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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낮은 해상도로부터>는 서이제의 소설집이다. 세상의 북적이는 구석구석의 장면들이 고해상도로 포착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에서 벽을 때리는 이웃의 소음에 시달리는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소음? 랩이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랩은 소음이 된다. 옆집에 쪽지를 쓴다. 힙합으로 썼다. 매드클라운의 <Flowdown>(feat. 화나 & 탁 of 배치기)에서 인용했다. “그 잘난 이빨 갈아봤자 너는 겨우 다람쥐.” 써놓고 보니 다람쥐는 너무 귀엽고, 다람쥐 하니까 도토리가 생각났고, 도토리 하니까 미니홈피 생각이 나고. 쿵 쾅쾅. 그리고 깨닫는다. 지금 페이퍼를 써야 하는데 백지일 뿐인 페이퍼가 한숨과 두려움의 원천임을. 생각은 흘러흘러 한국문학이란 무엇일까에 닿는다. 쿵 쾅쾅. 생각은 흘러흘러, 쿵 쾅쾅! 한국 힙합의 랩 가사들이 곳곳에 각주 표시되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결국 힘 빠
씨네21 추천도서 - <낮은 해상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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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펴냄
대림동 수정커피호프, 2022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2043년 화성 마오 기지로 옮겨갈 때, 문득 ‘옴니버스 소설인가?’라는 형식에 대한 의문이 둥실 떠오른다. 이내 주인공 이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동일한 인물들이 다른 시공간에서 겪는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 대림동과 화성에서 만나는 ‘씨엔’과 ‘미’의 이름이 서로 달랐을지라도 이들은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다. 성격과 말투, 계급조차 다르지만 씨엔의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화자가 앞선 대림동의 거친 남성과 같은 사람임을 독자가 예상케 하는 감정의 연결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답답한데 어디로 나가면 좋을까, 이 항변을 어느 광장에 나가 누구와 외치면 좋을까. 뉴스를 볼 때마다 조여드는 갑갑함에 부대끼는 현실 속에서 김형규의 소설은 노동자와 가난한 자,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 인물들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로 부르기보다는 직장인이라 불리길 원하는 세상에서 그의 소설을
씨네21 추천도서 - <모든 것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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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세편의 소설을 선정하는 시리즈 <소설 보다>의 가을 2023 버전이 출간됐다. 김지연의 <반려빚>은 빚을 반려동물처럼 여기는 주인공에게서 착안한 제목이다. 반려빚이라니, 처음엔 빛을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정현은 전 애인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포함해 총 1억6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꿈속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도 나간다. 물론 목줄을 쥔 쪽은 반려빚이다. 현실에서도 정현은 종일 돈 생각만 하고, 대출 이자에 허덕이느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사먹지 못한다. 빌려준 돈도 갚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린 주제에 오랜만에 찾아와 “나 너희 집에서 지낼게”라고 요구하는 서일에게 화조차 내지 않는 정현이 구제 불능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정현에게 빚을 떠안긴 서일 역시 전세 대출 사기의 피해자이기 때문일까. 정현은 빚을 다 갚고 대출금이 0이 되고서야 플러스도 아닌 제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가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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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하 지음 / 메이킹북스 펴냄
일상생활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평상시의 생활이라고 한다. 평상시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보통 때를 가리킨다. <단 하루의 부활>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상 풍경으로 시작하는 네 편의 단편집이다. 첫 단편 <단 하루의 부활>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휴대전화에 전달된 스미싱 문자로 시작한다. 다들 이런 사기 문자를 한 번쯤 받아보았을 것이고, 링크를 누르면 큰일 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렇지만 보낸 상대가 아버지 이름을 하고 있어서, ‘나’와 엄마는 마음이 흔들린다. 또 다른 단편 <할머니의 방황>은 오랜 세월 살아온 집을 재개발 때문에 넘기고 이사한 할머니가 마음에 드는 새 교회를 찾지 못해 이 교회 저 교회 시험 삼아 가보며 방황하는 이야기다. 재개발이나 교회 찾기 또한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런데 자식과 손주가 할머니의 교회 길에 함께 가주어야 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교회 지인의 아들
씨네21 추천도서 - <단 하루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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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생활명품’이란 직접 사용해서 고른, 일상의 유용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뜻 한다. 일상이 소중하다면 그 일상을 채우는 흔한 물건부터 잘 골라서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아마 자취를 좀 했거나 살림을 맡아본 적 있다면 쉽게 동의하리라. 책에는 장보기 목록에 올려둘 법한 물건이 잔뜩 실려 있다. 이미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바 있는, 택배 상자 전용 커터 ‘트로이카’는 아무래도 사야 할 것 같다. 계란찜을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실룩실룩’ 실리콘 찜기는 지금 쓰는 도구를 버릴 때가 되면 사봐도 좋겠다. 콧수염 가위 브랜드 ‘카이’는 여성들에게는 눈썹 칼로 유명한 브랜드다.
비싸지만 언젠가는 사고 싶은 제품도 있다. 어느 재벌가 회장이 입어서 유명해진 캐나다의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 재킷은 재봉선이 꼼꼼하고, 산에 가나 콘서트홀에 가나 어색하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매끄러운 핸들링으로 유명한 유아차 브랜드 ‘부가부’에서 바퀴 잘
씨네21 추천도서 -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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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_ 윤광준 지음
<단 하루의 부활> _ 김서하 지음
<소설 보다: 가을 2023> _ 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지음
<모든 것의 이야기> _ 김형규 지음
<낮은 해상도로부터> _ 서이제 지음
<네가 사라진 날> _ 할런 코벤 지음
<마주> _ 최은미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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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성비의 시대다.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는 걸 넘어 아예 스토리 요약본으로 콘텐츠의 내용을 이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수 있다. 사실 한편의 영화나 한 시즌의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관람하는 건 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본 내용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축약된 영상들은 별도의 2차 창작물에 가깝다. 축약본으로 스토리를 학습하는 것과 본편으로 전체를 관람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체험이다. 이제 영화는 스크린 바깥으로 나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구태의연하게 ‘영화가 무엇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완성도의 영상물이 넘쳐나고, 긴 상영시간으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으며, 입체영상처럼 더 실감나는 기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건 무엇일까. 질문을 달리하자. 영화는
[리뷰]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네오 클래식 무비 199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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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롤리타>일 것이다. 하지만 나보코프가 자신의 경험을 부은 자전적 소설이며 작가로서의 분신이 등장하는 작품은 <프닌>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 <프닌>은 다소 실험적인 작법의 소설이고, 나보코프가 천착하던 문학적 이론과 미국 사회에 대한 은유, 화자가 여러 번 바뀌는 등의 이유 때문에 소품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모든 소설 캐릭터 중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프닌을 꼽기도 했다. 존경? <프닌>을 읽다 보면 이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외관에 대한 묘사,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영어가 서툴고, 그로 인해 주변인이나 사물들과 싸우는 부분 등은 코믹하게 그려진다. 특히 미국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세계 지식인으로서 체득한(자본주의사회에서는 하나도 쓸모없는) 지식을 고집하는 모습 등은 루쉰의 <아큐정전>
씨네21 추천도서 - <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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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 지음 / 김선영 옮김 / 비채 펴냄
작은 상점가에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 상점가 사람들은 대형 마트 개점을 반대하지만 대기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인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굳이 강자와 약자로 나눠 독자에게 한쪽을 편들라고 하면 대다수는 상점 문을 닫고 이사를 가야 하는 작은 상점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여기에 이런 질문을 추가해보자. “대형 마트에는 뭐든지 있을까? 대형 마트에서 불가능한 판매 전략을 작은 상점에서 할 수는 없을까?” <아키라와 아키라>는 영세공장과 은행, 상점가와 대기업 마트, 대기업 안에서도 해운과 상회, 관광업 등 자회사간의 다툼 등 ‘경제’라는 이름 안에 얽힌 복잡한 문제를 호쾌하게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소설가 이케이도 준의 이름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은행원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과 대히트했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자라는 것이다.
전작 <육왕>이 소규모 기업이 열정과 아이디어 그
씨네21 추천도서 - <아키라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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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모건 지음 /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무료로 이용 가능한 실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취약 계층에 도서관은 더위와 추위를 피해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컴퓨터를 잠시 빌려 쓸 수도 있으며 물을 마시거나 개인위생도 돌볼 수 있는 공공시설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도서관에 대해 혹은 거기서 일하는 사서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없다. <사서 일기>는 도서관 사서의 실감나는 에세이이지만, 적재에 배치된 생기 어린 캐릭터와 그들이 일으키는 소동 덕분에 소설의 박진감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앨리는 도서관에서 보조사서로 일하게 된다. 책을 사랑하던 앨리에게 도서관 근무는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거기서 일하기 전까지 ‘도서관 사서’가 얼마나 자질구레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는 자세히 몰랐다. 어린이 노래 교실과 뜨개질 클럽 진행, 도서관 단골 이용자의 만성질환
씨네21 추천도서 - <사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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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지음 / 창비 펴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김지혜 작가가 두 번째 책 <가족각본>으로 돌아왔다. 이번 책은 가족제도에 숨은 차별과 불평등을 파헤친다. 그 시작은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시위 구호를 들여다보고, 한국의 가족제도에서 며느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 입법 예고에 대한 반대 시위에서(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도 입법에 실패하고 있다) 처음 등장한 이 문장은 지금도 볼 수 있다. 며느리와 사위를 구하는 설화를 각각 분석하며 이 책은, 예능으로 치면 ‘사위 고르기’는 단발성 순발력 테스트에 가깝고, ‘며느리 고르기’는 장기전인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며느리라는 역할은 “주도성이 요구되는 종속 상태라는 모순적인 위치”인데, 남성의 역할 역시 모순적이다. “남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사회적 출세인데, 이를 이루지 못했을 때 가족 내의 권위는 형식만 남는다.”
<가족각본>은 가족에 대한 한
씨네21 추천도서 - <가족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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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대븐포트 지음 /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정물화는 과일이나 꽃, 생선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영어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고 불리며,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주제에 이르면 움직이지 않는다(still)는 데서 필연적으로 연상되는 죽음을 은유하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박한 예술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소네트와 같다. 미국의 작가, 학자, 교육자, 번역가, 삽화가인 가이 대븐포트는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을 폭넓게 썼는데, 그중에서 <스틸라이프>는 미술사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으나 현대에 들어오며 가장 실험적인 장르가 된 정물을 (인)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저술이다. 정물화에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빵과 와인이 기독교에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듯이, 사과와 배는 ‘한쌍의 이미지’로 자주 다루어지며 정물화뿐 아니라 시와 소설, 산문에서도 유구하게 함께 언급되는 소재였다.
씨네21 추천도서 - <스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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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_ 가이 대븐포트 지음
<가족각본> _ 김지혜 지음
<사서 일기> _ 앨리 모건 지음
<아키라와 아키라> _ 이케이도 준 지음
<프닌> 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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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제물>을 수식하는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제2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역대 최다 득표, 2023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3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2위 등이 그것이다. 1990년생으로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로 데뷔한 시라이 도모유키의 <명탐정의 제물>은 1978년 11월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공화국에서 신흥종교 신도 1천여명이 집단 사망한 인민사원 자살사건을 둘러싼 추리극을 보여준다. 실제로 같은 날짜에 있었던, 짐 존스가 이끄는 인민사원 자살사건을 연상시키는 설정이지만 “이 소설은 픽션이며 실재 인물 및 단체와는 일절 관계없습니다”로 시작한다.
<명탐정의 제물>의 주인공은 탐정 오토야 다카시. 그에게는 아리모리 리리코라는 뛰어난 조수가 있다. 뛰어나다 못해 오토야를 뛰어넘는 추리를 보이는 인물. 종교 집단 관련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리리코가 인민사원에 대해 알아보
[리뷰] 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