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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송년회와 연말을 결산하는 떠들썩한 행사들 대신 차분하게 한해를 돌아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이 시기를 함께할 좋은 친구는 아마도 책이 아닐까. 책을 펴면 때로 다른 시간으로, 아주 먼 장소로 바로 떠날 수 있다. 부디 안전하고 건강하게, 책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연말을 보내시기를.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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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의 액톨로지 시리즈 1권 <배우 이병헌>이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배우 이병헌의 커리어를 총망라한 책이다. 이병헌과의 인터뷰는 물론, 그와 협업한 업계(방송, 광고, 영화 등) 관계자들과의 폭넓은 인터뷰가 이 책을 만들었다.
연기한 주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이병헌이 출연한 영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송강호, 전도연 배우와의 협업이나 김지운, 이주영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 손석우 BH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간의 이병헌을 말한다면, ‘Analysis’ 페이지는 이병헌을 둘러싼 거의 모든 숫자 정보를 망라한다. 박스오피스 성적, 출연한 드라마의 TV 시청률, 광고 이미지 등에 대한 분석글이 이어진다. 백은하 배우연구자가 진행한 긴 인터뷰는 이병헌 배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은하배우연구소는 2019년부터 다음 세대 배우들을 매해 선정하는 ‘넥스트 액터’ 시리즈를 시작해 박정민, 고아성 배우에 대한 책을 펴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배우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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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1, 2>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지음 / 이룸북 펴냄
<트라우마 사전>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지음 / 윌북 펴냄
최근 출판계에서 중요해 보이는 흐름 하나는 작법서 출간이다. 글쓰기 책의 인기야 꾸준했지만, 단순히 글쓰기가 아니라 웹툰과 웹소설, OTT 시리즈 등의 스토리를 위한 작법서 말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위한 작법서는 강조하는 포인트가 아예 다르다. 문장보다 캐릭터가 압도적인 중요도로 언급되며, 작법서라고는 하지만 많은 경우 설정집, 자료집, 키워드 모음집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책의 제목과 부제들만 살펴봐도 이런 경향은 쉽게 알 수 있다. 낸시 크레스의 <넷플릭스처럼 쓴다: SF·판타지·공포·서스펜스>, 댄 코볼트의 <장르 작가를 위한 과학 가이드: 과학적 진실성을 갖춘 SF, 판타지, 기타 장르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보라.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1, 2> <트라우마 사전>, 생생한 캐릭터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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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책을 읽는 어른들에게,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자고 말한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어온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를 독서교실의 고객으로 응대하는 데 진심이고, 그 진심의 일환으로 어린이 고객들의 속내를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존중이고 대화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라는 ‘타자’를 대하는 법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머리는 어른끼리가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이 맞대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에 있다. 어떤 어른은 자신이 애정으로 돌봄받지 못한 데 대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고, 어떤 어른은 여전히 자기 안의 어린이를 이해받고자 애를 쓰는 듯 보인다. 또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어린이라는 세계>,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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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병석에 있는 사람이, 부모의 병세를 기록한 책을 꺼내 드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처음부터 울 준비를 하고 (코를 아무리 풀어도 살이 짓무르지 않는 보드라운 각 티슈 상비) 독서를 시작했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말기암 판정 후 1년간 와병 생활을 한 어머니의 마지막을 인문학자 아들이 기록한 책이다.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을 진단받은 저자의 어머니는 호스피스 병동 여러 곳을 전전했고, 저자는 1년 동안 휴업하고 간병인이자 관찰자로서 어머니의 ‘말’들을 채집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받고 정신이 맑지 않았던 어머니의 말들은 대부분 혼몽하고 정체가 불명하다. 짤막한 한두줄에 그치는 어머니의 발화를 아들이 길게 풀어서 해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병석에서 툭툭 하는 어머니의 말들은 맥락은 없지만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어머니의 생과 결부하여 독해하면 된다. 환자를 간병해본 사람은 환자의 말
씨네21 추천도서 <엄마의 마지막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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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앞 선술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두명의 피해자는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수의사와 폐기물 처리업자. 범인이 어설픈 영어로 “머니, 머니”를 외쳤다는 목격자 증언에 따라 이 사건은 외국인에 의한 강도 살인으로 단정되어 초동수사가 진행되고 이내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주위로부터 탐문 수사, 신변 조사의 달인, 사냥개 같은 형사라는 평가를 받는 경시청 수사1과 다가와에게 이 사건이 재배속된다. 수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지만 승진하기보다는 현장에 남아 미해결 사건을 전담하는 계속수사반에서 일하는 다가와는 늘 하던 대로 상점가를 발로 뛰며 탐문 수사에 임한다. 한편 지방 상권을 잠식하고 정재계를 이용해 몸집을 불려 경제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대형 쇼핑몰 옥스마트의 비리를 조사하는 쓰루타 기자의 에피소드 역시 살인 사건과는 다른 방면에서 전개된다.
이렇게 형사의 살인 사건, 기자의 산업 비리라는 서로 다른 사건이 별도의 것처럼 전개되지만 ‘소’라는 접점을 만나며 두 이야기는 새
씨네21 추천도서 <비틀거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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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기만한 날들을 위해>에는 정신과를 다니며 우울증약을 처방받는 한편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주부로서 언제나 빈틈없이 일했고 남들 앞에서는 모자람 없어 보이는 신도시의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의 잦은 외도와 원정 성매매로 내면이 망가진 상태다. 운전은 그런 그녀가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은 수단이다.
박완서 작가의 기념비적 단편 <꿈꾸는 인큐베이터>에서도 운전이 여성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비추는 도구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으리라. <꿈꾸는 인큐베이터>와 <기만한 날들을 위해> 사이에는 수십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기혼 여성의 삶은 여전히 답답해 숨이 턱 막힌다. 아마도 중산층 4인 가족으로 대표되는 신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같지는 않다. 기혼 여성의 변화를 촉구하는 존재로, 딸이 대표하는 젊은 여성 세대가 새롭게 등장했다.
씨네21 추천도서 <잃어버린 이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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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사는 동안 어느 시점에는 폭력적인 범죄를 경험한다.” 이 문장은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기에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개정판)은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외상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정보를 담고 있는 이 고전은, 트라우마가 하나의 정신 질환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지난한 역사적 과정부터 트라우마와 뇌 및 신체가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며, 약물 말고 어떤 대안적 치료가 있는지 살핀다.
뇌의 화재경보기 역할을 하는 편도체는 위협을 먼저 감지하여 스트레스 호르몬 시스템을 가동한다. 한편 전두엽은 감시탑 역할을 한다. 위협이 실제로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면 편도체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며, 전두엽과의 균형이 깨진다. 또 감각을 인지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정지되기도 한다. 그 결과 외상에 시달리는 환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맞서 방어를 취하는 상태로
씨네21 추천도서 <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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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함께 2019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국에 소개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높은 확률로 아예 소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 이 소설은, 2020년 즈음의 페미니즘을 ‘하나의 목소리’로 부르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페미니즘에도 주류와 비주류의 목소리가 존재하며, 여성이라고 모두 의견을 같이하지는 않으며, 때로 갈등하고 마찰한다. 흔히 페미니즘을 명명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책(지금은 고전이라고 불리는)을 쓴 백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목받았다면,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범주로 부차적으로 언급되던(페미니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비백인들의 페미니즘은 말미에 큰 흐름만 언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삶과 목소리를 담아낸다.
여러 연령대의 흑인 여성의 삶을 중첩시키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씨네21 추천도서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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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아시는지. 연말연시를 맞이해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좋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5권의 책 중 당신의 마음에 드는 책은 무엇인가.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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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문학적 사유와 인문적 정수로” 마흔 권의 책을 출간한 전경일의 관심사는 역사와 여행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마릴린 먼로가 등장한다는 <마릴린과 두 남자>, 루벤스 그림에 얽힌 사건을 풀어간다는 <조선남자>, 문익점과 토요타 자동차의 연관 관계를 밝혀냈다는 <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 자동차가 되었을까?>를 비롯해 한국 남자의 판타지에 특히 관심을 갖고 책을 출판해온 것으로 보이는 전경일의 신간 <백 만년 동안 내리는 비> 역시 세계사 속 한국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쿠바 혁명의 주역으로 체 게바라와 친구가 된 한 남자. 그의 음악적 재능, 20세기 초 남미 대륙에 정착한 꼬레아노 후손으로서의 정체성 등이 사랑과 혁명을 배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백 만년 동안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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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성범죄를 보도할 때 두손을 늑대처럼 앞으로 치켜든 성인 남자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피해자 위로 드리워진 모습을 수시로 새롭게 그려내곤 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묘사도 드물지 않다. 읽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라는 좋은 핑계가 있기 때문에, 정보를 정확하게, 가해자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라는 요구는 쉽게 무시된다. ‘166년간의 범죄 보도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뉴욕타임스 크라임>은 <뉴욕타임스>의 사건사고 보도 기사 중 사회적 파장이 컸던 글을 중심으로 암살, 강도, 납치, 대량 학살, 조직 폭력, 살인, 교도소, 연쇄 살인범, 성범죄 등을 다룬 글을 모은 책이다. 범죄라는 필터로 본 미국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변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대기록이라는 점이 흥미를 끈다.
166년이나 되다 보니 링컨 대통령 사망 보도는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리는지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뉴욕타임스 크라임> <성공할 사주 실패할 팔자>, 현대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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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편지를 쓰는 목적을 크게 둘로 나누면 이렇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사랑에는 부모, 자식,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모두 포함되는 법이고, 일이라고 했을 때는 최초 발상부터 진척 상황, 곤란을 겪거나 좌초하는 일까지를 아우르게 되니, 알려진 인물(특히 창작자)이 남긴 편지들은 그래서 귀한 기록이 된다.
플로베르의 서한집에서는 <보바리 부인>을 얼마나 공들여 쓰고 고쳤는지에 대한 생생한 고백을 만날 수 있다. 아서 코넌 도일 서한집에서는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발상을 얻고 취재를 위해 여행을 다녀온 경위를 알 수 있다. 동시에, 편지들은 훌륭한 작품 뒤의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서한집이 작가 사후에 편찬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번에 나란히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작가들이 쓴 편지글을 모은 책들이다.
두 작가가 쓴 작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나쓰메 소세키 서한집>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친애하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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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방청이 취미예요.” 영화라도 보는 기분으로 재판 방청을 다니던 어느 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교도관으로 일하게 된 그는 출근 전에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재판 방청을 갔다가 다나카 유키노 사건을 접한다. 연립주택 화재 사건. 불에 탄 시신 세구가 나왔다. 임신 중이었던 이노우에 미카와 그의 쌍둥이 딸이 사망했다. 당일 저녁 체포된 사람이 바로 다나카 유키노였다. 애인이 변심해 새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 과정을 통해 과거사가 천천히 끌려나온다.
<무죄의 죄>는 다나카 유키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 방화 사건의 진상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건의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사건에 대한 정보로 시작해 점점 사건 관련한 내밀한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무죄의 죄>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독자와 서점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2017년에 ‘역주행’
씨네21 추천도서 <무죄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