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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는 어떻게 탄생할까.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21세기의 한국에서 궁금할 법한 질문이다. 유현준 교수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는 동서양의 ‘문화 유전자’ 교배에서 답을 찾는다.
크게 나누자면 서양의 ‘문화 유전자’는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이다. 반면 동양의 ‘문화 유전자’는 공간과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사실 이런 구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책에서는 한 문화가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새로운 변종이 탄생하고, 그 매력적인 변종이 시대를 이끌게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15세기 이후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서양과 동양 두 세계가 섞이고 그렇게 문화적 교배가 시작되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 우키요에 목판화에 영향을 받은 고흐의 회화도 그렇고 몬드리안의 회화나 콜더의 모빌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건
씨네21 추천도서 <공간이 만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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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성실한 대학생으로 졸업 후 정규직 취직을 노렸지만 실패한다. 파견직으로 입사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지만 3년 사이 그 약속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아이는 퇴사한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이 집세에 생활비로 통장은 비어간다. 가족의 도움은 바랄 수 없다. 마침내 아이는 홈리스가 되어 만화카페에서 생활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즉석만남 카페에 나간다. 건강은 나빠지고 돈은 쉽게 모이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이 순식간에 추락한다.
제목 <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신’은 가난한 여성을 재워주고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은어다. 책을 읽으면 빈곤한 여성이 왜 성매매 산업에 쉽게 빠지는지, 그리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직장은 잡기 어려운데 즉석만남 카페처럼 위험해 보이지 않는 곳은 많다. 기댈 곳 없는 여성이 일단 발을 들이면 가게에선 ‘2차’ 에 나가야 돈을 더 번다고 압력을 넣고, 손님들도 끈질기게 성관계를 요구한다. 그렇게
씨네21 추천도서 <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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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하는 소설가인데,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을 비롯한 미스터리 소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감동적인 드라마로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아들 도키오>는 그중 후자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소설로,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된 <인어가 잠든 집>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즐겨 읽은 이들에게 <아들 도키오>를 권한다.
소설의 도입부, 몸에 튜브들이 연결된 채로 한 청년이 투명한 벽 너머에 잠들어 있다. 생명유지장치 소리만이 울리는 곳에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의 부모다. 미야모토 다쿠미와 레이코. 의사는 향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부모에게 통보했다. 다쿠미와 레이코 부부는 아들을 갖기 전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처음 다쿠미가 레이코에게 청혼할 당시, 레이코는 청혼을 거절하며 자신의 집안
씨네21 추천도서 <아들 도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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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내 방에서 만끽하는 독서의 재미다. 5월을 맞아 읽을 만한 책 목록을 추렸다. <시절과 기분>은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2018년 출간한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김봉곤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2018년 봄부터 2019년 여름까지 발표한 작품 6편을 엮었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작가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까지 10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고를 겪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를 그린 하타노 도모미의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들 도키오>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인어가 잠든 집>을 좋아한 독자라면 반길 만한 감동적인 이야기다. 할리우드가 형성되기 직전인 1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수많은 영화를 위해 땀을 흘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사진들과 함께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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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열아홉이었던 그와 결혼한 해리엇은 성공한 상인의 딸이었으며, 그의 동생의 친구였다. 그의 집안 역시 몹시 부유했으며 그는 여동생 넷이 있는 외아들로 자라났다. 심지어 똑똑해서 그는 12살이던 해에 이튼에 진학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의 부모에게 그는 “창조주 같은 존재”였다. 여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학교에서 의도적인 도발을 감행해 예상대로 퇴학당하자 아버지에게 매년 상당액의 용돈을 받는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즈음 그는 해리엇과 결혼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편으로 넘어오지 않자, 여동생의 남편감이 어머니와 불륜관계라는 아무 근거도 없는 편지를 어머니에게 쓰기도 했다. 가족들은 그의 난폭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속한 집단의 남자들은 “여성들을 공유하는 생활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여동생들은 그런 생활을 꾸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후보였다.” 그의 가족은 이제 딸들을 맏아들로부터 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지식인의 두 얼굴>, 지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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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룬다. 미국체조협회 여자 국가대표팀의 전담 의사였던 래리 나사르가 치료를 명목으
로 오랫동안 어린 10대 체조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던 사건은 왜 그렇게까지 오래 감춰질 수 있었는지, 왜 주변 어른들(특히 피해자의 코치와 보호자)은 알지 못했는지에 대해 말하며 인간이 타인을 대할 때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세상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도, 밤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도 다룬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살을 ‘결합’이라는 현상과 엮어 설명한다. 어떤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조건이 ‘결합’할 때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 역시 그런 사건 중 하나로, 특히 ‘방법’, ‘장소’와 잘 결합한다. (다른 다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 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타인의 해석>, 신뢰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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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라…. 역전 앞이나 호화로운 럭셔리처럼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영미 문학의 진저브레드를 생강빵으로 번역해서 읽을 때 그것은 왠지 다른 맛,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그 다를 수밖에 없는 번역의 맛에 대해 번역가가 쓴 에세이다. <빨강 머리 앤> <작은 아씨들> <하이디> <소공녀> 등 지금의 2030 여성들이 어린 시절 읽었을 명작 소설 속 음식들에 대해 설명하는 요리책이나 에세이들이 여럿 출간됐다. 아마도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책 속 음식과 의복에 대해 이토록 할 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로망의 영역에 여전히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빨강 머리 앤>에서 앤이 딸기술을 주스로 오인해 다이애나에게 대접한 후 다이애나 엄마로부터 앤과 절교하라는 말을 들은 에피소드를 읽고, 도대체 얼마나 달콤하기에 술인지도 모르고 두잔을 연거푸 마셨는지 그 맛이 너무 궁금했던 게
씨네21 추천도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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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일제강점기 경상도 어진말에 사는 18살 버들이에게 중매가 들어온다. 훈장이었던 아버지가 의병으로 죽은 후 끼니를 걱정하며 살던 버들 애기씨에게 들어온 선 자리는 무려 태평양 건너 포와(지금의 하와이)의 낯선 사내다. “거 포와를 낙원이라 안 캅니꺼. 거 가기만 하면 팔자 피는 기라. 애기씨 거 가면 공부도 할 수 있습니더.” 재외동포와 사진만 교환하고 혼인하는 ‘사진 결혼’ 이건만 버들은 미국서 공부도 하고 영어도 배울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혼례를 받아들인다. 혼인한 지 석달 만에 과부가 되어 집에만 갇혀 살던 버들의 친구 홍주, 무당 손녀라고 돌팔매질 당하던 송화까지, 세명의 소녀는 ‘여기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포와를 향해 길을 떠난다. 부푼 꿈을 품고 이국땅에 도착했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사진보다 서른살은 더 들어 뵈는 신랑감과 아시안을 향한 일상적 차별, 그리고 허리 펼 새 없이 이어지는 노동이다. 더구나 버들의 남편은 첫사랑을 잊지 못
씨네21 추천도서 <알로하, 나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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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의 새로운 인문 시리즈인 ‘채석장’ 시리즈의 첫권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과 알렉산더 클루게의 글을 묶은 <'자본'에 대한 노트>다. 에이젠슈테인은 <율리시스>가 블룸씨의 하루를 다루듯, 영화 <자본>에서 한 사람의 하루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그 과정에서 연상되는 사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이어 붙여 세계 전체를 그릴 참이었다. 이 대담한 생각은 구상만 남았다. 알렉산더 클루게의 글은 에이젠슈테인의 구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해고당한 프랑크푸르트 노동자의 일화부터 미국 자본의 투자 일화까지 연상의 조각들을 모은다.
<아카이브 취향>은 18세기 파리 형사사건 기록을 종일 읽는 역사가의 에세이다. 훼손된 종이 자료에다 구두점이 없고 알아보기 어렵게 쓴 글을 해석하는 답답한 시간. 하지만 경찰 문건 사이에 농담 가득한 개인적 편지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광장의 교통체증을 참지 못하고 진짜 칼을 빼든 인물이 사드 후작이었다는 뜻밖
씨네21 추천도서 <'자본'에 대한 노트>, <아카이브 취향>, <정크스페이스 |미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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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특별한 관문>은 명문대 졸업생일수록 소득이 수직 상승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리고 하나 더, 명문대일수록 빈곤층 학생이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이 책은 교육 수요자 말고 공급자, 즉 대학의 입장을 해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다. 대학은 다양한 계층의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는 공정한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소수집단 우대정책 같은 건 말뿐이고, 빈곤층 출신 고학력자 학생들은 전체 입학자 가운데 극소수다. 현재 미국 대학은 4분의 1가량이 재정위기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국 대학 순위를 높이려면 비용 지출을 늘려야 하는 형편이라, 대학 입학 사정관들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등록금을 꼬박꼬박 내줄 부유한 집안의 고득점자 학생들을 찾는다.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아버지가 하버드대학교에 250만달러를 기부하여 입학했다 하니, 애초에 대학이 빈곤층 출신의 고학력 학생에게 문턱을 높인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빈곤층 출신의 명문대 입학생들은 부유
씨네21 추천도서 <인생의 특별한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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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예술원 명예교수이자 큐레이터, 작가인 토마스 기르스트가 쓴 <세상의 모든 시간>은 ‘느리게 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연결, 실시간 피드백의 시대에 누구나 ‘지금 당장’, ‘잠깐만’이라는 말로 시간을 쉼 없이 분절해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한 쉼표가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기르스트는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즉각적인 만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가장 대표적으로 SNS 서비스의 ‘좋아요’ 기능이다), “즉각적인 만족은 인간의 심오한 행복을 방해한다. 한 가지 강렬한 감각에 예민해질수록 다른 감각에는 무뎌지게 된다”. 이런 화두는 독특하거나 드문 것이 아니다. 느린 삶을 ‘어떻게’ 생활로 끌어들일지가 사유의 특이성을 반영하게 되는데, 기르스트는 큐레이터라는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기원전 이집트의 조각상부터 보이저 1호에 실어보낸 LP레코드에 이르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예술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타임캡슐
씨네21 추천도서 <세상의 모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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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인파 사이에서 봄꽃이 한창 피고 졌다. 봄인데 하늘이 매일 맑다. 선거운동은 조용하게 마무리되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연휴가 다가오지만 여행을 꿈꾸기 어렵다. 코로나19 시대의 달라진 풍경 속에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애달픈 마음으로 책을 쌓아두고 읽는다. 당신의 마음을 울린 책은 무엇인가.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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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사파리>를 쓴 래퍼이자 활동가이자 작가인 대런 맥가비는 이 책을 마무리하던 즈음 2017년 6월 14일 런던 서쪽에 위치한 고층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사건을 접했다. 그는 그렌펠의 주민들이 꾸준히 화재위험을 경고했으며, 그들이 화재 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대해 의문을 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렌펠의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사실도. 빈곤의 풍경.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는 방식에서 나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내 어휘, 내가 평생토록 수집해온 말들을 전방위로 사용하려 한다”면서, 책 한권을 끝까지 읽을 수 없다고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교과 과정이 내가 사는 동네나 내 경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가식적인 상층계급의 허튼소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 챕터는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여성 전용 교도소 콘턴베일이다. 맥가비가 빈곤계층 백인 남성으로 느껴왔던 사회의 무관심에 더해 여성이라는 차별을 한겹 더 경험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가난 사파리>,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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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뉴욕공공도서관(NYPL)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는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수많은 지식인, 유명인이 등장하지만 모두가 이름 자막 없이 등장하고, 누구나 상황에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받는다. 모두가 중요하다보니 3시간 26분이나 되는 이 다큐멘터리의 초반에는 도서관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용객으로 추정되는 이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 있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질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원은 “유니콘은 상상의 산물입니다.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고요”라고 한다. 아니 그걸 물어봐야 안단 말인가 싶은 동시에, 그런 질문을 해도 된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은 75년 전부터 뉴욕공공도서관에서 기록으로 보관해온 이용자의 질문지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재미있고 엉뚱한 106가지를 모은 책이다. 뉴욕공공도서관은 정보와 자료의 무료 이용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이곳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답은 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