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의 주인공 나쓰키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두살 터울인 언니가 있는데,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나쓰키는 자신이 마법소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고, 사촌인 유우와는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유우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설정만 보면 기묘하지만, 읽어가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쓰키가 마법소녀가 된 뒤 익힌 마법으로는 ‘사라지기’라는 것이 있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긴다는 뜻이다. ‘사라지기’를 쓰면 부모와 언니는 단란한 3인 가족이 되어 시간을 보낸다는 식이다. 유일하게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나쓰키와 유우는 몰래 부부가 되기로 한다. 둘이 만든 규칙 중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하지만 그 생존이라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나쓰키를 특별히 잘 돌봐주는 이가사키 선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나쓰키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의 강도를 슬슬 높여가는 참이다. 그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봤자 맞기만 한다. <지구별 인간>은 초등학교 5학년 나쓰키가 경험하는 사건들을 그리다가 33살의 나쓰키의 시간으로 이동한다. 나쓰키는 결혼했고, 아직 아이는 없다. 그런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이 결혼, 뭔가 심상치 않다.
<지구별 인간>은 2016년 <편의점 인간>으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이다. 성폭력을 경험하는 순간의 어린이가 유체이탈을 한 모습으로 자신이 경험하는 일을 내려다보거나 몸의 일부가 죽는다고 믿는 일을 묘사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어른으로, 특히 여성으로 자라나는 일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과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는 대목들은 무척 인상적이다. 예측하려는 순간부터 방향을 틀어 뜻밖의 전개를 연달아 맞이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 속 “언제까지 살아남으면 돼? 언제쯤이면 살아남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라는 절박한 질문에 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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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까지 살아남으면 되는 걸까. 언젠가 살아남으려 하지 않아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엄마를 봐도, 시노즈카 선생님을 봐도, 도무지 그런 확신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