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고통스러운 예감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무척이다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어린 시절>) “일상이라는 게 계속되기나 할까? 온 세계가 불타고 있는데 비고 F.가 나와 결혼해줄까? 히틀러의 사악한 그림자가 덴마크에 드리울까?” (<청춘>) “나는 달라지겠다고 약속했고, 그런 다음에는 그 약속을 깼다.”(의존)
내면의 불안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삶 전체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회고록의 형식으로 써낸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은,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하게 솔직하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역사를 재구축하는 작업은 작가가 60살의 나이로 죽기 몇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고통스럽지 않은 순간들이 안긴 고통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남긴 기쁨을 절묘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덴마크의 어떤 가정 내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몇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약물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진다. 책 제목이 ‘어린 시절’, ‘청춘’, ‘의존’이라는 점은 삶이 안긴 고난의 객관적인 경중과 직결되지 않는, 글을 쓰던 시기의 토베 디틀레우센의 상념이 묵직하게 고여 있는 때가 언제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 <의존>은 가장 무거우면서도 문제적이고, 이 회고록 연작이 시작되어야 했던 절박한 이유로 보인다.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이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디틀레우센은 지독히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언어 구사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음에도 고등교육을 포기해야 했다. 10대 후반에 가정부, 사무 비서 등의 직업을 가졌던 디틀레우센은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소녀의 마음>을 출간한 뒤로 시집과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디틀레우센의 이름을 해외에 알린 작품은 ‘코펜하겐 삼부작’이었는데, 사후인 1985년에 미국에서 <어린 시절>(1967)과 <청춘>(1967)이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 105쪽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변할 때, 우리 자신을 통제하기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