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결혼 후 육아와 살림을 하며 연주에 손을 놓았다. 때때로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왈츠나 브람스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피아노 앞에 앉기보다 다른 누군가의 연주를 듣는 삶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딸이 일찍 아이를 낳아서 벌써 할머니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현실은 어딘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원희는 이제 자신은 그저 클래식 애호가일 뿐이라 여겼지만 내심 아직도 언제든 연습만 하면 손가락이 금방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만.”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도입부는 급할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60대 원희의 어느 날을 담는다. 경지에 오른 중견 연주자가 자신의 취향이라고 굳게 믿어온 원희가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연주에 빠져든다. 요양원에 간 시모, 치매인 어머니의 돌발행동에 황망해진 남편, 셋째를 임신한 딸, 그리고 시작된 덕질.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스쳐가는 삶의 순간들 사이로 고개를 들어보면 거울 속에서 “자신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늙은 눈빛”과 마주친다. 이 소설이 도약하는 대목은 고주완을 덕질하다가 자주 듣게 되는 음악이 평소에 듣지 않던 20세기 작곡가인 버르토크라는 데 있다. 논리로 쌓아올렸던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불협화음이 되어간다는 자각이 기승전결 없는 버르토크의 음악을 통해 통렬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말이 뒤섞이는 일상의 편린을 그려냈던 소설집 <은의 세계> 이후 펼쳐낸 또 다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에서 위수정은 인물들의 내면을 한층 세밀하게 파고든다. ‘작가의 말’에서 “인칭에 관해 생각했다.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칭을 잠깐 고민했던 것이 나를 가라앉게, 그러므로 담담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 <아무도>는 ‘나’의 이야기다. 관계의 균열 앞에서 가족의 과거사를 심상하게 돌이켜보는 ‘나’는 “지나온 과거에 대해 마치 미래의 이야기를 하듯” 소설 속에 부려놓는다. 지나온 시간이 왜 이렇게까지 애달프게 이야기되었는지 혼란스럽게 추측하게 되는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고요한 울림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라는 답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에는 침묵이 뒤따른다. 소설집 중반에 먹지에 인쇄된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는 다른 작품들과 이질적인 분위기의 단편이며, 작가가 ‘납량 특집’ 기획으로 썼다는 <멜론>은 결혼과 임신이라는 사건이 불러온 불안을 그렸다. 시간을 다 가진 것 같은 일요일 오후에 읽으면 좋을 소설들. 다 읽고 나면 거울을 들여다보며 낯선 얼굴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알은척하는 것이 싫었다. 아니, 좋았다. 너무 좋아서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집>,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