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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
이다혜 2022-05-1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 이혜승 옮김 / 음유문화사 펴냄

19세기를 ‘위대한 소설의 시대’라고 일컫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위대한 소설적 창작이 19세기의 산물이었으며, 소설이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에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생각도 비슷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산문 작가들의 순위를 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호프, 4위 투르게네프로 매긴 뒤 말하기를, “소위 ‘메시지’가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러시아 소설을 말살시켰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롤리타>의 성공 이후 강의를 접고 소설 집필에 몰두했던 나보코프가 유럽 전체를 뒤흔들던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5월 미국으로 이주한 뒤 웰즐리, 코넬 등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작가별로 대표작 하나를 선정해 강의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보코프의 예술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책에서 그는 작품 속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언급이나 그러한 해석 방식에 선을 긋는데, 러시아 작가들이 시달렸던 검열의 문제 때문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된 듯하다. 그리하여 나보코프는 훌륭한 독자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으로, 러시아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 듯 보인다. ‘관념’, ‘사실’, ‘메시지’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을 퇴치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문학 수업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톨스토이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최고의 독자가 냄새 맡고 맛보고 향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강의록을 보면 1부 구성을 정리한 문서 사진과 영역본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있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를 길게 직접 인용한다. 예술적으로 진실한 장면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보는 나보코프의 강렬한 관점을 만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그가 속한 시대라는) 이유로 다소간은 귀족적인.

130쪽

이런 최고 수준의 예술(<외투>)에서 문학은 약자를 동정하거나 강자를 비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다른 세상의 그림자들이 이름 없는 조용한 배의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인간 영혼의 비밀스러운 심연에 대한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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