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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징야요 글 장지야 그림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펴냄
“전설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생성될 때 모든 물이 모여서 바다가 되었다. 아득하고도 푸르게 넘실대는 해양 속에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 이름은 모른다.” <요괴 나라 대만>의 ‘총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대만섬이 어떤 신화적 작용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논하며 시작해 산과 바다 사이에 번식하는 요괴와 귀신의 존재를 하나하나 짚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요괴 나라 대만1: 요귀신유권> <요괴 나라 대만2: 괴담기몽권> 두권으로 출간된 <요괴 나라 대만>은 1권 824쪽, 2권 640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대만섬의 옛날부터 현대까지 300여년 동안 전해진 고문서 수백권 중에서 추린 요괴 이야기와 시골 괴담을 채록한 결과물이다. 대만 소설에서 적잖이 등장하는 요괴와 귀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괴이(怪異)가 국가별로 어떻게 다른지를
씨네21 추천도서 - <요괴 나라 대만 1 : 요귀신유권>, <요괴 나라 대만 2 : 괴담기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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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호 지음 비채 펴냄
웹소설은 제목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제목만 봐도 어떤 이야기인지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독자의 ‘유입’이 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 낚시가 중요하다고 하고, 특정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인기 있는 키워드는 그 시기의 웹소설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 혼자’, ‘악녀’ , ‘복수’ 같은 단어들은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키워드들이었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제목부터 신기하다. 무슨 내용인지 도통 추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연재가 시작되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연산호 작가는 큰 반응 없이 연재를 쌓아갔는데, 눈 밝은 독자들이 ‘어바등’(<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를 줄여 부르는 말)의 진가를 발견하면서 ‘SF 어워드’ 웹소설 부문 대상과 ‘리디 어워즈’ 판타지 e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의 절반 정도 분량인 4권까지가 먼저 출간되었다. 땅의 자원은 고갈되고
씨네21 추천도서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세트(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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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설집을 덮으면서 그림자들이 걸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소설 속 인물의 명확한 생김새가 아니라 희미한 그림자 발소리다. 다행히 그림자는 혼자가 아니라 그 옆과 뒤를 다른 이가 함께 걷는다. 그러니까 그 소리는 조용하지만 수런수런대기도 한다. 김채원 소설집 <서울 오아시스>에는 여덟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등단작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와 표제작 <서울 오아시스>를 비롯해 <빛 가운데 걷기> <럭키 클로버> <외출> 등이다. 당연히 별도의 소설들이고 인물들에는 모두 이름이 별도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들은 이름이 있음에도 자기만의 개성을 갖기보다는 상실감을 가장 중요한 고유성으로 지닌다. 이상하다. 현재는 상실된 것이 자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니.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의 동우, 석용, 성아는 얼마 전 유림을 잃었다. 이들의 친구 유림은 자살했다. 이들은 정처 없이
씨네21 추천도서 - <서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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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창비 펴냄
정확히 이 책의 도발적인 제목처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남자 친구에게 가졌던 비슷한 의문이 있다. 왜 그는 10대 때 만난 사람만 친구로 여기는가. 한 부서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세번 술잔을 기울임에도 그 사람은 직장 동료지 친구는 아니라고 하는 그에게 “고등학교 친구들은 1년에 두번 만나고, 회사 동료는 일주일에 두번 만나는데, 누가 더 가까운 거냐?”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의 저자 맥스 디킨스는 인류학 박사도 아니고 연구자나 인문학자도 아니다. 영국의 스탠딩 코미디언이다. 저자의 정체성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불러오는데,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무엇보다도 끝내주게 웃기다. 남자가 쓴 ‘본격 남성 탐구 보고서와 에세이 그 사이 어디쯤’의 성격 때문에 대부분은 자조적인 유머로 설을 푸는데, 맥스의 약혼자 나오미가 매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기는 왜 친구에게 먼저 만나자고
씨네21 추천도서 -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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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창비 펴냄
<서울 오아시스> - 김채원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세트 (1~4)> - 연산호 지음 비채 펴냄
<요괴 나라 대만 1 : 요귀신유권>, <요괴 나라 대만 2 : 괴담기몽권> - 허징야요 글 장지야 그림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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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 나바로 지음 엄지영 옮김 비채 펴냄
결혼을 원하지 않는 남자 이스마엘과 결혼을 원하는 여자 ‘나’가 결혼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기 위해 결혼한 척하기로 한다. 가짜 결혼식을 핑계 삼아 “섬에 가서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해변가에서 보낸 첫 나흘 동안은 시간이 녹아 흘러내리듯 흐른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이스마엘의 통증이 시작된다. 음식 찌꺼기가 잔뜩 낀 잇몸이 부어올랐지만 식욕은 여전히 왕성한 이스마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삿갓조개 껍데기가 이스마엘의 잇몸을 관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가짜 남편의 입냄새는 점점 더 심해져 간다. 이스마엘은 갑작스레 고백한다. “사실 나, 벌레로 변하고 있어.” 이즈음에서 카프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단편소설 <잇몸>은 결혼과 불운이라는 테마로 이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표제작 <토끼들의 섬>에서도 악취가 중요하다. 강에서 시체를 발견한 남자는 한 섬에 텐트를
씨네21 추천도서 - <토끼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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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이마고 문디’에 연재된 사회학자 김홍중의 영화 에세이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영화에 대한 글 7편이 묶였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나루세 미키오, 지아장커, 켈리 라이카트, 코언 형제와 아키 카우리스마키, 박찬욱과 박해영의 총 7장으로 영화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된 목록만으로도 풍성함이 전달되는 듯하다.
최근 개봉한 <쇼잉 업>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에 대한 글을 먼저 살펴보면 좋겠다. “켈리 라이카트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독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켈리 라이카트의 스타일은 흔히 “느린 보폭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사건이나 스펙터클, 극적 전개가 거의 없이 관조적이고 섬세하고 미니멀한 카메라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물의 본성이나 이력 또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 느림은 단순한 미학적 효과나 아방가르드적 실험의 의미를 넘어서, ‘영화가 아니었다면 놓
씨네21 추천도서 - <세계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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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1992년 신년 세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배달된 편지봉투 속에는 채시라가 모델인 그 옛날의 전단지가 고이 들어 있다. 엄마는 인쇄물을 보자마자 이건 아빠가 보내온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기민하게 미래를 내다본 투자를 하고 부자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에스’의 아버지는 종이 인쇄가 사양산업의 길목으로 들어서기 직전 인쇄소를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일거리가 뚝 끊겨 파산한다. 그쯤에서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아빠는 성공의 기억이 있는 을지로 인쇄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엄마의 인감도장으로 빚을 내 연거푸 파산한 후 잠적한다. 아니, 여기서 멈췄으면 또 나았을 것이다. 에스의 엄마는 이번엔 에스의 이름으로 빚을 내 홍제동에 작은 옷가게를 열고 카드 네개로 생활비를 돌려막으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부모의 빚을 자식이 이어받아 개인회생과 파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무살의 이야기. 암담하기만 할 것
씨네21 추천도서 -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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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창비 펴냄
‘시간은 금이다’라는 그 유명한 관용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시간에 관련한 대부분의 격언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충실히 아껴 쓸 것을 조언한다. 이른바 ‘갓생’이라 불리는 시대 정서 역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 이들을 위해 탄생했다. 주말에 10시간을 누워서 휴식을 취한 사람과 회사에 출근해 일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전자의 경우처럼 시간을 보내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주변에서도 허송세월한 것으로 치부한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금액으로 책정되는 것만 봐도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곧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만큼 자본주의사회에 충실한 노동력을 제공할 것인가가 그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다. <시간 불평등: 시간의 자유는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의 원제는 ‘시간의 정치’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간이 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제이며, 산업사회에서 시간이라는 규율을 정함으로써 어떻게 계급과 불평
씨네21 추천도서 - <시간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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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불평등>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창비 펴냄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 이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세계에 대한 믿음> 김홍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토끼들의 섬> 엘비라 나바로 지음 엄지영 옮김 비채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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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지음 비채 펴냄
“한줄 메시지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 이지 소설가의 등단 포부다. 2015년 단편소설 <얼룩, 주머니, 수염>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담배를 든 루스>로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으며 2022년 첫 소설집 <나이트 러닝>을 출간했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이지 소설가가 2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으로 수시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을지로의 세운상가에 터를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삶이 그려진다. 젊은 예술가들은 쉽게 안정을 꿈꿀 수 없다. 주변을 제대로 가꿔두면 지역이 유명해지며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거처를 옮기는 건 다시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이지 소설가는 인물들이 놓인 현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세운상가라는 지역과 청춘들의 일상을 바탕으로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세운상가의 많은 것들이
씨네21 추천도서 - <노란 밤의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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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자회사 NM(new marriage) VIP팀에 인지가 적을 둔 지도 6년차가 되었다. 일반적인 결혼정보업체의 목적은 두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최종적으로 이들이 결혼에 종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NM 직원들의 업무는 다르다. 이들은 VIP 회원들이 곧바로 결혼식부터 올릴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NM 직원들은 본인이 직접 기간제 부인 혹은 기간제 남편으로서 계약기간 동안 회원들의 곁을 지킨다. 대학생 시절, 인지는 어머니가 주도한 모종의 사건으로 양성애자인 자신의 애인을 진창으로 몰아넣고 그와 헤어져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입사한 회사였지만 인지는 NM의 업무와 대우에 적정한 만족감을 느낀다. 일전에 소개팅으로 만났던 엄태성의 집요한 스토킹으로부터 고통받던 중, 인지는 전남편 중 한 사람에게서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
씨네21 추천도서 -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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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모는 이혼한 후 혼자 살다가 어머니의 암 투병 이후 ‘나’와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간곡한 뜻으로 시작된 이 동거는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이모가 집안 살림을 도맡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 자매의 죽음 앞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이모는 어머니와 흡사해 보였지만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180종류가 넘는 빵과 과자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크루아상만큼은 만들지 않는다. 어머니가 건강했던 시절의 아침 풍경에 늘 존재했던 어머니의 다종다양한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지나고 보니 평온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식빵 굽는 시간>은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이다.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같은 각종 빵의 이름이 나열되다가 소금, 편지, 외출, 흑백사진 같은 단어로 이어지는 목차는 어딘지 허기진 인상이다
씨네21 추천도서 -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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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다이내믹함으로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에선 왜 이토록 유난히 반사회적 활동이 반복되어온 걸까?” <스위트 솔티>에 수록된 단편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을 읽다가 SF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를 연상시키는 문장을 만났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달린 주석은 이렇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첫 희생자인 김경철씨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김경철씨를 비롯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명복과 안식을 기원합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미래사회에는 타고난 그대로의 몸인 플랫보디와 대조되는 ‘스마트보디’가 존재한다. 그런데 시대 리터러시가 낮은 ‘시대 지체자’들을 상대하는 상담업무를 하는 화자는 장형철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몸의 시간이 정지한 상태로 미래로 건너온 장형철은 간단한 시력 교정을 통해 약시를 고칠 수 있는 현재에 머물기보다 아내와 딸이 있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화자는 2130년으로 갑작스레 이동해 시대 지체자가
씨네21 추천도서 - <스위트 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