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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세 준코 지음 /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조직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 일이 몰릴까.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업무의 경계가 불투명해서 정확히 구획을 나누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못하거나 일을 안 하려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업무까지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부족한 아이, 월등한 아이가 있어 서로 협동심을 쌓아 사회로 나가는 것은 훈훈하겠지만 그게 회사라면 경우가 다르다. 민폐 직원은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그 결과가 고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불공정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또 이런 질문도 있다. “일을 잘하지만 성격이 나쁜 동료, 일은 못하지만 성격이 정말 좋은 동료. 당신이라면 누구와 일하겠습니까?” 일터에서 밥을 먹고 잡담을 나누고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는, 그 시간의 일들을 ‘작가가 내 회사 생활을 들여다봤나’ 싶게 쓴 것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이다. 식사
씨네21 추천도서 -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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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리비 지음 / 권경희 옮김 / 비채 펴냄
“내 꿈은 끝났다.”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석사과정으로 성취가 이어졌으나 로즈가 병이 나 박사과정을 중도탈락하면서 꿈은, 끝났다. 로즈는 주인공 소피아의 어머니인데 ‘간헐적 다리 마비’라는 원인 불명의 통증으로 걷지 못한다. 아버지가 그들을 떠난 뒤, 로즈는 소피아를 위해 살아왔다. 집을 저당잡힌 그들은 스페인 남부의 고메즈 클리닉에서 다리 통증 치료를 위해 애쓴다. 이 신비한 클리닉은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곳으로(고메즈가 돌팔이는 아닐까 우리는 의심하게 된다), 소피아와 로즈는 해변 별장을 빌려 지낸다. 소피아는 그곳에서 후안, 그리고 잉그리트와 성관계를 갖는다. 잉그리트는 소피아에게 “사랑받는”이라는 글자를 수놓은 옷을 선물하는데, 이 글씨가 사실은 “머리 잘린”이라는 뜻임을 소피아는 뒤늦게 깨닫는다. “내 실크 톱에 수놓인 ‘사랑받는’은 유로라는 단어보다 내 삶을 더 많이 바꿨다. ‘사랑받는’은 무대 한가운데에 꽂히
씨네21 추천도서 - <핫 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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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말이 통하는 누군가를 사회생활에서 만나면 반가울 것이고 마음을 터놓고 싶을 것이다.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능동적 행위의 연속이라,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관계가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자전거와 세계>의 주인공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한때 친밀했던 동료가 갑자기 냉랭해져 애가 타고, 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가 뭔가 속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직장에서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은근히 경고할 뿐이다. 내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의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외롭고 애타는 마음은 사그라들고 대신 현실의 이해관계를 빠르게 계산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 것이다. <산무동 320-1번지>의 호수 엄마는, 철거를 앞둔 동네의 건물주 장 선생 대신 발품 팔아가며 월세를 척척 받아낸다.
씨네21 추천도서 - <축복을 비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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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지음 / 창비 펴냄
열한 가구가 사는 집에서 그나마 왕래가 있던 윗집 할아버지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집주인은 나중에 들어올 새 세입자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비어버린 집을 홀로 기웃거린다. 막걸리 한잔과 샤인머스캣을 윗집에 남겨두고, 그가 남긴 오래된 책 한권을 가지고 온다. 그렇게 일상에서 개인적인 장례식을 치르며, 마음에 일어난 파동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그 파동의 중심에는 한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낸 친구와 어느 순간 관계가 끝나버린 사건이 있다. 솔직한 관계는 무엇인지, 다정하고 용감한 마음은 또 무엇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의문들이 일상에 내려앉아 있다.
<해피 엔드>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고, 악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밀려드는 안개 낀 강물 같은 이야기다. 문득 생각나 사 먹은 구슬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공장에서 키우는 개는 밥을 잘 먹고 똥도 잘 싼다. 유튜브를 열심
씨네21 추천도서 - <해피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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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 - 이주란 지음
축복을 비는 마음 - 김혜진 지음
핫 밀크 - 데버라 리비 지음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 다카세 준코 지음
리플리 5부작 세트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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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트렌드 2024>는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20대 전문 연구기관을 표방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신간이다. 2021년까지 <밀레니얼 Z세대 트렌드>라는 제목이던 이 시리즈는 지난해부터 ‘밀레니얼’ 없이 Z세대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앞으로도 계속될) 제목의 변화는 세대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짚는 메인 트렌드는 ‘트라이브십’이다. 초개인화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지향성과 공감’ 기반의 트라이브십이 더 강력해지리라는 뜻이다. 이는 SNS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인플루언서의 스몰 브랜드의 인기로 이어진다. 소비자들끼리의, 소비자와 브랜드간의 유대감 형성 역시 중요한데 팬 브이로그의 인기 역시 이와 관련 있다. 대형 브랜드가 스몰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공간 역시 개인적 지향성과 맞닿은 공간이어야 인기를 끌고, 서울에서는 부암동, 신당동 등의 장소가 인기를 끌고 있다. “Z세대는 젊은 층만 가득한 곳
[리뷰] Z세대 트렌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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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공적인 역사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공적인 역사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소설가 한정현이 <마고>의 작가의 말에 쓴 문장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유효하다. 고리타분하지만 ‘격동의 한국사’를 대체할 표현을 찾기 어려운 과거사에 국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다친 사람들, 그로 인해 더불어 숨어야 했던 피해자 가족들의 서사를 한정현은 집요하게 추격하고 상상해왔다. 한정현의 소설을 따라왔던 독자라면 역사와 피해자, 퀴어 인물들의 주체화, 여성 연구자가 숨은 퀴어와 여성을 가시화하는 과정을 연상할 수 있다. 두 번째 소설집 <쿄코와 쿄지>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표제작 <쿄코와 쿄지>는 광주를 배경으로 혜숙, 미선, 영성의 우정, 이들이 가부장제하에서 받은 고통과 폭력을 극복하고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가 서술된다. 다음 세대에 의해 전 세대 여성들의 발자취가 그려지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쿄코와 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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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샌토로 지음 /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음악가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의 음악을 연속재생하는 것만큼 즐거운 독서법은 없을 것이다. 경계인이었으며, 다면적인 얼굴을 가졌고, 예측 불허의 인물이었던 찰스 밍거스가 밴드 멤버와 불화하며 무대 위에서 기행을 펼치는 장면을 읽을 때 과 같은 곡이 불쑥 재생되고 있으면 문장과 음률이 환상의 합을 이뤄낸다. 밍거스의 음악은 성마른 그의 성격처럼 일정하게 흐르지 않고 전혀 다른 악장으로 튀어가거나 방향을 급선회한다. 경쾌한 베이스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분위기를 미스터리하게 변모시키는 트럼펫이 흐르고 피아노는 밤도둑의 발소리처럼 가만가만 음표를 올려놓는다. 찰스 밍거스의 전기 <찰스 밍거스-소리와 분노>의 번역가인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는 옮긴이의 글에 밍거스를 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하며 이렇게 소개한다. “음악적으로 비타협적이었으며 다혈질의 성격으로 오케스트라 혹은 밴드를 지휘했고 오십대에 생을 마감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음악
씨네21 추천도서 - <찰스 밍거스-소리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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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지음 / 권영주 옮김 / 비채 펴냄
한 가지 장르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분위기의 소설’을 잘 쓰는 온다 리쿠의 소설집. <육교 시네마>에는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SF, 청춘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드는 18편의 단편이 실렸다. 첫 번째 단편은 호퍼의 그림 <철길 옆 집>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그림은 히치콕의 <사이코>에 등장하는 집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는 “명확히 말해서 이 집에는 출입구가 없다. 완전히 폐쇄된 집. 들어갈 수 없는 집. 나올 수 없는 집이다”라고 그림에 대해 설명한 뒤, 소설 속 화자가 어느 날 그림 속 집을 연상시키는 집과 그 안의 세 사람을 발견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큰 집의 한방에만 늘 모여 있는 닮지 않은 세 사람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단편 <풍경> 역시 그림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주간지의 표지로 쓰인 그림을 보는데, 그 그림에서 어딘지 모를 광기 어린 분위기를 읽어낸 것이
씨네21 추천도서 - <육교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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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 지음 /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얼마 전 아내를 떠나보낸 노르웨이의 어부 요한네스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침대에서 애써 몸을 일으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끓이고 빵에 치즈를 곁들여 먹은 다음 바다와 바람이 기다리는 집 밖으로 나선다. 산책할까 아니면 배를 타고 나가 낚시할까 생각하며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한 노인이 느리게 움직이는 고요한 풍경이, 마침표 없이 이어지며 밀어붙이는 문장으로 어딘지 불안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어제와 같고 그저께와도 같은데 요한네스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요한네스 본인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친구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기도 하고, 게를 잡아 시내로 가서 젊은 시절의 데이트를 반복하기도 한다. 온 세상 사물이 너무나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이 기이한 감각과 무언가에 홀린 듯한 경험이 어떤 저녁으로 향하는지는, 사실 소설의 시작이 알려주었다. 모든 아기가 그렇듯 요한
씨네21 추천도서 - <아침 그리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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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지음 / 창비 펴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중 3권에 달하는 교토편의 핵심 내용을 추려 <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한권으로 출간되었다. ‘여행자를 위한’이라는 말에 걸맞게 주요 관광지 중심으로 목차가 구성되었는데, 유명 여행지를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유홍준의 설명이 든든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일본에서도, 교토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토 여행은 유명한 절과 정원을 빼놓을 수 없는데 정원이 왜 유명한지를 짚고 넘어가는 대목이 3장에서 나온다. 한국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절 중에서 정원으로 유명한 천룡사(덴류지), 용안사(료안지), 계리궁(가쓰라 이궁)을 비롯한 장소가 소개된다. 아라시야마의 명소 천룡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로 일본 특별명승 및 사적 제1호로 지정된 정원이 있는 곳이다. 몽창 국사는 이름난 정원 설계가(작정가, 作庭家)인데, 그는 천룡사 준공에서도 큰 역할을 했으며 창건 후 줄곧 주지로
씨네21 추천도서 - <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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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 유홍준 지음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지음
<육교 시네마> - 온다 리쿠 지음
<찰스 밍거스-소리와 분노> - 진 샌토로 지음
<쿄코와 쿄지> - 한정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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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지음 / 창비 펴냄
최은미는 장편소설 <마주>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쓴다. “언제부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새 인물을 구상할 때면 그의 2020년을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2020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무슨 일이라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국경이 봉쇄되고, 집합 시설이 문을 닫아야 했으며, 사람이 사람에게서 거리를 둬야 한다고 캠페인을 하던 팬데믹이 바로 2020년이잖아. 일어나면 오늘의 확진자 수부터 확인했던, 바이러스가 일상 그 자체였던 시기를 왜 이토록 빨리 잊었나. 서로를 배제하고, 감염자의 동선을 뉴스로 세세히 보고받으며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민폐인을 낙인 찍기 바빴던, 공동체가 나서서 타인을 지옥처럼 여기라 강요했던 때. <마주>의 나리는 이런 사람이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만조 아줌마’의 돌봄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 30대 기혼 여성, 은채의 엄마이고, 남편 오종수의 아내, 캔들공방을 운영하
씨네21 추천도서 -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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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 지음 / 부선희 옮김 / 비채 펴냄
할런 코벤은 충격적이라 인상적인 오프닝을 쓰는 데 재능이 있다. <네가 사라진 날>의 도입부. 뉴욕 센트럴파크의 스트로베리 필즈의 벤치에 앉은 사이먼은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자신의 세 아이들인 페이지, 샘, 애니아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던 길이다. 갖은 장난을 치던, 혹은 온갖 상상을 펼쳐내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지켜보던 아내.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의 사이먼은 멀지 않은 곳에서 연주하는 비틀스의 곡을 듣고 있다. 길거리 음악가라기보다는 부랑자나 떠돌이로 보이는 사람이 원곡을 무시하고 부르는 노래. 깡마른 체격에 누더기를 걸친, 더럽고 망가지고 오갈 데 없는 길 잃은 여자가. 이 장면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사이먼의 딸 페이지기도 했다.”
할런 코벤은 <네가 사라진 날>의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죽는 이야기보다
씨네21 추천도서 - <네가 사라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