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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멜로디를 떠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30초 정도였다고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에는 이미 화음을 갖춘 멜로디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투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둔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단 1분, 2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곡이 탄생할 가능성도 커지지 않을까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고 산문집이다. 2014년 중인두암이 발견된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그가 중인두암 치료 이후인 2020년 4월 직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듭하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차분한 고백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특정한 컨셉이 있다기보다는 죽음을 앞두고 신변 정리를 하듯 지난날에 대해 써내려간 책이어서인지,
[리뷰]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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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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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글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아구아 비바>를 펼쳤다면 이 책은 절반은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아구아 비바>는 이해가 안되는 문단의 반복이다. 대여섯줄을 잘라내 SNS에 올린다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되겠지만 이어지는 문단과 문단은 서로 연결성을 갖지 않고 있어 여러 페이지를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당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화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읽다 보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난해하고 현학적으로도 느껴진다. 이 산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이 내 그림에서 명확성 대신에 두서없는 말들을 수확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쓰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아구아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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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 엄지영 옮김 / 비채 펴냄
“엘레나는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살해 동기를 찾을 수가 없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살이라는 판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엘레나의 딸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7시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도록 신부가 탑으로 올려 보낸 남자아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신부는 자살로 추정되는 리타의 죽음에 대해 연민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엘레나에게 교만의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현실은 정반대인데 세상이 당신 말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죄를 짓고 있다고. 문제는 엘레나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
씨네21 추천도서 - <엘레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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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이 불편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궁에 산책 간/ 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궁이 좋아서”라고, 풍요로운 산책의 시간을 환기하는 대목도 있다. “슈크림의 다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라는 귀여운 표현을 읽으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들을 환기하면서, 그 감각으로 또 다른 세계를 키워나가는 시들이 있다.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는, 어느 겨울 SNS를 달구었던 논쟁이 떠오른다.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굳이 발로 차서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와 그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는 한편, 그런 논쟁이 있든 말든 현실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계속 있었다. “굴러가는 머리 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라는 표현에 이어, 시
씨네21 추천도서 - <미래는 허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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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지음 / 창비 펴냄
역사소설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 특히 4·3 사건처럼 수많은 주민이 죽어간 참사라면, 책에서 아무리 밝고 희망찬 내용이 펼쳐진다 해도 결말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온 거대한 뱀의 신화에서 시작하는 제주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 제주를 무지막지하게 괴롭히고 수탈한 일제와 그에 맞서 싸우고 끌려가고 죽어간 청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화산이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군이 공습을 가하는 바람에 섬은 암흑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어두운 시절에도 두 소년 창세와 행필은 바닷가에서 일본군을 향해 방귀 뀌는 시늉을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말 다루는 법을 배우는 창세의 누나 만옥 등 여성들 또한 제 삶을 개척해나간다. 청년들의 생기, 미래를 향한 꿈은 시대가 아무리 엄혹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꿈
씨네21 추천도서 - <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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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_ 현기영 지음
<미래는 허밍을 한다> _ 강혜빈 지음
<엘레나는 알고 있다> _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아구아 비바> _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휴가지에서 생긴 일> _ 마거릿 케네디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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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발상의 혁명적 전환을 보여주는 건축물 30개를 지역별로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먼저 유럽 지역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빠질 수는 없는, 20세기 전반의 건축을 대표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이 등장한다. 철근 콘크리트로도 다채로운 공간을 연출한 ‘빌라 사보아’, 벽면에 구멍을 내서 빛이 밤하늘의 별 같은 그림을 그리게끔 만든 ‘피르미니 성당’, 좁은 공간에서 이용자가 최대로 편하고 개성적으로 살 수 있게끔 궁리한 마르세유의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까지 한번쯤 직접 가서 경험하고 싶은 건축들이다. 베를린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방문했을 ‘독일 국회의사당’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노먼 포스터의 이 작품은, 돔을 유리로 만들고 내부에 전망대를 지어 최고 권력자만이 아니라 누구든 높은 곳에서 도시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북아메리카의 창의적 건축으로는 고든 번샤프트의 ‘바이네
씨네21 추천도서 -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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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 장성주 옮김 / 비채 펴냄
SF계의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가 그려낸 디스토피아 ‘우화’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가 겹쳐 ‘말세’ 혹은 ‘역병기’로 불리는 2015년에서 2030년이 소설의 배경이다.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던 소녀 로런은 혼란의 시대에 느닷없이 공격당해 집과 가족을 잃고 고생하다 남편 반콜레를 만나고, 산속에 에이콘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약한 사람들을 하나둘 받아들인 것이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로런은 새로운 종교 지구종을 창시한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라는 믿음으로, 지구뿐만 아니라 바깥의 우주 세상으로도 생명의 씨를 뿌리고자 하는 종교다. 공동체 모두가 지구종을 믿지는 않지만, 다들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 작물을 내다 팔면서 위험한 세계 속에서 한 조각의 평온을 찾는다. 로런이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초공감자’라는 설정은, 등장인물이 어떤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삶을 꾸
씨네21 추천도서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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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지음 / 창비 펴냄
김멜라 작가의 첫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의 아세로라는 도끼를 들고 그야말로 설친다. 요가 매트 위에서도 도끼를 휘두르는 연습을 하고, 창밖에서 욕지거리로 이웃이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에도 도끼를 손에 쥔다. 누구를 해칠 용도는 아니다. 사람에게 눈, 코, 입, 손이 있듯이 도끼가 원래 아세로라에게 쥐어진 존재와 같다. 소설은 두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앞장에서 아세로라에 의해 동거인으로만 소개되는 인물이 아세로라의 할머니 사귀자씨다. 2장이 할머니 하이쎈스의 이야기다. 아세로라와 하이쎈스는 남산빌리지라는 낡은 상가 건물의 없는 층에 산다. 할머니와 아세로라가 사는 2층에는 주소가 없다. 왜 주소가 없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한다. “처음부터 그랬어. 주소는 못 만들었어.”
어느 날 아세로라는 우연히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신문보도안, 남산 아래 간첩 조직 일망타진. 하숙을 경영하며 소시지 반찬으로 하숙생을 포섭, 암호명 하
씨네21 추천도서 - <없는 층의 하이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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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계절 시리즈도 어느덧 출간 5년째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이 단행본 시리즈 덕분에 잘 쓰는 젊은 작가와 여럿 만났다. <소설 보다: 여름 2023> 역시 마찬가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와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 하가람의 <재와 그들의 밤>이다. 하나의 주제로 묶이질 않는, 개성이 다른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읽고, 이어지는 작가 인터뷰를 읽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묘미다. 공현진의 단편소설은 암울하고 비관적인 제목과 달리 다정한 온기가 묻어난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주호와 희주는 수영장 초급반에서 만난다. 초급반에서 나란히 꼴찌인 두 사람을 향해 강사는 못하는 사람은 뒤로 빠지라고 소리 지르지만 눈치 없는 주호는 끝까지 앞에 선다. 대열에 잘 끼지 못하고 강사의 철칙에 의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여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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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펴냄
김태희, 임지연 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의 원작 소설. 김태희는 주란 역을, 임지연은 상은 역을 연기한다.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은 김진영 작가의 스릴러로, 마당에서 시체 냄새가 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마당이 있는 판교 신도시의 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 친구들을 초대한 주란은 안 그래도 걱정하던 마당의 악취에 대해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자 신경이 곤두선다. 스물네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로 15년간 살아온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친구들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회생활이 간단하지가 않아”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면 무능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와중에 악취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파보면 되잖아”라는 것도 어쩐지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남편이 딱 잘라 거름 냄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상은은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가구 매장에서 판매원
씨네21 추천도서 - <마당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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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_ 김진영 지음
소설 보다: 여름 2023 _ 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지음
없는 층의 하이쎈스 _ 김멜라 지음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_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_ 유현준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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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 미셸 포르트 지음 뮤진트리 펴냄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영화 제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뒤라스는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여러 장소를 옮겨다니며 성장했고, 나중에 파리에서는 여러 아파트에 세 들어 살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자기의 집(<태평양을 막는 제방>의 영화 판권 계약금으로 마련한 노플르샤토에 있는 집)을 갖게 되었을 때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금은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어쨌든 이 집은 너무도 나의 것이 되어서 내가 있기도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의 소유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예요.” <뒤라스의 그곳들>은 1976년 TV프로그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소들>을 위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영화감독 미셸 포르트와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름을 알린 소설 <연인>과 각본 <히로시마 내 사랑>
[리뷰] 뒤라스의 그곳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