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펴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구상하는가.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제작 과정 전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에세이다. 2022년 11월30일,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의 프랑스 개봉에 맞춰 방문한 파리에서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본인이 고른 식당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는 왜 안 먹고 기다렸냐고 말문을 열더니 음식이 나오고는 이런저런 투덜거림이 이어졌다는 회고로 책은 시작한다. 통역을 거친 대화는 뉘앙스에 대한 상상이 더해져 “어딘지 모르게 기키 기린씨 느낌이 가미됐다는 것을 미리 고백해둔다.” 카트린 드뇌브와 기키 기린은 1943년생 동갑.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공통점은 “재미있어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의 “재미있어하는 능력”을 살뜰히 담은 책이다.
먼저 설명하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보지 않았어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영화제 참석을 위한 장거리 비행 중에 떠올리는 몇줄의 스토리, 다른 작품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하고 수정할 것을 메모하기, 배우들과의 미팅과 시나리오 초고 집필, 함께 작품을 할 배우의 영화들을 챙겨보기, 로케이션 헌팅. 메모, 메모, 메모. “(카트린 드뇌브가)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다. 완전히 줄담배를 피웠다.” 이것은 고레에다식의 유머일지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감독 입장에서 크고 작은 길을 기록해둔 결과물이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읽을거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마지막 ‘끝맺으며’에는 <브로커>의 촬영 현장에 대한 글이 실렸는데 무척 흥미롭다. 한국 촬영 현장에서의 근로시간 엄수를 언급하며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감독(고레에다 본인)이라면 그사이에 영화를 한편 더 찍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고 하는가 하면, 50대 스태프가 현장에서 사라지는 (인적 쇄신이 빠른) 문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한국에서 경력을 쌓아 감독이 됐다면 어땠을까 싶어 오싹했다”. ‘이 감독은 이렇게 영화를 하고 있구나’에서 시작해 ‘우리는 어떻게 영화를 하고 있는가’로 생각이 이어지는 독서가 된다.
미국의 연기 지도자 마이스너는 ‘배우들이 서로 적확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연기에 공헌한다’라고. 바꿔 말하면 미조구치 겐지가 말하는 반사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납득할 수 있는 사고방식. ‘메소드’는 아무래도 대화가 자기 과거를 향하게 마련이라 연기가 자기 완결적으로 보인다.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