군의 ‘떠나는 힐링’ 소설들과는 다르다.
이야기는 주인공 지안이 이미 무인도에 정착해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슨 사연으로
씨네21 추천도서 - <나의 완벽한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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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아이돌 살인> - 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비교의 산파술> - 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 한여름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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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서가에 들이는 순간 영원히 이별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가 그런 책이다.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책은, 1권 <죽음의 자서전>으로 시작해 2권 <날개 환상통>을 지나 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 다다르는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600쪽에 달하는 이 아름다운 책은 순서대로 읽기를, 순서를 뒤집어 읽기를 권한다. <죽음의 자서전> 은 첫시 <출근>에서부터 죽음과 삶 그 사이의 귀신 들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너는 너로부터 달아난다. 그림자와 멀어진 새처럼./ 너는 이제 저 여자와 살아가는 불행을 견디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나서야 “네 직장으로 향하던 길을 간다. 몸 없이 간다.” 여자가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앞서 성큼성큼 걷는 법을 익히기에는 복잡한 것들이 여자의 안에서 아우성치기
씨네21 추천도서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