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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에트르 펴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프루스트의 <스완네 집 쪽으로>를 번역하기도 한, 시인이자 소설이자 번역가인 리디아 데이비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제조법을 담았다.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의 글쓰기 책이 재미있는 점은, 구구절절할 정도로 세세하게 자신이 사랑하고 영향받은 멋진 작품들에 대한 찬미를 잊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기와 편지는 어떻게 한편의 시나 소설로 발전할 수 있는지,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적은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여기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말은 관습적인 해답이고, 사실 더 긴장감 넘치는, 울퉁불퉁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묘하게 신경 쓰이는 글이라는 해결책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섬세한 독법이 필요하며, 리디아 데이비스는 자신의 글을 도마 위에 올린다. 예시로 언급되는 글이
[리뷰] 형식과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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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 지음 /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펴냄
잊을 만하면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나라에 살지만 사회적 애도에 대해서는 유독 박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상실에 대해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그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서사로 치장하는 데 분주한 사람들이 애도를 금지된 것으로 만든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이 기묘한 방식으로 잠시 멈추었던 나날에 대한 글이다. 원제 ‘The Year of Magical Thinking’(마술적 사고의 해)은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뜻한다. 애도가 끝나기까지의 필요한 마음의 시간을.
2003년 12월30일. 조앤 디디온 부부는 집중 치료실에 입원 중인 딸을 면회하고 귀가했다. 조앤 디디온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남편이 이상하다는 것을- 더는 살아 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이 순간은 <상실>에서 몇번이고 반복해 등장하는데
[리뷰]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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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지음 /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푸코가 공간 연구의 대표 격 철학자라고 할 순 없다. 공간을 연구한 사상가로는 자본주의를 아케이드로 읽어냈던 발터 베냐민이나 공간을 개념적으로 나누었던 앙리 르페브르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판옵티콘의 관계를 지적했던 푸코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건축과 지리, 도시의 건축물(특히 병원과 감옥)에 대해서는 푸코가 새로운 논의를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한국의 사회, 경제의 여러 논의들은 사실상 공간의 점유가 쟁점이다. 공간이 자본이 되고, 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공간에 대해 사유한 8편의 텍스트(강연, 대담을 비롯)를 담은 <권력과 공간>은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를 경유해서 읽었을 때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와닿는다. 푸코의 철학을 잘 모를지라도, 결국 그가 평생 해왔던 연구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왜 ‘당연하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권력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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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지음 / 난다 펴냄
주의 사항이 있다. 이 책은 버스나 지하철 혹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종종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 오늘 실연당했나봐’ 혹은 ‘가족 중에 누가 죽었나’ 싶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틀린 추측은 아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1월의 일기임에도 이 책에는 김민정 시인을 둘러싼 죽음과 헤어짐, 만남의 설렘이 쓰여 있다. 난다의 새 시리즈 ‘시의적절’의 첫권 <읽을, 거리>는 일기 형식처럼 1월1일부터 31일까지의 시, 에세이, 인터뷰 글이 묶여 있다. 1월1일은 후배와 만나서 술을 마시다 들은 음악에 대한 짧은 생각, 1월3일은 작가의 친한 동생이기도 했던 코미디언 고 박지선의 인터뷰가 차례로 독자를 반긴다. 시리즈 ‘시의적절’이 시인들이 한‘달’씩 맡아 자유롭게 글을 쓸 예정인지라 <읽을, 거리>에도 김민정 시인이 만난 사람, 그가 겪은 이별과 가벼운 에피소드 등이
씨네21 추천도서 -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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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지음 / 창비 펴냄
역사 (답사)여행의 붐을 일으켰던 유홍준 작가가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서문의 유명한 첫 문장이 진화해서 새로운 시리즈가 됐다. 첫권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삼국시대 중 고구려까지를 다루고, 2권은 백제, 고신라, 그리고 가야 중 비화가야 답사를 담았다. 이미 여행지로 유명한 전국 방방곡곡이 역사 여행이라는 범주로 새롭게 읽힌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매력인데, 대표적으로 1권의 부산 영도가 있다. 대형 카페가 많아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이곳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부산 영도 동삼동 패총이 있다. 패총이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쌓인 것으로,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부산은 한반도에서 패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국전쟁 중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잣집의 풍경으로,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
씨네21 추천도서 - <국토박물관 순례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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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해, 서미애 외 지음 / 나비클럽 펴냄
제17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됐다. 수상작인 박소해 작가의 <해녀의 아들>을 포함해 모두 일곱 작품이 실렸다.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상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은 작품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는데, 이번 책에는 당선작인 <해녀의 아들>과 송시우 작가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이 각각 제주 4·3 사건과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해녀의 아들>의 주인공인 형사 승주는 휴가를 맞아 집에 왔다. 해녀인 어머니를 만나러 간 그는 어머니의 친한 친구인 해녀 영순이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찰에서는 사고사라 생각하고 조사 중이지만 승주의 어머니는 영순이 살해당했으리란 추측을 내놓는다. 뜻밖에도 단서는 승주의 아버지, 그리고 4·3 사건으로 뻗어간다. ‘작가의 말’에 박소해 작가는 “<해녀의 아들>은 미스터리만이 해낼 수 있는 해원굿입니다”
씨네21 추천도서 -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3년 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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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3년 제17회 - 박소해, 서미애 외 지음
국토박물관 순례 1, 2 - 유홍준 지음
읽을, 거리 - 김민정 지음
권력과 공간 - 미셸 푸코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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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푸르셰 지음 / 김주경 옮김 / 비채 펴냄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고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썼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자아가 충돌하며 나와 다른 상대를 확인하고 또 그 과정에서 몰랐던 나를 확인하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프롬은 사랑을 실존의 핵심에서 자신을 경험한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흔히들 “불이 붙었다”고 비유하고, 연인이 심하게 싸울 때 “불같이 싸웠다”고 표현한다. 마리아 푸르셰는 <불>의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활활 타오르다 소멸하고, 잿더미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기까지. 불은 사랑의 모든 형태를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사회과학 교수인 로르는 심포지엄에서 증권가에서 일하는 클레망을 만난다. 로르는 클레망의 속이 다 비칠 듯한 피부와 남자치고는 예쁘고 가느다란 손목을 보
씨네21 추천도서 -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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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지음 / 창비 펴냄
써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기억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쓰지 않으면 내게 이런 과거가 있었는지조차 묻고 살다가, 쓰기 시작하면 재생버튼을 누른 듯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나를 흔들어놓고, 나이 든 지금의 나를 형성했던 중요했던 기억들을 왜 이토록 묻어두고 살았나 싶어진다. 이주혜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은 ‘나’가 우울증 상담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편이 함께 정당 활동을 하던 여자 동료를 스토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혼한 ‘나’는 딸과도 멀어지고 그간의 생활을 정리한 뒤 폐인처럼 살아간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우울증 상담을 받던 중 의사는 ‘일기를 써보’라고 추천한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요”라는 의사의 말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씨네21 추천도서 -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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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고등학교 교사 곽은 고전 읽기 수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 보편적인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고전을 열심히 읽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술을 써내는 은재 같은 우등생은 곽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수능 시험에 나올 문제집 풀이가 아닌 독서를 통해 청소년의 인격 함양을 꾀한다는 점에서 곽은 좋은 선생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독자로서 곽을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다. 그가 무지한 학생들을 향해 뇌까리는 속마음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계절마다 세편의 소설을 선정해 출간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의 2023년 겨울편에 수록된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보편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단편소설 다음에 작가의 긴 인터뷰를 수록하는데, 김기태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다루는 문제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겨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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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인디안 페일 에일이 ‘창백한’(pale)이란 뜻인 줄 알고 색이 옅으면 도수가 낮을까 싶어 주문했더니, 뜻밖에도 독하고 써서 놀란 적 있는지. 인도로 간 영국인들이 고국의 맥주를 그리워해, 기나긴 항해를 버티라고 높은 알코올 도수로 제조하여 인도로 수출한 술이란다. 술을 사랑하는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잊지 못할 묘한 단편 <레더호젠>과 관련된 일화도 소개한다. 이 단편은 남편의 부탁을 받은 아내가 멜빵 달린 반바지 레더호젠을 사면서 저도 몰랐던 미움이 솟구친다는 내용이다. 옥토버 페스트용 의상인 가죽 레더호젠으로 꽉꽉 들어찬 베를린의 백화점 풍경을 실제로 본 저자는, 아내가 왜 화를 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단다. 이처럼 술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쉽게 찾는 음료이기도 하지만, 어원과 문화적 맥락을 따지고 들어가면 세계를 한층 넓혀주는 취향이 된다.
<밤은 부드러워, 마셔>는 술과 그 술에 어
씨네21 추천도서 - <밤은 부드러워,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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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관점 하나.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생각하며 진리에 다다른 사람을, 의사나 심리사가 그 다름을 이유로 질환으로 규정한다는 것. DSM 같은 정신 질환 분류법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한 정신적 세계가 있다는 발상은 여러 작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스텔라 마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 발로 정신병원에 찾아온 천재 수학자 얼리샤와 정신과 의사의 대화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얼리샤는 정신의학의 관점에서는 조현병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손에 물갈퀴가 달린 ‘키드’라는 이질적인 생명체를 어릴 때부터 보았다. 이같은 남다른 지각은, 양자역학을 비롯하여 20세기 과학사가 거둔 빛나는 성과를 어린 나이에 단숨에 이해한 비범함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과학은 진보한 만큼 어둠을 드리웠고, 그 어둠은 얼리샤의 개인사에도 스며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물리학자였던 얼리샤의 아버지는 쓸쓸하게
씨네21 추천도서 - <스텔라 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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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마리스> - 코맥 매카시 지음
<밤은 부드러워, 마셔> - 한은형 지음
<소설 보다: 겨울 2023> -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지음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 이주혜 지음
<불> - 마리아 푸르셰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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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수년에 걸쳐 거슬리는 인간들을 차례로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한다. 이런 사이코패스를 독자가 응원할 수 있을까. 그가 주인공이고 그의 내면의 지도를 상세히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사이코패스를 미워할 수만 없도록, 심지어 그의 범죄 행각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날 상황이 되자 그가 상황을 무사히 피해가도록 응원까지 하게 만드는 놀라운 전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사이코패스 톰의 어두운 영혼으로 향하는 계단 층의 높이를 서서히 높여가며 독자가 그에게 동화되도록 만든다. 살인 후 덤덤하게 시체를 처리하고 감흥조차 갖지 않는, 도덕심은 없지만 미식가이고 탐미적인 취향을 가진 복잡한 톰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 적도 없건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톰의 시선으로 그를 둘러싼 사회와 고급 취향의 집 안 정경을 바라보게 된다. 이는 톰 리플리가 거짓말로 올라탄 계급 사다리를 투영하기도 하며, 그
씨네21 추천도서 - <리플리 5부작 세트>