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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시인이 이전에 출간했던 에세이집은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들과 노동자 친구들을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면히 노동하는 친구의 거친 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을 믿지 않는 두 친구와 늦은 밤 소주를 기울이며 하염없이 슬퍼지던 기분, 아무도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세월호에 대해 쓸 때, 김현의 성실하고 맑은 문장들이 신기하게도 켄 로치 영화들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김현의 신작 에세이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에도 선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충실한 하루에 대한 낙관은 여전한데 그에 덧붙여 시인은 더 진솔하게 현실을 토로한다. 김현은 참으로 여전하면서도, 더 성숙한 어른이자 동료가 된 것 같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는 직장인,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생활인, 시인이며 누군가의 애인이고 친구이기도 한 그의 이번 에세이는 유머러스하게 인간 김현을 내보인다. 책에 인스타 아이디를 쓰면서(여기 쓰면 얼마나 느는지 보겠다고 쓰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 팔도의
씨네21 추천도서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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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보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자의 글쓰기(기획, 취재 등의 과정을 거쳐 목적이 확실한 기사)가 익숙했던 내가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써야 할 때마다 든 생각이 ‘이런 얘기 해도 되나?’였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얘기를 누가 읽는다고, 이런 얘기가 남한테도 의미가 있나, 라는 장벽이 가로막았다. 대중문화 기자로 일했던 최지은 작가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을 쓰기보다는 미디어라는 창을 한번 거친 글쓰기가 더 익숙한 방식이었을 거(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추측해본다. 거기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페미니즘이 대화의 소재가 될 때마다 여성들이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닌지, 상대가 나를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 어쩌지? 불평등한 사회에 균열을 가져오는 것은 그런 오해를 감수하고 ‘이런 얘기’를 부득불 꺼내는 여자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내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
씨네21 추천도서 <이런 얘기 하지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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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당신의 독서 리스트를 풍부하게 만들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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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는 왜 현대에도 고전이라 불리는가? 무엇이 특별한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깃들던 1938년에 쓰기 시작해 40년에 처음 발표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일리아스>를 읽는 독법을 제시하고, 세계의 폭력에 대해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존엄을 논한 글이다. 이 글은 이번에 처음 번역·출간되었는데,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와 함께 한권의 책으로 묶였으며, 시몬 베유의 가장 잘 알려진 저작 <중력과 은총>과 나란히 선을 보였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라는 제목과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 진짜 주제, 중심은 힘입니다”라는 첫 문장처럼, 이 글은 <일리아스>가 힘에 대한 서사시임을 밝히고 그 주장을 증명하는 식으로 쓰였다. 호메로스가, 또는 고대 그리스인이 왜 힘에 대해 썼는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가 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선과 악으
서사시적 천재성,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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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를 쓴 아레 칼뵈는 노르웨이의 코미디언이다. 도시에 살던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친구들이 모두 산에 빠져 있어 자신과 소원해졌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 자신도 산으로 향한다. 이는 비단 중년에만 해당되는 일도, 노르웨이만의 현상도 아니다.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별안간 자연에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자신이 예외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가 친구들이 산에 빠진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은 일단 책에서부터다. 노르웨이의 모험가 엘링 카게를 인용하면 이렇다. “만약 등산이나 세일링을 통해, 아니 심지어는 걸어서도 세상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나는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곤 한다.” 세상과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산에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코미디언이므로, 모범답안 말고 픽션에서 자연으로 도피한 이들의 결말도 추적해보었다. “이들 중 10퍼센트는 무엇을
자연은 어려워,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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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신선한 공기와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없어도 절대 살아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는 것.” 요 네스뵈의 <킹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족의 사랑에 대한 범죄소설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가족의 범주를 정하고, 내부를 지키기 위해 외부를 배척하거나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을까. 요 네스뵈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해간다. 요 네스뵈의 대표작인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연장에서가 아니라 ‘스탠드 얼론’, 즉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소설 <킹덤>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로위’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로위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친구, 애인, 이웃, 지역, 국가 모두를 앞세우는 가치가 바로 가족이라고 교육받는다. 로위는 동생 칼을 잘 돌보려고 노력하는데, <킹덤>은 초반부터 로위의 세계가 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씨네21 추천도서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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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의 독서 에세이. 어린 시절에 읽은 소설들에서 시작해,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 작가들을 지나, 현대인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들에 도달하는 <시절의 독서-김영란의 명작 읽기>는 개인의 성장사이자 생애사가 책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의 삶이 중심에 있고 책이 거드는 방식이 아니라, 독서 목록을 재구성하면서 개인사가 살짝 언급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이 비소설을 포함해 다수 남아 있게 된 이유에는 남편 레너드 울프가 출판업자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문학사를 위해서는 너무나 행운이지만 버지니아는 마치 몸에서 뽑아낸 거미줄로 집을 짓는 거미처럼 작품 속에 자신의 인생을 온전하게 녹여넣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으므로 글 밖에서는 온전한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버지니아 울프의 구심점이 된 것이 바로 블룸즈버리그룹이었는데, 저자 자신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씨네21 추천도서 <시절의 독서-김영란의 명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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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의 개> <세브린느>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등을 연출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자서전. 그는 1900년 2월22일 태어나 1983년 7월29일 세상을 떠났는데,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82년이니, 영화의 초기 수십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까지의 이야기는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후 초현실주의를 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해나가고 영화를 만든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해나간다. 1900년대 초반 성장기에 대한 회고에서는 이후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가 보여주는 어떤 정서(특히 욕망에 대한)가 어떻게 그 안에서 뿌리내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기술된다. 당연하게도, 책의 중반부는 20세기 유럽의 예술사(미술과 영화)를 대표하는 인명사전 수준이 되는데, 르네 마그리트와 그의 부인과 식사를 하고, 앙드레 브르통은 트로츠키를 만난 경험을 들려주고, 만 레이, 루이
씨네21 추천도서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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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가 쓴 세권의 소설에는 모두 무언가를 잃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가 사는 세계에서는 매일 무언가 하나씩 소멸, 삭제된다. 어느 날은 상자를 묶는 리본이, 어느 날은 새가, 다음에는 장미가, 어느 날에는 향수가 사라진다. 물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것을 칭하던 단어까지 삭제된다. 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비밀경찰에게 강제로 연행되어 어디론가 끌려간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 <은밀한 결정>의 내용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사고 후 기억하는 기능을 잃어버리듯 <은밀한 결정>의 사람들도 기억을 강제로 빼앗긴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홀로 추억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은둔하며 사물을 기억하는 ‘나’의 엄마는 향수 냄새를 기억하고, 단어를 잃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엄마는 사라진 것들을 왜 그
씨네21 추천도서 <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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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거 <첫 맥주 한 모금>이랑 비슷하네?”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18페이지에 두둥! 하고 그 글이 나와버렸다. 1999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후 절판되어 나 역시 몇년 전 도서관에서 겨우 빌려 읽었던 바로 그 책! 중고 서적으로 구매할까 했지만 원래 책 가격의 열배나 비싸게 팔고 있기에 포기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쓰다 보니 무슨 홈쇼핑 광고 같은데, <첫 맥주 한 모금>은 제목만으로도 궁금해서 헌책방을 뒤지게 만들던 책이었다.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는데, 그걸 아는 프랑스인이라면 그 에세이는 더 볼 필요도 없이 재밌지 않겠는가.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류의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머, 이건 꼭 사야!’ 하는 책인 것이다. 재출간되면서 책 제목은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으로 바뀌었다. 맥주에서 크루아상으로, 주류에서 베이커리로 제목을 바꾸고 표지에는 가을 스웨터와 강아지풀 그림이, 내지에도 소재에 걸맞은 귀여운 삽화
씨네21 추천도서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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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매서워진 날씨. 귤을 까먹으며 하기 좋은 일 중 하나인 책읽기에 빠져보자. 소설부터 소설에 대한 소설까지, 얇은 책부터 두꺼운 책까지, 고르게 컬렉션했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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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에브너는 정치학자이자 반(反)극단주의 활동가다. 극단주의를 연구하는 그는 서로 다른 다섯개의 정체성을 택해 ‘최신 기술에 능한’ 10여개의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해보았다. 그 결과가, 온라인상의 혐오 콘텐츠가 어떻게 오프라인의 정치를 좌우하거나 테러 모의로 이어지는지를 다룬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이다.
이 책에 따르면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급진적 변화의 원동력인 ‘젊고 분노해 있고 기술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반(反)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책머리에는 관련 용어 설명이 실렸는데 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인 ‘극우’는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 반민족주의, 강력한 국가 옹호라는 다섯 가지 특징 중 최소 세개를 드러내는 집단과 개인”을 뜻한다.
<한낮의 어둠…>은 미국과 유럽에서 극우가 주도하는 혐오의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온오프라인 잠입 르포의 형태를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게임화된 테러와 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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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려면 어떤 형태의 절대적 진실이나 거짓에 신경을 써야 한다. 거짓은 진실의 반대항에 존재하니까. 그런데 “점점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크게 신경 쓰지않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장악해가고 있다.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담론이다.” 가짜뉴스의 시대를 다룬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개소리’를 이렇게 설명한다.그냥 자기주장을 말할 뿐 진실에 신경 쓰지 않는다. 개소리꾼은 거짓말쟁이와 달리 진실의 권위를 거부하지도, 이에 맞서지도 않는다.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이 개소리 제1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의 원제는 탈진실을 뜻하는 ‘Post-Truth’다. 제임스 볼은 이 책을 2017년에 썼다. 이 시기는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가짜뉴스의 최고 수혜자가 된 직후다. 미국에서는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부족주의>를 비롯해 이 상황에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무관심이 낳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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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한수리는 어느 날 저승사자, 아니 선령의 방문을 받는다. 살아 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존재다. 죽은 영혼을 데려오는 저승사자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 그래서일까, 옷차림도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후드 티. 수리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는데, 자신의 몸은 멀쩡한 듯 하루 일과를 계속하고 있다. 수리는 자신의 몸이 등교 준비를 하는 뒷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선령에게 묻는다. “선령씨, 그런데 그럼 나, 아니 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긴, 그냥 영혼 없이 사는 거지.”
흔히 하는 농반진반의 말 중에 ‘영혼 없이 산다’는 말이 있다. <나나>의 정의에 따르면 “상대의 무심함을 장난스레 말하거나, 무언가를 힘들게 해냈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대충 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유령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수리는 다시 몸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흘
씨네21 추천도서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