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일곱 조각>은 일곱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연작소설집이고 모두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동일 인물이 맞는지 헷갈린다. 은하, 민주, 성지, 세 여성의 이야기는 다음 소설마다 새로 시작되면서 혼동을 주고 그것이 이 소설집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앞 장이 성지의 이야기로 끝났다면, 다음 장은 친구 민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이 평행 우주 속에서 다른 삶을 살면서, 새로운 페이즈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삶을 살아도 내 주변의 환경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저마다 한계와 좌절은 존재한다. 은하, 민주, 성지가 아무리 다른 선택을 해봤자 한국 사회에 사는 30대 후반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 양성애자인 민주는 혼자 제주도에서 칵테일 바를 운영하다가 또 다음 소설 속에선 쌍둥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의 민주라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진 않다.
은모든 작가는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 중 이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평행 우주가 100개 있다면 저는 그중 80개 세계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99개 세계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 , ‘다시 태어나고 싶어’ , ‘몇살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 등등. 낙담할 때마다 다들 한번씩은 해보는 생각일 것이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그 IF절(만약 내가 ~ 했다면 좋았을 텐데)들이 이루어져 인생이 된다. 여주인공을 방해하는 조연처럼 얄미운 역할만 줄곧 맡으며 지쳐가는 배우 성지는 거울을 보는 게 두려워진다. 얼굴에 미움받을 만한 구석이 정말 있을 것만 같아서. 악플과 출연작에 달린 한줄 평들은 성지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박혀 있다. 그런 그녀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운 좋게 톱스타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삶이라고 좋지만은 않다. 물론 그것은 선택의 일이기도 하다. 항상 최선을 선택할 순 없지만 차선일지라도,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고픈 30대 여성들의 조각들.
65-66쪽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출연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개그맨이 드러누우며 제발 자신을 밟아달라고, 여신의 발에 짓밟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성지 앞에는 맹랑하고 퇴폐적이며 발칙하고 섹시하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진지하게 연기 철학을 논했다던 인터뷰의 제목은 “세상이 제 발밑에 있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