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트리스트럼 샌디>를 첫책으로 하는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가 20주년을 맞았다. 총 140종 166권의 책이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중 3권이 새로운 판형의 리커버판으로 선보인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세권 모두 시집이며, 대산세계문학총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번역을 맡은 윤영애 교수의 옮긴이 주, 옮긴이 해설, 작가 연보야말로 이 책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알아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다. 시대 분위기, 철학과 정치, 경제의 변화상황 속에서 ‘악의 꽃’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시어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게 만든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의 세상을 살갑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시집이다. 찌는 여름이 신물난다고 생각하는 7월 한복판에도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 같은 시를 읽으면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거인이 되고 싶다/ 이 산 저 산을/ 이 구름을/ 이 푸른 하늘을/ 이 여름 아침을/ 양팔로 받아들이고 싶다/ 거인이 되고 싶다/ 산 저편의 행복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밤으로 향하는/ 모든 그리움을/ 작은 새처럼/ 잡아버리는/ 거인이 되고 싶다”. 표제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지구상의 모든 외로움에 바치는 시.
마지막으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은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집 중 하나.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그의 시 세계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이 시집을 볼 것. 최성은 교수는 쉼보르스카의 시집과 산문집을 포함해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들도 폴란드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역사와 비극에 대해 쓴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다 보면 폴란드 역사와 작가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
감사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와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안도를 느낀다.
내가 그 선한 양의 무리 속에서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하면 평화롭고, 그들과 함께하면 자유롭다. 그것은 사랑이 가져다줄 수도, 앗아갈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다. (후략) (<끝과 시작>,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