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1960년대와 1970년대 편이 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은 17년이 지난 2022년, 1980년대와 1990년대 편이 나오면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었다. ‘고고학’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는 유물과 유적을 찾아내듯이 20세기 중반부터 세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세세하게 추적하고 음반과 기사와 관련 사진들을 그러모았으며 그때그때 놓칠 수 없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특히 한국이라는 공간의 현대사적 특성은, 저자들이 정한 ‘한국 팝’의 개념과 잘 어우러진다. ‘한국 팝’이란 대중가요 전체가 아니라, ‘팝’이 ‘한국’과 만나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개념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주둔한 미군은 연예공연이 필요했으니 195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무대’ 출신의 신예 가수들이 현대적인 대중음악을 만들어나갔고, 이후 1960년대를 수놓은 신중현과 펄시스터즈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은 현대 한국의 역사적, 지리적 변화와 따로 떼어놓고 볼 수가 없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생음악 살롱이 인기를 끌고 그룹사운드가 무대에 선다. 1970년대에는 유신 선포의 엄혹한 분위기에도 단속을 피해 새벽까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고고 클럽이 유행한다. 그렇게 피어오르던 대중음악은,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철퇴를 맞는다. 그렇지만 대학교를 중심으로 생겨난 캠퍼스 그룹들이 저변을 다졌으며, 록 음악을 선호한 언더그라운드적 정서의 ‘신촌파’도 있었다. 1980년대로 가면, 강남의 개발과 함께 논현과 역삼에 여러 기획사와 업체가 자리 잡으면서 이곳이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다. <신사동 그 사람> <
비 내리는 영동교> 같은 노래 제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온 1987년에는 ‘제1회 한국 록 그룹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으며 1990년대에는 ‘음반 사전 심의 폐지’가 이루어지고, 힙합을 비롯한 더 다양한 해외 장르들이 한국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는다. 과거로 음악 여행을 떠나고 싶은 독자라면,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보길 추천한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60년> 223쪽
“김치스를 위시한 새로운 세대의 신인 그룹들은 대개가 당시 최신 유행 음악이나 온 세계를 휩쓴 비틀스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20대 초반 또래의 나이 어린 연주인들끼리 모여 팀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