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주민현은 ‘골목’이라는 시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람과 사람이, 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문. 열리기는 하지만 닫을 수는 없는 문; 인생.” 그가 쓴 시 <어두운 골목>은 익선동의 작은 골목을 걷는 ‘우리’의 이야기로 운을 뗀다. 그리고, “(…)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휴일이란 아직/ 책의 남은 페이지들과도 같아// 우린 다투어도 좋을/ 여든일곱가지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한다”.
2019년 문학3 웹페이지에서 선보였던 시 연재 ‘시작하는 사전’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연재 당시 첫 시집을 내지 않은 신인 시인 24명이 신작시 두편과 함께 각 시의 키워드가 된 단어를 꼽고 그 단어를 그만의 시각으로 재정의했다. 시만큼이나, 시어를 정의한 짧은 글도 눈길을 끈다. 노국희의 ‘창문’은 이런 뜻이다. “종종 나를 데리고 이상한 곳으로 가서 잃어버린다.” 그의 시 <window-watcher> 속 창문은 이렇다. “(…) 허공을 채굴한다/ 바람의 뼈에 오래도록 누락된/ 페이지가 걸려 있다// 이면의 상상을 편성하며/ 창문은 창틀을 벗어난다”.
황인찬 시인은 뒤표지에 실린 추천의 글에 이렇게 적었다. “시는 사물의 의미를 넓히며 사물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일입니다. 시를 통해 우리는 사물에 대한 관념이 우리가 알던 자리를 벗어나 더욱 먼 데 도달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던 개념이 낯설어지는 동안, 시는 단어의 외연을 확장하면서도 적확한 자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익숙한 단어들이 낯설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시를 읽는 첫 번째 즐거움이다. 앤솔러지이기 때문에 단어마다 다른 음악이 연주되는 소리를 듣는다. 이정훈이 ‘셀라’라는 시어로 분류한 뒤 실은 <석유가 나온다>의 도입부는 유머러스하다. “공룡은 어디서 뭘 하고 다녔기에 우리 집 뒷밭엔 석유도 없었을까 밤의 책상은 발굴 현장 같네(…)”. 어디에서 읽기 시작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142쪽 홍지호, <너무 상투적인 삼청동>
사랑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다짐들 / 헤어지지 않고는 적을 수 없는 예언과
미치지 않고서야 / 미칠 수 있었겠는가
견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희망이라는 생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