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는 없어>는 2019년 이후 수상작을 내지 않았던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8회 수상작이다. 소설은 등반가였으나 왼쪽 다리를 잃고 박물관 관장으로 살고 있는 화자가 자신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며 다만, 주인공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삶을 재구성할 뿐이라고 못 박으며 시작한다. 측량의 천재, 측정에 대한 집요함으로 측정 도구를 개발한 발명가, 과학자이자 백만장자. 그녀에 대한 수식은 다양하다. 대개의 천재들이 그렇듯 정확하게 측량하고 싶다, 는 목적에만 충실했던 그녀의 일생은 존엄함마저 느껴진다.
그녀는 어릴 때 최소 단위가 가진 허점을 깨닫고 정확한 측량을 배우고 싶었으나, 측량과 계산이 비슷하다고 여긴 담임교사의 착각으로 회계학과에 입학한다. 이후 찌그러지지 않는 햄버거 번을 개발하고 버거킹의 고문이 된 후 버거용 납작양상추, 납작토마토 등을 개발하기도 한다. 천재의 발자취마다 매력적인 위트가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진면목이다. 미얀마에서 단위 도입을 검토 중이었던 그녀는 비행기 추락 사고 후 감쪽같이 사라진다. 국정원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의 관장을 찾아와 일기장 열람을 청한다. 그녀가 간첩이었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미스터리하게 문을 연 소설은 이내 한 천재가 신의 계시처럼 측량 도구에 매료된 이후 연구자로서 느꼈던 고독을 그려내고, 미얀마 난민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금요숲과 국정원까지 보태진다. 그리하여 그녀, 혹은 이 소설이 가닿으려는 측량의 결승점은 어디일까.
“그녀는 인터뷰에서 확정성의 아름다움을 자주 언급했다. 이는 처음에 명백함, 확실함, 분명함, 정확함, 적확성 등으로 표현되다가 마침내 확정성이라는 단어로 확립되었다.”(114쪽) 불확실한 것은 불안하다. 그러기에 완벽을 추구하고 단위를 통제하고 싶었던 천재는 유령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가 연상됐다.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별을 동경하고 ‘남들이 저게 무슨 소용 있냐’고 하는 일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의 이야기. 완벽한 이상향을 추구함으로써 도리어 미완성 상태의 불안함이야말로 인간에게 필요함을 깨닫는.
155쪽무언가에 깊이 몰두한 인간만이 경험하는 외로움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은, 지뢰밭임을 알면서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리라 여기며 그곳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