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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사무실에서 일은 끝없이 연결된다. 즉흥적이고, 비체계적인 메시지가 이메일과 각종 톡 프로그램을 통해 오가고,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을 잡아먹고 피로를 가중시킨다. <딥 워크>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쓴 칼 뉴포트는 <하이브 마인드, 이메일에 갇힌 세상>에서 이런 상황을 ‘하이브 마인드 활동과잉’이라고 표현한다. 그 뜻은, 이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 같은 디지털 의사소통 도구에서 오가는 비체계적이고 무계획적인 메시지와 지속적인 대화를 중심축으로 하는 업무 흐름이다.
이것은 ‘모든 사무직’이 겪는 문제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첫 단계지만,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전제로 이 책을 읽어가면 ‘끊임없는 소통’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다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이해했다고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컴퓨터를 켰을 때도, 컴퓨
<하이브 마인드, 이메일에 갇힌 세상>, 이메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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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알베르토 망겔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좋아하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작가, 번역가, 편집자, 비평가, 독서가.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말이 있지만, 그의 이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시력을 잃어가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부탁으로 16살 때부터 4년간 그에게 책을 읽어준 것이다. 한평생 책을 읽고, 쓰고, 번역하고, 도서관장으로 일하는 등 수많은 활동을 해온 그의 저작은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넘쳐흐른다.
<끝내주는 괴물들>은 고전문학에 대한 책인데 라인업부터 대단하다.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성경> 욥기의 욥, <서유기>의 사오정, <하이디>의 하이디 할아버지. 누가 어떻게 괴물이라는 것일까 궁리하며 읽다 보면 철학과 문학사, 문학비평 등을 아우르게 된다. 썰을 푸는 망겔은 정말 솜씨가 좋다. “저마다 고유의 내력을 가
<끝내주는 괴물들>, 이상한 문학 나라의 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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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이주자는 지구에서 보낸 이전의 삶을 어떻게 회고하고 기록할 것인가. 오정연의 첫 소설집 <단어가 내려온다>에 실린 이야기들에서는 행성간 이동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7편의 소설에는 이주, 적응, 가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존재(감)가 없는 아버지와 서로에 감정적으로 매여 있는 모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데,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전망’과 ‘회고’의 문제다. 행성간 이주는 이전의 삶과 단절된다는 뜻일 수밖에 없으며, 과거를 돌아본다는 일은 의식적인 해석의 문제가 된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마지막 로그>는 이상적으로 통제되는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 모든 게 통제되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그리움과 갈등은 그렇지 않다. <단어가 내려온다>는 화성으로 이주하는 딸과 엄마가 주인공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15세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립니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단어를 받게 되는데, 어머니를
<단어가 내려온다>, 너를 알아봤던 그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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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빌리 모턴.” <침략자들>의 첫 문장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첫 문장을 연상시킨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두 작품의 또 하나의 유사점은 빌리 모턴이 뱃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롱아일랜드 해협이나 몬토크 동쪽에서 어업을 하는 빌리 모턴은 고래가 아닌 수수께끼의 물고기를 만난다. 물고기가 선실 지붕으로 올라갔다.
생김새가 특이하다. “그렇게 못생긴 복어는 본 적이 없어요. 덩치는 농구공만큼 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 같았습니다.” 쓸데가 없어 보여서 배 밖으로 던졌지만 물고기는 다시 배 안으로 뛰어올랐다. 물에서 나왔으니 물고기라고 부르지만 물고기처럼 생긴 구석은 하나도 없다. 은회색 털북숭이에, 농구공보다 큰 비치볼 같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따라온다.
빌리 모턴의 아이들은 그것을 FF(Funny Fish, 웃기는 물고기)라고 부르고, 아내는 ‘그 재미있는 물건’이라고 불렀고, 빌리는 ‘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씨네21 추천도서 <침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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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매일 마시는 사람이라면 커피의 역사를 좀 알아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 수 있을 텐데, 막상 읽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커피의 역사라는 것은 19~20세기 세계사, 특히 자본주의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국제적 커피 시장의 시작은 노예 혹은 노동자 착취를 통한 자원 생산이다.
커피 열매가 놀라운 맛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나라 농장주들은 처음에는 노예를, 이후 원주민이며 이주 노동자들을 투입하여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가혹하게 일을 시켜가며 커피 원두를 생산한다. 원두는 미국으로, 유럽으로 팔려가 그들의 문화를 바꾼다. 수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창조적이고 불온한 공간 커피하우스가 탄생한다.
미국 자본주의 팽창기에 원두를 수입하고 로스팅을 하여 가정이나 회사까지 전하는 시장에 각종 기업이 뛰어든다. 국제 교역과 밀접하게 결부되었기에 1929년 주식 시장 붕괴 2주 전 커피 시장이 무너지는 사건도 벌어
씨네21 추천도서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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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공장제 축산 대신 ‘예의를 갖추어’ 동물을 키우는 일은 채식주의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귀촌하여 유기농 요구르트 목장에서 일하는 저자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대안축산연구회’를 결성했다. 이론만 따지고 있을 수 없어 실전에 돌입하기 위해 근처 농업학교에서 새끼 돼지 세 마리를 분양받기로 한다.
그런데 돼지 키우기는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기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쑥쑥 크는 돼지를 붙잡아 우리에 데려오는 문제부터 돼지가 탈출하지 못하는 탁 트인 축사를 만드는 문제, 자연식 먹이 조달이며, 발정기 대처법, 살충제를 쓰지 않고 여름의 파리 떼를 처치하는 문제 등. 저자가 처음 알게 된 정보들이 많다. 돼지도 소처럼 풀을 먹는다. 돼지는 집에서 키우는 개처럼 영리해서 키우다 보면 정이 들게 된다. 그리고 동물을 잡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호주 같은 곳에서도 도축장 일은 기피 직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축산업은 질소
씨네21 추천도서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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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쓴 책은 많다. 그중 일부를 읽어본 소감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아나운서는 셀럽이 아니고 직장인이다”라는 것이다. 여전히 그 직업을 선망하는 청년이 많을 것이기에, 아나운서들이 낸 책에는 ‘어떻게 하면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송국 합격 필승 팁도 간략하게 들어 있다. 전종환 아나운서의 책에도 아나운서 시험 중 특히 면접 분야에서 유용한 팁을 접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차별점 역시 바로 그 팁에 있다.
전종환은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지 않았으며, MBC 최초로 재학 중 공채에 합격한 아나운서다. 잘난 척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래서 입사 후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히 밝힌다. 학원에서 기본 발성과 발음을 배우고, 지방 방송국이나 케이블에서 경력을 쌓고 신입으로 입사하는 ‘경력 같은 신입’이 다수인 세상에 그는 진짜 초짜 신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첫장 제목이 ‘이거 잘못 뽑은 것 같은데?’다. 그에게 방송 테스트를 시켜보던 선배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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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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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배경인 가장 유명한 픽션은 <크리스마스 캐럴>일 것이다. 욕심 많은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유령들을 만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고 개과천선한다는, 찰스 디킨스의 그 소설 말이다. 이장욱의 신작 소설 <캐럴> 역시 크리스마스이브가 배경이다. 솔직히 주인공 윤호연은 약간 재수가 없는 인물이다. 자기 스스로도 ‘재수 없다고? 알고 있다’라고 할 정도다. 그는 부유하고 지적이며 곧잘 타인을 조종한다.
무엇보다 그가 재수가 없는 이유는, 자신이 보통의 천박한 부자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점이다.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 투자 자문 컨설팅 회사 대표인 윤호연은 한강이 보이는 74평 고급 아파트로 퇴근한다. 중후한 분위기의 거실에서 바흐의 평균율을 듣는 중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다짜고짜 “나는 댁의 아내 선우의 전 남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니 “나는 지금 자, 자살할지도 모릅니다”라며 협박한다. 윤
씨네21 추천도서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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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수록,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읽는 책 한권만큼 여행에 가까운 경험이 또 있을까.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현재의 세계를 담은 신간 5권을 골라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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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분더카머는 16세기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성행했는데,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멀리 있는 사람과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통신기술이 발전하기 전이었으므로, 분더카머는 필연적으로 이미지의 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낯선 나라의 글씨 역시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맥시멀리즘의 원칙을 따라 (거의) 빈 공간 없이 들어서 있다. 범주를 나누고 분류한 듯 보이지만 ‘야릇한 무계통의 혼돈’이 가득하다. “사실 모든 것이 잡동사니다.”
윤경희의 책 <분더카머>는 놀랍게도, 저 설명대로 낯설고도 복잡한 책으로, 사물과 이미지, 텍스트를 포괄해 사유하는 자가 얻을 수 있는 경이의 감각을 선물한다. 글에 매혹된 이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수집과 분류의 열망이 책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분더카머>다. 해석은 번쩍이며 지나
<분더카머> 호기심의 시간, 머릿속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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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은 언제나 ‘그렇다고 치고’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어떤 장르든 그렇다. 이른바 문단문학이 현실에 있음직한 인물과 이야기로 개연성을 따진다면, 장르문학은 ‘작품 속 세계관 설정상 충돌은 없는지’의 방식으로 개연성을 따진다. 용이 있는 세계, 인류가 화성에 사는 세계, 중세풍 복식을 한 북부대공이 회귀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세계는 그래서 ‘말이 된다’.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는 천재적인 동시에 일상적 소통능력이 부족한 캐릭터를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복잡하고도 복잡한 밀실 사건 해결에 투입하곤 하는데, 순수한 퍼즐풀이의 재미와 그로 인한 현실감 부족은 신본격의 장점이자 단점인 셈. 1980~90년대를 풍미한 신본격 미스터리가 다시 부활한 것일까.
<마안갑의 살인>은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마안갑의 살인>, 가는 곳마다 사건이 생기는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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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첫 번째 단편인 <자본주의의 적>을 몇줄 읽다 보면 ‘이거 자전소설인가?’ 하고 표지로 돌아가 작가 이름을 확인하게 된다. 첫장부터 ‘정지아, 하면 <빨치산의 딸>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대다수인 마당에’라고 시작하는데 소설을 쓴 작가 이름이 정지아다. 그의 첫 소설은 남로당 일원이었던 부모의 삶을 재구성한 <빨치산의 딸>이었고. 이름만 빌려온 게 아니라 문예창작과를 나와 띄엄띄엄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는 직업 설정 역시 작가의 것이 맞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뒤섞인 내용은 다음 소설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에서도 이어진다. 일찍이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하고 세권의 소설집을 냈으나 지금은 지리산에 살며 지역 대학에 가끔 강의를 나가는 문학박사 정지아 설정 역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가 본인에게서 가져왔는지 헛갈린다.
그런데 실은 대단한 포부 없이 쫓기듯 낙향한 작가를 “진정한 소확행의 삶”으로 오해해 취재 오
씨네21 추천도서 <자본주의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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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큰 짐이 되지 않아서, 때로는 사람들을 광고판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티셔츠는 각광받는 홍보용 굿즈이자 기념품이다. 목 주변이 늘어나도록 입고도 애착이 남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티셔츠가 있고, 더이상 입지 않아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이사할 때마다 옷장에 자리를 차지하는 티셔츠가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티셔츠는 그런 물건이다. 심지어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견한 1달러짜리 ‘TONY TAKITANI’ 티셔츠가 소설 <토니 타키타니>의 영감을 제공했다니 그에게 티셔츠는 단순히 입고 버리는 물건에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티셔츠를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잡지에 연재한 애착 티셔츠 이야기를 묶은 책 <무라카미T>가 출간됐다.
<무라카미T>는 티셔츠 이야기인 동시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모든 것에 대한 글이다. 앞서 언급했듯, 티셔츠의 ‘도안’은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내용을 담을 때가 많으며 티셔
씨네21 추천도서 <무라카미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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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나타난 독창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들.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진실을 포착한 기이한 신화들.”(<NPR>) 카먼 마리아 마차도 소설에 대한 극찬 중 눈여겨볼 것은 ‘이전에 없었던, 독창적’이라는 소개다.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가 출간됐을 때 미국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사이코 리얼리즘 혹은 SF나 판타지, 호러 중 무엇으로 분류하면 좋을지 몰라 헤맸다. 소설집 중 <현실의 여자들은 몸이 있다> 역시 아포칼립스와 판타지를 기반으로 몸이 투명해지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현실에서 여자들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당하고, 폭행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이런 사건들은 흔해서 기사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도 몸이 점차 옅어지다가 형체가 사라지는 여자들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몸이 없는 여자들은 쇼핑몰에 걸린 싸구려 드레스에 꿰매어진다. 회화적이고 마술적인 마차도만의 형식은 다른 소설에서도 발견된다. 뚱뚱한 자기 몸
씨네21 추천도서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