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해온 작가 아밀의 단편집 <로드킬>의 표제작 <로드킬>은 희귀 인종으로 분류된 여자아이들만 모여 있는 학교 이야기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임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 여느 여자들과 달리 돈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 등의 문제로 타고난 신체를 유지한 여자들이 딸을 출산하면 이 여학교에 보낸다. 학생들은 여자다운 여자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다가 나이가 차면 결혼 상대를 찾으러 오는 남자들을 만나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여성의 울적한 근미래를 다룬 SF 소설들이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동시에 ‘신붓감’을 찾는 설정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도 베트남 여성 유학생에게 어느 시에서 농촌 총각과의 결혼을 권유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중단된 일이 있었다. <로드킬>의 여학생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학교 밖으로 나갔다가 질주하는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데도 자유를 찾아 나갈 생각이다.
소녀들은 왜 갇혀 있어야 하고, 왜 탈출을 꿈꾸고, 모험을 감행할까. 관광 대상이 되어버린 열대 부족의 전통에 의거하여 주술사로 키워지며 독성 있는 식물을 가지고 놀거나(<라비>), 바다에 제물로 바쳐질 날을 기다리며 수놓는 처녀로 자라거나(<공희>), 단편집 속 여성들은 단절된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재주를 갈고닦다가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달아난다. 언제나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만은 없겠지만 제 의지대로 제 손을 써서 제 운명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의미 있다.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공기청정 공간이 생기며 사회에 새로운 차별이 추가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나 불안과 자학의 청춘을 보내다 감금이나 마찬가지인 결혼 생활을 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외시경>을 읽다 보면 탈출을 감행하는 판타지 속 소녀들의 이야기가 어디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 계급과 성별을 기반으로 촘촘하게 차별이 수놓아진 현실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 기후변화가 밀어닥치면 좋아질 일보다는 나빠질 일만 남아 있으니, 그냥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탈출을 소망하는 힘을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 없는 당신을 부르는 것이 당신에게 다다르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