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낌 지음 우디 옮김 엘릭시르 펴냄
홍콩에는 ‘함까찬’(冚家剷)이라는 욕이 있다. ‘이 집구석 다 뒈져버려라’ 정도의 뜻인데, 어떤 사람이 “쓰우씨는 다 죽어야 한다”는 의뢰를 하는 것이 소설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의 시작이다. 홍콩 란타우섬 사이위의 한 마을을 본관으로 하는 쓰우씨는 생존한 사람이 다 합쳐 오십명이 좀 넘는 수준. 결혼해서 나간 여자의 후손까지 전부 손을 봐달라는 요구다. 부유한 쓰우씨는 가족구성원에게 막대한 생활자금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3년에 한번 있는 가족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궁금한 건 이렇다. 정말 쓰우씨는 다 죽을까?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죽일까?(가족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죽이지?) 현대사회에서 이렇게까지 온 집안을 멸살하려는 범인은 누구일까? 대체 왜? 예순명이 넘는 쓰우씨가 모두 모이는 가족 연회 날이 유력한 디데이인 가운데, 그날이 온다.
<쓰우 씨는다 죽어야 한다>는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이다. 홍콩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소설가 탐낌의 소설로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데, 책머리에 ‘한국 독자들께 전하는 말’에 정성스레 한국 문화와의 인연을 적은 게 눈에 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필두로 <올드보이> <박하사탕> <써니> 같은 영화들, 그리고 <빛의 제국> <설계자들> <밤의 여행자들> 같은 소설들을 접하며 정치나 사회적 비판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한국 이야기들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 후기’에 따르면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과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동아시아 유교 사회의 가족(성차별적인) 문화를 다루는 범죄소설을 쓰고자 한 결과가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고. 소설을 읽으면 이 부유한 가문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드는데, 그 의구심에 범죄라는 도구를 통해 답하는 셈이다. 홍콩이 아닌 곳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논리에 의한 범죄라는 면에서 더할 나위 없는 사회파 미스터리다. 소설 도입부의 ‘정권에 대하여’라는 글을 정독하고 독서를 시작하시길. 왜 이런 글이 실려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읽어간다면 사건의 진상에 조금은 수월하게 다가갈지도 모른다(높은 확률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사이위’ 같은 지명이나 ‘쓰우’라는 성은 만들어낸 것이지만 ‘정권’이라는 기이한 제도만큼은 실제 존재한다.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 진범의 정체와 동기 부분은 탐낌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즈이는 진즉에 경고했었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은 이미 더 나아질 수 없을 만큼 똑똑한데도 결국 영웅의 말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퇴장하지 않더냐고. /4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