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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는 가방에 책을 함께 싸는 사람이라면 여기 소개하는 다섯권의 책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묵직한 목소리로 현실을 다시 일깨우는 만화 <지옥>은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글과 그림으로 협업한 작품이다. 1권이 선을 보였으니 이후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기다려봄직하다. 현실의 상황을 다시 읽게 하는 손보미 작가의 <작은 동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백온유 작가의 <유원>, 그리스 신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하는 에이드리엔 메이어의 <신과 로봇>, 그리고 물리학자 이종필의 <빛의 전쟁>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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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인기 칼럼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을 연재하는 영화학자 정종화의 책 <조선영화라는 근대>가 출간되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기도 한 저자는 <조선영화라는 근대>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영화를 중심으로, 1901년에서 1945년까지 한국의 근대 영화역사를 정리했다. 일제강점기의 대중문화를 지금 평가할 때 항일 혹은 친일이라는 기준만이 사용되기 쉬운데, 이 책에서는 조선영화와 일본영화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미적 맥락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영화인가 혹은 한국영화가 아닌가 하는,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관통하는 여러 영화들은 관람이 불가능한 작품도 많기 때문에 정종화 연구자의 글이 더 귀할 수밖에 없다. 일제시대에서도 전시체제기에 해당하는 1940년대부터의 영화는 그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띠는데, 이는 배묘정의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 같은 연구서와 비교해도 흥미롭다. 공연과 영화 같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조선영화라는 근대> <스티븐 소더버그:인터뷰>, 영화를 읽는 두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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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클라브생. 시인 랭보는 풀을 그렇게 표현했다. 영어로 하프시코드, 프랑스어로 클라브생, 이탈리아어로 쳄발로라고 부르는 피아노가 있기 전의 건반악기 중 하나인데, 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와 달리 현을 울려 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볼륨이 작으며 강약 조절이 되지 않는다. 숲을 헤치며 부는 바람 소리와 풀밭인 초원을 스치는 바람 소리의 차이. 알랭 코르뱅의 <풀의 향기>는 예술 작품과 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 랭보를 필두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나 화가들이 풀을 생각해왔는지, 어떤 의미로 풀이 언급되는지를 책에서는 수시로 언급한다. 꽃이나 나무가 아닌 풀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 <풀의 향기>를 쓴 알랭 코르뱅은 <사생활의 역사>의 공저자이며 <날씨의 맛>을 쓰기도 했는데,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문 분야로 한 역사학자답게 수많은 문헌들에 살아 생명력을 빛내는 온갖 풀의 이야기를 찾아 소개한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풀의 향기> <아무튼, 산> 자연과 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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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아파트가 돈을 더 잘 번다.” 열심히 일해서 아무리 연봉을 올려도 부동산 인상폭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을 자조하는 이 말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일해서 얻는 소득이 자본가가 부동산, 금융상품 등의 자본으로 앉아서 버는 수익보다 낮은 것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 격차가 쌓이고 쌓여 자본주의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 <21세기 자본>의 설명이다. 토마 피케티가 대단한 것은 명제를 통계자료와 그래프를 통해 명료하게 설득하고, 경제학자로서는 다소 급진적일 수 있는 주장과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의 깊숙한 근원으로 파고든다. 삼원사회와 노예제도가 역사 속에서 포스트식민사회를 거쳐 하이퍼자본주의사회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마치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처럼 보였던 지금의 체제가 실은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작동되었음을 데이터와 그래프로 증명해낸
씨네21 추천도서 <자본과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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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작가가 창가 앞에 앉아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을 어루만진다. 고양이에게서는 ‘고롱고롱’ 기분 좋은 목울림 소리가 난다.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에 관한 산문집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막연히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하여>는 ‘작가’와 ‘고양이’라는 총합이 가져오는 이미지를 산산조각내는 살풍경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농가에서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작가에게 고양이는 집 안팎에 늘 있는 존재였다. 야생에서 불임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들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에 개체수 관리가 필요했고 집에서 그 역할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새끼 고양이를 물에 빠뜨려 개체수를 조정하고, 외딴 농가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야생 뱀을 총으로 쏘는 등 자연이 부과하는 의무를 감당하던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고양이를 없애야 하는 미션이 아버지에게 떨어진다. 결국 고양이를 한방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엽총을 발사한 사건을 작가는 ‘고양이 홀로코스트 사건’
씨네21 추천도서 <고양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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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오게 된 문학과지성사의 고전 시리즈 스펙트럼이 2차분을 선보였다. 포켓북처럼 작고 가벼우나 밀도가 높은 시리즈다. 우선 더운 날씨에 어울릴 E. T. A. 호프만의 오싹한 단편집 <모래 사나이>가 있다. 단편 <모래 사나이>에는 잠을 안 자는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려 눈알을 빼앗아가는 모래 사나이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모래 사나이의 정체에 집착하고, 눈을 절대 깜빡이지 않는 아름답고 기묘한 여성과 조우하여 점점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비슷하게, <적막한 집>은 어느 사람 없는 집 창문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을 목격하고 작은 거울을 사서 그 여인을 몰래 관찰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연금술, 자동인형, 정신착란, 몽유병 등 과거 서구의 정신의학적 탐구와 관련된 소재들이 예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
씨네21 추천도서 <문학과지성사 스펙트럼 시리즈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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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학교에는 ‘순결캔디’를 나눠주는 사람이 종종 나타났었다. 대체 학생이 왜 사탕을 먹으며 순결을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보니 어느 종교의 성교육 행사였다는데,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20년이 된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 성교육을 맡아온 보건교사이고,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어른들이 학생들의 성 자체를 여전히 쉬쉬하는 가운데,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낀다. 한편 남자는 좀 폭력적이어도 된다는 관대한 분위기가 여전하니 남학생들의 괴롭힘은 진화하여 여성 교사의 치마 속을 거울로 보거나 사진을 찍고 단톡방에 여학생들 사진을 올리며 성희롱을 한다. 자신이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 자체에 무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 이성 교제 수업에서 관계를 진전할 때 서로
씨네21 추천도서 <성 인권으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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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의 시작은 현재 시점,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이진오의 상황에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할아버지 이백만의 이야기로 시간이 쏜살같이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삼대라면 같은 성을 공유하기 거의 불가능한 한국에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이백만의 증손 이진오까지, 이씨 집안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려낸 이 소설이 왜 철도원 삼대를 내세웠을까. 그 연원에는 식민지 시대에 철도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있다. “철도가 놓이면서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부역에 끌려나와 고생하고,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당한 조선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열차 운행과 철도 공사를 끈질기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맘때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가 망하여 일어나게 된 의병들도 철도를 주요 공격의 목표로 삼곤 했다.” 하지만 철도원은 의병이 아니다. 철도원은 오히려 현실에 순응해 그 안에서 길을 찾고자 했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열심과
씨네21 추천도서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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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파악하고 언어화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단정짓고 구분하는 언어가 아니라 서로 맞잡은 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혹은 그 손을 언제 놓아버렸는지를 직시하는 언어. <씨네21>이 이달에 소개하는 책은 그러한 사유를 제공하는 책들이다. <철도원 삼대> <자본과 이데올로기> <고양이에 대하여> <성 인권으로 한 걸음>, ‘스펙트럼 시리즈’(<모자> <첫사랑> <꿈의 노벨레> <모래 사나이> <실비/오렐리아>)와 함께 한발 더 앞서가고 한번 더 숙고하는 힘을 얻으시라.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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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이유로 이렇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한 시기는 없었으리라. 초여름의 개학,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지인 몇이 신기할 정도로 아이가 설레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연한 태도로 씩씩하게 학교로 가는 초등학교 1학년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소식이 한창인 시기에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당근 유치원>이 출간되었다.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비롯한 수작으로 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안녕달 작가가 이번에는 유치원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빨간애가 유치원에 새로 왔다. 선생님은 목소리만 크고 힘이 세다. “아… 유치원 가기 싫다.”
완행열차를 타고 부석사에 가던 날, 어느 역에선가 소풍을 가는 유치원 두 학급이 나와 같은 객차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몇 정거장 뒤에 선생님들이 원생들을 인솔해 내리자 나는 침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객차에 타고 있던 어르신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당근 유치원> 어린이의 오늘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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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박지성 선수처럼 뛰어난 스포츠 ‘천재’들이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중산층 부모들에게서 들은 말은 이랬다. 공부가 답이 아니며, 아이가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분야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기 위해, ‘여러’ 종목의 운동과 예술을 고르게 시켜본다고. 초등학생 때 이 과정이 집중되는 이유는 이른바 ‘엘리트 교육’을 일찍 시작하기 위해서다. 모든 걸 일찍, 선행학습시켜 앞서가게 하자는 믿음은 한국 사교육의 종교다. 하지만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은 전문가로서의 길을 일찌감치 선택한 사람보다 제너럴리스트로 살다가 자신의 일을 새롭게 찾아내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다룬다. 천재성에 엄격한 조기교육을 더한 타이거 우즈와 대비되는 비교항으로 테니스 선수인 페더러의 예를 든 것을 포함해,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한우물만 파는’ 삶이 아닌, 가능한 한 여러 가지를 ‘일단 해보는’ 삶이 제법 효과적일 수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정신과 의사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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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란 스토리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녜스 바르다는 1986~87년 겨울 발행된 <필름 쿼털리>에 실린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의 생각과 일치한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녜스 바르다의 말이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에도 유효한 말일까 궁금해진다. “스토리나 시나리오보다는 영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 영화가 작가의 주관을 선명히 드러내는 개인의 예술활동일까, 아니면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제작, 유통되는 상품일까에 대한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쨌든 이것이 바르다의 대답이다. 1962년 3월 <포지티프>에 실린 인터뷰부터 2017년 10월 <벌처>에 실린 인터뷰까지를 묶은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바르다가 얼마나 생각과 말, 작품 세계가 일치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증언하는 기록물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g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녜스 바르다의 말> 말과 영화가 일치했던,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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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책 중 ‘역사에 남은 감독’ 부분을 펼쳐 숫자를 세어봤다. 21명의 감독 중 여성감독은 1명, 예의상 넣었나 싶을 정도의 숫자다. 굳이 감독을 예로 든 이유는 이 책에서도 “여성감독은 현장에 더 많은 여성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성이 중심이 된 인물과 이야기를 고민한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1930년에 일한 감독 도로시 아즈너는 여성감독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작자들은 남자들이 더 편한가 봐요. 남자들은 바에도 같이 가고 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서 그런가요.” 역사 속에서 사회 변역을 이끌었던 여성들은 그 이름이 지워지거나 기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왔다. 할리우드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그녀들의 이야기>는 1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할리우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남성 영화인에 비해 덜 알려진 여성 영화인의 활약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자세히
씨네21 추천도서 <할리우드: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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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읽고 썼던 리뷰를 다시 찾아봤다. 여름의 감각, 끈적한 공기, 남의 연애를 훔쳐보는 듯… 책을 읽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 요란하게 남아 있다. <여름, 스피드>가 사랑에 이르는 달뜬 계절을 기록했다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은 우연히 마주친 과거와 비로소 이별하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니까 전작이 늦봄부터 초여름의, 괜히 들뜨는데 그게 싫지만은 않은 멜랑콜리의 시간이었다면, <시절과 기분>은 모든 게 서툴렀지만 분명 그때는 좋았을, 그러나 끝나서 다행인 흑역사를 정신 차리고 들여다보는 과정인 셈이다. 지나간 연애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다소의 비감이 동반된다. 연애의 뒤끝은 절망적이고 씁쓸하다. “이거 니 책 맞제?”(<시절과 기분>) 7년 만에 받은 문자 속에서, 졸업 후 오랜만에 찾은 대학 교정에서(<데이 포 나이트>), 내가 쓴 소설 속에서(
씨네21 추천도서 <시절과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