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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지음 / 민경욱 옮김 / 비채 펴냄
미쓰다 신조의 책은 밤에 읽으면 안된다. 공포를 자아내는 솜씨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검은 얼굴의 여우>에 이은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하얀 마물의 탑>은 호러 미스터리 소설로, 태평양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가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탄광에서 수수께끼 사건을 경험했다면, 이번에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일의 무대는 바로 등대다.
공포물의 클리셰 중에 ‘사망 플래그’라고 불리는 (일종의) 복선이 있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라는 편지를 받고도 하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주인공의 상황이 딱 그렇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되기로 하고, 새로 근무하게 된 고가사키등대로 향한다. 그런데 등대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 등대까지 길을 안내해줄 사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혼자 길을 떠나게
씨네21 추천도서 - <하얀 마물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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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경, 박찬욱 지음 / 전영욱 사진 / 을유문화사 펴냄
영화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화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를 읽는 일도 그 즐거움을 배가한다. 시나리오집은 완성된 이야기가 최초로 어떤 모습으로 완결되었는지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헤어질 결심 포토북>은 <헤어질 결심>의 스틸 사진집이다. 스틸 사진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말하는데, (앵글부터 프레임 크기까지) 영화 장면을 그대로 반영한 장면일 때가 많다. <헤어질 결심 포토북>은 영화 속 순간들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한 사진들을 실은 책이다. 김현호 보스토크프레스 대표가 편집을 함께 맡아 본문을 꾸렸으며, 국내 최고의 보정 기술을 보유해 한국인 최초로 소니 글로벌 이미징 앰버서더로 선정된 김주원의 후보정 작업으로 마무리되었다. 1만6천여컷의 사진을 300여컷으로 압축해 담으면서 원작의 흐름을 새롭게 재현했
씨네21 추천도서 - <헤어질 결심 포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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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포토북_정서경, 박찬욱 지음
하얀 마물의 탑_미쓰다 신조 지음
이야기를 설계하라_김희재 지음
SF 보다 Vol.1 얼음_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지음
맡겨진 소녀_클레어 키건 지음
두고 온 여름_성해나 지음
형사 박미옥_박미옥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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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는 없어>는 2019년 이후 수상작을 내지 않았던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8회 수상작이다. 소설은 등반가였으나 왼쪽 다리를 잃고 박물관 관장으로 살고 있는 화자가 자신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며 다만, 주인공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삶을 재구성할 뿐이라고 못 박으며 시작한다. 측량의 천재, 측정에 대한 집요함으로 측정 도구를 개발한 발명가, 과학자이자 백만장자. 그녀에 대한 수식은 다양하다. 대개의 천재들이 그렇듯 정확하게 측량하고 싶다, 는 목적에만 충실했던 그녀의 일생은 존엄함마저 느껴진다.
그녀는 어릴 때 최소 단위가 가진 허점을 깨닫고 정확한 측량을 배우고 싶었으나, 측량과 계산이 비슷하다고 여긴 담임교사의 착각으로 회계학과에 입학한다. 이후 찌그러지지 않는 햄버거 번을 개발하고 버거킹의 고문이 된 후 버거용 납작양상추, 납작토마토 등을 개발하기도 한다. 천재의 발자취마다 매력적인 위트가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진면목이다. 미얀마에서 단위 도입을
씨네21 추천도서 - <1미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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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사건을 흔히 ‘소설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드라마틱하다’고 할까. 사전을 찾아보니 ‘사건이나 상황이 매우 극적인 데가 있다’를 ‘드라마틱하다’고 설명한다. 일본에서 시청률 50%을 기록한 드라마의 원작 <한자와 나오키>의 작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 <육왕>에는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이 걸맞는다. 작가의 전작이 영상화되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온 데에는 그의 소설 속 서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전개 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업계의 편견과 기득권의 방해를 뚫고 나가 정석대로 노력해 정의(혹은 성공)를 획득하는 서사다. 물론 이는 그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일본 전통 버선 ‘다비’를 만드는 작은 제조회사 고하제야는 기업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시대의 변화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4대째 대표인 미야자와는 자기 세대까지는 전통 다비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다
씨네21 추천도서 - <육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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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죽음은 식욕과 미의 감정을 낳는다. 언어를 넘어서는 사색이 있다. 자연이 침묵 가운데 무르익음의 절정에, 부패의 절정에 내주는 사색이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때아닌 것과 때맞는 것을 나눈다. 노인의 얼굴에, 너무 익어서 터져버린 무화과에, 빵의 균열에, 멧돼지며 사자 같은 맹수의 크게 벌린 아가리에 나타나는 죽음은 때맞다. 유혹적이다. 로고스 없는 이 아름다움은 계절의 한 속성이다.”
‘사색적 수사학’이라는 원제를 가진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은 파스칼 키냐르의 문학론이다. 음악가와 언어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5개 국어를 습득하고 다양한 악기를 익히면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두 차례 심한 자폐증을 앓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작가는 1976년부터 갈리마르 출판사와 연을 맺어 원고 심사위원, 편집 교정자, 출판 실무 책임자 등으로 일했다. 1991년에 발표해 후일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세상의 모든 아
씨네21 추천도서 -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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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의 단편집 <아오이가든>이 18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아오이가든>을 읽은 독자라면 그 강렬한 이미지를 쉽게 잊지 못했을 것이다. 단편집 속 이야기들은 문명이 붕괴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실종되고, 어디선가 시체가 발견된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사회라면 어떻게든 사라진 사람을 찾거나 범인을 찾아낼 텐데, <아오이가든>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뭔가 찾으려고 해도 쓰레기만 계속 나올 뿐이고, 아이들은 단속반을 피해 더러운 맨홀에서 살아가며, 역병이 돌아 사회 시스템 자체가 망가지기도 한다. 집은 부서져가고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며 이불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아이들은 괴물을 꿈꾸며 다친 상처를 긁어댄다. 이처럼 퇴행한 세계 속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 <아오이가든>에서처럼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마술 피리>에서처럼 실험용 쥐가 되는가 하면
씨네21 추천도서 - <아오이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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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란 세상의 이치나 도리를 뜻한다. 으레 지켜져야 할 도리 없는 세계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과거나 현재나 어디나 있다. ‘나’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한다. 가정 밖 세계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뒷골목과 모텔촌을 전전하며 무리 지어 다닌다. 단속을 피해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고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를 채우는 한편, 과감히 소매치기하거나 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번다. 때로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시도하는 어른을 골라 협박하는가 하면, 달리는 자동차에 일부러 접근해서 자해 공갈로 돈을 버는 위험한 짓도 한다. 언젠가 BMW를 사서 몰고 다니는 멋진 어른이 되리라 꿈을 꾸지만, 대체로 계산 없이 충동적으로 현재만을 위해 거칠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미래가 없고, 따라서 성장도 불가능한 세계에서 계속 만족스럽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노숙자가 구해준 방에서 가출 청소년들과 살던 나는 우연히 경우를 만난다. 경우가 내
씨네21 추천도서 - <경우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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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_백온유 지음
아오이가든_편혜영 지음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_파스칼 키냐르 지음
육왕_이케이도 준 지음
1미터는 없어_양지예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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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보듬어주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공동체로 갈수록 부모는 ‘고졸’ , ‘자영업’, ‘특이사항: 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되며 점점 멀어졌다는 고백.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감독이자 작가 이길보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공간도 있다. 농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뎃대학교는 미국 수어를 공용어로 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앞에서 음성통화를 하면 정보 소외가 일어나기 때문에 음성전화가 오면 숨어서 받거나 영상통화 혹은 문자메시지로 바꾸어 소통해야 한다. 이렇게 농문화가 존중받는 공간에서는 같은 농인이라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고 때로는 갈등과 어둠이 존재한다고 머뭇거림 없이 드러낼 수 있다.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상영하고 글을 쓰면서, 코다를 비롯하여 단선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여러 존재를 마주한다. 다큐멘터리영화 <반짝이는
씨네21 추천도서 -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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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소박하다. 20년 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 중화상창이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실종되었다. 자전거는 우리 가족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때 여섯 아이를 다 먹여살릴 수 없어 다섯째 누나를 다른 데로 보내려던 아버지를 붙잡으려고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기차역으로 내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나를 살리려고 아버지는 자전거에 나와 어머니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도합 130킬로그램을 실은 자전거가 무사히 움직인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그랬던 아버지가 사라졌고, 나는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행복표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다. 고물장수 친구 덕분에 마침내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 모델 넘버가 찍혀 있는 자전거를 찾아내지만, 정작 자전거 주인은 그 자전거를 팔 생각이 없다.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된 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는 자전거 바퀴와 딱 붙어 시간을 달려온 아시아의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책을 펼치면 바닷가 포격을
씨네21 추천도서 - <도둑맞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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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부모를 제3자처럼 바라보기 시작한 때 같다. 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의 성격을 남에게 묘사할 때야 비로소 분리가 된 것 같았다. 특히나 어머니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 인고로 해석됐다.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면 희생하는 어머니의 골짜기는 더 깊어진다. <아버지가 되어주오>의 딸은 아버지의 과거를 조목조목 따져 물으며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비난한다. 아버지는 가해자였고 한쪽(어머니와 자식들)은 피해자 집단이라고 생각해서다. 행적을 보면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엄마를 대변해 따진 것을 기특해할 줄 알았으나 엄마는 딸에게 되묻는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엄마는 덧붙인다. “네 말대로라면 내 인생 참… 슬프지 않겠니?”
스물두살에 아이를 낳고, 아홉살 많은 남자에게 발목 잡혀 평생을 참고 산 어머니, 딸이 써내려간 엄마의 인생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생을 어
씨네21 추천도서 - <반에 반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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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 결여된 인간들이다. 특수한 재능이 있되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우주 원리와 칼 세이건에 대해서는 줄줄 외면서도 자기 감정에 대해서는 한줄도 설명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 어려운 물리 현상이나 공식은 빠삭하게 알지만 가장 친밀한 관계에 대해선 이해하지 못해서 줄곧 “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되뇌기도 한다. 전부 일인칭 시점 소설들이기에 독자는 화자가 설명하고 바라보는 대로 소설 속 세상을 따라가고 이내 주인공이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읽는 사람은 인물의 결핍을 간파하지만 주인공만은 끝까지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하고 “GAME OVER” 문구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일인칭 소설이며 단문인 소설의 특성상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음에도 독자는 화자보다 전지적 위치에 존재한다. 이는 작가가 매우 유기적으로 논리적 구조를 쌓아올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잔혹한 현실 세계에서 승자가 되기에는 모자란 인물들. 소설 속에서 그들
씨네21 추천도서 - <외계 문학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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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에 특히 예민한 석원은 꼭대기층에 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래 14층에 살게 된다. 어느 날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온 후 밤마다 콩콩대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까지는 아무 소리도 나질 않다가 잠을 청하려 눕기만 하면 귀신같이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 참다못해 항의하러 위층에 올라가지만 그 집 문에는 이러한 경고문이 쓰여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절대.’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생길지, 이후로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 흥미진진하지만. ‘어길 시 법적 조치’ 운운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문 앞에서 석원은 돌아선다. 관리소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희한하다. “어쩝니까.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연락하면 큰일 난다고 하는데요.”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위층과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 같지만, 예민하고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 덕분에 더욱 황당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순간을 믿
씨네21 추천도서 - <순간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