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의 파스칼 키냐르 소설. 17세기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암흑 속에서 더듬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듯 느리고 섬세하게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전에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세상의 모든 아침>의 생트 콜롱브와 <로마의 테라스>의 조프루아 몸므를 다시 등장시킨다. 산발적인 장면들로부터 서서히, 인물들과 이야기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작곡가 생트 콜롱브의 제자 튈린과 조프루아 몸므의 아내 마리에 주목하라. 세상을 등진 그 두 예술가와 연결된 두 여성에게. 17세기 음악가들의 생활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음악은 자주 자연에 비유되며 파스칼 키냐르 특유의 풍경을 그려낸다.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암호처럼 문장이 이어져간다. 문장은 신비할 정도로 이미지를 그려내고 정서를 전달한다. “유령이란 무엇이겠나? 우리 자신 너머를 빙 돌아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우리 자신의 죽음에 달뜬,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일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 자신이란 무슨 말일까? 그건 제 그림자에 삼켜지는,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이지 않은가?”
고독한 예술가들과 욕망하는 인물들이 뒤얽히며 진행되는 <사랑 바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기보다는 ‘이미지’와 ‘소리’(음악)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도 전에 카드는 이미 다 나눠졌죠. 우리는 아주 엉망인 채로 게임을 시작해요.” “조화로운 우주? 그건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의 왕국이죠.”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들을 천천히 이야기에 등장시킨다. “야콥 프로베르거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미지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시대의 유일한 음악가다.” 그런 그의 삶은 글을 통해 생생해지고 그의 제자인 지빌라 공녀의 금욕적인 삶은 프로베르거의 삶의 대립항이 된다. 예술에 대해 거듭 물으며 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포개지는 책 후반부에 이르러 하튼과 생트 콜롱브의 대화는 이 책이 음악과 맺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새가 노래할 때는 갈색 나뭇가지 틈에서 잘 보이지 않지요. 노래를 잘할수록 더 보이지 않지요. 선생님 안에는 새가 되길 바라는 무언가가 있군요.” 또한, 소설 중에 나오는 이런 문장. “화가 몸므는 말하곤 했다. 몸이 영혼을 요구한다고. 그러나 몸은 영혼을 얻기 전에 하나의 이미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익숙하면서도 마법 같은 주거로 삼는다. 그러곤 그 주거를 영혼이라 부른다.” 어쩌면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이라는 몸은 음악이라는 영혼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언어에서 이름에 해당하는 것. 기억에서는 추억이고, 음악에서는 울림이다. -3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