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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를 쓴 아레 칼뵈는 노르웨이의 코미디언이다. 도시에 살던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친구들이 모두 산에 빠져 있어 자신과 소원해졌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 자신도 산으로 향한다. 이는 비단 중년에만 해당되는 일도, 노르웨이만의 현상도 아니다.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별안간 자연에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자신이 예외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가 친구들이 산에 빠진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은 일단 책에서부터다. 노르웨이의 모험가 엘링 카게를 인용하면 이렇다. “만약 등산이나 세일링을 통해, 아니 심지어는 걸어서도 세상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나는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곤 한다.” 세상과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산에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레 칼뵈는 코미디언이므로, 모범답안 말고 픽션에서 자연으로 도피한 이들의 결말도 추적해보었다. “이들 중 10퍼센트는 무엇을
자연은 어려워,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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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신선한 공기와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없어도 절대 살아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는 것.” 요 네스뵈의 <킹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족의 사랑에 대한 범죄소설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가족의 범주를 정하고, 내부를 지키기 위해 외부를 배척하거나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을까. 요 네스뵈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해간다. 요 네스뵈의 대표작인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연장에서가 아니라 ‘스탠드 얼론’, 즉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소설 <킹덤>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로위’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준다.
로위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친구, 애인, 이웃, 지역, 국가 모두를 앞세우는 가치가 바로 가족이라고 교육받는다. 로위는 동생 칼을 잘 돌보려고 노력하는데, <킹덤>은 초반부터 로위의 세계가 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씨네21 추천도서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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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의 독서 에세이. 어린 시절에 읽은 소설들에서 시작해,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 작가들을 지나, 현대인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들에 도달하는 <시절의 독서-김영란의 명작 읽기>는 개인의 성장사이자 생애사가 책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의 삶이 중심에 있고 책이 거드는 방식이 아니라, 독서 목록을 재구성하면서 개인사가 살짝 언급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이 비소설을 포함해 다수 남아 있게 된 이유에는 남편 레너드 울프가 출판업자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문학사를 위해서는 너무나 행운이지만 버지니아는 마치 몸에서 뽑아낸 거미줄로 집을 짓는 거미처럼 작품 속에 자신의 인생을 온전하게 녹여넣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으므로 글 밖에서는 온전한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버지니아 울프의 구심점이 된 것이 바로 블룸즈버리그룹이었는데, 저자 자신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씨네21 추천도서 <시절의 독서-김영란의 명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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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의 개> <세브린느>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등을 연출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자서전. 그는 1900년 2월22일 태어나 1983년 7월29일 세상을 떠났는데,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82년이니, 영화의 초기 수십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까지의 이야기는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후 초현실주의를 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해나가고 영화를 만든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해나간다. 1900년대 초반 성장기에 대한 회고에서는 이후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가 보여주는 어떤 정서(특히 욕망에 대한)가 어떻게 그 안에서 뿌리내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기술된다. 당연하게도, 책의 중반부는 20세기 유럽의 예술사(미술과 영화)를 대표하는 인명사전 수준이 되는데, 르네 마그리트와 그의 부인과 식사를 하고, 앙드레 브르통은 트로츠키를 만난 경험을 들려주고, 만 레이, 루이
씨네21 추천도서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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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가 쓴 세권의 소설에는 모두 무언가를 잃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가 사는 세계에서는 매일 무언가 하나씩 소멸, 삭제된다. 어느 날은 상자를 묶는 리본이, 어느 날은 새가, 다음에는 장미가, 어느 날에는 향수가 사라진다. 물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것을 칭하던 단어까지 삭제된다. 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비밀경찰에게 강제로 연행되어 어디론가 끌려간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 <은밀한 결정>의 내용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사고 후 기억하는 기능을 잃어버리듯 <은밀한 결정>의 사람들도 기억을 강제로 빼앗긴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홀로 추억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은둔하며 사물을 기억하는 ‘나’의 엄마는 향수 냄새를 기억하고, 단어를 잃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엄마는 사라진 것들을 왜 그
씨네21 추천도서 <은밀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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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거 <첫 맥주 한 모금>이랑 비슷하네?”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18페이지에 두둥! 하고 그 글이 나와버렸다. 1999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후 절판되어 나 역시 몇년 전 도서관에서 겨우 빌려 읽었던 바로 그 책! 중고 서적으로 구매할까 했지만 원래 책 가격의 열배나 비싸게 팔고 있기에 포기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쓰다 보니 무슨 홈쇼핑 광고 같은데, <첫 맥주 한 모금>은 제목만으로도 궁금해서 헌책방을 뒤지게 만들던 책이었다.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는데, 그걸 아는 프랑스인이라면 그 에세이는 더 볼 필요도 없이 재밌지 않겠는가.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류의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머, 이건 꼭 사야!’ 하는 책인 것이다. 재출간되면서 책 제목은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으로 바뀌었다. 맥주에서 크루아상으로, 주류에서 베이커리로 제목을 바꾸고 표지에는 가을 스웨터와 강아지풀 그림이, 내지에도 소재에 걸맞은 귀여운 삽화
씨네21 추천도서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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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매서워진 날씨. 귤을 까먹으며 하기 좋은 일 중 하나인 책읽기에 빠져보자. 소설부터 소설에 대한 소설까지, 얇은 책부터 두꺼운 책까지, 고르게 컬렉션했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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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에브너는 정치학자이자 반(反)극단주의 활동가다. 극단주의를 연구하는 그는 서로 다른 다섯개의 정체성을 택해 ‘최신 기술에 능한’ 10여개의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해보았다. 그 결과가, 온라인상의 혐오 콘텐츠가 어떻게 오프라인의 정치를 좌우하거나 테러 모의로 이어지는지를 다룬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이다.
이 책에 따르면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급진적 변화의 원동력인 ‘젊고 분노해 있고 기술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반(反)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책머리에는 관련 용어 설명이 실렸는데 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인 ‘극우’는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외국인 혐오, 반민족주의, 강력한 국가 옹호라는 다섯 가지 특징 중 최소 세개를 드러내는 집단과 개인”을 뜻한다.
<한낮의 어둠…>은 미국과 유럽에서 극우가 주도하는 혐오의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온오프라인 잠입 르포의 형태를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게임화된 테러와 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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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려면 어떤 형태의 절대적 진실이나 거짓에 신경을 써야 한다. 거짓은 진실의 반대항에 존재하니까. 그런데 “점점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크게 신경 쓰지않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장악해가고 있다.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담론이다.” 가짜뉴스의 시대를 다룬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개소리’를 이렇게 설명한다.그냥 자기주장을 말할 뿐 진실에 신경 쓰지 않는다. 개소리꾼은 거짓말쟁이와 달리 진실의 권위를 거부하지도, 이에 맞서지도 않는다.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이 개소리 제1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의 원제는 탈진실을 뜻하는 ‘Post-Truth’다. 제임스 볼은 이 책을 2017년에 썼다. 이 시기는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가짜뉴스의 최고 수혜자가 된 직후다. 미국에서는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부족주의>를 비롯해 이 상황에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무관심이 낳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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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한수리는 어느 날 저승사자, 아니 선령의 방문을 받는다. 살아 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존재다. 죽은 영혼을 데려오는 저승사자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 그래서일까, 옷차림도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후드 티. 수리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는데, 자신의 몸은 멀쩡한 듯 하루 일과를 계속하고 있다. 수리는 자신의 몸이 등교 준비를 하는 뒷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선령에게 묻는다. “선령씨, 그런데 그럼 나, 아니 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긴, 그냥 영혼 없이 사는 거지.”
흔히 하는 농반진반의 말 중에 ‘영혼 없이 산다’는 말이 있다. <나나>의 정의에 따르면 “상대의 무심함을 장난스레 말하거나, 무언가를 힘들게 해냈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대충 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유령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수리는 다시 몸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흘
씨네21 추천도서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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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는 주인공이 얼마나 끔찍한 행동을 하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막강하고 비범한 작가다.”(<선데이 타임스>) 솔직히 <선데이 타임스>의 비평에 완전히 동의하긴 어려울 것 같다. 페이지를 뒤로 넘길수록 <신의 아이>의 주인공이 ‘내가 얼마나 더 악마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라고 작정이라도 한듯 더해가는 악행에 진저리가 쳐졌고, 그 감정을 공감이라 부르긴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약탈, 강간, 방화, 시체 간음에 이르기까지 윤리적으로 인간이 행해선 안된다고 사회에서 약속된 모든 행위를 다 해내는(?) 주인공에게 가차 없는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악마 같은 인물의 폭력성을 거침없이 묘사하고, 파괴된 그의 내면에 대해 그 어떤 당위나 변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인공 레스터가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며 이웃에게 조롱이나 멸시를 받는 내용은 있지만, 그 때문에 그의 범죄가 연민을 얻어야
씨네21 추천도서 <신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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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전남 여수시 웅천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긁어내는 작업을 하던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군이 현장 실습 중 숨졌다. 현장에는 지도교사도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매일같이 노동 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지는 한국에서 김숨의 신작 <제비심장>은 픽션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제비심장>은 김숨이 소설 <철> 이후 13년 만에 조선소를 배경으로 쓴 알레고리 소설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하루살이 여성 노동자, ‘철상자’로 표현되는 조선소 내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을 장편으로 묶었다.
빛도, 바람도, 공기도 통하지 않는 철상자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주 길을 잃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는 하루 노동량을 채울 수 없기에 이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조퇴를 청하면 반장은 “집에 가서 영원히 쉬”라고 일갈한다. 뛰지 않으면 오늘
씨네21 추천도서 <제비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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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대지, 어머니, 여신’을 상징하던 시절에는 남성과 대등한 관계였을까. <제2의 성>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대지, 어머니, 여신은 인간 질서의 바깥에 있는 상징이고 공적 사회적 질서는 남성의 몫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 여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최고의 왕은 남성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태양신 ‘라’인 것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농경사회에서 재생산이 중요해지며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떠맡고 가정에 묶인 후로 여성들은 재산권이나 교육의 기회 등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었다. 여성들이 그나마 두각을 드러낸 분야가 문화예술이나 종교 분야처럼 상징과 맞닿은 우회적 분야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생산 방식의 혁명이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오면서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또 과학의 발전으로 임신과 출산을 통제하게 되면서 여성의 지위도 달라진다. 물론 19세기 내내 이어진 개혁 운동과 투표권 쟁취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제2의 성>은 두 부분으로 구성
씨네21 추천도서 <제2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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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미끄럼틀 삼아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취미가 있다. 서핑처럼 서서 타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더 작은 보디보드 혹은 부기보드에 엎드린 채 몰려오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몸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우일 작가의 <파도수집노트>는 평생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쉰살이 넘어 어쩌다 파도타기에 푹 빠진 이야기다.
파도를 타려면 일단 보드와 슈트, 서핑 장갑, 오리발이 필요하고 보드에 바를 왁스, 보드와 발을 연결하는 리시도 있어야 한다. 각종 장비를 갖추고 바다를 향해 차를 몰고 간 다음, 날씨 앱으로 바닷가 날씨를 확인하고 풍랑주의보가 뜨면 해경에 입수 신고도 해야 한다. 또 바다에 들어가서는 적절한 높이와 세기를 갖춘 괜찮은 파도를 찾는 한편 다른 서퍼들의 위치나 우선 순서도 눈치껏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했다가는 충돌 사고가 나는 등 위험할 수 있다. 저자는 파도타기를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도 운전해보았고, 세탁기 속에서 빙글빙글 돌듯이 거센 파도에 빨려 들
씨네21 추천도서 <파도수집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