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 앤 카슨 지음 / 윤경희 옮김 / 봄날의책 펴냄
<메모리얼 드라이브>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 /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펴냄
시인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메모리얼 드라이브>의 부제는 ‘딸의 비망록’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혼한 두번째 남편에게 마흔살에 살해당했다. 거의 30여년이 지나, 트레스웨이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살해당한 사건을 둘러싼 기억을 책으로 썼다. 1부에서는 아직 위기를 피할 수 있을 듯 느껴지지만 2부에 이르면 어머니가 폭행당한 사실에 대한 경찰 조서를 비롯해 파국의 징후가 여기저기서 굉음을 낸다. 살해당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얼마나 법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부터 사후의 재판 기록까지 글이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외친 “안돼, 안돼, 안돼”라는 소리를 상상하는 비통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앤 카슨의 <녹스>는 192쪽의 종이가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진 형태의 책.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쳐 완성된 <녹스>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22년간 만나지 못했던 오빠의 죽음을 접한 앤 카슨이 그의 삶을, 존재를, 기억을 종이에 밀착해낸 결과물이다. 책의 내용은 스크랩, 시와 산문, 번역문(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서정적 비가)을 오가는데, 고인을 우리가 알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충분히 알 기회를 얻지 못한 가까운 이를 상실한 무중력의 감정 상태를 함께 탐색하고 체험하게 한다. 단편적인 기억의 발굴, 빌려오고 옮겨낸 단어들, 끝없이 솟아나는 슬픔의 언어 속에서, 기나긴 하나의 페이지로 구성된 아코디언북이 지니는 물성을 통해서 독자는 애도의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메모리얼 드라이브>에는 윌리엄 포크너가 인용된다. “의식이 기억하기 전에 기억은 알고 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을 써내지 않고는, 기억도 사라진다. 애도의 고통과 아름다움은 거기 존재한다. 이 두권의 책에 실린 언어의 행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