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보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자의 글쓰기(기획, 취재 등의 과정을 거쳐 목적이 확실한 기사)가 익숙했던 내가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써야 할 때마다 든 생각이 ‘이런 얘기 해도 되나?’였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얘기를 누가 읽는다고, 이런 얘기가 남한테도 의미가 있나, 라는 장벽이 가로막았다. 대중문화 기자로 일했던 최지은 작가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을 쓰기보다는 미디어라는 창을 한번 거친 글쓰기가 더 익숙한 방식이었을 거(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추측해본다. 거기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페미니즘이 대화의 소재가 될 때마다 여성들이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닌지, 상대가 나를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 어쩌지? 불평등한 사회에 균열을 가져오는 것은 그런 오해를 감수하고 ‘이런 얘기’를 부득불 꺼내는 여자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내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난 에세이 안 읽어. 남의 얘기를 뭐 하러 알아야 해? 정보가 남는 것도 아니고”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회과학 서적을 비롯해 최근엔 부동산 서적을 읽는 그에게 책이란 ‘정보와 지식’이 남는 가성비 상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래서 내가 에세이를 좋아해’라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방송 <엔탑>의 MC를 맡은 J군을 보기 위해 매주 줄을 서고, 경호원 ‘강친’(아는 사람은 다 알죠? 찡긋)을 피해 오빠의 사진을 몰래 찍는 팬들의 눈치 싸움. “J를 사랑하는 것은 스물한살의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쓸모없고 설레는 일이었다”(37쪽)라고 고백하면서 그가 왜 “더는 어떤 남자의 팬도 되지 않기로 했”는지(56쪽). 덕질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하지만 원래 덕후란 기회만 있으면 아무도 안 물어본 ‘최애’에 대한 정보를 실컷 늘어놓고 후회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덕질의 원동력으로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가 페미니즘에 대해 글을 쓰게 된 후 강연장에서 만났던 또 다른 여성들이 내놓은 통찰들, 그리고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떤 법적 절차를 거치면 좋은지에 대한 정보까지. 웃음과 감동, 눈물과 공감의 대향연이 펼쳐지는 이 책의 마지막 단어는 ‘그리고’이다. 마침표 없이 살아남아서 또 우리 즐겁게 ‘이런 얘기’하자는 저자의 마지막 인사를 읽으며 거기에 새끼손가락을 걸어본다.
잘 맞는 안경
모임을 마친 뒤 P님은 이렇게 말했다. “부채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연대감이었어요.” 페미니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여전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헤매곤 한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또렷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