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고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나 확진자가 폭증하는 나라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변이 바이러스들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바라기 어려우며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예측이 나오는 때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삶의 방식은 어때야 할까. 특히 감염의 위험이 큰 도시 공간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건축가 유현준의 신작 <공간의 미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는 이런 궁금증을 풀고자 한다.
책에서는 제한된 시공간을 권력의 문제로 본다. 교회에서 매주 예배를 보고 모임을 여는 일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권력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 윗선에서 재택근무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경우도, 원래의 권력이 더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회사에서 자율좌석제를 실행하면 말단 사원 중에서도 꺼리는 경우가 있는
씨네21 추천도서 <공간의 미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
중독은 감각으로 오는 것 같다. 짜릿한 해방감. 원래의 나에서 벗어나는 듯한 기분. 매혹과 구원. 그렇게 술에 빠지고 또 마약에 빠진다. 그런데 중독은 왜 시작되는 걸까? 심각한 알코올중독 상태였다가 서서히 중독에서 벗어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여러 갈래를 살펴나간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 학창 시절 잘난 친구들에게 무시당한 경험이나 아버지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기억들이 원인일 수 있다. 글쓰기에 탐닉한 저자처럼 예술가 범주에 속한 경우에는, 알코올중독 자체가 창조의 원동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나 존 치버 같은 영문학의 신화가 이를 부채질한다. 술에 취해 땅에 구르고 유치장에 갇힐지언정 근사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처럼 술을 통해 예술가로 거듭나리라는 소망.
하지만 이 신화가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여성은 ‘돌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술에 취해 살았
씨네21 추천도서 <리커버링: 중독에서 회복까지 그 여정의 기록>
-
창간 기념 특대호와 블록버스터영화, 영화제를 중심으로 셈하는 <씨네21>의 5월은 분주합니다. 4권 동안 쉬지 않고 만든 창간 기념 특대호 마지막 권은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 스페셜과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반가운 소식으로 마무리됐고, 전주국제영화제도 새로운 영화들을 우리 앞에 부지런히 소개했습니다.
여름 블록버스터와 칸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앞두고 한숨 돌리는 5월 말의 책읽기는 그래서 때로 가볍고 때로 묵직합니다. 한권씩 만나보세요.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
2021년 4월 20일, 전직 경찰인 데릭 쇼빈에 대한 유죄 평결이 속보로 보도되었다. 그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눌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평결은 폭력 사태를 막아냈다는 분석을 얻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만일 1991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들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면 LA폭동이 일어났을까 궁금해진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스테프 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LA폭동으로부터 28년이 지난 2019년을 무대로 한다. 두순자라는 한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라타샤 할린스라는 10대 여성을 강도로 오인해 권총 살해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2019년. 그레이스 박은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경찰 폭력에 사망한 흑인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 어머니 이본에 대해 의아한 감정을 느낀다. 어느 날 그레이스는 어머니와 함께 있다가 난데없는 총격 사건을 경험하고, 어머니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
-
-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년 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해 곧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비평가이자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파타 모르가나>의 내레이터이기도 했던 로테 아이스너의 회복을 위해, 걸어서 가면 로테 아이스너가 살아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고, 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 혼자 도보 순례를 했다. 그 여정의 기록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이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이것은 마치 헤어초크의 미발표 영화를 글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헤어초크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유용할 영화감독의 내면일기, 풍경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의 과정이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저주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얼음 속을 걷다>, 순례의 목적지
-
‘인류 불변의 마케팅 클래식.’ <포지셔닝>의 야심찬 부제는 과장이 아니다. 포지셔닝은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적절한 메시지를 주입하고 유지하는 전략이다. 4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잠재 고객의 마음에 확고한 자리(포지션)를 확립한다는 뜻의 포지셔닝은,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 더욱 힘을 발휘하는 가치가 되었다. <포지셔닝>은 실제 사례 분석에 공을 들였는데, 4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 중 일부는 시효를 다했지만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다.
개인 브랜딩이 중요하게 언급되는 현대사회에서, <포지셔닝>의 조언을 참고하면 이렇다. 대중매체에서는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한 얼굴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매체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은, “자신을 밝힐 준비가 완전히 갖춰질 때까지 무명성을 유지하다가 자신을 밝힐 때 한번에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소비자 마인드에 포지션을 확립하는 것이
씨네21 추천도서 <포지셔닝>
-
시를, 그 시를 감싸고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시인의 사정, 시인이 쓴 다른 산문을 빌려와 함께 읽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백은선 시인이 그걸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백은선의 세 번째 시집 <도움받는 기분>을 읽기 전 우연찮게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먼저 읽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자기 시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썼다. ‘나는 알레고리로 가득 찬 내 시가 징그럽고 무서워. 부릅뜬 눈들이 싫다.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내 시집 <가능세계>가 피해자의 거대한 진술서 같아서 진절머리나게 싫을 때가 있다.’(67쪽) 그가 세 번째 시집은 통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통독하지 못했다.
<도움받는 기분>(30쪽)을 읽다가는 한 10대 여성의 지옥도 속에 같이 사는 것 같아서 잠시 쉬어야 했고 <연결 지점>(34쪽)에서는 ‘꽃도 열매도 없이 오래 살자/ 누구의 꽃도 되지 않으
씨네21 추천도서 <도움받는 기분>
-
지금 동물과 살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잊지 못할 동물과의 몇몇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이름도 붙여주고 친동생처럼 같이 놀았지만, 잠깐 대문이 열린 사이에 집을 나가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개 복실이,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만났던 크고 무서운 개 누렁이, 등굣길 나만 보면 컹컹 짖어 학교까지 뜀박질하게 했던 슈퍼집 개 해피, 동네 대장이었지만 낮잠만은 꼭 우리 집 담장 아래서 잤던 치즈색 고양이, 학교 앞에서 천원 주고 사왔는데 쑥쑥 잘 자라서 금세 푸드덕거리며 닭이 됐던 병아리 두 마리.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조차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준 동물들’에 대한 기억이 이렇듯 애틋한데, 강원도 어두니골의 동물 친화적인 가정에서 자란 전순예 작가는 사랑하는 동물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1945년생 작가는 최초의 기억이 자리 잡은 순간부터 닭, 오리, 개, 돼지, 소까지 다양한 집짐승들과 어울려 자랐고, 산골에 살다 보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엉이 두 마리가 길
씨네21 추천도서 <내가 사랑한 동물들>
-
이것, 냉장고에 보관하면 절대 안된다! 마트에서 장을 본 식재료를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쓸어 담는 저장강박증 환자에게는 신경 쓰이는 뉴스였다. 토마토와 호박, 감자는 냉장고보다는 상온에 보관하는 편이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소를 유지할 수 있다니! 어디 이런 채소뿐인가. 바나나와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저온 장애를 입어 상온에 두는 것보다 빨리 물러진다고 한다. 생선이든 고기든 냉동고에 넣는 순간 영원불멸한 생명 유지 장치를 단 것처럼 안심했건만 사실 식재료는 냉장고에 들어가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간다. 몇년 전 한 철학자가 칼럼에서 ‘냉장고는 자본주의를 대표하고 가족 건강, 이웃 공동체, 재래시장과 생태 등을 파괴하는 주범’이라 주장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가 왜 ‘냉장고와 대용량을 폐기하자’고 주장했는지 이해는 되지만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바쁜 현대인이 매일 동네 시장에 들러 소량의 장을 보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제로 웨이스트 키친>의 저
씨네21 추천도서 <제로 웨이스트 키친>
-
“봄바람은 자기가 가던 길을 그냥 가지 않고 굳이 사람들 품을 파고든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소설가이자 강화도에서 공동체를 운영하는 지역운동가인 김중미 작가의 신작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이자 10대에 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공장이 있었고 그 시절 조선인이 모여 살던 줄사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네 ‘은강’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는 가난한 ‘난장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곳을 어떻게든 바꾸어 수익을 내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집요한 흐름이 있다. 브랜드 아파트 단지를 지어서 땅값을 올리는 표준적인 한국식 개발 입장이 있는가 하면, 도시 재생 등의 이름으로 북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사진 명소나 ‘쪽방체험관’ 같은 여행 코스를 만들자는 입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은강에 사는 10대 이야기는 미래를 향한다. 지우는 안다. 동네에 서민 가정의
씨네21 추천도서 <곁에 있다는 것>
-
자매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부모가 같다고 해서 똑같이 살라는 법은 없으니, 둘이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려가는지 운명이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는지 관심이 간다. <지문>에도 자매가 등장한다. 둘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하면서 성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진다. 외모도 비슷하고 성격도 닮은 두 사람이 35살이 된 지금, 언니 윤의현은 전도유망한 영화사에 작품 판권을 파는 데 성공한 소설가이자 대학 강사로 살고 있으나 동생 오기현은 거의 갇혀 살다시피 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윤의현은 실종 신고를 하고, 얼마 뒤 오기현이 산속에서 변사자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 윤의현이 할 일은 외롭게 살아온 동생이 왜 죽었는지, 혹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언니로서 정의롭게 밝혀내는 것이다.
<지문>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료 조사가 꼼꼼하다는 점이다. 변사자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이나 시체 부패 과정에 대한 설명,
씨네21 추천도서 <지문>
-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소설가이자 강화도에서 공동체를 운영하는 지역운동가인 김중미 작가의 신작 <곁에 있다는 것>은 가난과 10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선영의 <지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이혼하면서 성도 달라지고 삶도 달라진 뒤 30대 중반의 나이가 된 두 자매를 주인공으로 한다.
60살에 글을 쓰기 시작해 2018년 첫책 <강원도의 맛>을 출간한 전순예 작가가 그려내는 어린 시절 어두니골과 마수리의 풍경을 담은 에세이 <내가 사랑한 동물들>, 최근 산문집을 출간한 시인 백은선의 세 번째 시집 <도움받는 기분>,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는 법’을 알려주는 친환경 식생활 책 <제로 웨이스트 키친>, 그리고 4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으로 선보이는 <포지셔닝>을 4월의 책으로 함께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의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두 사람의 편지를 묶은 서간집이다. 2019년 4월부터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7월 6일까지 썼는데, 미야노 마키코는 7월 22일 책 출간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암 투병 중에 사망한 저자의 이 책에는 절박한 사유만이 보여주는 경지가 담겨 있지만, 의사로부터 이런저런 경고를 들으면서도 ‘평균수명’이라는 감각으로 사는 사람이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글을 읽고 슬픔, 감동, 교훈을 얻는 일은 일견 경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편지글을 읽다보면 이소노 마호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장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심지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업이 앞으로 좋아지리라는 감사의 말을 적었지만, 미야노 마키코는 그렇지 않다. 이소노 마호가 무례하다는 뜻이 아니라(책 후반부로 갈수록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편지를 주고받고 책을 마무리한 데 대해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사려깊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 이어 또 한권의 흥미진진한 조애나 러스의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근대 고딕소설에 대한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남편인 것 같다>와 더불어 조애나 러스의 문학 비평 3부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은 총 11가지의, 주류 예술계가 자신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억압하는 언어들이 소개된다. 금지하기, 자기기만, 행위 주체성 부정하기, 행위 주체성 오염시키기, 이중 기준으로 평가하기, 잘못된 범주화, 고립시키기, 예외로 취급하기, 본보기 없애기, 회피하게 만들기, 미학적이지 않다고 보기.
‘금지하기’. 교육, 창작, 출판을 둘러싼 공식적인 금지가 사라진다고 비공식적인 금지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여가 시간 부족은 예술 활동을 방해하는 강력한 원인이다. 18세기와 19세기의 많은 여성 작가들은 자기 재산을 갖기 어려운 제도하에 있었고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여자가 썼을 리 없다는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