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처럼 빠르게 오가는 잡담, 시시한 듯 재미있는 농담. 잡담과 농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순간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단편집 <스마일>을 읽으면 떠오른다. <스마일>에서 주인공 데이브는 비행기를 타는데, 느닷없이 승객 한명이 죽는다. 정체불명의 옆자리 사람 잭은 그 사망자가 헤로인을 먹어서 운반하는 밀수꾼 ‘스왈로워’라서 헤로인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푼다. 사실 데이브는 스왈로워였기에, 헤로인 펠릿을 삼키고 아랫배의 통증을 느끼며 이미 죽음을 겪은 듯한 기분이었기에, 승객의 죽음이 자신의 가까운 미래 같아 쉽사리 잭의 잡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섬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조이의 사연을 소설로 써보려는 이야기다. 추락하는 경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거대한 섬을 형성한 곳에 간신히 도착한다. “조이가 플라스틱 가득한 해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견한 문장이 뭐였는 줄 알아?”라는 질문에 “금요일은 분리수거날입니다?”라는 대답이 등장하는 대목에 피식 웃다가도 통조림과 그늘을 찾아 헤매는 조이의 분투에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고, 끝없는 쓰레기 앞에서 인간 또한 일회용 같다는 단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왼손잡이와 폭력성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외부에서 단절된 원시부족 칼리와를 관찰하는 농담 같은 인류학적 연구를 담은 <왼>은 실제 죽음이 벌어지며 잔인한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현실의 폭력성은 나른하고 다정한 대화 속으로 언제든 끼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주말에 별장에서 쉬려고 차를 타고 떠나는 차시한이 차의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차오> 또한, 건물의 위험성을 평가하며 개발업자나 기관과 결탁한 차시한의 직업 때문에 어느 순간 공포 어린 드라이빙 이야기로 변해간다. 데이브는 과연 무사히 비행기를 탈출하여 죽음에서 벗어났을까. 섬에서 탈출한 조이는 이후 잘 살았을까. 차시한은 자동차의 공격에서 벗어났을까. 과연 생존이 이야기의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을까.
200쪽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