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표지의 영향 때문인지 손원평 소설에서는 서늘한 응시가 연상된다. 무감한 표정으로 상대를 뚫어지게 보는 텅 빈 눈동자, 대상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창자까지 꿰뚫어본다. 현실에서 신기한 일이 생겼을 때 흔히들 “소설 같다”고 감탄하지만 으레 독자에게 사랑받는 소설이란 현실의 문제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을 때가 많다. 독자들이 손원평 소설을 지지하는 이유도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 인간의 선과 악에 서슴없이 직면하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5년 만의 소설집 <타인의 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집이 주요 사건의 장소이자 촉매제로 그려진다. <타인의 집>은 불법적인 셰어하우스가 배경이다. 구축 아파트를 전세로 얻은 쾌조씨는 주인 몰래 방을 쪼개 여럿에게 월세를 주고, 시은, 희진, 재화 언니는 아파트 공용 공간에서 사사건건 부딪친다. 화장실과 냉장고를 공유하는 희진과 재화 언니가 전쟁을 시작할 때마다 제 방에 틀어박힌 시은은 재빨리 귀에 이어폰을 꼽고 유튜브를 재생한다.
집을 타인과 함께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소하고 치졸한 사고들, 자잘한 소음과 냄새, 원치 않아도 맡게 되는 다른 사람의 체취를 경험한 사람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진저리를 칠 것이다. 주인공들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여기지만, 한국에서 현상을 유지하려면 끝도 없이 노력해야 한다. “제자리걸음은 곧 퇴보라는 불안감”과 “늙어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던 걸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자조하는 문장에 힘주어 밑줄을 긋는다.
<4월의 눈> <zip> <아리아드네 정원>에도 어김없이 평온했던 집에 침입자들이 나타난다. 꼭 현실을 반영해야 좋은 문학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현재의 인식과 근미래의 우울, 타인의 복잡성을 발견한다면 문학은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오늘 뉴스에서 청소노동자의 사망 뉴스를 읽고 손원평 소설집에서 거의 같은 세계관을 가진 소설을 연달아 읽었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란 처음부터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아시죠? 자본주의
그럼에도 왠지 나는 현실에서 조금씩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텅 빈 학원에서 수화기 너머로 종일 환불이며 온라인 수업에 대한 상담을 하고 나면 내 생활이 몸을 아등바등 갈아넣어 겨우 얻어낸 힘겨운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만하면 만족한다고 위안하다가도, 발밑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해 제자리걸음은 곧 퇴보라는 불안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타인의 집>, 158~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