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광산업과 제련업으로 부를 축적한 구겐하임 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서점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는 등 상류층 여성의 모범적 인생을 거부한다. 유럽으로 떠난 페기는 초현실주의를 비롯하여 21세기 초반 격동의 시대와 어우러진 수많은 예술 운동을 접하고 작가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한때 예술가 남편 곁에서 자신 없는 모습으로 폭력을 견디며 순종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점차 자신만의 안목으로 미술 작품을 하나둘 사들이며 컬렉터로서의 인생을 개척한다. 페기의 인생이 가장 극적인 순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파리로 닥치는 와중에 열심히 작품을 사들인 때일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피난을 떠난 가운데 미국인이라 해도 유대인이면 잡혀갈 수 있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페기는 열정적으로 모은 작품을 가구로 포장해서 미국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페기는 뉴욕에서 ‘금세기 예술 갤러리’를 열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유럽 예술과 미국 예술을 혼합한 현대적 공간을 창조한다.
페기 구겐하임의 전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페기가 예술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내밀한 컬렉션을 만들었으면서도, 치밀하게 비용을 계산했다는 점이다. 페기는 부유했으나 구겐하임 집안의 명성에 어울릴 만큼 돈이 많지는 않았고, 그런 까닭에 작가를 지원하면서도 작품의 적정가는 얼마인지 자신의 재정 상태는 어떤지 전시의 수입은 얼마인지 확인하는 일을 늘 잊지 않았다.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을 발굴하여 후하게 지원한 만큼이나, 훗날 폴록의 계약 위반 사실을 알고 소송을 벌인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면서도 주나 반스처럼 한번 마음 준 예술가라면,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아도 끝까지 지원을 끊지 않은 애정 어린 모습도 보여주었다. 훗날 베네치아에 정착한 페기는 대저택에서 개들을 키우며 살다 세상을 떠났으니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페기가 남긴 흔적이 바실리 칸딘스키, 알렉산더 칼더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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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이 넘치고 혁신적이며 누구나 쉽게 찾아오는 곳, 손님들을 끌어들여 예술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예술가나 비평가들과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고취시켜주는 장소가 바로 그녀가 그리는 갤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