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진, 단요 지음 창비 펴냄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초고난도 문제를 가리키는 킬러 문항은 보통 공교육 교과과정 밖에서 복잡하게 출제된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킬러 문항 하나가 1조원짜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게 바로 이 킬러 문항이다.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킬러 문항의 문제를 이렇게 풀이한다. “교과 범위는 줄이고 상위권 변별력은 유지하는 흐름 속에서, 문제풀이 요령이 과도하게 강조되며 시험의 퍼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현직 의사이자 의과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해온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사교육 현장을 꼼꼼히 취재해 쓴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지금의 수험생들이 상대하는 수능이 초창기 수능과 다르며, 그래서 기성세대의 짐작과는 크게 다른 무엇임을 증명해낸다. 더불어 현재의 수능 문제가 퍼즐화되면서 그 퍼즐을 푸는 공식(수학능력이 아닌)을 제공하는 사교육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룬다.
구체적인 출제 문항과 그에 얽힌 문제들을 사례로 제시하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더하는데, 신비화화된 사교육을 넘어서 수능이라는 시험의 현실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오래전에 수험생이었던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막연하게 생각하는 수능이라는 시험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냉정하게 조명하며, 지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어떤 혼란에 직면했는지를 차근차근 살핀다. 학교에서도 수능에서도 멀어진 기성세대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학생들이 수능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응용하는 공부를 하는 대신 문제를 패턴으로 인식하고 해당 패턴마다 어떻게 풀이할지를 집중해서 암기하고 훈련한다는 현실 때문에. 현실의 고도화된 사교육은 ‘비밀 고액 과외’나 ‘족집게 강사’ 같은 단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서울과 비서울간 격차가 어떻게 높아져만 가는지, N수라는 것이 왜 필수가 되어가는지가 도표를 기반으로 하는 분석을 통해 선명해진다. ‘사교육 무용론’이 우세하던 국어에서마저 ‘출제 경향의 변화로 인한 수능 해킹’, ‘콘텐츠 시대로의 이행과 사교육 고도화’, ‘서울/비서울 격차 심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기성세대가 자녀들을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몰아붙이며 인기 대학 진학을 종용하는 데에는, 집단적 기억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단순히 수능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없는 책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독할 가치가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세상 이야기이기 때문에.
교육 혁신을 논할 때 이론에 바탕한 도입 취지와 기대 효과만을 논거로 삼는 것은 설계도면만 보고 완공된 건물을 상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