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SNS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K장녀 이야기의 인기를 옆에서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을 차녀들을 위한 책이 드디어 나왔다. “부모도 첫째도 자기가 가정의 주인공인 줄” 아는 가족 내부에서, 언니가 물려주는 옷을 입고 언니가 보는 책을 곁눈질하면서 입 다물고 가족 내 관계를 관찰하는 역할을 맡게 된 둘째 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책이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가족 문화는 공고하고, 구성원마다 자리가 배정된다. 첫째는 첫째라서 집안 식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둘째는 무명 배우처럼 아예 없는 사람 대우를 받는다. “나만 없어, 돌 사진.” “아람단이나 걸스카우트는 언니만 시켜줬던 사람 접어.” “내가 입던 건 늘 헌 거, 내 마음은 늘 헝거(hunger)!” 둘째에게 돌 사진만 없을까, 엄마는 첫째 입맛은 기억해도 둘째 입맛은 절대 머릿속에 입력하지 않고 아빠는 자식들이 싸울 때 유독 둘째가 첫째 위에 올라타면 감히 서열을 어겼다고 발끈하며 뛰어든다.
이런 현상이 괜히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입장에서 양육이란 첫째는 노심초사지만 둘째부터는 쉽다. 굳이 유기농으로 이유식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고, 놀이터에서 무릎이 깨져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며, 걸스카우트는 안 보내도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면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둘째는 ‘막 키워도 되는’ 존재가 된다. 한편 둘째 입장에서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너무 아쉽다. 그래서 가족 내부의 다툼이 발생하면, ‘중립 기어’를 자처하며 서로의 아쉬움을 들어주고 달래며 관계를 중재하게 된다. 한국적 차녀의 설움이 최고치를 찍는 일화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여아 선별 임신 중단으로 당시에는 둘째 딸이 태어나기도 어려웠고 태어난다 한들 짐짝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이다. 그렇게 둘째는 “아들보다 더 나은 딸이 되어 부모의 ‘손해’를 메우고 사랑을 쟁취하며 나에게 실망했던 자들을 후회하게 만들리라 마음먹는다”. 그러니 세상의 차녀들이여, 부모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우리 자신은 실패작이 아니며 ‘연금복권’ 정도는 되는 괜찮은 존재라고 외쳐보자.
31쪽
“당근마켓이 생기기 전부터 언니의 당근이었던 차녀는 동아시아 역학 구도보다 더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족 내부의 정치학을 기민하게 감지하는 레이더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