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폐 안 끼치고 죽는 방법 없을까?’ 새벽 3시 마포대교 위에 선 29살의 ‘나’ . 지나가던 취객이 말리기는커녕 돌아보지도 않아서 ‘나 혹시 투명한가?’ 하는 서글픈 마음에 빠져든다. 폐 끼치지 않고 죽는 법을 궁리하던, 300만원을 갚을 방법이 없어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눈부시게 하얀 여자가 말을 건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을 쓴 박서련의 신작 장편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마법소녀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후 위기처럼 거대한 재앙에 맞서기 위해 마법소녀들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을 만들어 힘을 합친다. ‘나’를 찾아온 마법소녀 아로아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시간의 마법소녀’라는, 중요한 재능을 각성할 예정이다. 참고로 시간의 마법소녀는 사상 최강의 마법소녀가 되리라고 예상된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절박한 삶의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나’의 소망은 대체로 시간 절약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절박함 자체가 ‘나’의 마법 능력이 될 잠재력이 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숱한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이 관객을 끌어모은 슈퍼히어로 서사가 소녀들의 세계와 만난 것이니 낯설 것은 없다. 게다가 ‘마법소녀’라고 해도 연령대는 폭넓다. 지구인을 위기에서 구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여성들의 연합체라는 전제가 성립하는 한, ‘다름’에 주목하지 않는 연대가 성립한다는 소설의 설정에 끌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필두로 한 마법소녀 만화, 애니메이션의 팬도, 슈퍼히어로영화의 오랜 관객도 마법소녀들의 능력별 활동 방식과 신규 멤버의 스카우트 과정 등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외계인보다 두려운 기후 위기라는, 평범한 열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재앙에 대항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마법소녀들이 맞서는 장면에 이르면 당신이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든 그것보다 거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실린 박서련 작가의 ‘작가 노트’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179쪽
“흔한 얘기인걸요, 세계를 구하고 본인은 망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